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여기에 와 버렸다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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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당모임은 어느날 불현듯 시작하기 마련이다. 어쩌다보니 글쓰기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파르티잔’이라는 이름도 뚝딱 지어졌다. 아, 첫 이름은 ‘빨치산’이었지만 이내 좀 고상한 이름으로 바꾸기로 했다. 파.르.티.잔.

첫 시간 안내문이 올라왔다. “세상의 형식과 친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글쓰기를 추구하겠다는…” 부담 되는 말이다. ‘세상의 형식’과 친한 것은 둘째치고, 세상의 형식이 뭔지 좀 배우고 익혔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이른바 부와 명예는 세속의 문법 속에 있는 거 아닌가? ‘자신만의 글쓰기’도 뭔지 모르겠다. 글을 쓰다보면 어느 문장은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기만 하다. 몇 년 전 글을 우연히 보게 되노라면 똑같은 말을 주문처럼 되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고유성이라 부를 특징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중언부언 하는 말을 자신만의 것이라 자랑할 수도 없지 않은가?

요새 무섭게 글을 쓰고 있다. 무슨 염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 돌아볼 여지 없이 꾸역꾸역 써대고 있다. 그런데 ‘파르티잔’이라는 불온한 이름을 걸고 글쓰기 세미나를 하자니 영 반갑지가 않다. 지금 쓰는 글과는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써 내야 할 것 같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칼럼’이라잖나. 칼럼!! 내가 지금껏 써낸 글은 시사와는 거리가 먼 글이다. 이른바 설명충의 글쓰기라 할 만한 것, 텍스트의 내용을 가공 전달하는 글쓰기를 주로했다. 거기에는 세상사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다. 귀찮기도 하고, 남의 일에 왈가왈부하는 것도 좋아보이지 않는다.

태업을 해볼까 했으나 체면이라는 것이 있어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다. 요즘 쓰는 글을 가져와 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주중에 루쉰을 읽고 있으니 ‘전사의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뭐라도 써볼까 생각해봤는데 전사라는 이름이, 글쓰기라는 이름이 목에 걸린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분량도 많고 이걸 계속 끌고 나갈 자신도 없다.

겨우 생각한 것이라곤 내 낡은 뿌리를 하나 캐내어 보는 거다. 기독교, 교회, 모교(꽤 유명한 기독교계 학교를 나왔다)를 씹어보는 글인데, 생각해보니 반쯤은 구미가 당기지 않기도 한다. 하나는 워낙 뻔한 이야기를 해서 뭐하냐는 생각에. 또 하나는 이쪽에도 저쪽에서 먹히지 않을 문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닳고 단 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실제로 그간 강의를 핑계로 쓴 글을 제외하면 모교 문제를 두고 쓴 글이 꽤 된다. 뭘 그리 애써 성내고 싸웠는지. 그렇다고 싸움의 성과가 뭐라도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함께 욕하고 성내며 말을 보태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버렸다. 말을 보탠들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열정도 식고, 체력도 떨어지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이 주제를 꺼내든 것은 만만하기 때문이다. 설명충에서 벗어나려면, 제 이야기를 쏟아내려면 뭐라도 있어야 하는데 남산골 은둔자로 살다보니 별로 건드릴 만한 것이 없다. 그나마 이것이 내가 건드릴 수 있는 가장 가깝고도 만만한 주제다. 한편 신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텍스트건 지식이건 곱게 씹어 전달해 주는 일은 그리 신나지 않는다. 허나 펜을 들어 누구의 심장을 저격하며, 비수를 날리기 위해 예리하게 칼을 가는 일은 얼마나 기꺼운가. 복수란, 전쟁이란, 공격이란 적잖이 고양되는 일이다. 따져보면 수 많은 글을 써댔던 동력 가운데 하나는 바로 바로 그 복수심에 있었다. 예수도 말하지 않았나. 평화가 아닌 칼을 주러 왔다고.

이도저도 아니면 부수적인 결과와 결실을 생각해볼 것이다.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어느날 내가 스스로 써놓은 글을 발견했다. “내가 좋아 하는 말. 부귀, 명성, 축재, 고기”, 너무 많으니 좀 줄이면 ‘부귀와 명성’일테다.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부귀’여야 하나 좀 어려우니 ‘명성’을 꼽자. 허명이건 악명이건 어쨌든 명성이라도 추구해야 하지 않겠나. 설명충으로 명성을 얻기란 어려우니 악명이라도 얻어보자. 배우고 간직할만한 글보단 때론 목에 가시같은 글이 쓰기 편한 법이다.

생각해보니, 그런 글에 똥자루를 맞은듯 쌍욕을 해대며 성내는 이들이 있었지. 환호가 없으면 욕이라도 있어야지. 고로 한번 겨누어 보기로 한다.

제목은 ‘경經 치는 소리’라고 정했다. 어쨌든 ‘경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중에는 다루지 않겠나 싶어서. 찾아보니 ‘경黥’이라고 하니, 무엇인가를 두드려 쳐대는 소리는 아니다. 허나 어떤가. ‘경 치는 소리’라 하면 뎅뎅뎅 뭔가를 두드리는 듯하지 않은지. 경박하기도 하고. 조소와 냉소, 비난과 공격을 담은 소리가 가능하지 않을지. 내용은 풍자, 분량은 3000자 이내로 짧은 글이 될 생각이다.

기픈옹달

독립연구자.
黥치는 소리 혹은 經치는 소리, 
아니면 磬치는 소리 뎅뎅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