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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발제문] 비극의 탄생 - 텍스트 외부 :: 0524(화) +2
오라클 / 2016-05-25 / 조회 2,447 

본문

텍스트 외부 :: 바그너와 <비극의 탄생>

- 1868(23세) 바그너와 만남 ~ 1876(31세) 바그너와 결별 

- 1871(26세) <비극의 탄생>, 1886(42세) <비극의 탄생>서문. 자기비판의 시도, 1888(44세) 이 사람을 보라 

- 제목 : 1872<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886<비극의 탄생 또는 그리스 문명과 염세주의>

- <비극의 탄생>은 니체의 첫 철학적 저서로, 그리스 비극작품의 탄생과 몰락에 대해 쓰고 있다. 이 작품은 바그너의 기념비적인 문화정치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활용되었지만, 니체의 독창적이고 철학적인 초기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이 사람을 보라 > 비극의 탄생

*이 사람을 보라 : 1888.12월 출판. 니체가 쓴 니체작품의 해설서

 

1. <비극의 탄생. 1872>에 대해 공정하기 위한 몇 가지

 

이 책의 문제점 :: 마치 바그너류가 상승의 징후라도 된다는 양 이 책이 바그너류에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은 바그너의 삶에서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나를 이런 맥락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바그너운동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높은 평가에 대해 내가 얼마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지.

 

이 책의 가치 :: “그리스정신과 염세주의” 이것이야말로 이 책에 대한 제목일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그리스인들이 염세주의를 잘 해결했는지, 무엇을 가지고 염세주의를 극복했는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비극이야말로 그리스인들이 염세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에 대한 증거이다. (*그리스인들은 비극으로 염세주의를 극복했다!) 

 

이 책의 한계 :: 그럼에도 이 책은 정치와 무관하고 형이상학적이었다. 이 책은 정치와 무관하며, 불쾌한 헤겔적 냄새를 풍기고, 쇼펜하우어의 시체 썩은 냄새와 연관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하나의 ‘이념(디오니소스적 : 아폴론적 대립)’이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옮겨졌다. 역사 자체가 이 ‘이념’의 전개과정이며, 비극에서 그 대립이 통일로 지향된다. 이러한 광학에서 이전에는 결코 마주친 적이 없던 것들(예를 들어 오페라와 혁명)이, 갑자기 대립되고 서로 조명하며 서로를 파악한다. 

 

이 책의 새로운 점 :: 이 책에는 결정적으로 2가지 새로운 점이 있다. 하나는 그리스인들의 디오니소스적 현상에 대한 이해이다. 이 책은 디오니소스적 현상을 그리스예술 전체의 한가지 뿌리로 본다. 또다른 점은 소크라테스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를 그리스의 용해도구이자 전형적인 데카당으로 최초로 파악해냈다. 본능 대 이성. 그 어떤 대가를 치르든 ‘이성!’이라는 것이 위험하고 삶을 파괴하는 힘이라는 것. 그 책 전체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뿌리깊은 적대적 침묵이 흐른다. 그리스도교는 모든 미적 가치(<비극의 탄생>이 인정하는 유일한 가치)를 부정한다. 그리스도교는 가장 심층적인 의미에서 허무적인 반면, 디오니소스적 상징 안에서는 긍정이 궁극적인 지점에까지 이르게 된다. 

 

2. 디오니소스적 현상(삶에 대한 긍정) & 소크라테스적 데카당(삶에 대한 퇴화)

 

진정한 대립 :: 나는 디오니소스적 현상을 최초로 파악했으며, 소크라테스를 데카당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도덕 자체가 데카당의 징후라는 것은 인식의 역사에서 새로운 1급인식이다. 2가지 인식으로 바보들의 낙관주의 대 염세주의라는 수다를 높이 뛰어넘었다! 나는 진정한 대립을 최초로 알아차렸다. 삶에 대한 지하적 복수욕을 가지고 저항하는 퇴화하는 본능(그리스도교, 쇼펜하우어철학, 플라톤철학 등 이상주의 전체가 그 전형적 형태다)과 충만과 과잉에서 탄생한 최고의 긍정형식(고통과 죄와 삶의 모든 의문스럽고 낯선 것들에 대한 아무런 유보없는 긍정)의 대립! 

 

삶에 대한 긍정과 실재에 대한 인식 :: 삶에 대한 즐겁고 충일한 긍정은 진리·학문에 의해 확인·유지되는 가장 심오한 통찰이다. 존재하는 것에서 빼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되는 것은 없다! 그리스도교인·허무주의자들에 의해 거절당한 삶의 측면은, 데카당스 본능이 승인했던 것들보다 가치서열상 무한히 높다. 실재에 대한 긍정인 '인식'은 강자에게 필연이다. 실재로부터의 도망인 '이상'이 약자의 필연이듯이. 인식은 그들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데카당들은 거짓을 필요로 하며, 거짓은 데카당의 보존조건 중 하나이기에. 

