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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후기] 감시와 처벌_2장 신체형의 호화로움 :: 0315(목) +8
김현 / 2018-03-17 / 조회 2,345 

본문

[푸코 후기] 감시와 처벌 

제 2 장 신체형의 호화로움  / 현

 

 지난 시간 전체의 내용을 개괄해보는 것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고전주의 시대의 신체형부터 짚어보았는데요, 전반적으로 예시의 내용이 굉장히 잔인해, 1장에서 서술하던 참수형이 왜 그나마도 인간적인 축에 속하는 신체형이었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까지, 고전주의 시대에는 신체형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극단적이고 가혹한 처벌은 피하려고 했고, 유죄선고의 대부분은 추방이나 벌금형과 같은 비신체적 형벌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느 정도 신체형의 차원을 부가하면서, 모든 주요 형벌은 신체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과거의 신체형이란, 야만성과 광폭함을 지닌 것으로 보기 쉽지만, 마구잡이로 시행되는 광폭함의 결과라기 보다도, 하나의 기술로 봐야할 것이라고 푸코는 말합니다. 그 이유는 신체형이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첫째 등급에 따라 고통을 생산하고, 둘째, 규칙에 따라 고통을 가하며, 마지막으로 일종의 의식을 구성함으로써 사법 측의 힘을 과시하는 등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재판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었던 듯합니다. 소송 절차가 비밀리에, 그것도 피고인에게까지 불투명했는데, 세미나 시간에 카프카의 <소송>을 떠올리게도 했지요. 당시의 소송, 재판 절차란, ‘비공개적’이며 ‘문서 중심’의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절차라고 해도, 증거의 단계를 나누고 나름대로 조립하는 등의 규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규칙 자체는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밀 유지의 원칙을 강화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서 본위’, ‘비밀 유지’,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증거 조립’의 요소를 갖춘 재판에서는 피고인 없이도 ‘진실’을 생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자백이 굳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 진실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백을 구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자백이야말로 확실함을 보장하는 것이자, 피고인에 대해 승리를 거두도록 하는 진실의 힘이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자백은 재판 과정에서 부가적 증거를 수반해야 하지만, 다른 어떤 증거보다도 우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백이 요구되는 만큼, 자백을 강요하지만, 자백에는 화해의 의미가 포함되므로, 또한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자백을 피고인으로부터 얻기 위한 수단은, 피고인에게 요구하는 선서(협박), 고문(신체적 폭력)이었습니다. 고문은, 비밀이 유지되는 조사의 요소, 피고인의 자백이라는 요소 속에서 진실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인데요, 여기서 피고인의 신체는 조사와 자백, 두 요소를 갖춘 구조를 생산하는 본질적인 장이 됩니다. 

 그러나 이때의 고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야만적임과는 거리가 멉니다. 여기서 행해지는 고문은, 절차와 규칙에 따르는 체계화된 사법적 행위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위험은 따릅니다. 용의자가 죽을 수 있다는 위험 외에도, 그가 ‘참고 견디는 자’로 견디는 경우, 이 재판 과정 자체는 대결의 구도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용의자가 이기는 형국이라면, 재판관은 직책을 사퇴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관은 증거가 따를 때에 고문을 했고, 행여 아주 나쁜 중죄를 저지른 자라면, 오히려 고문하지 않도록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의 고문이란, ‘진실을 결정지을 신체를 대상으로 한 시험’(79)으로 ‘고통, 쌍방의 대결, 진실’이란 세 요소가 용의자의 신체에 작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문은, 피고인의 신체를 두고 하는, 조사이며, 전투와 같은 과정이었습니다. 현재,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용의자를 무죄인 상태로 조사하는 것과 달리, 이 때의 조사는, 증거를 추가해가며 유죄성의 단계와 동시에, 처벌(고문)까지 이루어졌습니다. ‘18세기에 사법상의 고문은 진실을 생산하는 의식이 처벌을 부과하는 의식과 병행’(81)했고, ‘신체형에서 심문당하는 신체는 징벌의 적용 지점이자 진실 강요의 장소’(81)였습니다.

