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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잡문] 노예의 역사 +4
기픈옹달 / 2018-03-01 / 조회 866 

본문

我們應該知道他和寇盜奴才的分別;應該留心自己墮入后兩种。

這區別并不煩難,只要觀人,省己,凡言動中,思想中,

含有借此据為己有的朕兆者是寇盜,

含有借此占些目前的小便宜的朕兆者是奴才,

無論在前面打著的是怎樣鮮明好看的旗子。 

우리는 혁신자와 도둑•노예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며, 스스로 후자의 두 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 구별은 결코 복잡하고 어렵지 않으며 남을 관찰하고 자기를 반성하면 된다. 앞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 아무리 선명하고 보기 좋은 깃발이라 할지라도, 무릇 언동이나 사상 속에 그것을 빙자하여 자기 소유로 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자는 도적이며, 그것을 빙자하여 눈앞의 하찮은 이득을 차지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자는 노예이다.

 

:: <무덤: 다시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 루쉰전집, 그린비

任憑你愛排場的學者們怎樣舖張,修史時候設些什么

“漢族發祥時代”“漢族發達時代”“漢族中興時代”的好題目,

好意誠然是可感的,但措辭太繞灣子了。

有更其直捷了當的說法在這里——

一,想做奴隸而不得的時代;

二,暫時做穩了奴隸的時代。

這一种循環,也就是 “先儒”之所謂 “一治一亂”。

겉치레를 좋아하는 학자들이 늘어놓으며 역사를 편찬할 때 ‘한족이 흥기한 시대’, ‘한족이 발달한 시대’, ‘한족이 중흥을 이룬 시대’ 등의 보기 좋은 제목을 달아도 호의는 참으로 고맙지만, 말을 너무 에둘러서 사용했다. 더 직접적인 표현법을 쓰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던 시대

둘째, 잠시 안정적으로 노예가 된 시대. 

이것의 순환이 바로 ‘선유先儒'들이 말한 “한번 다스려지고 한번 어지러워지다.” 이다.

 

:: <무덤: 등하만필>, 루쉰전집, 그린비

 

중국 첫번째 황제 시황제는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다르게 새겨 넣고 싶었다. 그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시법諡法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전설적인 제왕,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에서 각기 글자를 취하여 황제皇帝라는 새로운 지위를 만들었다. 왕王이 국가(國/国)의 지배자라면 황제란 천하天下, 그 모든 것의 지배자라고도 할 수 있을 자리였다. 

 

대체 천하란 무엇인가? 황제를 만든, 첫번째 통일 왕조의 기틀을 놓은 이사는 ‘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라 하였다. 태산은 흙덩이를 마다하지 않으며 하해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태산처럼, 하해처럼 크고 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역설적이나 이 문장은 축객령逐客令으로 이사가 이웃 나라로 쫓겨나는 상황에서 임금에게 올린 글에 실려 있다. 이사는 이 글을 통해 젊은 진왕秦王에게 진왕으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세계의 지배자가 될 것인가 물었다. 젊은 진왕은 이 글을 읽고 이사를 그 곁에 두었다.

 

그가 이사의 말을 버렸다면 시황제始皇帝가 될 수 있었을까? 역사의 평가를 무시하고 자식이 아비를, 신하가 임금을 평가할 수는 없다며 스스로 지은, 시황제라는 이름을 역사에 남길 수 있었을까? 진나라의 것과 타국의 것을 가려 솎아내고, 이질적인 것을 배척했다면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훗날 유학자들은 시황제를 폭군으로 묘사하나 과연 루쉰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는 의문이다.

