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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후기] 짜라투스트라 등반기 : 0219(월) +5
엇결과 순결 / 2018-02-23 / 조회 1,047 

본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제게는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지만, 그러나 결코 쉽사리 입산을 허용하지 않는 그런 두려움을 주는 거대한 산이었습니다.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야, 위험하다잖아. 잘못 읽으면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우리실험자들의 세미나 공지는 제게 "그래 우선은 예방주사부터 맞고 산을 올라보자.", "남들을 믿고, 한번 둘러보기라도 해보지 뭐."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시작한 저의 등반은 고병권씨가 마련해준 입산캠프를 지나 본격적으로 산의 초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월요일이면 등반의 설레임과 두려움, 그리고 까닭모를 불편함이 저를 현기증나게 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그리고 치열하게 오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두려움도 세미나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지고, 하루의 등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그래 오늘도 니체가 만들어 놓은 등산로를 두루두루 둘러보며 산의 경치와 산속의 온갖 생명들을 만났어. 그리고 나름 재미도 있었지." 하며 무사히 끝난 등반에 안도감을 느끼곤 합니다.

 

오늘은 세미나 세 번째 시간. 창조하는 자와 그 삶에 대한 - 니체의 냉정하다 못해 살벌한 경고와 엄포, 그러면서도 가슴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담긴 – 등반이 시작됩니다. 
  
[천개의 그리고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

 

□ 니체는 평가하는 존재가 창조자라고 말합니다. 가치가 있어서 우리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평가를 함으로써 비로소 그 가치가 존재한다는 조언입니다.

 

-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평가하기를 주저하는가......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일전에 중학생이 된 아들 녀석이 학교 선생님을 주저하지 않고 “그 자식 개××야”라고 말했을 때,
  저는 "아니 어찌 하늘같은 선생님에게 저런 태도를?"하며 놀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니체의 조언을 생각해 볼 때 어쩌면 우리는 기존 권력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예의', '도덕'
  이라는 이름에 눌려 스스로 평가하기를 포기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선생님도 냉정히 평가해서 선생이라 할 수 없을 사람들을 우리는 살면서 숱하게 보아왔는데도 말이지요.

 

- 최근에 아내와 산책하면서 외향적인 사람 = 적극적인 사람, 내향적인 사람 = 소극적 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평가의 기준을 외부에 두지 않고 내부에 둔다면, 자기 자신에게 보다 깊이 매몰되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적극적인거 아닐까? 그럼 내향적인게 오히려 적극적인 것이 되는거지.” 
 오호! 이거야말로 스스로 평가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평가의 기준을 바꾸면 전혀 다른 관점이 형성됩니다.

 그것이 바로 가치의 전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 니체와의 격렬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오늘의 세미나 중 가장 설레었던 순간입니다.

 

① 너 창조하는 자의 길을 가겠다고? 미리 경고하마. 엄청난 탄식과 고통의 길이 될거야.

 

② 그래도 가겠다면, 어디 한번 보여보아라! 네가 창조자의 길을 갈만한 권리와 힘이 있는지를.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는 너의 힘과 권리를.
  최초의 제힘으로 도는 바퀴가 될 수 있는지. - 니체씨, 여기까지만 우리를 괴롭혔으면 좋으련만, 이 지독한
  니체씨는 기어이 더 나아가 버립니다. 
  별조차 네 주위를 돌게 할 자신이 있느냐고......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라고 묻고 싶어집니다.^^;
  게다가 이제는 말하라고 종용합니다. 너를 지배하는 생각이 무어냐고. 무언가로부터 막연한 자유의 갈망으로
  그런 거라면 불충분하다고. 더 나아가 무엇을 향한 자유를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느냐고.
  이쯤 되면 니체씨는 정말 야속한 사람이 맞습니다. 자꾸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 아들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

 

