세미나는 지금 세일 중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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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만원으로 모든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는 인문학 공간이 많아졌습니다. 이 소식을 반가워하는 나는 세미나 경험이 좀 있는 사람입니다. 인문학 공부가 처음은 아니지요. 그리고 인문학 공부에 저 2만원 보다는 더 많은 돈을 썼던 사람입니다.

‘월 2만원’은 상징적인 액수입니다. ‘2만원’은 돈으로서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그것은 세미나의 존재를 알리는 표시일 따름이죠. 왜냐하면 2만원은 공간 임대료를 충당하기에도 충분하지 않고, 특정인의 수고료로 지불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월 2만원에 모든 세미나를 개방하는 인문학 공간은, 일단 같이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인문학 공간에서 읽는 책들은 사실 어렵습니다. 심심해서 덥석 집어 들게 되는 책은 아니지요. 그래서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기 위해서도요. 세미나는 자신의 공부를 하면서 뜻하지 않게 남의 공부를 도와주는 공부 방식입니다. 공부를 좀 더 먼저 시작했거나, 이해력이 더 좋은 멤버가 있을 수 있지만 세미나인 한 그들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동료입니다. 세미나는 모두 가르치고 모두 배우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세미나 비용은 인문학 공간마다 다릅니다. 세미나마다 따로 회비를 받는 곳이 있는데, 공간 대여비를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모든 세미나를 월 2만원에 한다는 것이 오히려 비상식적이죠. 기획세미나라는 이름을 붙여 다른 세미나보다 많은 회비를 걷는 곳이 있습니다. 이건 뭘까요? 그런 세미나에는 튜터가 있습니다. 튜터가 무엇을 가르치는 자리라면 그것은 왜 강좌가 아니고 세미나일까요? 세미나라서 강의는 하지 않는다면 왜 더 높은 세미나 회비가 요구되는 것일까요? 튜터가 함께 한다는 것이 그 이유라면 그 세미나는 함께 공부한다는 취지 외에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튜터의 자릿값입니다. 튜터의 자릿값은 튜터 개인이 아니라 그 인문학공간의 명성에 기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문학공간의 명성을 좌우하는 특정 유명 강사 하나에 기대고 있습니다.

세미나마다 회비를 다르게 받는 공간일수록 강좌를 듣는 비용도 비쌉니다. 최근 여러 인문학 공간의 강좌들을 보면 꽤 이름 난 전공자의 강의도 회당 2-3만원에 책정됩니다. 그것과 비교해보면 저런 곳은 확실히 비쌉니다. 비싼 강좌료가 단지 강사의 유명세로만 가능한 건 아닙니다. 그만큼 강좌를 진행하는 기간도 깁니다. 수개월에서 1년까지. 그러나 그렇게 장기 강좌를 개설할 수 있는 것도 결국 강사의 유명세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으니 그게 그겁니다. 이런 곳의 또 다른 특징은 자율적인 세미나가 점점 사라진다는 겁니다. 세미나를 개설하거나 세미나 주제를 결정하는 것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세미나보다는 강좌가 주를 이루고 그것도 비용이 많이 드는 장기 강좌들로 채워지지요.

강의를 듣기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수동적입니다. 강의를 듣는 것이 공부가 되려면 예전에 학교 선생님들이 강조했던 바로 그 예습 복습이 필요합니다. 책을 직접 읽고 자기에게 온 느낌과 의견을 명확히 한 후에 강의를 들어야 하며, 자신의 의견과 다른, 강사의 해설에 대해 질문할 수 있어야 하며, 강의 후에는 그것들을 종합해서 자신이 배운 바를 정리해야 합니다. 인문학 강의를 들을 땐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름난 강사의 강의를 들을 땐 더더욱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회나 절을 찾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사의 말은 진리가 아니고, 강사는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인문학 공동체에서의 공부는 세미나가 어울립니다. 세미나는 그 자체로 공동체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미나에서는 힘 있는 목소리에 집중되었던 시선이 “그런데 내 생각에는…”하고 시작하는 구석의 작은 목소리로 인해 분산됩니다.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하고, 집중된 힘은 사안에 따라 이리 저리 흘러 다닙니다. 비싼 장기 강좌가 많은 곳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비싼 강좌료는 강사가 가진 권력 자체를 표현합니다. 장기 강좌는 그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해주지요. 이런 인문학 공간은 공동체가 아니라 인문학 학원으로 이름을 바꾸면 좋겠습니다. 유명 강사일수록 강좌료가 비싼 게 그 업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세미나는 세일 중입니다!

지니

생각을 넘어가지도 않고
생각에 못 미치지도 않는
말을 찾고 있습니다

2 thoughts on “세미나는 지금 세일 중”

  1. 세미나는 세일중!
    세미나의 매력을 정말 잘 설명해주신,
    어떤 애잔함과 알 수 없는 기운이 솟아오름을 느끼게 해 주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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