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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발제] 감시와 처벌 0503 세미나 발제
아라차 / 2018-05-02 / 조회 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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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0503세미나 발제 _ 아라차


제4부 감옥

2장 위법행위와 범죄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의 행렬이 지나가는 모든 도시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는데, 마치 형벌이 특권취급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수형자들의 야단법석은 호사스런 광경을 동반하는 사법 의식과 상응하는 것이었다. 사슬에 묶인 죄수들의 거창한 행렬은 공개적인 신체형이라는 옛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었으며, 분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대결과 투쟁에도 연결되어 있었다. 신체형을 둘러싸고 언제나 발생해 온 소요가 이번에도 뚜렷한 위협으로 메아리쳤다. 7월 왕정은 18세기 신체형의 폐기를 불러왔던 똑같은 이유로 쇠사슬 행렬을 없애기로 한다. 1837년 6월 쇠사슬 행렬 대신에 채택된 것은 매우 면밀하게 고안된 기계 장치였다. 굴러가는 감옥으로 구상된 수레, 움직이는 판옵티콘의 등가물, 행형 본위의 호송차이다. 호송차는 며칠 동안의 호송기간에 벌써 교정 장치로서 기능한다. 거기에서 나올 때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얌전해진다. 쇠사슬 죄인들의 행렬이 호송차로 대체된 방식과 이유에는 치밀하게 연결된 규율이 작동하고 있다. 

 

감옥과 감옥 체계에 대한 비판은 매우 일찍 나타났다. 감옥이 범죄발생률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구금은 재범을 유발한다, 감옥이 범죄자들을 만들어 낸다, 범죄자들이 서로 연대하여 범죄자 조직을 만든다, 수감자들은 석방된 후에도 여러 가지 악조건 때문에 재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족까지 빈곤상태에 빠지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범죄자를 만들어낸다 등 감옥이 교정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고, 징벌의 효력은 무의미했고, 이중의 경제적 오류까지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에 대한 처방은 언제나 똑같았다. 감옥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감옥으로 되돌아갔다. 150년 전부터 만들어진 일곱 가지 보편적 준칙들만 반복할 뿐이었다. 

- 구금형은 개인의 태도변화를 본질적인 기능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교정의 원칙이다.

- 수감자들은 그들이 범한 행위와 변화단계에 따라 격리 또는 분류되어야 한다. 이는 분류의 원칙이다.

- 수감자들은 수감생활 결과에 따라 형기가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형벌 조절의 원칙이다.

- 노동은 수감자들의 변화와 점진적 사회화를 낳는 근본적인 부분이다. 이는 의무이자 권리로서의 노동의 원칙이다.

- 수감자 교육은 사회의 이익에 필요한 예방조치이면서 의무이다. 형무소 교육의 원칙.

- 감옥은 전문요원이 책임을 지고 운영하도록 한다. 구금에 대한 기술적 통제의 원칙.

- 감공에서 풀려난 뒤에도 그를 감시하고 사회복귀를 위해 도움을 주어야 한다. 부차적인 제도의 원칙.

한 세기가 다른 세기로 넘어가는데도 이 동일한 기본 명제들이 반복되었다. 계속 실패로 끝난 개혁안을 그대로 근거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옥의 실패와 감옥의 개혁은 동시적 체제로 이해해야 한다. 감옥의 실패를 감옥 운용의 일부분으로 구성하는 것을 아닐까. 

형벌제도는 단순히 여러 위법행위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차별화하고’ 그것들의 일반적 ‘경제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 자체 또는 그것을 적용하는 방식이 어떤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형벌제도를 매개로 한 차별적 위법행위 관련 전체가 이러한 지배의 메커니즘에 속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감옥의 ‘실패’는 이 점에 입각하여 이해될 수 있는 문제이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새로운 형법전의 취지와는 반대로 민중적인 새로운 위법행위의 위험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국지적이었고 세금, 징병 등 자체적으로 한정된 행위들이 대혁명 기간 동안 직접적으로 정치적 투쟁이 되었고, 그러한 투쟁의 목적은 권력의 구조 자체와 정부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법과 규칙을 거부하는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서 법과 규칙을 제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의 투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법 자체와 법을 적용할 임무가 있는 사법에 대항하고, 새로운 권리를 행사하는 바로 곁의 지주에 대항하고, 노동자들의 연대를 금지시키는 사용자에 대항하고, 공장의 규칙을 더 엄격하게 만드는 기업가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는 다른 상황 아래에서라면 특별한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았을 많은 개인들이 법의 반대편에서 동요하기 되었기 때문이다. 

