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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발제문] 비극의 탄생 11~13장 +2
백조 / 2016-06-16 / 조회 1,875 

본문

< 비극의 탄생 :: 11장 >

 

1. 그리스 비극의 멸망  : 그리스 비극은 이전의 예술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멸망해갔다. 풀리지 않은 갈등 때문에 자살하여 비극적으로 죽어갔다. 그리스 비극의 죽음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처절한 공허만을 남겨놓았다. - 니체의 선언

그렇다면, 어떤 경로로 비극은 멸망했는가? 이에 대해 니체는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작업들이 결과적으로 비극을 멸망에 이르게 하고 새로운 희극이 나오는데 일조했다고 말한다.

 

2. 그렇다면 에우리피데스의 어떤 점이 희극작가들에게 자극적으로 모범으로 작용했나?

관객이 에우리피데스에 의해서 무대 위에 올라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의 손에 이끌려 관객석에서 무대 위로 나오게 된 것은 일상생활을 하는 인간이었다. 에우리피데스가 자신의 공로라고 말하는 것, 즉 비극예술을 화려한 비만증으로부터 구해준 공로에 의해 이제 관객들이 에우리피데스의 무대 위에서 보고 들은 것은 본질적으로는 그들의 분신이었다. 그리고 이 분신이 그렇게도 말을 잘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기뻐했고 그들 스스로도 말하는 법을 배웠다.

민중은 이제 스스로 기교적으로 교활한 소피스트 논법을 가지고, 관찰하고 담판하고 추론하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이처럼 공개적인 말에 일대변혁을 가져옴으로써 새로운 희극을 가능케 했다. 이전까지 비극에서는 반신(半神)이, 희극에서는 술 취한 사티로스 또는 반인(半人)이 말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시민적 평범함이 발언권을 얻게 되었다.

 

3. 이와 같이 마련되고 계몽된 대중이 새로운 희극의 관객이 되었는데, 에우리피데스는 이 희극 합창단의 교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스인은 비극을 버림과 동시에 자기들이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마저도 버렸다. 그들은 이상적 과거에 대한 믿음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상적 미래에 대한 믿음마저 버렸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 재치있게 대응하는 지혜, 경솔, 변덕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최고의 신이었다. 그리하여 제5계급, 즉 노예계급이 적어도 마음속에서는 지배권을 잡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리스적 명랑성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만 노예의 명랑성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 성실과 공포에 대한 이와 같은 여성적 도피, 그리고 안이한 향락을 즐기는 이와 같은 비겁한 자기만족은, 그리스도교도들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일 뿐 아니라 반그리스도교적인 근성으로 보였다. (초기 기독교 400년 동안)

 

4. 에우리피데스가 관객을 무대 위에 올려놓아 연극을 판단하는 진정한 힘을 관객에게 부여했다고 생각한다면, 예술작품과 관객의 균형을 시도한 에우리피데스의 급진적 경향이 소포클레스를 앞지른 진보였다고 칭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대중을 무대 위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에우리피데스는 관객에게 조금의 외경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시인으로서의 에우리피데스는 대중 따위는 안중에 없었으나, 자기의 관객 가운데 오로지 두 사람(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사상가로서의 에우리피데스 자신과 소크라테스)에게만은 자기가 훨씬 고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객에게만 그의 예술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가진 심판자 또는 스승으로서 존경을 바쳤다.

그는 이 두 사람의 지시와 충고에 따라서, 감정과 열정과 경험의 모든 세계를 그의 주인공의 영혼 속에 집어넣었다. 이들 새 등장인물을 위해서 새로운 말과 음조를 찾을 때도 이 두 사람이 요구에 따랐다. 관객의 판단에 의해서 자기가 처벌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이 두 사람의 소리에만 자기의 창작에 대한 판결을 듣는 동시에, 승리를 약속하는 격려의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비판력이라는 재능을 가지고 에우리피데스는 그의 위대한 선배들의 걸작을 바라보면서 이들 위대한 선배들이 자기에게는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예: 너무 화려한 묘사와 수사, 기괴한 사건들 -> 비만증을 치료할 필요를 느낌)

오성(悟性)을 모든 감상과 창작의 기본으로 삼았던 에우리피데스는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관객을 찾았고, 그는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 비극의 탄생 :: 12장 >

 

1. 에우리피데스의 경향 : 근원적이고 강력한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비극에서 배제하여 디오니소스적이지 않은 예술과 관습과 세계관 위에 순수하고 새로운 비극을 건설하는 것. 

그러나 디오니소스신은 너무 힘이 세다. 오랜 민중의 전통, 영원히 계승되어가는 디오니소스 숭배는 아무리 현명하다 하더라도 몇 사람의 깊은 생각으로 뒤집어지는 것이 아니다. 에우리피데스도 이를 알고 말년에 이러한 시도를 멈추었으나, 그의 경향은 이미 승리를 거두어 디오니소스는 이미 비극의 무대에서 쫓겨나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에우리피데스가 말하는 일종의 재앙을 주는 신의 힘에 의해서였다. 에우리피데스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가면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신은 디오니소스도, 아폴론도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 태어난 재앙의 신, 소크라테스였다.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소크라테스적인 것, 이것은 새로운 대립이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이라는 예술작품은 이 대립 때문에 멸망했다.

 

2. 에우리피테스가 무기로 삼아 아이스킬로스의 비극과 싸워 물리친, 소크라테스적 경향

에우리피데스의 의도대로 극을 완전히 비디오니소스적인 것 위에 세우면 즉, 연극이 음악의 모태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 단지 연극화된 서사시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서사시라고 하는 아폴론적인 예술 영역에서는 비극적 효과를 나타낼 수 없다.

