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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발제] 오리엔탈리즘1부 1~2장 :: 0220(화)
오라클 / 2018-02-20 / 조회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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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 1부 > 1장 도양인에 대한 인식, 2장 상상의 지리와 그 표상 ...... 2018-0220(화) 오라클


1. 제1장 동양인에 대한 인식

 

[1] 밸푸어 :: 지식이 지배를 낳는다


선입견(합의되고 전제된 견해)으로서 동양 > 1910년 6월 영국 하원에서는 ‘이집트 문제’ 전문가 아서 제임스 밸푸어의 연설이 진행되었다. 여기서 ‘동양인’이라고 하는 말은 이미 정해진 규범이었는데, 그것은 누구에게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고 어떤 해설도 필요 없었다. 유럽에서 동양적 성격ㆍ동양적 분위기ㆍ동양적 이야기ㆍ동양적 전제주의ㆍ동양적 생산양식이라고 하면 의미가 충분히 통했다. 동양적 성격ㆍ동양적 분위기란 정체되고 신비로운 이국적 분위기를 뜻하고, 동양적 이야기도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내용이다. 동양적 전제주의란, 야만적 국왕의 독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구의 계몽군주에 대립되어 선전되었고, 동양적 생산양식도 정체된 고대 농업생산의 답보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구의 자본주의에 대립되어 선전되었다. 

 

지식과 힘 :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지식 > 밸푸어의 발언을 지배하는 것은 ‘지식과 힘’이라는 2개의 주제이다. 밸푸어가 영국의 이집트 점령을 정당화한 것은 군사력ㆍ경제력이 아니라 지식이었다. 밸푸어에게 지식이란, 문명을 기원으로부터 전성기, 쇠퇴기에 이르기까지 개관하는 것이다.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지식에 대하여 권위를 행사하고자 하는 것인데, 여기서 권위란 ‘우리’가 ‘그 나라’의 자주성을 부인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 & 오리엔탈리즘 :: 대상 & 지식 > 밸푸어에게 이집트는 ‘이집트에 관한 영국인의 지식 그 자체’였고, ‘영국인의 우월성과 이집트인의 열등성’은 그 지식으로부터 이끌어낸 당연한 귀결이었다. “서양인은 자치의 능력이 있는 반면, 동양인은 자치의 흔적을 전혀 볼 수 없다. 동양의 역사는 위대한 것이었으나, 전제주의 하에서 만들어졌다. 서양적 관점에서 자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동양민족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확립할 수 없었다. 따라서 동양의 절대정부(전제주의)가 우리 손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영국은 이집트를 알고 있으며, 이집트란 곧 ‘영국이 알고 있는 이집트’를 말한다. 이집트인에게 이집트란, 영국이 점령하고 통치하고 있는 이집트 바로 그것이다. 외국 군대의 점령이 현대 이집트문명의 ‘기초 그 자체’가 된다. 결국 이집트는 영국의 점령을 필요로 하며, 그것을 요구한다.”  (*식민사관 “일본의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가져왔다”) 

 

영국과 동양인 :: 다른 배역, 다른 인격 > 밸푸어 연설은 다양한 배역을 나누어 다양한 인격을 표상한다. 먼저, ‘영국인’이라는 배역을 나타내기 위해 ‘우리’라는 대명사가 사용되는데, 힘에 넘친 뛰어난 남자의 무게가 담겨져있다. “동양인은 종속된 인종이므로, 그들과 그들의 행복에 대해 그들 이상으로 잘 알고 있는 인종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동양인이 현대세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강력한 제국이 동양인을 쇠퇴의 비참함으로부터 구출하고 식민지주민으로 만들기 위해 기능회복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가능했다. 

 

[2] 크로머 :: 지식과 권력의 변증법


식민지배의 일반이론 > 영국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민족주의적 반란을 평정한 1882~1907년까지 이집트에서 영국대표는 크로머경이었다. 밸푸어는 크로머가 이집트에서 이룬 공적을 찬양하고, 크로머를 ‘이집트를 창조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집트에서 영국이 성공한 것은, 동양문명에 관한 밸푸어의 사고방식과, 이집트에서 크로머의 실무처리방식에 의해 표현된 일반이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즉 서양인은 지배하고 동양인은 지배당해야 한다. 지배당한다는 것은, 자기 나라가 점령당하는 것, 내정을 관리받는 것,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서양 열강의 처분에 맡긴다는 것이다. 

