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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세미나] <비정상인들> 첫 세미나 발제문 (7/15) +7
소리 / 2016-07-16 / 조회 4,335 

본문

정신감정 보고서의 “그로테스크(Grotesque)”

그로테스크(grotesque). 그로테스크란 무엇인가.

나는 그로테스크란 단어를 보면 혀를 쭉 내민 염소 닮은 악마모양의 아라베스크 무늬(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한다...)로 장식된 집에서 사드 소설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하드한 SM행위들이 연상된다. 오늘날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런데 푸코는 그 말을 다르게 쓰고 있었다. 하나의 담론 혹은 한 개인이 자신의 내적 자질만으로는 도저히 가지지 못할 권력의 효과를 자신의 ‘지위’에 의해 가지고 있을 때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감정 보고서는 그로테스크하다. 그리고 그 그로테스크함을 자신의 기술로 사용하는 권력도 그로테스크하다. 그러나 내게는 정신감정 보고서나 권력이나 내가 표현한 그로테스크함도 포함되어 보인다.

 

정신감정 보고서는 의학적인 견해를 지닌 의학 보고서이다. 그러나 의학적인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사법에 개입하지만, 사법적인 언어 또한 구사하지 않는다. 법의학자,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자에 의해 발화하지만, 사법적 사실과는 무관한 말들을 한다. 첫 장에서 푸코가 읽어주는 정신감정 보고서에는 법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 난감한 말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들을 통해 혹은 법학 개론서를 통해, 법적 사실은 진실과 항상 일치하지 않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 법적 사실은 진실과 다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법적인 언어를 쓰고 있지도 않다. 여기에는 사건의 경위와는 상관없는 얘기들이 있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캐는 내용의, 어쩌면 한 개인의 실수 혹은 오류라고 볼 수 있는 얘기들이 말이다.(찌라시도 아니고!) 엄중하고 진지한, 논리의 정수만을 취급할 것 같은 의학과 사법 영역에서 ‘정신감정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이 난감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니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보아도, 엄밀히 보아도 이것은 의학의 언어도, 사법의 언어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정신감정 보고서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며, 근대 사법 장치를 구성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대체 어떻게 이들은 자신의 내적 자질만으로는 도저히 가지지 못할 지위와 권력을 사용하는가?

 

정신감정 보고서는 의학의 범주에도, 법률의 범주에도 해당되지 않는 제 3의 영역의 무엇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어떤 목소리인가? 푸코는 권력의 목소리라고 말한다. 18세기 이전의 과거의 서양은 개인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생사여탈권에 관여한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그러나 푸코가 감지한 18세기 후반, 19세기의 권력은 그 양태를 달리한다. 그리고 그 모습의 한 가운데에 정신감정 보고서가 있다.

 

푸코가 살펴본 정신감정 보고서는 난감한 찌라시 수준의 얘기들을 하고 있다. 과거의 과오나 잘못을 모아둔다. 그것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범죄 그 자체가 아닌, 범죄가 일어나기 전의 행동들이다. 그러나 그 행위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겸손함과 성실함이다. 그것은 도덕-윤리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정신감정 보고서는 범죄 그 자체가 아닌, 위법 이전의 도덕-윤리 영역을 문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응징되는 것은 범법 이전의 행위와, 행위를 발생시키는 정신에 있다. 범죄는 규정 위반이 아니라 병리적, 심리적 기준에서의 불법이 되는 것이다. 문제의 범인이 처벌 받는다 하더라도, 정확하게 판사가 판결하고 처벌하는 것은 범죄의 기원과 원인, 그리고 변칙적인 행동들이다. 그렇다면 사법기관은 범죄의 행위가 아닌 실체 그 자체를 처벌하게 되는 것이다.

 

교정·치료 받아야하는 범죄자

그렇게 범죄자는 그 행위 자체를 처벌 받는 것이 아니라, 변칙적 행동을 저지르는 ‘교정’이 필요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18세기 이전의 권력이 개인을 죽고 살리는 권력이었다면, 정신감정 보고서가 힘을 발휘하는 18세기 후반 이후의 권력은 개인을 변형시키고 감독하는 기술을 발전시킨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얼마나 자신의 범죄와 닮아있는가가 된다. 사실상 예심 판사같은 역할을 의사가 하게 된다. 정신감정서는 법관이자 의사로서 개인을 교정한다. 정신감정서를 통해 의사는 사법 권력과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된다. 법관은 의사가, 의사는 법관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을 바꾸게 된다. 왜 그는 범죄를 저질렀는가? 그는 위험한가? 그는 형사적 제재를 받을 수 있는가? 그는 치유되어 사회에 재적응 할 수 있는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것이 근대 권력인 규격화의 기술이다. 논점은 범죄 행위에서 행위자 개인으로, 처벌 받아야 할 개인에서 교정과 치료가 필요한 개인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관행은 옛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들을 유효하다. 일례로 최근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에서의 판결이 그렇다. 그는 평소 “신실한 신학도였으며”, “정신질환을 앓았고”, “한 명의 여성과 교재를 했으며, 평소 야동을 보”기도 했기 때문에 한 개인의 여성 혐오 범죄로 보기 어려우며(혐오범죄라는 카테고리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신질환을 앓고”있기에 정신질환자의 범죄로 판명한다. 그래서 검찰은 치료감호와 전자발지 부착 명령을 청구했다. 검찰에 꾸며진 보고서들과 조서들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검찰 발표에서 차례로 발췌했다. 그는 살인의 행위가 아닌 살인을 촉발한 이전의 행위로 인해 ‘치료와 교정’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와 격리된 감호소에서 말이다.