③ 그런데 정말 창조자의 길이 힘들긴 한가 봅니다. 니체씨는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쯤되면 이 아저씨 잔소리 좀 있으시네 싶기도.....) 
  고독할거라고. 오를수록 나의 비천함만 보게 될거라고. 
  그래도 니체씨 우리에 대한 온정이 있긴 합니다. 섬세하게 주의할 점도 일러줍니다. 신성한 외곬, 사랑의 발작, 
  그리고 너 자신이 내가 만날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주의하라고. 
  이 대목에서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면 후기 제목을 이 고약한 양반 니체씨! 라고 해야지’

 

 ④ 그런데 니체씨 자기가 너무 겁만 주었다고 생각했는지, 사랑이 넘쳐나는 따뜻한 조언을 합니다.
  스스로 태우라고. 재가 되어버리라고. 과거의 나를 태워버리라고. 그것은 사랑의 길이라고. 네가 너의 인생을

  사랑해서 하는 거라고.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게 되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다시 창조하게 되는 거라고.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정말 창조에 대한 니체의 집념이 담긴 설명서이자 보고서라 생각합니다.

  지난 11월 세미나 시작 전에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은, 나 스스로 창조하는 삶을 간다고 생각했는데

  왜이리 즐겁지가 않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거지? 였습니다.
  그래서 니체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네 말대로 창조하려고 하는데 왜 힘든거지? 난 언제 웃을 수 있는거지? 
  그런데 니체의 대답은 생각보다 너무나 간단한 듯 해서 살짝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원래 그런거야. 창조하는 자의 삶이 바로 즐거워질거라 생각한 네가 너무 쉽게 본거야. 힘든게 당연한거지.

  너는 지금 너의 과거를 태우고 있는 중이거든. 태운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아프겠어? 그럼 힘드니까 그만 둘래?

  분명히 말해두지만, 네 길은 분명히 사랑으로 가는 길이야. 옳다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고 너의 비천함만을 볼 수도 있는 그런 길이야.

  그러나 힘들고 괴로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야지. 네가 웃게되는 그날까지!
  이제 다른 의심이 생깁니다. 힘듦의 끝에는 웃게 되긴 할까?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 니체씨 스스로를 태우는 것, 죽음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인 힌트를 주려고 합니다.  
  우선의 너의 현재에 충실할 것. 대지에서 숨쉬는 너의 목표에 충실하라고. 그리고 이루었을 때. 이제 죽을 준비를 할 때라고.

- 우리들 대부분은 스스로 일구어낸 성과와 사회적 지위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바로 그런 집착이

  자기가 그토록 사랑해온 자신의 성과마저 허물게 된다는 거죠. 
  과거 김성근 프로야구 감독은 SK구단을 맡아 특유의 혼이 담긴 야구를 선수들에게 심어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이 있는 그런 멋진 야구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김성근의 혼의 야구론은 많은 기업들의 귀감 사례로

  꼽히며 각종 사내 강의에 초청되곤 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높이 칭송되었죠.

  그런데 SK에서 물러난 김감독은 이후 한화구단을 맡았으나, 지금의 평가는 사뭇 다릅니다. 혼의 야구가 선수

  인권에 미치는 악영향에 이 사회는 보다 주목하게 되었던 거죠. 선수의 자율적 선택을 무시하는

  그의 야구 스타일이 과연 개개인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현대 야구 흐름에 맞느냐는 비판이 많습니다.

  김성근 그가 한분야에서 성공했을 때, 나이도 상당해 졌을 때, 과감히 SK감독을 끝으로 작가나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 변신하여 또 다른 기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 갔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 고약한 니체씨가 왠일인지 이번에는 친절하게도 힌트를 또 하나 줍니다.
  어느 시점에 떠날 때인지 알 수 있는지.......그건 목표와 상속자를 가지고 있고, 또 그들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거라고.

- 제가 회사를 떠날 때가 생각납니다. 초년병 시절, 제 회사의 특정 사업부문의 실적 분석 Tool을 개발하고,

  그것을 토대로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는 Tool을 개발하는게 제 주요 업무였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거의 10여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Tool을 개발했었습니다. 일에 재미를 한창 느껴가고

  있었고, 자신감도 충만해 있었죠. 그러다가 덜컥......니체를 만났습니다.(음. 좋은 일이었기를......)