 

지식과 권력의 변증법 > 밸푸어의 ‘동양인’에 상응한 것이, 크로머의 ‘종속종족’이었다. 1908년 1월 <에든버러 리뷰>에 발표한 크로마의 논설에 따르면, 종속종족(동양인)에 관한 지식은 동양인의 관리를 쉽게 하고 동양인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다. 지식은 권력을 낳고 권력의 증대는 지식의 증대를 요구한다는 것에 의해, 정보와 지배가 서로를 점점 강화하는 변증법이 작용한다. 크로머는 이집트 민족주의를 전면적으로 적대시하였고, 자유로운 고유제도, 외국에 의한 점령의 종결, 자주독립의 민족주권 확립 같은 당연한 요구를 거부했다. 크로머에 의하면, “이집트의 참된 장래는 토착 이집트인만 수용하는 편협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광범한 세계시민주의에 있다. 종속종족에게는 자신에게 무엇이 선인가를 알 힘이 없다.”

 

[3] 지적 권력으로서 오리엔탈리즘


동양인에 관한 지식과 편견 > 본질적 지식의 핵심은 크로머나 밸푸어가 1C에 걸친 근대서양의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계승한 학문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이었다. 곧 동양인의 인종, 성격, 문화, 역사, 전통, 사회, 장래성에 관한 지식이었다. 크로머는 《현대의 이집트》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동양적 심성은 정확함을 기피하는데, 이는 사람을 허위로 타락시킨다. 유럽인은 주도면말한 논리를 좋아하고 한 치의 애매함도 없다. 유럽인은 타고난 논리학자이며, 타고난 회의론자이고, 증명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동양인의 정신은 동양의 기이한 길거리와 마찬가지로 균형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고, 동양인의 추론은 매우 감상적이다.” 

  (*《현대의 이집트》는 1911년 일본어로 번역되어 한국침략을 위한 일본의 참고문헌으로 이용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의 일반성 : 서양/동양(영국/이집트) 뿐 아니라, 동양/동양(일본/한국) 관계에서도 재생산된다.) 

 

동양인, 동양인에 대한 연구 > 크로머에게 동양인이란 식민지에서 통치하는 인적자원일 뿐이며, 동양인에 대한 연구란 “인간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하는 연구이다. 크로머의 견해는 동양인은 무조건 유죄이며, 동양인이 동양인이라고 하는 점이야말로 범죄였다. 이러한 동어반복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동양적 행동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은 부자유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크로머는 이집트 민족주의란 ‘완전히 신기한 관념’이며 재래종이라기보다 외래종이라고 단언했다.

 

지식-권력의 추후추인 vs 사전계획 > 오리엔탈리즘을 식민지지배를 합리화하는 수단이라고 단정하면, 오리엔탈리즘이 식민지지배를 추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서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차원을 간과하게 된다. (역주*“지식이 권력을 추후에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권력을 사전에 정당화한다”는 사이드의 논의는 한국 지성사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법학의 경우, 권력에 대한 사후추인이 아니라, 사전계획이 되어왔다. 특히 육사와 서울법대라는 지식기관의 야합이 한국의 독재권력을 창출했다. 서울대와 연고대 등의 일류대학 출신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야당이나 운동권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지배계급을 형성했다.)

