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건 공허한 문장뿐이지만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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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후라이가 될 것이다.
뜨거운 바위와 부딪혀야 하기에.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라이를 각오하고 정면승부.

어느 날 아침에 남긴 글이다. 여느 날처럼 평화롭게 시작했지만 그 날의 약속은 이 후 나의 일상을 적잖이 바꾸어놓게 될 담판을 각오해야 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나는 계란이고 내가 부딪혀야 할 대상은 나로서는 웅장한 권력이었다. 돈과 세월이라는 권력에 얌전히 잡아먹히느냐, 마지막 발악으로 빠져나오느냐의 문제였다. 절대 갑을 상대하는 을의 방법은 언제나 미력하기 마련이다. 애초에 무너뜨릴 엄두는 못 냈다. 그 힘이 나에게 미치지 않도록 미친 척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정면승부였고, 나는 후라이를 각오하며 그 아침을 맞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후라이다. 정면승부를 하지 못했음에도 후라이가 되었다는 게 웃픈 일이지만. 나는 한껏 전투력을 높이고, 생애 최초 청심환까지 들이키며 싸울 태세를 취했지만 바위는 나의 전투태세를 눈치조차 채지 못했고 먼지 털어내듯 무시해버렸다. 나는 뜨거운 바위에 부딪혀 장렬히 후라이가 되고 싶었지만 그저 짹짹거리다 그 회의 자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전쟁, 누군가에게는 놀이 내지는 나씽.

그 날, 동네 앞 벚꽃들은 마지막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애꿎은 비바람에 때를 맞추지 못하고 서둘러 져버린 벚꽃처럼 축 쳐진 몸뚱아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도대체 뭘 한 것인가. 언젠가 한번쯤은 진짜 전투다운 전투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의로움을 앞세워 호기로움을 증명하고,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하는 그런 멋짐을 내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도 멋있지 않았던 나홀로 전투. 싸우기 전에 이미 힘이란 힘을 모두 소진해버린 작은 전쟁.

친구들은 그나마 짹짹거릴 수 있던 것도 너라서 가능했다고, 당당하게 너의 의견을 전달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나를 응원한다. 고맙지만 또 고맙지 않다. 나는 전투가 필요했으나 세상은 나에게 전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전투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내가 취약하다는 현실만 절실히 깨닫게 했다. 그래, 세상에 어떤 바위가 계란이랑 싸우려 들까. 취약한 계란들만 매번 청심환 들이킬 용기를 내고 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남은 게 아주 없지는 않다. 내가 쥐어 짜낸 용기. 그 용기를 내려고 나는 수없이 많은 다짐을 했었다. 피하지 않으리라. 맞서리라. 부딪히리라. 깨지리라. 피부에 새겨 넣듯 그 많은 감정 상태를 직시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도망가지 않게 매의 눈으로 나를 지켜보았다.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끼고, 주저앉으려 하고, 포기하려고 하고, 하찮게 여기려 하고, 외면하려 하고. 그 모든 상황을 내 것으로 만들어 촘촘하게 겪고 나를 다독이며 전투태세를 갖추고자 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밖에서 일어난 전투보다 더 큰 전투였는지도 모른다.

멋지게 후라이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후의 상황을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바위는 뜨거운 기운을 풍기며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 바위의 기세에 억눌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갑일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 짜친 을의 직위를 내던져버릴 수 있다. 그 날의 전투는 공허한 문장만 남긴 채 허무하게 끝났지만, 내가 쥐어 짜낸 용기는 여전히 전사의 기운을 품은 채 근육을 키워가고 있다.(그렇게 믿고 싶다.)

아라차

기자, 카피라이터, 에디터, 편집장 일을 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간간히 하며 “공부 중” 상태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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