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페미니즘은 없다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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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이나 젠더 관련 발언이 우리나라에서 치명적 계기로 작용하는 시대가 올 줄 몰랐다.’ 얼마 전 연예인 위기관리 전문가라는 사람이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는 ‘페미니즘’ 관련하여 입 한 번 잘못 놀리면 연예인 생활 고달파지는 곳이다. 일찍이 이 땅에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이리 많이 오르내린 적이 없었다.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는 곳에는 빠지지 않고 젠더 문제가 등장한다. 때로는 무지하고 숭한 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점잖은 이들은 눈길도 돌리기 싫어한다는 그 바닥을 밑도 끝도 없이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 캠페인보다 더 활발하고 눈에 띄는 건 안티페미니즘 활동이다. 최근 주로 쏟아지는 주장들은 대충 이렇다. ‘비정상’적인 페미니즘에 반대하며, ‘정상’적인 페미니즘만 지지하겠다는 주장. 페미니즘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악에 받친 주장도 가끔 등장한다. ‘비정상’이 메갈리아나 워마드에 부과한 혐의라면, 이런 주장들은 몹시 이상하다.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주된 활동방식은 ‘미러링’이었다. 남성이 지금껏 여성에게 가한 혐오와 폭력성을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같은 방식을 쓰는데 남성이 하면 ‘정상’이 되고 여성이 하면 ‘비정상’이라 규정된다.

그 이유를 한번 따져보자. 첫째는 남성들이 모욕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메갈리아나 워마드가 미러링하는 방식의 모욕을 여성들은 아주 오래도록 견뎌왔다. 잠깐의 모욕도 견디지 못해 화를 내는 건 그동안 모욕 받아본 적이 없다는 반증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남성들이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비정상’이라고 지목할 때, 지목하는 자는 스스로를 ‘정상’의 영역에 둔다. ‘비정상’의 영역을 판별할 수 있는 자는 스스로 ‘정상’에 속해 있어야 하며, 이 분리를 통해 ‘비정상’의 영역에 속한 자들을 배제하려고 한다. 이렇게 ‘비정상’의 영역에 속하게 된 자들은 합법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한다.

어떤 여성들의 주장이 ‘비정상’이라고 말할 때, 남성들은 그 여성들의 권리를 박탈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발언을 통해 무언가를 주장할 권리 같은 것들을. 권리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결국에는 생존 그 자체의 문제이다. 지난 세기에 독일의 나치는 생존을 포함한 유대인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려 했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전쟁배상금으로 인한 경제 붕괴와 궁핍을 부유한 유대인들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나치는 무력으로 집권하지 않았다. 당시 독일 사회에서 원하는 만큼 가지지 못해 불만을 품은 청년들이 나치의 시작이었다. 나치는 독일 사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계속하여 ‘비정상’으로 규정했다. 유대인과 동성애자와 집시들이 ‘비정상’으로 분류되어 독일 내 거주와 생존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많은 독일 국민들이 나치에 동조하며, 이들의 재산을 빼앗고 모욕과 폭력을 가했다.

‘비정상’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분리해낸 독일 사회는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순수한 독일 국민의 저력을 보여주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1945년에는 다시 패전국이 되었다. 스스로 ‘정상’이 되어 ‘비정상’을 색출하려 했던 독일 국민들에게는 나치가 수치스러운 과거로 남았다. 지금 이 땅에서는 스스로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누군가를 ‘비정상’이라고 지목하면서, 나치라고도 부른다. 그렇게 페미니즘은 ‘비정상’인 동시에 ‘페미나치’가 되었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꼴이니, 몰라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이보다 비열하고 교활한 일이 없다.

만약 패전하지 않았더라면, ‘비정상’을 축출해낸 독일 사회는 순수하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순수성을 유지하고 동질감을 갖기 위해 사회 안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들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기준은 점점 첨예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거슬리지 않는 존재가 되려 할 것이다. 개인이 드러나지 않는 사회, 공통으로 제시된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사회가 바로 나치가 꿈꾸었던 전체주의 사회이다.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된 자들은 그 획일화를 깨트린다. 흐름을 뒤섞고, 흙탕물을 만들고, 여기저기 오물을 튀겨댄다. 사회는 그 역동성과 생동감에 힘입어 유지된다.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이들, 여성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던 이들, 사회가 원하는 답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던 이들이 우리의 변화와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진보와 혁신은 이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니 페미니즘은 ‘정상적’일 필요가 없다. ‘정상적’이 되려고 할 때 페미니즘의 생명력은 고갈된다.

삼월

삼월에 태어나서 삼월.
밑도 끝도 없이, 근거도 한계도 없이 떠들어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