 

서양-동양 문화적 관계의 2가지 양상 > 밸푸어와 크로머가 받아들인 동양과 서양을 나누는 절대적 경계선은 18C 중엽이후 동양과 서양의 관계를 규제하는 중요한 2계기에 의해 생겨났다. 첫째는 유럽에서 동양에 관한 체계적 지식이 증대했다는 점이다. 이 지식은 서양에 의한 식민지침략에 따라, 이질성ㆍ비정상에 대한 인간의 흥미가 확대됨에 따라, 민족학ㆍ비교해부학ㆍ문헌학 같은 학문의 발전에 의해 이용되었다. 둘째는 유럽이 언제나 강자의 위치를 차지했다고 하는 점이다. 밸푸어가 동양문명의 ‘위대함’을 인정하듯이 약자에 대한 강자의 관계를 위장할 수 있지만, 본질적 관계는 강자와 약자의 대립관계였다. 

 

지식권력으로서 오리엔탈리즘의 생산 > 이러한 관계에 대해 밸푸어와 크로머는 전형적 용어로 표현했다. ① 예컨대, 동양인은 비합리적이고 열등하며 유치하고 ‘비정상’이다. 따라서 유럽인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숙하고 ‘정상’이다. ② 또한, 동양인이 갖는 세계의 인지가능성과 자기확신은 동양인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서양이 동양을 동일시한 결과이다. ③ 그리하여 동양에 관한 지식은 서양의 힘을 배경으로 하여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서양은 동양ㆍ동양인ㆍ동양세계를 날조한다. 크로머와 밸푸어의 언어에서, 동양인은 (법정에서처럼) 재판 받는 존재로, (교육과정에서처럼) 학습되고 묘사되는 존재로, (학교나 감옥에서처럼) 훈련받고 규율되는 존재로, (동물도감에서처럼) 도해되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동양인은 어떤 경우에도 지배의 틀 속에 포함되며 그 틀을 따라 표상되는 존재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지적 권력의 분배 >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는 토지ㆍ이윤ㆍ지배만이 아니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지적 권력도 나누어먹었다. 오리엔탈리즘은 공유하는 정보의 도서관이나 문서고였다. 오리엔탈리즘을 하나로 통합시킨 것은, 하나의 관념체계였고 하나의 가치체계였다. 이러한 관념체계는 동양인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서양인이 보는) 동양인에게 하나의 심리적 경향, 하나의 계보, 하나의 분위기를 공급했다. 특히 이러한 관념체계로 인해, 유럽인은 동양인을 규칙적인 특징을 갖는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4] 오리엔탈리즘의 존재형식  


① 18C말 ~ 19C초 :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시작 > 이 시기에 에드거 퀴네가 명명한 동양 르네상스가 생겨났다. 갑자기 여러 사상가, 정치가, 예술가들에게 중국으로부터 지중해까지 확대된 동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긴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산스크리트어, 젠드어, 아리비아어로 쓰인 동양의 문헌이 새로 발견되고 번역된 결과이며, 동양과 서양의 관계가 새롭게 감지된 결과였다. 이러한 관계의 기조가 중동과 유럽 사이에 설정된 것은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략한 것에 의한 것이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점령과 함께, 오늘날 문화적 정치적 관점을 규정하고 있는 동서양 관계가 급격하게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의 원정은 박학의 위대한 기념비적 집성인 <이집트誌>에 의해 오리엔탈리즘에 하나의 무대를 제공했다. 이집트를 선두로 하여 뒤이어 이슬람국들이, 동양에 관한 서양지식의 유형성이 되는 영토ㆍ실험실ㆍ극장으로 잔주되었다. 

 

② 19C ~ 20C : 오리엔탈리즘의 제2의 존재형식 > 나폴레옹의 동양경험을 매개로 하여 동양은 서양에서 지식의 조직체로 근대화되었다. 이것이야말로 19C와 20C 오리엔탈리즘의 제2의 존재형식이다. 그 시기 이래 오리엔탈리스트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발견ㆍ체험ㆍ고찰을 근대적 용어로 공식화하고 동양에 관한 관념을 근대의 현실과 연결되는 것으로 재조직하고자 하는 야심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오리엔탈리즘에도 연구의 패러다임, 독자적 학회, 독자적 권력조직이 갖추어졌다. 19C에 권위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고 각국의 아사이협회, 동양학협회 같은 조직의 명성과 영향력도 증대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의 보급을 촉진시키는 정기간행물은 지식의 양을 증대시켰고 전문적 세분화도 촉진시켰다. 

