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술과 사기술의 영성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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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의 말에 혼백魂魄이나 정신精神이니 하는 말은 있어도, 영혼靈魂이라는 말을 찾기는 힘들다. 대관절 이 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호기심 끝에 <문시진경文始眞經>이라는 책을 찾았다. 여기서 문시진인文始眞人이란 관윤자關尹子라니 필시 빼어난 통찰이 있을 테다.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노자가 서쪽으로 가면서 관문을 넘어갈 때에, 그를 붙잡고 만류하는 자가 있었단다.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간절한 청이었던 듯싶다. 조용히 사라지려 했던 이 늙은이는 그 간청에 못 이겨 5천 자의 글을 남겨 주었단다. 그것이 바로 <노자 도덕경>이라 불리는 책이며, 노자를 붙잡고 글을 받은 사람이 관윤이다. 노자의 제자라 하여 진인眞人, 그의 글을 진경眞經이라 높였을 테다. 노자의 제자로 일컬어지는 관윤, 그의 글 <문시진경>을 어찌 가벼이 볼 수 있으랴.

흥미로운 기록이니 조금 옮겨보자. “귀신(鬼)이 움직이는(云)것을 일러 혼魂이라 하며, 귀신이 또렷한 것(白)을 일러 백魄이라 한다. 귀신이란 사람이 죽어 변하는 것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바람이며, 바람은 나무의 속성(木)이다. 또렷하다는 것은 기운(氣)이며 기운이란 쇠붙이의 속성(金)이다. 바람이 흩어져 가볍고 맑아지니, 가볍고 맑아 하늘로 올라간다. 쇠붙이는 단단하여 무겁고 탁하니 무겁고 탁한 것은 땅으로 들어간다.” <문시진경 사부四符(원문)>

혼비백산魂飛魄散을 이야기한 부분이라 재미있게 보았다. 관윤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죽어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가볍고 맑은 것이오, 하나는 무겁고 탁한 것이란다. 가볍고 맑은 혼은 날아가고, 무겁고 탁한 백은 땅에 묻혀 흩어져야 한다. 고대인은 존재란 천지간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관윤은 이렇게 말한다. “靈魂爲賢,厲魂爲愚: 영혼靈魂이란 뛰어난 것이며 려혼厲魂이란 어리석은 것이다.” 따라서 영혼이란 그저 혼을 수식한 말에 불과하다. 이때 ‘영靈’이란 빼어난, 훌륭한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의 혼은 영혼靈魂, 빼어난 혼일 수도 있고 려혼厲魂, 사나운 혼일 수도 있다. 

영혼은 존재하는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영혼이란 혼의 특정한 상황일 뿐이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영혼이 없을 수도 있다니! 불멸의 영혼을 믿는 이들에게는 불편한 말이겠지만 수천 년 전 사람의 생각과 오늘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옛사람의 말을 길어 올리면 자못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발견할 수도 있는 법.

수식어에 불과했던 ‘영靈’을 불멸의 존재로 승화시킨 것은 아무래도 마테오 리치의 공으로 돌려야 할 테다. 마테오 리치는 중세 철학의 아니마Anima를 차용하여 혼魂을 셋으로 나누었다. 세상에는 생혼生魂, 각혼覺魂, 영혼靈魂이 있단다. 생혼이란 생장하는 능력이며, 각혼이란 감각하는 능력이다. 각각 식물과 동물을 생각하면 쉽다. 식물은 생장할 뿐 감각할 수는 없으나, 동물은 생장하며 감각한다. 인간은? 이들보다 고귀하여 또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바로 영혼, 이성의 판단 능력이다. 마테오 리치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이 고유한 능력이 불멸不滅,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보았다.

