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우리처럼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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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TV에서 한국 영화를 보았다. 서번트증후군(savant syndrome)을 갖고 있는 지우의 법정 증언 드라마 ⟪증인:Innocent Witness⟫이다. 서번트는 전반적으로는 정상인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나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은 비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다. 옆집 할아버지가 살해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지우는 살인사건 피의자의 변호인 측 증인으로 세워진다. 살인을 목격한 사람이 살인을 부인하는 쪽을 변호하게 된 것이다. 변호인은 사건을 목격한 지우가 아니라 지우의 자폐를 이용하려 했다. 증인을 금치산자로 만들고 이를 피의자의 무죄의 근거로 삼으려 한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이 있다. 지우엄마 현정과 변호사 순호가 대화를 나눈다. ‘지우가 돌 때 처음 한 말이 기저귀 갈아주세요, 였어요. 단어가 아니라 정확한 한 문장이었죠. 2살 때는 신문을 줄줄 읽었고…, 천재인 줄 알았어요.’ 듣고 있던 순호는 ‘자폐만 아니었다만 좋았을 텐데…’ 했다. 그러자 지우엄마가 그런다. ‘그건 지우가 아니잖아요, 자폐가 없는 건 지우가 아니지요.’ 이 장면에서 나는 ‘그래 존재를 인정하다는 건 저런 거지’ 했었다.

순호는 지우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있었을까? 지우에게 자폐증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은 엄마 현정이 말했듯이 불가능한 상상이다. 그건 지우가 아니다. 그렇다면 순호는 지우의 자폐를 비록 악용하긴 했어도 지우를 인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존재를 인정한다는 게 무엇인지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먼저 자폐라는 증상과 지우를 동일시할 수는 있나? 누구의 엄마라는 사실이 나를 설명하는 전부가 되는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있는가? 두 질문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취급되는 것을 환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어떻게 취급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혹여 스스로 원한다고 하여도 자꾸 빠져나오는 또 다른 자신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경험한다.

지우도 그렇지 않을까? 영화에 따르면, 자폐증의 특성상 지우는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 능하지 못하다. 자폐증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고 낫나?, 하는 의심이 들지만, 어쨌든 지우에게 그런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우는 서번트이기도 하기 때문에 비범한 능력이 있다. 보통 사람들보다 수십 배 예민한 청각과 정확한 기억력을 가졌다. 지우는 여성이 옆집 할아버지를 살해할 때 중얼거렸던 모든 소리를 들었고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두 번째 지우의 증언이 인정되고 살인죄가 확정된다.

지우는 자폐아이자 서번트이다. 한 부분의 무능력과 또 다른 부분의 비범함이 공존한다. 누구라도 그렇듯이, 그 외에도 지우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 특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변호인 순호, 순호는 지우의 존재 자체를 인정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답해볼 차례다. 순호는 적어도 지우의 한 부분은 인정했다. 이런 평가는 인정되어도 좋을까?

순호는 지우의 자폐증을 인정했다. 아니다, 순호에게는 지우가 자폐증자라는 정체성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는 게 옳다. 그것은 변호인으로서 순호의 승리와 관계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순호는 지우의 존재 자체는커녕 어떤 한 부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해타산이 순호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에 지우는 사실 완벽하게 부정당했다.(적어도 처음에는.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 내 취향도 무시하고, 내 선호도 무시하고, 내 가치도 무시하고 상대방을 무조건 인정하고 좋아해줘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왜 좋은지 모르면서 무엇을 좋아하고, 왜 싫은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엇이 싫다. 우리는 좋은 것을 억지로 싫어하지 못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존재에 대한 인정은 이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화를 본 후 또렷해진 한 가지는 이것이다.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일단, 존재를 하나의 정체성 안에 구겨 넣지 않는 것이다. 한 곳으로 수렴되지 않는 것들을 굳이 한 쪽으로 몰아가려는 태도에는 뭔가 구린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순호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존재는 단일한 인격일 수 없다.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또 ‘지금 여기에’ 있는 상대를 어제의 그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일이다. 지금 여기서 미친 듯이 춤추고 노래하는 이 여자는, 학교 어머니회에 참석한 어제의 그녀였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이든 되고 싶고, 하고 싶다. 우리는 하나의 이름에만 맞춰서 살 수 없고 그것으로 판단되는 것에도 저항한다. 우리가 그렇다면 그들도 그럴 것이다.

지니

생각을 넘어가지도 않고
생각에 못 미치지도 않는
말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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