 

③ 20C ~ 현대 : 오리엔탈리즘의 제3의 존재형식 > 그러나 자유로운 형태로 존재하고 번영할 수 있었던 지적 활동과 학회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제3의 존재형식으로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에 관한 사고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플로베르, 네르발, 스콧 같은 가장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작가들도 동양에 관해 말하는 경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리엔탈리즘이란 현실에 관한 정치적 비전이며 친숙한 것(유럽ㆍ서양ㆍ‘우리’)과 낯선 것(동양ㆍ동방ㆍ‘그들’) 사이의 차이를 확장하는 구조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비전은 이와 같은 이분법에 의해 대치되는 2세계를 창조하고 그것에 봉사했다. 동양인은 그들의 세계에서 살았고, ‘우리는’(서양인은) 우리의 세계에서 살았다. 

 

[5] 키신저와 글리던 :: 현대의 오리엔탈리즘

 

키신저 > <국내구조와 대외정책>이라는 논문 속에서 키신저는 한쪽의 미국과 다른쪽의 세계 사이의 양극성을 확립하고, 스스로 서양 강대국의 권위있는 대변자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키신저는 2가지 이항대립에 따라, 세계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서양인에게는 뉴턴혁명이 있었으나 동양인에게는 그것이 없었으며, 따라서 사고하는 인간으로서 서양인은 동양인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과거에 밸푸어와 크로머가 그어온 것과 같은 경계선이 그어진 것이다. 키신저는 뉴턴학설 이전의 현실인식과 뉴턴학설 이후의 현실인식으로 세계를 분단시켰는데, 이는 동앙인과 서양인을 분리하는 오리엔탈리스트의 정통적 구별과 같다. 

 

글리던 > <미국 정신의학잡지> 1972년 2월호에 실린 글리던의 논문은 ‘아랍세계’라는 제목, 논조, 내용이 모두 오리엔탈리즘의 특유한 심리적 경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글리던은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비정상적’이지만, 아랍에게는 ‘정상적인’ 아랍행동의 내면적 작용을 밝힌다. “아랍은 일치를 강조한다. 곧 아랍은 수치의 문화에 안주하고 있으며, 아랍은 오로지 분쟁상황에서만 기능할 수 있다. 위신은 오로지 타인을 지배하는 능력 위에서만 성립한다. 수치의 문화는 복수를 미덕으로 삼는다. 이집트에서 1969년 일어난 범인이 체포된 살인사건의 동기 가운데 ‘수치를 씻기 위한 것’이 20%, ‘부당함에 대한 것’이 30%, ‘피에 대한 피의 복수’가 31%이다. 아랍에서는 복수가 모든 것에 앞선다. 그렇지 않으면 아랍은 자기파괴적인 수치심을 느낀다. ······ 아랍적 가치의 원천인 아랍 부족사회에서는 평화가 아닌 전쟁이야말로 정상적인 상태였다. 왜냐하면 경제를 뒷받침하는 2가지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약탈이었기 때문이다.” 

 

2. 제2장 상상의 지리와 표상 : 동양을 동양화하는 것

 

[1] 학문분야로서 오리엔탈리즘

 

