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현대인 코스프레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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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올드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 세상의 판도가 옮겨진지 오래다. ‘핫하다’는 말도 저물고 ‘힙하다’라는 말이 대세다. 많아진 채널만큼 프로그램도 많아져서 아무리 ‘힙하다’ 해도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 부지지수다. 신체는 날이 갈수록 낡아가는데 세상의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진다.

최근 우연히 팟캐스트 녹음에 참여하면서 뉴미디어를 맛본 일이 있다. 팟캐스트를 위해 읽어야했던 책이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이었다. 소설은 익숙한 듯 하면서도 특이하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뒤통수를 서늘하게 이야기다. [편의점 인간]은 나의 첫 번째 e북이다. 종이책을 살 수도 있었지만 부러 e북을 구입했다. e북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 되었으니 어쨌거나 10년 늦은 탑승이다. 기기에 따라 구입하는 데 장벽을 해결해야 했지만 어렵지 않게 e북을 구매하여 다운로드했다.

낯섦은 어느 정도 각오했었다. e북은 표지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없고, 책의 크기라든지, 형태라든지, 색감이라든지, 두께라든지 그런 것을 가늠할 수 없었다. 바로 글자와 대면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책처럼 세워놓고 읽을 수 있지만 글자를 조정하지 않는 한 대부분 작은 고딕체로 촘촘하게 배열되어 있다. 어쨌든 읽기를 시작했다.

편의점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손님이 들어오는 차임벨 소리에, 가게 안을 흐르는 유선 방송에서 신상품을 소개하는 아이돌의 목소리. 점원들이 부르는 소리, 바코드를 스캔하는 소리. 바구니에 물건 넣는 소리, 빵 봉지 쥐는 소리, 가게 안을 돌아다니는 하이힐 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뒤섞여 ‘편의점의 소리가’가 되어 내 고막에 거침없이 와 닿는다.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中

응? 마침 소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이어서 그런지 소리를 읽은 건지, 글자를 들은 건지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잠깐 눈으로 읽기를 멈추고 e북 앱을 여기 저기 눌러보다 입모양 아이콘을 발견하고 눌러보았다. 읽어주는 시스템이었다. 노안 초기와 스마트폰 게임 중독으로 눈 피로가 극에 달한 상태라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남성목소리와 여성목소리를 설정하게끔 되어 있었고, 여성 목소리를 선택했더니, 한 문장 한 문장 차분하게 읽어주는 기계 소리가 나왔다. 0과 1 사이를 수없이 오고간다는 디지털 세계의 소리가 거침없이 고막으로 밀려들어오는 듯. 와, 이런 신세계가? 나는 한참 동안 책을 들었다(Listen).

기계음은 중간 중간 설명을 나타내는 괄호부분까지 건너뛰지 않고 그대로 읽어주었다. 높낮이가 균일하고, 대화나 감정표현조차도 앞 뒤 구분 없이 정직하게 들려주었다. 얼마나 들었을까. 슬슬 졸리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덮었다,가 아니라 앱을 닫았다. 동시에 기계음이 사라졌다. 기묘한 것은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인 후루쿠라 게이코가 적잖이 이 기계적인 음성의 여성과 맞닿아 있다는 것인데, 책을 읽은 분들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의 첫 번째 e북 읽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시각이 아니라 청각이었다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오래 기억해야 하는 정보라면 종이책이 학습에 훨씬 유리하다”고 말한다. 공감각 활용, 전자파 영향 등이 이유란다.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것은 시각 뿐이 아니라 촉각이나 청각 같은 다른 감각도 기억 형성에 동원되는데, 종이책은 단순히 화면을 볼 뿐 아니라 책을 만지고 넘기면서 공감각을 활용하다보니 뇌에서 장기기억으로 남기기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책을 읽지 않고 듣는 경우는, 그러니까 청각만 사용해서 익히게 되는 정보는 뇌에서 어떻게 저장되는 것일까.

사실 눈으로 읽지 않고, 기계음으로 들은 소설의 내용은 뇌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아니라 아직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소설 말미에는 기계음이 문장을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결국 시각을 동원해서 냉큼 읽어 버렸다. 더구나 이 소설은 팟캐스트 준비를 위해 듣기 한 번, 읽기 한 번 총 두 번을 읽은 셈이어서 청각만으로 습득했다고는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다음 번 책은 전체를 청각만 활용해서 읽어볼까도 고려 중이다. 설핏 맛만 본 상태지만 나의 뇌와 신체는 새로운 방식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지 궁금하다.

연필은 책을 읽기 전에 필수 준비물이다. 밑줄 그을 뭔가를 손에 쥐지 않으면 책에 집중할 수가 없는 신체이다. 그래서인지 e북을 읽으면서도 굳이 전자 펜슬을 집어 들고 있었다. 밑줄을 긋는 것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책갈피 표시는 할 수 있었다(나중에 알았지만 밑줄 긋는 기능도 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e북을 이런 신체에 적용해보고자 노력하는 것은 나름의 업데이트 작업이다. 기계의 발달 속도는 인간의 적응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초스피디하게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과정도 가늠이 안 되고, 끝도 상상할 수 없는 기계 문명 속에서, 연필로 꾹꾹 밑줄을 그어가며 종이책을 읽어가던 신체가 전자책과 전자 펜슬을 들고 귀를 쫑긋 세운 신체 기계와 만나고 있다. 비록 나의 속도가 10년이나 늦고 어중간한 기계치이지만 비둘기 걸음이로라도 ‘지금’을 따라가 보고 싶다.

현대적이 된다는 것은 보들레르 시대의 표현을 따른다면 멋부리는 것입니다.…(중략)…보들레르에 따르면 현대인은 그 자신, 그의 비밀, 그의 숨은 진실 따위를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대인은 그 자신을 발명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현대성은 <그 자신에만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사람을 해방시키지 않습니다>. 현대성은 사람들에게 그 자신을 생산하라는 과업을 떠맡깁니다.
_ 미셀 푸코 [계몽이란 무엇인가] 中

“그 자신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해방”되고 싶은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또 “발명” 중이다. 다른 플랫폼을 만나고, 다른 시도를 만나고, 다른 신체를 만나는 일. 보들레르 시대의 표현을 따라 써 보자면 뭔가 “멋부리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와서 갑가지 현대인 코스프레지만.

아라차

기자, 카피라이터, 에디터, 편집장 일을 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간간히 하며 “공부 중” 상태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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