법률과 사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계급상의 불균형을 거침없이 공언한다. 감옥은 분명히 ‘실패하고’ 있으면서도 자체의 목표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범죄를 위법행위의 가장 격심하고 가장 해로운 형태, 그것이 나타나는 위험 때문에 감옥을 통해 줄이려고 애써야 하는 형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범죄는 위법행위들을 구별하고 정돈하며 통제할 수 있게 하는 형법체계의 결과이다. 감옥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덜 위험한 형태인 범죄를 생산하고, 표면적으로는 주변부에 놓여있지만 통제의 중심 대상으로 취급되는 범죄자 집단을 생산하고, 병리학에서의 피실험자, 범죄자를 생산한다는 가설이 필요하다. 

 

감옥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 퇴치해야 할 범죄를 제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을까? 범죄의 확립은 실제로 많은 이점이 있다. 개별화하여 다루기 쉬운 계층처럼 되어 있는 범죄자들은 사실상 합법성의 주변부에서 활용되었다. 통제받는 위법행위로서의 범죄는 지배 집단들의 위법행위를 위한 대행인자이다. 법적 금지의 존재는 그것의 주변에 위법적인 실천영역을 만들어내고, 뒤이어 그 영역의 통제가 시행되기 마련이고, 위법적이지만 범죄의 조직화로 쉽게 다룰 수 있는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부정한 이익을 취하게 된다(ex. 19세기 매춘 조직의 정착). 범죄는 위법행위들을 관리하고 이용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또한 권력 주변에서 초래되는 위법행위를 위한 도구이기도 한다. 범죄자들을 정보원, 밀고자, 선동자의 형태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19세기 이전부터 당연시되었다. 

 

경찰력에 의한 통제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고립되고 폐쇄된 위법행위를 범죄의 이름으로 조직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경찰에 의한 감시의 여러 대상들 가운데 하나인 범죄는 이러한 감시의 특권적 도구인 셈이다. 범죄는 비밀경찰을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경찰력 배치를 위한 지역분할을 정당화함으로써 주민에 대한 지속적 감시의 수단을 제공한다. 경찰관 다음으로 범죄를 활용한 사람들은 통계학자와 사회학자들이다. 감옥과 경찰은 쌍생아적 장치를 형성하며 위법행위의 모든 영역에서 범죄의 차별화, 격리, 이용을 확고히 한다. 같은 등장인물 속에서 통치권이 혐오스럽게 대립하고 있었던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끝나고, 범죄와 권력의 공범관계와 경찰력에 의해 벌어지는 일상의 통속극이 시작된 것이다. 

 

한편, 범죄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에 완전히 결정적인 틀을 부과하려는 계획, 다시 말해서 범죄자를 아주 가까운 곳에 두고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며, 무서워해야 할 존재로 부각시키려는 장기적인 계획이 이루어졌다. 사회면 기사의 기능이다. 사회면 기사는 100여년 전부터 과도한 양의 범죄이야기들을 산출해 왔는데, 특이한 것은 범죄가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이질적인 것, 일상생활에 한없이 위협적이지만 그것의 원천과 동기, 이국적인 환경 때문에 현실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범죄에 부여하는 중요성과 그것에 수반되는 담론의 요란스러움으로 말미암아, 범죄의 주위에는 범죄를 찬양하는 듯한 특별한 선이 그어진다. 민중신문들은 범죄의 출발점이 범죄자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것은 사회가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충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사회가 개인의 가능성, 희망, 요구를 파괴하거나 말살하여 그것들이 나중에 범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상층계급의 범죄는 파렴치한 행위의 예로서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비참함의 원천이자 반항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부유층 특유의 범죄는 법률에 의해 용납되고, 법률의 타격을 받을 경우라도 부유층은 법원의 관용과 언론의 비밀엄수를 받게 된다.

 

푸리에주의자들은 범죄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한 정치이론을 가장 먼저 만들어낸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범죄가 문명의 결과일지라도 그것은 또한 그 사실 자체로 인하여 문명에 대항하는 하나의 무기로 본다. 죄를 범하는 천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어떤 계급에 속하느냐에 따라 그들을 권력에 가까이 가게 하거나 감옥에 들어가게 만드는 역학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범죄는 흑인해방의 경우처럼 때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의 해방을 위해서도 소중한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있다. 형벌에 관련된 사건을 ‘문명’에 의해 체계화한 대결로, 거창한 범죄를 잔학한 짓으로서가 아니라 억압된 것의 운명적 회귀이자 그것에 대한 항거로, 사소한 위법행위를 사회에 필요한 주변행위로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펼쳐지는 전투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오는 싸우는 소리로 간주하고 분석했다. 19세기 후반기에 무정부주의자들이 형벌 기구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 범죄에 관한 정치적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들이 범죄에서 법률 거부의 가장 투쟁적인 형태를 인정하려고 생각했을 때, 범죄를 식민지처럼 지배한 부르주아지의 합법성과 위법행위로부터 범죄를 분리시키려고 했을 때, 이러한 분석이 유효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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