지리상의 분야 ······> 한문적인 분야 > 오리엔탈리즘은 오리엔탈리스트의 업적만이 아니라, 동양이라고 불리는 지리적ㆍ문화적ㆍ언어적ㆍ민족적 단위에 기초한 학문의 한 분야이다. 누구도 오리엔탈리즘에 대응하는 옥시덴탈리즘이라는 분야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오리엔탈리즘의 경우에만 지리상의 한 분야가 학문적인 전문분야가 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의 학문적 야망 > 오리엔탈리즘만큼 고정적이고 개괄적인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는 분야는 없는데, 오리엔탈리즘은 매우 큰 지리적 야망을 갖는 분야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중요특징은 대상이 잡다하고 엄청나게 거대하며 동시에 무한대인 분화가능성이다. 학문분야로서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역사발전의 법칙은 선택성의 증대가 아니라, 영역의 확대에 있다. 18C중엽까지 오리엔탈리스트는 성서학자, 셈어연구자, 이슬람전문가, 중국학자였다. 18C말 앙크틸-뒤페롱과 윌리엄 존스경이 아베스타어와 산스크리트의 방대한 보물창고를 공개할 수 있게 된 때부터, 아시아의 중앙부에 펼쳐진 광대한 영역이 처음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위해 학문적으로 정복되었다. 19C중엽까지 오리엔탈리즘은 상상을 넘어선 최대의 학문적 보물창고가 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의 포괄성을 보여주는 2지표 > ① 그 하나는 레이몽 슈와브가 <동양 르네상스>에서 시도한 1765~1850년 사이의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백과사전식의 개괄적 서술이다. 이 시기에 ‘동양 유행병’이라는 것이 당시의 시인, 수필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동양’이라는 말은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아시아적인 것에 대한 열광을 뜻했고, 그 아시아적이라는 것이 이국성ㆍ신비성ㆍ근본성ㆍ생식성과 놀랍게 부합되었다. 이는 유럽에서 과거의 르네상스 최전성기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로마에 대한 정열이 그대로 동양으로 바뀐 것이다. ② 제2의 지표는 이분야에 관한 연대기 속에 있다. 줄몰이 쓴 <동양연구 27년> 1840~1867년 그 27년 사이 유럽학자들의 아시아 관련작업 가운데 몰이 ‘동양연구’ 속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 

 

오리엔탈리즘의 포괄성에 존재하는 맹점 > 오리엔탈리즘의 포괄성에는 맹점이 있었다. ① (현실동양에 대한 무관심) 학문적인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자신의 연구와 언어나 사회의 고전기에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19C가 끝날 때까지 현실의 동양에 관한 학문적 연구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② (텍스트 의존적) 연구대상이 된 동양은 거의 텍스트에 의존한 세계였으며, 오리엔탈리스트와 동양의 관계도 텍스트 의존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동양에 관한 유럽의 집단적 백일몽’이나 ‘동양 열병’ 그리고 ‘동양에 관한 자의적 신회’가 피할 수 없이 따랐다. 

 

[2] 동양은 동양화된다

 

오리엔탈리즘의 3방향 > <동양전서>에 따르면, 동양은 서양기독교의 윤리적 요청에 적응될 뿐만 아니라, 일련의 태도와 판단에 의해 제한된다. 서양인은 그것들을 수정하거나 검증하기 위하여 동양의 원천을 참고하기 이전에, 다른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저술을 찾게 된다. 지금까지 오리엔탈리즘의 무대는 이제 윤리적ㆍ인식론적 엄격성을 갖춘 하나의 시스템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관하여 서양의 제도화된 지식을 표상하는 하나의 규율로, 동양ㆍ오리엔탈리스트ㆍ서양의 오리엔탈리즘 소비자라는 3가지 방향에 대해 힘을 발휘하게 된다. 동양(동쪽에 있는 ‘상대방’의 세계)은 유럽사회라는 ‘우리’의 세계 경계선 밖에 놓여져있으므로 교정되고 처벌되어야 한다. 

 

동양은 어떻게 동양화되는가? > 그리하여 동양은 동양화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의 영역으로 표시될 뿐만 아니라, 서양독자들은 알파벳순으로 된 <동양전서>와 같이 번호화된 오리엔탈리즘의 표준서를 진실한 동양으로서 받아들이도록 강요된다. 요컨대 진리는 소재 자체와 무관한 학문적 판단의 한 기능이 된다. 곧 소재 자체가 오리엔탈리스트로 인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오리엔탈리스트는 동양을 있는 그대로로부터 다른 것으로 변환시키는 것을 일거리로 삼는 사람이다. 그들은 그 일을 자신을 위하여, 자신이 속한 문화를 위하여, 때로는 동양인을 위하여 한다고 믿는다. 그 결과 19~20C의 오리엔탈리즘을 개관하면,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전체에 대하여 감행하고 있는 무감각할 정도의 도식화가 압도적이다. 