 

격리·추방에서 포용·관리의 기술로

사실 강남역과 같은 판결은 우리에게 익숙한 패턴이다. 동시에 이런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저런 정신병자들은 사회에 다신 발 딛지 못하게 영원히 격리시켜야 해!” 혹은 “저런 것들은 감방(혹은 병원)에 처넣고 치료받아야 해!!”라는. 요약하자면 격리와 치료가 될 것이다.

푸코는 이 지점을 잘 파고들었다. 권력의 행사 방식은 나병 환자 추방식과 페스트 환자 관리식으로 2가지로 분류했다. 그리고 매커니즘은 광인, 환자, 범죄자, 탈선자, 어린이, 가난한 자들에게 행해지는 권력 행사 방식도 비슷했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에 완전히 사라진 나병 환자 추방식은 추방, 자격상실, 유배, 거부, 박탈, 무지 등의 매커니즘과 효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18세기부터 등장한 페스트 환자 관리식은 통제, 분석, 분할, 검역이라는 포용적인 관리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도시 곳곳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권력은 감시하고, 알았으며, 기록할 수 있었다. 앎을 통한 세분화, 개인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동시에 이것을 구획하과 관리하기 위하여 피라미드 형태의 권력 위계가 생겼다. 이 권력 기술은 정치적 통제의 모델로서 시간, 공간, 환경 그리고 육체에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푸코는 이것을 관리기술(government/ gouvernement)이라고 부른다.

이 관리기술은 규격화를 통해 확대된다. 과거 나병 환자식 권력 기술은 네거티브한 권력으로서 징수를 했다면, 페스트 환자식의 관리 기술을 사용하는 포지티브한 근대 권력은 직접 생산한다. 그리고 이는 “규격화”라는 방식을 채용한다. 이 규격화는 인간의 몸, 라이프 스타일, 인구재생산(생식), 사랑의 모습까지 규격화 하게 된다. 학교, 군대, 생산의 영역에서 규격화 효과는 배가된다. 규격화의 상징은 유니폼(Uniform)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어를 쪼개보면, "uni-"는 ‘단일한, 통합된’이란 뜻을 가진 접두어이고, "form"은 ‘형식’이란 뜻이다. 단일한 형식을 갖도록 인간의 삶 전반을, 장소를, 시간을 규격화 하여 관리하는 것이다. 앎을 통해 규격화를 이룬 관리 방식이다.

 

사디즘

앎을 통한 규격화, 거기서 나오는 관리기술을 가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권력. 그것을 관찰하고 관리하며, 심지어는 앎을 통한 비정상인들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권력. 그것은 현재의 내 개인적인 삶의 모습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공부, 젠더, 사랑, 섹스, 식생활, 패션 등등에 서린 규격화된 이미지와 규율들. 관리되고 분리 되어온 지난날의 시간들. 입이 있고 말 할 수 있지만 말 할 선택지 자체가 한정되어있다. 혹은 하나만이 강요된다. ‘너만 입 닫으면 예전처럼 평화로울 수 있어’라는 세상의 압박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푸코의 글은 때때로 이렇게 서슬 퍼런 세상의 모습을 까놓는다. 그래서 잔인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나는 이 권력이 소름 돋는다. 모든 Smer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본 책에서의 사디즘은 18세기 이후의 근대 권력의 모습과 닮아보였다. 상대의 쾌락 혹은 고통을 면면히 알고 있으며 이를 통제하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자르고 찌르고 지지고 먹이는, 하드한 가학행위의 사디즘을 닮았다. 권력이 사디스트라면 우리는 단체로 SM플레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타자의 고통에 무감해지기를 강요받으며, 생존에 급급할 수 없는 헬조선의 모습은 어쩌면 하드한 SM 플레이의 현장일지도 모르겠다. 내겐 이 권력이 만든 세상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첫날부터 발제문이 파격이었지요. ㅎㅎ
다음 발제자는 부담이 됩니다. 지루하게 쓰면 야유를 듣겠지요.
그래도 푸코의 짜릿한 강의를 발제하는 일은 신이 나겠지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소리님, 정말 발제문 너무 좋았습니다~ 한편의 에세이 같은!
제가 항상 본받고 싶은 공부하는 선우님처럼 그리고 또 다른 학우님들처럼
텍스트를 씹어먹을듯 꼭꼭 열심히 읽어와야 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푸코속으로 풍덩 들어갑시다~ *^_____^*

선우님의 댓글

선우 댓글의 댓글

우리 유택이 달라졌어요~ ㅎㅎ
푸코를 유택이랑 공부하다니, 참 살다볼 일 입니당~

baume님의 댓글

baume

잘 읽고 갑니다....
혼자서 텍스트를 읽어도 될 만큼 발제문이 쏙쏙 들어와서
종종 들어와 눈팅 하겠습니다.^.^

선우님의 댓글

선우

소리님, 이렇게 열심히 발제 준비해오시고 반장님도 맡아주시고... 감사하네요^^
세미나, 재미있었습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세미나 입니다.

ㅇㄴ님의 댓글

ㅇㄴ

이 분야에 잘 모르는 사람도 한눈에 이해하기 좋은 발제문 같아요.
바쁜 시간중에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쓴 소리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수고많으셨어요.>.<

소리님의 댓글

소리

댓글들 감사합니다!ㅎㅎ
앞으로 모두 파이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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