  점점 저는 다른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아시는 목수 일이었어요. 사실 당시에는 혼자 조용히 2~3년

  준비하고 나서 천천히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돈도 필요했으니까요.

  슬슬 후배도 양성하겠다는 계획으로 정말 좋아하는 후배를 제 후임으로 지정해 두고 적당히 일도 시켜가면서......그렇게 2~3년 편하게 보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어느 한순간 이런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초년병 시절에는 거의 3개월을 꼬박 실적 분석에

  매달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논리를 만들고 다시 이것을 영어로 번역해서

  달달 외우는(참고로 저는 김치 영어, 외워서 말하는 사람이거든요. ^^) 사람이었는데, 어느덧 저는 2~3일이면

  대충 분석하고, 영어대본도 예전 거 그대로 사용하고. 투자자들에게도 대충대충 답변하는 거였습니다.

  그때 이런 결정적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저로 하여금 과감하게 사표를 쓰게 했었습니다.

  ‘이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내 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온 내 일을 스스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쓰레기로 만들고 있는거야.’ 제 일에 대한 미안함.....그게 첫 번째 동기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후임으로 지정된 그 녀석에 대한 두려움. ‘저 녀석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뭘 배우겠나.
  잘 물러나야 저 녀석에게 존경이라도 받을게 아닌가“ 이게 두 번째 동기였습니다.

  저는 니체가 말한 ‘공경과 두려움‘ 이 두 단어가 매우 중요한 힌트라고 생각합니다. 잘 죽어야 하는데 그 때를 알게

  해주는 건 진정으로 사랑한 내 목표와 상속자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목표가 스스로 나에게 속삭입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제 좀 떠나줄래?' 이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귀가 있어야겠습니다.

 

[니체 그 연대의 가능성에 대하여]

 

□ 흔히들 니체의 철학에는 개인은 있으나 타자와의 연대는 다소 미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는 혼인과 아이 그리고 벗에 대하여 말하는 니체에게서 그 연대의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 먼저 혼인에 대해 니체는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두사람의 의지라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벗은 창조를 위해

  함께하는 자(=적이 될 수도 있는)라고 합니다.

- 이 대목을 읽을 때 문득 제가 아내에게 프로포즈로 보냈던 편지글이 생각났습니다. ‘보다 나은 내가 되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사람이 너인 것 같아. 그래서 함께 오래 하고 싶어.’ 제가 부지불식간에 니체와 만날 운명은

  아니었던가 생각해봅니다.(잠시 토나오시는 분들은 화장실에 다녀오셔도 좋습니다.^^)

- 이웃사랑보다는 차라리 벗을 그것도 아주 멀리에 있는 또는 미래에 오는 벗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정말 우리는 이웃과의 사랑을 통해 철저한 방어막을 형성하고 타자를 양산해 내었던건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회사에서 담배를 끊고 싶어도 권력층과의 개인적인 연대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흡연실이었기에 담배를 끊지

  못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 한마디에 얼마나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지......

  그랬던 제 이웃은 퇴사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버렸습니다.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았던 수많은 타자들에게

  이제는 마음이 갑니다. 이웃사랑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 제 아들은 아직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나 강합니다. 이것만은 어떤 설명을 해도 들으려 하지도 않네요.

  그러나 아들을 아내에 이어 또 하나의 벗이라 진심 여기고 있기에 기다려 보려고 합니다.

  그게 공경과 두려움일테니까요.

 

[베푸는 덕에 대하여]

 

□ 1부의 내용에 대한 간단한 요약이자, 니체가 주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부분입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말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나를 떠나라”

- 니체를 처음 만나고 한동안 푹 빠져있다가 몇 번이나 니체를 떠나려고 했었습니다.

