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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후기] 무덤 :: 마라시력설 0213(화) +2
삼월 / 2018-02-15 / 조회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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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스물일곱의 젊은 루쉰은 문화편향론에 이어 서구의 시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글을 쓴다. 제목은 마라시력설. 우리말로 '악마파 시의 힘을 논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영국의 바이런을 중심으로, 바이런의 영향을 받은 시인들의 시와 삶을 소개했다. 루쉰이 소개하는 바이런은 스칸디나비아 해적의 후손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통일을 도운 군인이기도 하다. 바이런의 시 속 인물들이 사회에 반항하고 복수하려는 것과 바이런의 삶은 닮아 있다. 바이런은 사람들이 신을 선하다고 믿는 이유가 신의 강함에서 오며, 신과 악마의 힘은 모두 신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악마는 신의 힘으로 신에게 저항한다. 악마는 신에게 저항하는 동시에 신을 사랑하는 인간을 핍박하므로, 인간은 때로 신의 분노와 악마의 핍박을 동시에 겪는다. 바이런은 차라리 악마를 도와 신에 저항하자고 주장한다. 신이 아무리 분노로 반항하는 인간들을 몰살시켜도, 인간에게는 격세유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먼 조상을 닮은 후손이 언제든 태어날 수 있으므로, 악마파 시인들은 언제고 다시 티어날 수 있다.

 

루쉰이 소개하는 악마파 시인들은 세속에 분개하고 사회를 혁신하려고 했으며,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파괴가 가진 미덕을 알아보고 개혁과 파괴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나쁜 습속을 저지하려고 하는 자들은 나쁜 습속에 저지당한다. 사람들은 파괴가 가진 힘을 알아보지 못한다. 루쉰은 자신이 소개한 여러 나라의 시인들이 하나의 유파로 통일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때로 악마라 불리고 루쉰 스스로도 이들을 악마파라 칭하지만, 사실 이들은 인간일 따름이며 딱히 악마파라 불릴 필요도 없다. 이들의 존재는 군중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검투사와 같다. 루쉰은 이들처럼 군중 앞에서 피 흘리는 자가 없다면, 그것은 그 사회의 재앙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루쉰의 책 '들풀'에서 전사 혹은 검사의 이미지로 구현될 검투사의 존재가 여기서 나타난다. 이들은 한 사회에 개혁의 소중함, 습속에 저항하는 일이 가지는 의미를 군중에게 일깨워주는 존재들이다.

 

루쉰이 악마파 시인들을 소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악마는 신에게 저항하지만, 그의 힘은 신에게서 연유하므로 세계를 파괴하지는 못한다. 세계를 파괴하고 인류를 멸절할 만한 힘은 신에게만 있다. 악마는 우리에게 저항의 의미, 파괴의 미덕을 알게 해 줄 뿐이다. 루쉰이 악마파 시인들의 힘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는 당시의 중국이다. 서구문화에서 세계의 토대가 신이라고 한다면, 중국에서는 중국 자체가 세계의 틀이다. 루쉰에게도 이 틀은 작용한다. 이 중국이라는 틀 안에서 외부는 없고, 모든 문명의 기원과 미래의 가능성은 그 틀 안에서 존재한다. 루쉰이 서구의 시인들을 소개하지만, 정작 루쉰이 주목하는 것은 그 시 안에 담긴 서구의 문명과 정신이 아니다. 그 시인들의 시와 삶 안에 담긴 저항성이 당시의 중국을 변하게 할 무엇이라고 믿기 때문에, 루쉰은 그 시인들을 주목했다. 루쉰이 이야기하는 복수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낼 필요가 있다. 루쉰이 복수를 강조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피해자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심판자로서의 역할까지 해 내려고 하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복수는 피해자가 자신을 복원하려는 시도라 볼 수 있으며, 루쉰의 세계문명 읽기 또한 복수라는 거대한 의도 안에서 읽어낼 필요가 있다. ​ 

댓글목록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복수는 피해자가 자신을 복원하려는 시도'라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복수를 입에 올리는 것은 물론, 적과 원수에게 추호의 여유도 주지 않는 루쉰은,
어찌보면 무작정 날카로운 인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처럼 '자신을 복원하려 시도'하는 자라면, 그가 말하는 복수는 다른 의미를 갖겠지요.
오롯이 자신에게 몰두한 순수한 삶이 루쉰이 아닌가합니다.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간결하고 힘있게 핵심을 파고드는 후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외부가 없는 중국이라는 세계에서 루신은 무엇과 싸우고자 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외부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은 자신과 대적할 외부의 적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중국이라는 세계 안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요순 시대를 이상국가로 막연히 그리워하거나, 
노자처럼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맑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정진하는데 집중하곤 했을 것입니다. 
루신에게는 중국 스스로 적을 만들고 중국이라는 세계를 어지럽혀
변화와 전복의 가능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평화란 인간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다."
"전쟁이 눈 앞에 닥치면 또 스스로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이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어 낸다."
"대개 시인이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자이다."
이런 단단한 문장들에서 청년 루신의 간절함을 읽습니다.

"정신계의 전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진실한 소리를 내어 황폐하고 차가운 데서 우리를 구원해 낼 사람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서는 청년 루신의 울분을 느낍니다. 

<무덤>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청년 루신이 '무덤'이라는 말을 통해 자신과 세계에 토해내고 싶었던 감정과 생각들이
조금은 아릿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렴풋하고 아직 미지근하긴 하지만,
청년 루신의 뜨겁고 답답했을 가슴 속 이야기들이 자꾸 맘 속에서 맴을 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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