아폴론적 연극의 이상과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그것은 고대의 엄숙한 음유시인과 후세의 낭송자의 관계와 같다. 낭송자에게서는 이미 서사시적인 가상으로의 몰입, 진정한 배우가 갖는 비정은 전혀 볼 수 없다. 에우리피데스는 계획을 짤 때는 소크라테스적 사상가이며 연기할 때는 열정적인 배우이다. 계획을 짤 때나 연기를 할 때나 그는 순수한 예술가는 아니다. 그래서 그의 극에서 서사시 특유의 아폴론적인 효과를 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한 디오니소스적 효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감동을 얻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극이라는 감동수단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것은 두 가지 독특한 예술충동, 즉 아폴론적 충동과 디오니소스적 충동 속에는 있을 수 없다. 냉정한 역설적인 사상과 불같은 격정이 이러한 자극의 수단이 되며, 이 사상과 격정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모방되어 있다고 해도 예술의 영기(靈氣) 속에는 결코 잠기지 않았다.

즉, 에우리피데스가 극을 전적으로 아폴론적인 것 위에 세우려고 했던 것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도리어 그의 비디오니소스적인 경향은 자연주의적, 비예술적인 경향을 향해 길을 잃게 되었다.

 

3. 미적 소크라테스주의의 본질

- 소크라테스의 원칙 : “아름답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지적이어야 한다.”는 명제.

“지식이 많고 사리에 밝은 사람만이 덕이 있다.”는 명제와 병행.

위의 기준으로 에우리피데스는 개개의 것을 측정하고, 이 원리에 따라서 언어, 성격, 극의 구성, 합창단의 음악 등을 수정해갔다.

에우리피데스는 자신의 비판적 생산적인 창작활동을 아낙사고라스의 책의 첫머리[“최초의 모든 것이 뒤섞여 어지럽게 있었다. 거기에 누스(理性)가 와서 질서를 창조했다.”]를 연극으로 꾸미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가졌을 것이다.

즉 에우리피데스는 만물의 유일한 조각자이며 지배자인 ‘누스’가 예술창작에서 제외되어 있는 한, 모든 것은 아직 뒤섞여 어지럽고 혼돈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합리주의적 방법의 생산성을 나타내는 예 : 에우리피데스의 서시(序詩), 기계 장치의 신)

그래서 에우리피데스는 ‘이지적이지 못한’ 시인과 대립하는 것을 세상에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아름답기 위해서는 모든 것은 의식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미학 원칙은, 이미 말한 것처럼 “선(善)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의식적이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원칙과 일치하는 명제이다. 따라서 에우리피데스를 미적 소크라테스주의의 시인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소크라테스는 옛 비극을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았던 제2의 관객이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소크라테스와 짜고 새로운 예술 창조의 선구가자 되려 했다. 만일 이 새로운 예술 창조 때문에 옛 비극이 몰락했다면, 미적 소크라테스주의는 살인적인 원리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옛날의 예술인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싸움인 만큼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디오니소스의 적, 즉 새로운 오르페우스로 인식한다.

 

< 비극의 탄생 :: 13장 >

 

1.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밀접한 관련

: 비극예술의 적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에우리피데스의 신작은 관람함.

델포이의 신탁에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실림(인간 가운데 가장 현명한 사람 – 소크라테스,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의 순서로 실림)

 

2. 지식과 통찰을 높이 평가하는 새롭고도 전대미문의 가장 날카로운 말을 한 것은 소크라테스 : 그는 넓은 세상에서도 자기만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유일한 인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함.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직업에 대해 올바르고 확실한 통찰을 가지지 못하고 ‘다만 본능적으로’ 그것을 하고 있었다. ‘다만 본능에서’라는 이 말로 우리는 소크라테스적 경향의 정수와 중심점에 이른다. 소크라테스주의는 이 말을 가지고 기존의 도덕과 예술을 비판한다. 심판의 눈을 어디로 돌리나 소크라테스주의의 눈에 띄는 것은 통찰의 결여와 망상의 위력뿐이다.

소크라테스주의는 이 결여 때문에 현존하는 것이 내부적으로 어긋나 있으며, 따라서 이것을 배척해야 한다고 추론한다. 소크라테스는 다만 이 한 가지 점에서 현존하는 것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었다.

소크라테스를 접할 때마다 사로잡히게 되는 엄청한 의혹 : 가장 깊은 심연과 숭배의 대상인 그리스적 본질을 개인으로서 감히 부정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이런 소크라테스의 본질을 나타내는 하나의 열쇠는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온(다이몬의 신호)’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현상이다. 그의 오성이 동요하는 특별한 상황 아래서 그는 그 순간 들려오는 신의 소리에 의해 튼튼한 발판을 얻었다. 이 이상한 인물에게는 때때로 의식적인 인식을 저지하는 경우에만, 본능적 지혜가 나타나다.

모든 생산적인 인간들에게 본능은 바로 창조적, 긍정적인 힘이며, 의식은 비판적이고 경고적인 역할을 하는데 반해서, 소크라테스에게는 본능이 비판자이며 의식이 창조자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이르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니체의 설명과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의연한 태도가 플라톤 등 당시의 젊은이에게 소크라테스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받아들이게 했다고 말함.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백조님의 발제글은 제가 하나로 이어놓았어요.^^*
홈페이지에 텍스트가 잘리는 현상은 이전 텍스트(한글, ms워드)에서 붙여넣기를 할때,
이전 텍스트에서 불필요한 태그가 따라와서 그렇습니다.
이럴 때는 이전 텍스트를 메모장에 붙였다가 다시 홈페이지에 업로드하면 됩니다. ^^

백조님의 댓글

백조

훨씬 보기 좋게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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