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잖은 글, 같잖은 보헤미안 랩소디

[ 미미 ]

:: 루쉰 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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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귀와 보헤미안 랩소디

언제부터인지 목소리가 커졌다. 물론 목소리가 큰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목소리가 크고 또렷하다고 각종 발표를 도맡아 했다.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것까지는 없었지만 장점 정도는 되다가, 요 근래 들어 목소리가 큰 데 대한 타박을 자주 받곤 한다. 이른바 가는귀가 먹은 것이다.

내 ‘가는귀 먹음’에 크게 일조한 것은 영국 그룹 ‘퀸’이다. 내가 단연코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청소년 시절부터 대학시절 내내 퀸의 노래를 하루 종일 헤드폰으로 꽝꽝, 들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매일 밤 자리에 누워 헤드폰으로 울려 퍼지는 퀸의 신비로운 하모니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들었다. 어떻게 이런 음들을 내지? 이런 궁금증은 대학에 들어가고 써클 선배의 녹음실에서 해소됐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음을 변주해서 녹음하고 그것을 덧씌우는 믹싱 작업이 환상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 한여름 그 한겨울, 우리는 퀸의 노래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바깥은 연일 전쟁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최루탄이 터지거나 누군가 죽거나 했다. 이런 시국에 한가롭게 노래나 부른다고 무수히 지탄도 받았다. 그래도 우리는 노래가 좋았고 퀸이 좋았다. 우리에게 퀸은 그런 존재였다. 그 후 30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 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았다.

처세와 보헤미안 랩소디

뜻밖의 장소에서 보헤미안 랩소디 얘기를 들었다. 그곳은 평소의 분위기로 봐서는 결코 음악 얘기 따위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나온 퀸 얘기에 나는 반갑기조차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시끄럽고 정신 사납다는 것,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므로 몹쓸 것이라는 촌평. 분명 그럴 수 있다.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견해를 가진 존재인데.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작 무서운 것은 포커페이스다. 그 이야기를 듣는 공간 속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짓고 있는 한결같은 표정. 애석하게도 나 포함해서.

나의 처세는 가능한 한 최대로 물러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간행물을 만들면 절대로 직접 투고하지 않습니다. 회의를 하면 나는 절대로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내가 꼭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하면 합니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체라고 생각하고 차라리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꼭 내가 말을 해야 한다면서 내용은 또 반드시 교장의 뜻과 맞아야한다고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뜻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뜻을 예측하고 따르는” 묘법도 배운 적이 없습니다.(『화개집속편의 속편』 ,「바다에서 보내는 편지」, 그린비, 496쪽 인용)

루쉰은 샤먼 생활을 정리하고 광저우로 가는 바다 위에서 이 편지를 쓴다. 1926년, 북경여사대사건과 3.18사건을 거치며 싸움과 도피를 전전하던 루쉰은 베이징 생활을 끝내고 샤먼대학으로 거처를 옮긴다. 샤먼에서의 4개월은 루쉰에게 분주하면서도 무료한 나날들이었다. 각종 마음에도 없는 행사와 윗선에 끼워 맞추기식 행정에 반발하던 그는 마침내 “귀신을 공경하되 이를 멀리하는” 식의 대우를 받고 도서관 이층 한 방에 모셔진다.

학생들의 인적이 끊어진 후미진 도서관 한쪽 방. 뒤로는 무덤 무더기, 앞에는 끝을 모를 밤바다. 뒷방 늙은이가 된 루쉰을 ‘모시기에’ 딱 적합한 곳이었다. 그는 무료하고 적막한 마음을 도서관 돌난간에 기대어 밤바다를 바라보며 지냈다. 이 글은 그 생활을 청산하며 쓴 마지막 글이다. 그것도 떠나는 배 위에서 떠올려 보는 자신이 해야 했던, 그러나 잘 하지 못했던, 그래서 하게 됐던 처세의 기술!