  장자, 푸코, 사르트르, 강신주, 고병권, 이진경, 맑스......그런데 그 끝에는 다시 니체가 너 아직 멀었다고 웃으며

  다시 오라고 속삭였습니다. 아직도 너 성숙되지 못했다고. 그런데 다시 여기에서 떠나라고 하네요.

  흠......역시 고약한 니체씨가 맞습니다.ㅎㅎ

  ‘과연 니체를 떠날 수 있을까?' 떠나야 할 때라면 역시 니체로 인한 나를 죽여야 할 때일 겁니다.

  니체 말대로라면 니체라는 제 목표와 상속자를 기다려야 겠군요. 우리 아들이 언젠가 ’아빠 니체가 도대체 지금

  뭐라는 거야?‘라고 묻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때 제가 좀 더 자신있게 저의 삶을 이야기해줄 수 있고

  이를 통해 아들이 니체를 좀 더 피부로 느낄 수 있게되기를......그 때가 바로 목표와 상속자를 모두 얻는 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댓글목록

모로님의 댓글

모로

기다렸던 후기가 올라왔네요.
인간미 넘치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입산에 앞서 일단은 남산 산책부터~ ㅎ)
별 생각없이 재미로 세미나를 신청한 저를 반성하게 되네요.
자신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말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맞아요, 모로! 하지만 이성이 아니라, 영혼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요.
신체에 새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기 한번 더 써봅니다.

"자신이 가장 무서운 적이며, 자기가 가장 무거운 중력이다!"
그래서 니체는 '자기극복'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했나 봅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 누가 가치를 평가하고, 누가 선악을 창조하는가? ]
"평가하는 것이 곧 창조하는 것이다. 평가라는 것을 통하여 비로소 가치가 존재하게 된다" _차라투스트라
"가치가 있어서 우리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평가를 함으로써 비로소 그 가치가 존재한다." _엇결과 순결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은 자신에게 선악을 부여하고, 사물들에 가치를 부여해왔다"고 합니다.
먼저 선악과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는 동시에 ‘가치를 평가’하는 행위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가치평가 없이, 가치부여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가치를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주어진 보편적 가치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 혹은 민족이 저마다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치창조의 과제에서 신의 죽음과 인간(위버멘쉬)의 역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가치평가 – 가치부여 – 가치창조라는 역할은 신의 고유한 영역이었고,
인간은 주어진 보편적ㆍ초월적 가치에 따르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인간은 하나의 보편적 선악(가치)을 버리고, 천개의 선악(가치)을 창조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차라투스트라는 “선과 악을 창조한 것은 언제나 ‘사랑하는 자들’과 ‘창조하는 자들’이었고,
이 땅에서 사랑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창조물보다 더 막강한 힘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연두님의 댓글

연두

엇결과 순결님의 고백 섞인 따뜻한 후기 감사하게 잘 보았어요.
저는 아직 제가 써야 할 후기를 쓰지 못하고 있는 아주 위험한 상태네요;;;
피로함이라는 적과 동고동락하고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왜 '위험한' 책인지 요 몇 주 강렬하게 느낍니다.
니체의 독자가 되기 위한 권리(능력)이 내게 있는 것인지,
과연 나는 몰락할 용기가 있는 것인지, 줄 위에 선 광대처럼 어쩔 줄 몰라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장 무거운 적이자 중력 맞습니다, 맞고요.
내가 사랑하는 자들도 센 중력이네요.
니체는 니가 하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와~ 정말 멋진 후기입니닷~
"고독할거라고. 오를수록 나의 비천함만 보게 될거라고. " 이부분도 너무 공감합니다.
이런 제 자신의 비천함과 마주섰을때 내 연민에 눈물까지 나더라구요. ^^;;;;
아 ~~ 나란 인간이란~~

무엇보다 가족과 소통하고 공감해서 감각을 공유해 나가려는 노력이 너무 아름다워 보입니다.
저도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그리고 더이상 자신 감각의 변화에 정직 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분도 정말 공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정직.
자기 합리화인지. 정직인지, 몬지. 너무 어려워요.

치열하게 고민하시는 분들과 같이 공부 해서 너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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