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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후기] 덕Virtus이란 무엇인가? :: 0212(월) +2
오라클 / 2018-02-15 / 조회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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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Virtus이란 무엇인가?

[니체 후기] 차라투스트라 1부 1~14장 :: 2018-0212(월)

 

 

저는 힙합 오디션 <쇼미더머니 Show Me The Money​>를 즐겨보는데, 2017년 <쇼미더머니6>에서는 직전에 끝난 <고등래퍼>의 영향 탓에 우승자 영비(양홍원)를 흉내낸 참가자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영비의 트레이드인 십자가 귀걸이를 한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그의 독특한 딕션까지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지요. 이런 '영비 현상'에 대해 프로듀서 지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영비가 있으니까, 다운그래이드된 영비를  뽑을 이유는 없다." 

 

한편 다크랩 계열의 이그니토와 우원재가 맞붙었을 때, 대체로 다크랩의 일인자인 이그니토가 이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경력 1년 남짓의 풋내기 우원재가 승리했지요. 스킬에 있어서는 이그니토를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우원재의 독특함은 이그니토를 능가하고도 남는 것이어서, 저는 이 결과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우원재는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한 랩을 구사하고 있었는데, 이제까지 그와 같은 래퍼는 없었던 거지요.   

 

저는 이것을 덕의 특이성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누구를 흉내내는 정도에 머문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아직은 테크닉에서 미숙하더라도, 자기 특이성을 가진 존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능력자일 것입니다. 우리의 덕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 우리의 관점, 혹은 우리의 글에서 다른 무엇과 구별되는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러한 특이성과 능력이 바로 덕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1] 현자가 가르치는 ‘대중의 보편적 덕’          

 

<2. 덕의 강좌>에서 현자는 사람들 앞에서 덕을 강의하는데,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덕이란 ‘보편적인 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자는 말합니다. “덕은 깊은 잠을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이며, 그래서 잠은 덕의 주인이다. 깊은 잠을 위해 낮 동안 열 번 자신을 극복하고, 열 번 자신과 화해하고, 열 개의 진리를 찾아내야 하며, 열 번 웃어야 한다. 반대로 거짓 증언, 간음, 이웃하녀에 대한 음욕은 단잠을 방해한다. 따라서 신과 화평해야 하며 이웃과도 화평해야 하며, 이웃의 악마와도 화평해야 한다. 권력이 부정하더라도, 관헌을 존경하고 복종해야 한다. 좋은 평판과 얼마간의 재물이 있어야 한다.” 

 

먼저, 현자가 말하는 ‘신과 화평하고, 이웃과 화평하고, 권력에 복종하고, 좋은 평판을 가지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입니다. 이는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ㆍ간음ㆍ도덕질ㆍ거짓 증거를 말고,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 것’을 요구하는 기독교의 10계명과 닮아있으며, 이것은 동양의 3강5륜을 비롯하여 모든 시대에 통용되는 도덕적 규율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도덕적 가치는 대체로 그 시대의 지배질서를 위해 개인에게 요구되는 의무와 규칙입니다.

한편, ‘우리의 덕이 잠을 잘자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은, 마치 ‘우리의 삶이 죽음의 순간이 후회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와 닮아있습니다. 이는 생성의 시간인 낮을 잠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인데, 삶의 과정을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결국, 현세의 선행을 천국으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오히려 잠은 낮의 생성을 위해 에너지를 준비는 시간이고, 삶 자체를 사는 사람에게 죽음의 순간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덕의 설교자-현자들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합니다. 저들은 더 이상 서있지도 못하고 벌써 누워있으며, 쏟아지는 잠을 감당하지 못하고 곧 꾸벅꾸벅 졸게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2]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자신의 고유한 덕’          

 

<5. 환희와 열정>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어느 누구와 공유할 수 없는 자신의 ‘고유한 덕’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보편적인 덕’과는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형제여, 어떤 덕이 있어 그것이 네 것이라면, 그 덕을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한다. 네가 너의 덕에 이름을 지어부르고 그 이름을 민중과 공유하게 되면, 너의 덕과 더불어 너는 민중이 되고 가축의 무리가 되고 말 것이다. 오히려 네 영혼의 번민을 잠기게도 하고 감미롭게도 하고, 네 뱃속의 굶주림이기도 한, 너의 덕은 발설할 수도 이름도 없다. 이름을 불러 친숙해지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곳에 너의 덕이 자리하도록 하라.”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우리에게) 그 덕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합니다. ‘나의 덕이 나의 선’이며, 그것은 신의 율법이나 사람의 제도가 아니며, 저편세계나 천국의 길잡이도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신의 율법이나 사람의 제도로서 요구되거나, 현세의 덕을 천국의 길잡이로 보는 ‘보편적 덕’과는 거리가 멀지요. “나의 덕이 나의 선이며, 나는 이것을 사랑한다. 전적으로 내 마음에 들며, 나는 이러한 선만을 원한다. 나는 그 덕을 신의 율법으로서, 혹은 사람의 제도나 편의로서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덕이 나를 이 세계의 저편이나 천국으로 오도하는 길잡이가 되어서도 안된다. 내가 사랑하는 덕은 이 땅에서의 덕이다. 그 덕은 만인이 공유하고 있는 그런 이성도 최소한으로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그 새는 내 곁에서 둥지를 틀었다.”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그 덕이란 악이라고 불리는 열정에서 자라났으며, 악마가 천사가 되고 사나운 들개가 새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선에서 선이 자라고 악에서 악이 자라난다”는 형이상학적 이분법을 간단히 뛰어넘습니다. “그 덕이란 우리의 열정(의욕ㆍ욕망 혹은 악)에서 자라난 것이다. 네가 너의 열정의 심장부에 너의 최고목표를 세우자, 너의 덕이 환희가 되었다. 결국 너의 열정은 모두 덕이 되었고, 너의 악마 또한 모두 천사가 되었다. 너는 너의 지하실에 사나운 들개들(나중에 덕으로 자라날 열정)을 기르고 있었으나, 결국 그것들도 새가 되고 사랑스런 가희로 변했다. 너는 너의 독에서 향유를 빚어냈다.” 