그리하여 나는 루쉰에게 처세의 기술을 한 수 배웠다. 웬만하면 의견 같은 건 내지 말고 입 다물기.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면 시체처럼 굴기. 교장의 뜻과 안 맞는 얘기는 하지 말기. 덧붙여, 사랑해마지않으며 가는귀에 막대한 지분이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싫다 해도 포커페이스 유지하기. 

포커페이스를 비웃지 말라. 포커페이스는 “낡고 숱한 세상사를 겪고 난 후 터득한 진보의 산물이다.” 도대체 보헤미안 랩소디를 싫어할 수 있다니. 이렇게 흥분하지 말자. 흥분의 포인트는 여기가 아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싫어한다는 목소리 앞에 싫어하지도 않은,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이 찍소리 못 하고 앉아 있는 이상한 분위기에 주목하라. 문제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앞에 싫어하든 좋아하든, 싫지도 좋지도 않든 간에 아무 말이 안 나오는 ‘하나’가 되어버린 무수히 많은 ‘나’에게 조용한 눈짓을 보내라. 

지금은 누군가를 경멸할 때가 아니다. 경멸은 더 이상 “관여할 수 없으며, 물러날 데가 없는 곳까지 물러났을 때” 그때 가서 하는 게 경멸이다. “물러날 데가 없는 곳까지 물러났을 때”란 어떤 땐가. 다니던 공간의 모든 것을 다 때려 치고 그만 두었을 때? 끝까지 화를 참아보고 났을 때? ‘내 탓이오’를 수없이 외쳐봤을 때? 다 맞겠지만, 다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돌연한 어떤 순간일지 모른다. 수많은 포커페이스들과 조우하는 한 순간.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는 어느 한 순간의 돌연함이 “물러날 데가 없는 때”가 아닐까.

따름의 처세술

루쉰은 『화개집속편』을 쓰는 반년 간, 많은 눈물과 피를 보았고, 그 눈물과 피가 말라가는 것도 보았다. 그는 많은 눈물과 피 앞에서도, 많은 눈물이 마르고 피가 없어져가는 순간 앞에서도 그저 ‘잡감’을 쓸 따름이다. 매일이, 매 순간이 “물러날 데가 없는 때”로 살았던 루쉰이 하는 매일, 매 순간의 최후 혹은 최소의 글쓰기 방식이 바로 ‘잡감’이다.

‘잡감’은 같잖은 글, 글 같지 않은 글이다. 흔히 비웃는 듯한 표현으로 쓰이는 ‘같잖다’는 말을 잘 보면, 같지 않다, 기존의 무엇과도 같지 않다는 뜻이다. 기존의 어떤 것과도 같지 않은 스타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이 ‘같잖음’이 된다. 그러니 더욱 같잖은 글. 같잖은 생각, 같잖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거다.

당시 권력에 빌붙고, 자신들의 입지만이 중요한 학계에서, 같잖은 글었던 루쉰의 ‘잡감’을 싸잡아 비난할 때 ’마땅히 가야할 곳‘이란, 화장실용이나 불쏘시개감이라는 의미로 쓰인 표현이다. 나는 또 한 번 루쉰에게 한 수 배운다. 따름의 처세술! 이건 ’시체 되기‘보다 유용한 처세가 될 것 같다. 남들이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잡감일 따름이다.” “그들이 쇠칼을 사용해도 무딘 칼을 사용해도 그저 ‘잡감’만 있었을 따름이다.” “‘잡감’마저도 ‘마땅히 가야할 곳으로 던져 넣어 버릴’때가 되면 그리하여 ’따름‘(而已)만이 있을 따름이다.” (『이이집』, 「제사」, 그린비, 24쪽 인용)

이거 되게 유용한 경멸의 처세 아닌가. 유용하면 바로 써먹자. 보헤미안 랩소디? 그게 대체 뭐라는 거야? Oh, mamma mia! 다만 음악일 따름인데요. 그마저도 마땅히 가야할 곳으로 던져 넣어버릴 때가 되면, 그저 ‘따름(而已)’만이 있을 따름인걸요.

2018. 12. 2. 해방촌에서 미미 씀.

미미

야매 루쉰 연구자이자 야매 철학자. 아무튼 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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