 

3. 비극의 심리학, 비극적 철학자

 

비극의 심리학 :: ‘비극적’이란 개념과 비극의 심리학에 대한 인식. <우상의 황혼>139쪽(184~185쪽) “삶의 가장 낯설고 가장 가혹한 문제들에 직면해서도 삶 자체를 긍정한다. 자신의 최상의 모습을 희생시키면서 자기고유의 무한성에 환희를 느끼는 삶에의 의지! 이것을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불렀고, 비극시인의 심리에 이르는 다리로 이해했다. 공포와 동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아니고, 위험한 감정을 방출시켜 자신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공포와 동정을 넘어서서, 파괴의 기쁨도 포함하고 있는 생성에 대한 영원한 기쁨 그 자체이기 위해서다.”

 

최초의 비극적 철학자 :: 이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최초의 비극적 철학자로서(염세적 철학자에 대한 대척자로서) 이해할 권리가 있다. 나 이전에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철학적 파토스로 변형시키지 않았었다. 비극적 지혜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디오니소스적 철학의 결정적인 면(유전과 파괴에 대한 긍정, 대립과 싸움에 대한 긍정, 생성, 존재 개념에 대한 거부까지)에서 나와 헤라클레이토스는 가장 유사하다. 영원회귀에 대한 가르침(무조건적이고 무한히 반복되는 만사의 순환에 대한 가르침,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먼저 가르쳤을 수도 있었으리라.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근본적인 생각들을 물려받았던 스토아학파는 그 흔적을 갖고 있다.

 

4.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바이로이트의 사상

 

음악의 디오니소스적 미래 :: 이 책에서는 엄청난 희망이 이야기되고 있다. 음악의 디오니소스적 미래에 대한 희망을 파기할 이유가 없다. 한 세기 앞을 미리 내다보고서, 그때에 인류를 더 높이 사육시킨다는 위대한 과제를 떠맡아, 퇴화되고 기생충적인 자들을 파괴하는 삶의 새로운 당파가, 디오니소스적 상태를 다시 자라나게 하는 생의 충일을 지상에서 다시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어떤 비극적 시대를 약속한다. 인류가 가장 가혹하지만 가장 필연적인 투쟁을 벌이면서도 그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은 채로 그 투쟁의식을 뒤로할 때, 삶에 대한 긍정에서 최고의 예술인 비극이 부활할 것이다.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에세이 :: 어떤 심리학자는 다음같이 덧붙일 수 있다. “내가 젊은 시절에 바그너음악에서 들었던 것은 바그너와는 전혀 관계도 없다. 디오니소스적 음악에 대해 기술했을 때 내가 들었던 바를 기술했다. 내가 본능적으로 담지하고 있던 새로운 정신으로 옮기고 변형시켜야만 했다.” 그에 대한 증거는 <바이로이트의 바그너>라는 내 에세이인데, 이것은 너무 강력해서 단순한 증거 그 이상이다. 이 에세이에서 심리학적으로 결정적인 곳에서는 내가 그 이야기의 대상이며, 그 텍스트에서 바그너라는 단어에 내 이름이나 ‘차라투스트라’라는 단어를 주저함없이 세워도 무방하다. 열광적인 예술가들의 모습 전체가 차라투스트라라는 시인의 선재적 모습이며 그 모습은 심연적 깊이에 의해 그려지고, 바그너의 실재성은 한순간도 건드리지 않는다. 바그너 자신도 이점을 알고 있었고, 그는 이 에세이에서 자기모습을 다시 발견할 수 없었다. 

 

바이로이트의 사상 :: 이와 유사하게 ‘바이로이트 사상’은 <차라투스트라>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수수께끼가 아닌 것으로 변형되었다. 가장 정선된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과제를 위해 헌신하는 위대한 정오로 변형된 것이다. 처음부분의 파토스는 세계사적인 것이며, 7쪽의 시선은 차라투스트라의 시선이다. 이 에세이에서 미리 고지되고 있는 것은, 그리스정신의 회귀가 가까이 있다는 것, 알렉산더가 풀어놓았던 그리스문화의 고르디우스 매듭을 다시 묶는 알렉산더의 반대자들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30쪽에서 ‘비극적 성향’을 도입시켰던 세계사적 악센트에 대해 들어보라.

 

댓글목록

청안님의 댓글

청안

디오니소스와 소크라테스의 대비가 재미 있었습니다. 감정에 의한 파괴는 흔하게 들어봤어도, 이성에 의한 파괴라니...웬지 통쾌하게 다가오는 이 느낌은 뭘까요?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소크라테스가 니체에게 와서 고난을 당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읽게 될
<우상의 황혼>에서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공식을 '이성=덕=행복'으로 정식화합니다. 
나아가 소크라테스의 외모까지 비난의 대상으로 삼지요.ㅎㅎㅎ
'소크라테스의 못생긴 외모는 정신적 괴물을 표시한다'는 겁니다.

청안이 있어서 우리 니체세미나가 참 든든합니다. 그럼! 벌써 내일이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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