 

맹자 이래로 일치일란一治一亂이 유가의 역사관이었다. 치세와 난세가 반복한다. 그러나 유가적 역사의 무게추는 아무래도 난세亂世에 기울어져 있다. 태평성대로 인식한 자들이 얼마나 될까. 유자들이란 무릇 시대의 문제를 앞장서 고민하는 자라고 하지 않았나.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천하 사람의 근심을 앞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의 즐거움을 뒤늦게 즐거워한다. 범중엄 악양루기의 이 문장을 루쉰은 어떻게 읽었을까. 루쉰의 말을 빌리자. “‘지금이 옛날보다 못하다’라는 것은 바로 ‘지금이 옛날보다 못하다’라고 떠들어 대는 제위諸位 선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천하의 근심이란 바로 천하의 근심을 버릇처럼 입에 올리는 이들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루쉰이 활동한 시대는 유자들의 구분에 따르면 난세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송유宋儒의 감성이 되살아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방 이민족의 침입에 수도를 옮긴 송은, 겉으로는 신하로 자처하면서도 속으로는 갖가지 번쇄한 예식을 만들었다. 다양한 금기와 자잘한 예절들. 이는 스스로의 시대를 위기로 자처하는 이들이 내놓은 생존 방편이었다. 이른바 ‘국수’의 선배격이라 할 수 있다.

 

루쉰의 진단에 따르면 이런 ‘국수’란 쇠약함을 보여주는 표징일 뿐, 쇠약함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결코 아니다. 더 문제는 낯선 것을 배척하면서 스스로 노예의 자리로 굴러 떨어져 내린다는 점이다. 막연한 두려움은 갖가지 다양한 소문을 내놓는다. 하나씩 쌓이면 서양인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까지 이른다. 헌데 정작 역사를 보면 이것저것 이방의 것을 끌어들인 흔적이 얼마나 많은지. 서방 문양이 들어간 낡은 옛 거울을 보면 ‘중국’이란 그렇게 고여있는 물은 아니었다.

 

루쉰이 날카롭게 비판하듯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던 시대와 잠시 안정적으로 노예가 된 시대’만 있는 건 아닐테다. 역사란 기억과 기술의 문제이며 거꾸로 얼마든지 다른 역사가 출현할 수도 있을 테니. 그렇다고 주인의 역사를 기술할 것은 아니다. 주인과 노예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주인이 있다는 것은 곧 노예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주인과 노예는 가깝,고 주인은 자신의 노예 앞에서는 주인 노릇을 하지만 또 다른 주인 앞에서는 금세 노예가 될 뿐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루쉰이 다른 글에서 제시한 멍청이(傻子)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노예, 종의 집에 들어가 벽을 부수어 창을 내어 주는 그런 존재. 루쉰이 말하는 혁신이란 특정한 방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체제를 얼마나 부수어 뜨릴 수 있는가에 달려 있겠다. 역설적으로 이는 계산하는 정신에게는 영 발견할 수 없는 덕이다. 즉각적인 반응, 사태에 대한 기민한 감수성. 루쉰의 윤리란 교육이나 수행을 통해 나오는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익숙함에 대한 욕망이다. 누군가는 이를 ‘반복’이라 불렀을 테다. 주인과 종은 반복되며, 반복을 통해 주인과 종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무엇으로 이 반복을 깨뜨리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것을 지렛대 삼아 주인과 종의 집을 부숴 뜨릴 수 있을까? 예외적 계기란 대체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루쉰의 시대에는 그것이 서양의 다양한 문물이었다. 루쉰은 서양을 동경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서양의 것을 가지고 ‘중국’ 두들겨대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쩌면 우리는 낡은 것을 가지고 현재를 두드려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혹은 그 몽둥이의 정체가 무엇이었든. 태산과 하해는 그 무엇도 가리지 않았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https://brunch.co.kr/@zziraci/76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노예의 역사'라는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태산과 하해는 무엇도 가리지 않았다는 것. 강한 자의 생존방식을 배우는 한 주였습니다.
이번 주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한 주가 너무 훌훌 지나가는 것이 애닯기만 합니다.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문제는 무엇으로 이 반복을 깨뜨리는가 하는 점이다."라는 물음에 눈이 확 띄었습니다.
세미나 시간에도 논의했지만,
결국 그 반복은 매일의 반복, 그 어렵다는 일상의 꾸준하고 지난한 반복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이러니의 혼돈 속에서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삶의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댓글의 댓글

반복이라 하니, 또 그 무뢰배 정신이 떠오르네요.
2원! 2원! 2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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