전통 지식인은 과연 마테오 리치의 영혼불멸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것이 매우 새롭거나 아주 매력적인 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와 비슷한 논의가 이미 오래전에 있었던 까닭이다. 바로 불가佛家 내부에서 논의된 신멸神滅•신불멸론神不滅論이 그것이다. 과연 인간의 정신(神)은 사라지는가 사라지지 않는가. 리기론理氣論의 이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영원한 존재란 없다. 오직 끊임없는 생성(生生不息)만이 있을 뿐이다. ‘불멸’이란 천지조화를 모르는 이의 철없는 주장일 뿐이다. 

그러나 ‘영혼’의 발견이 헛짓거리였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생물학적인 수준, 감각적인 수준을 넘어 보다 깊은 심층의 무엇이 있다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이 심층, 영혼의 자리야 말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영역이다. 그저 마음을 기쁘게 해서는 안되고, 영혼을 울려야 한다. 짜르르 영혼을 울리는 것이야 말로 진정 훌륭한 능력 아닌가.

오늘날 영성靈性이란 이 영혼을 감동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몸도, 마음도 아닌 그 아래, 존재의 정수를 담은 무엇을 건드리는 힘이 바로 영성이다. 허나 범인凡人들에게는 요원한 능력이다. 제 몸뚱이를 건사하기 바쁘며, 일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정념을 감당하기도 바쁜데. 따라서 이 영성이란 특별한 수련과정을 통해 길러야 하는 능력이다. 영성 수련법, 과연 어디에서 이것을 배울 수 있을까?

노자가 일찍이 말하지 않았나. 불언지교不言之教, 말로 할 수 없는 가르침이 있다고. 제 스스로 깨칠 수 있을 뿐이다. 영성이란 비밀스러운 기술이다. 헌데 왕왕 사람들은 이를 덕을 쌓은 결과라 착각하곤 한다. 선을 쌓아야 영성을 기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그 어디에도 선을 쌓으면 빼어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없다. 누구의 말처럼 선을 쌓는 것은 그 자신에게만 선한 일일이다.

영성이란 말 그대로 영민靈敏한 능력일 뿐이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남보다 빨리 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다. 선악을 구분하는 능력도 아니며, 남다른 지혜를 가진 능력도 아니다. 섬세한 감각이며, 그만큼 칼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능력이다. 하여 영성의 선동가도 있으며, 영성의 사기꾼도 있다. 선동술과 사기술의 영성. 영혼의 선동가와 사기꾼. 이들을 가장 쉬이 볼 수 있는 곳은 ‘영혼 관리, 영혼 케어’를 표어로 내세우는 십자가 첨탑 아래일 것이다. 

최근 법원은 모 교회의 담임목사가 자격 없음을 확정했다. 논문 표절, 학적 위조 등이 문제 되었다. 법원은 목사 자격이 없음을 땅. 땅. 땅. 선고하였으나 결코 쉬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테다. 목사 자격이 별 대수냐며,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운운하겠지. 거짓과 기만도 영성 앞에서는 커다란 흠이 되지 못하는 법. 실제로 그 목사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똘똘 뭉쳐야 한다며 신도를 선동하고 있다.

그루밍 성범죄는 어떤가? 그것이야 말로 영성의 또 다른 쓰임을 보여주는 예 아닌가. 그루밍Grooming이란 길들이기, 곧 상대를 자신의 뜻에 따르도록 길들이는 것을 말한다. 친절, 사랑, 보살핌, 위로… 영성 사기꾼이 얼마나 활약할 수 있는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상대의 몸을, 감정을 길들이는 것보다 영혼을 길들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靈魂爲賢,厲魂爲愚”, <문시진경>의 말로 돌아가면 영혼靈魂, 빼어난 혼은 어느 순간 려혼厲魂, 사나운 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옛사람 말처럼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지켜볼 일이다. 영혼 선동가와 영혼 사기꾼의 영성은 쉬이 분간할 수 없을 테니.

기픈옹달

독립연구자.
黥치는 소리 혹은 經치는 소리, 
아니면 磬치는 소리 뎅뎅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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