 

     [3] 2개의 덕에 대하여 :: 도덕moral과 윤리ethics          

 

니체는 ‘대중의 보편적 덕’(2. 덕의 강좌)과 구분되는 ‘자신의 고유한 덕’(5. 환희와 열정)을 참된 덕으로 제시합니다. 전자의 덕이 도덕적moral 가치와 관련한다면, 후자의 덕은 윤리적ethics 가치와 관련합니다. 니체철학에서 덕Virtus은 특이성(고유성, 품격, 가치)와 능력(역량, 힘, 재능)이라는 2가지 속성을 갖습니다. (*[라틴어사전] virtus : 품격, 가치, 고유성 / 재능ㆍ재질, 덕성, 힘ㆍ능력 ) 그래서 덕Virtus은 종종 자신만의 고유성, 특이성, 취향, 스타일로 변형되어 사용되는데, 자신만의 특이성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로 능력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예술가(작가, 미술가, 음악가)에게 자신의 스타일은 곧 ‘능력’이며, 그것이 없다는 것이 ‘무능’을 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덕Virtus이 자기 특이성과 능력으로 정의된다면, 덕의 인격화된 존재가 바로 강자입니다. 

 

먼저, (도덕_의무와 규칙 / 윤리_기쁨과 이득) 도덕이란 '당연히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을 행하도록 가르칩니다. 우리에게 기쁨이나 이득을 주어서가 아니라, 의무이고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칸트의 정언명령(정언명법)은 보편적 도덕에 대한 전형적인 관점을 보여줍니다. “너의 행위의 준칙이 보편적 도덕법칙이 되도록 행위하라” 반면 윤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지'를 가르칩니다. 무엇이 자신의 힘을 증가시키고 무엇이 자신에게 기쁨이 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윤리에 관한 탁월한 텍스트입니다. 

 

따라서, (도덕_선과 악 / 윤리_좋음과 나쁨) 도덕이 선good/악evil의 2범주에 의해 작동한다면, 윤리는 좋음good/나쁨bad이란 범주를 기초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도덕이 시대적 가치, 보편적 기준에 따라 평가한다면, 윤리는 자기의 고유성, 특이성 같은 특이적 가치에 따라 평가하게 됩니다. 따라서 도덕이 의무나 규칙을 이행했는가를 묻는다면, 윤리는 자신의 역량과 힘을 증가ㆍ감소시키는 기쁨과 슬픔을 돌봅니다. 따라서 도덕이 사회의 보편적 의무나 규칙을 준수하는 태도를 요구한다면, 윤리는 자기 특이성을 발견하고 강화하는 능력이 요구될 것입니다. 

 

한편, (도덕_초월적 / 윤리_내재적) 도덕은 어떤 조건이든 지켜야할 규칙, 모든 조건을 넘어서 준수되어야 할 ‘초월적’ 규칙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가령 모세의 십계명이나, 법적인 의무, 상식이나 습속의 규칙 같은 것입니다. 반면 스피노자가 말하는 윤리에선 절대적 규칙이나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초월적 규칙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초월적’인 것과 반대로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관계에 ‘내재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도덕적 판단_신학ㆍ법학의 지식 / 윤리적 판단_자연학적 지식) 그것이 ‘선인지/악이지’를 가리는 도덕적 판단을 위해서는, 그것이 금지된 것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이, 금지의 계율로부터 선악을 해석하고 입증하는 신학이나 법학의 지식이 중요합니다. 반면, 몸이나 영혼에 ‘좋은 것/나쁜 것’을 따지는 윤리적 관점은 자연학적입니다. 나의 몸이나 영혼에 무엇이 ‘좋은지/나쁜지’를 가리는 윤리적 판단을 위해 의학이나 영양학, 생물학이나 화학 같은 자연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댓글목록

빠른거북이님의 댓글

빠른거북이

저는 쇼미더머니는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지만 우원재 시차를 자주 들었어요.  그래서 반갑습니다 ^^
언제나 깔끔하고 명강연 같은 후기 감사해요.

홍시님의 댓글

홍시

'윤리는 자기 특이성을 발견하고 강화하는 능력'... '초월적'인 것과 반대로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관계에 '내재적'
이 부분에 밑줄 긋습니다. 자기 특이성을 발견하고 강화하는 능력(윤리)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거 같아요.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면에서 '내재적'인거 같고요. 윤리가 '내재적'이다 라고 할 때 이런 뜻이였나 봅니다.

요사이, 니체 세미나(관계)를 통해서 저의 부족한 면을 여실히 깨닫고 있는데, 어떻게 개선시켜나가야 할지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강화해야 할 '자기 특이성'이 어떤걸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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