 

[3] 오리엔탈리즘 담론

 

오리엔탈리즘 담론의 기능 > 단테 <지옥편>의 박진감 넘치는 묘사로부터 <동양전서>의 산문적 항목분류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과 동양이 논의되는 경우, 특유의 표상적 담론은 상상의 지리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이 담론에 의해 사실로 인정된 사항(마호메트가 사기꾼이라고 하는 것)은 담론의 구성요소이며, 마호메트의 이름이 나타나는 때에는 언제나 담론의 기능에 의해 반복된다. 

 

비유표현 & 현실동양 > 오리엔탈리즘의 담론 속의 구성요소(동양을 말하는 경우 언제나 사용되는 어휘)의 바닥에는 표상적인 비유표현이 숨어있다. 이러한 비유표현과 현실동양 사이의 관계는, 연극에서 양식화된 의상과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와 흡사하다. 그것은 에브리멘이 나르는 십자가, 코메디어 델라르테 속의 광대 아르레키노가 몸에 걸친 잡색의 의상과도 같다. 동양을 묘사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언어와 동양 그 자체 사이에 있는 대응관계를 탐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언어가 부정확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언어가 목표하는 것은, 동양을 이질적인 것으로 성격짓는 것임과 동시에, 동양을 도식적으로 연극무대 위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그 연극무대에서는 관객도 감독도 배우도 유럽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리하여 친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 사이에 동요가 생긴다. 곧 마호메트는 언제나 사기꾼이며 동시에 언제나 동양인읻 것이다.

 

동양과 결부된 비유적 표현 > 동양과 결부된 비유적 표현(이질성, 상이성, 이국적 관능성)은 모두 단정적이고 자명한 것들이다. 사용되는 시제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이며, 반복과 강제를 인상짓는다. 나아가 비유적 표현들은 언제나 유럽에서 특정하거나 불특정한 대응물과 대칭관계에 있으나 그것보다는 열등하다. 

 

‘이다’에 의한 동양에 대한 규정 > 이러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다’라는 간단한 연결동사를 사용하면 충분하다. 그리하여 마호메트는 사기꾼‘이다’는 말 자체가 <동양전서> 속에서 규범화되고, 단테에 의해 극화된 것이었다. 여기에는 어떤 배경도 필요하지 않는데, ‘이다’라는 것 속에는 마호메트를 단죄하기에 필요한 증가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말은 조건을 한정지우는 것도 아니고, 마호마트는 사기꾼이었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복되고 ‘있고’, 그는 사실 사기꾼‘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때에 마호메트는 점점 사기꾼같이 되어가며, 그 말을 만든 장본인은 그것에 의해 권위를 증대시켜간다.

 

동양 :: 서양에 대한 대립물 > 사기꾼(동양인)의 범주는 어떤 대립물을 상정하고, 그것을 불가결한 것으로 요구한다. 그것은 사기에 의해 타인으로 변하거나 자기확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항물이 ‘서양인’이고 마호메트의 경우에는 예수이다. (*즉 예수가 진리라면, 마호메트는 그것의 거짓이다.)

 

[4] 오리엔탈리즘의 특징 

 

철학적 측면 > 철학적으로 보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언어ㆍ사고ㆍ비전은 실재론의 한 형태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문제ㆍ대상ㆍ특질ㆍ지역을 다루는 습관으로서,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말하고 생각하는 대상을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지시하고 명명하고 고정시킨다. 이어 그 단어와 문장이 현실성을 확보하고, 단순하게 그것이 현실 자체라고 인정하게 된다. 

 

수사학적 측면 > 수사학적으로 보면, 오리엔탈리즘이란 해부학적이고 열거적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어휘를 사용한다는 것은, 동양적인 사물을 개별화하고 다루기 쉬운 작은 부분으로 분할하는 것이다. 

 

심리학적 측면 > 심리학적으로 보면, 오리엔날리즘이란 편집광의 한 형태로서 일반적 역사적 지식과는 다른 별종의 지식이다. 이것들은 상상의 지리와 그것에 묘사된 극적 경계선에 의해 생겨난 결과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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