 

 물론, 위의 과정들은 모두 예심의 단계에서입니다. 이미 예심에서 징벌이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신체형은 형의 집행 단계에서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이때의 신체형은 공개적이고 또 제목을 빌자면 화려하게 진행됩니다. 수형자의 신체가 이렇게 전시되는 가운데, 신체 자체가 비밀스런 소송의 근거가 되지요. 18세기의 공개적 형벌에는, 죄인 스스로가 유죄 선고를 하는 것, 다시금 자백하도록 하는 것, 자신 속에 범죄를 각인시키는 것, 징벌의 효과가 화려한 방식으로 표출되도록 하는 것 등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유죄를 알림으로써, 진실을 증명하고, 유죄 선고에 스스로, 재차 서명함으로써, 재판을 정당화하며, 자신 속에 상징적 행위나 신체형을 통해 범죄를 각인시킵니다. 또한, 화려한 형벌의 집행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범죄와 그 경중 등의 진실이 판독되기도 하지요. 이렇게, 신체는, 증거와 진실, 범죄와 처벌을 종합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고, 형벌 의식에서 본질적인 요소가 됩니다.

 

 위법 행위, 그리고 금지된 것을 어기는 행위는, 단지 손해, 상해와 연관되지 않습니다. 당시 규칙을 넘어선다는 것은, 지배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됩니다. 따라서 군주가 징벌에 개입하는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 양자 간의 합의나 조정이 아닙니다. 징벌에는, 손해의 보상, 왕국에 가한 과실의 보상, 국왕의 인격, 권위에 가해진 공격에 대한 보복까지도 포함됩니다. 경범죄는 어느 정도 균형이 갖추어질지 모르나, 그렇기 때문에, 중죄에 대한 형벌 집행은, 불균형과 과도함을 전시하며, 권력을 과시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본보기 처벌에 의한 재발 방지라는 경제성이 아니라, 군주의 권력을 활성화시키는 장치입니다. 충분히 정치적인 행위이지요.

 군주는 또한, 형벌 집행에 있어, 그의 모든 군사적 기구를 동원합니다. 죄인 탈출, 난동, 외에도 죄인을 구출하려는 시도, 살해를 예방하려는 차원입니다. 이렇게 군주는 사법의 수장이자, 군사의 수장, 모든 것을 구현하게 됩니다. 

공개 처형은, 범죄자에 대한 통치자의 승리를 통해 수형자의 신체를 둘러싼 불균형을 명시하며, 죽음 이후에도 시체를 파괴하며 승리를 과시합니다. 한편, 이 의식은 또한 대결의 구도이기도 한데요, 사형집행인과 ‘참고 견디는 수형자’의 결투 속에서, 처형이 원만히 이루어지면 집행인은 인정받지만, 반대의 상황이라면, 집행인은 보수 미지급(여기서 비정규직이냐는 이야기도 나왔지요...)은 물론, 때로는 고발까지 이루어졌으며, 수형자가 사면되는 것이 거의 관례였습니다. 그렇기에, 집행인은, 군주의 대리인이지만, 권력의 현현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집행을 멈추게 하는 사면권의 발휘, 그것으로 군주의 권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형의 집행, 법을 모욕한 데에 대한 보복, 그러나 그 시행과 보복까지도 정지시킬 수 있던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국왕 살해자는 그야말로 절대적이고 완전한 범죄자였습니다. 통치 권력의 근본을 공격하는 것, 그래서 그에 해당하는 이상적 처벌은 신체형 중에도 최고의 형태여야 했습니다. 

 그런 고로, 화려한 의식 중심의 신체형은, 정치적 운용 부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신체형의 존속에 대해서, 우리는 노동력으로 환원될 수 있는, 신체의 효용, 상품 가치를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죽음과 관련하여, 기독교의 가치관, 인구통계학적인, 생물학적인 상황을 같이 보아야 하겠지요.(여기에 대해서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앞으로의 내용을 기대해봅니다.) 여하튼, 민중의 봉기나, 내란, 법원을 제친 국왕의 권리 과시는 어쩌면 신체형 중심의 형벌의 지속을 설명해주는 일반적이면서도 표면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신체형 존속의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진실을 명시하는 것이자, 권력을 운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신체형이 있음으로 인해, 비밀스런 증거와 자백이 연결되며, 죄인의 신체를 통해 범죄를 돌아볼 수 있게하고, 공포 속에서 범죄가 명시되고 소멸됩니다. 또한, 신체를 매개로, 통치자는 제재를 가시화하며, 권력을 가시화하고, 힘의 불균형을 과시합니다. 

 범죄의 잔인성에 비할 정도로, 혹은 그것을 지배하여 무화할 정도의 극단성을, 처벌은 지니고 있습니다. 19세기 이후의 '문명'은 잔인성을 비난하여 범죄의 잔인성과 처벌의 집행을 차별화하려 하지만, 18세기 신체형의 잔인성은, 권력과 화려함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의식 행위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야만의 행위가 아니라, 속죄에 있어서의 필연적 의식이었고, 이런 의식을 통해 권력은 더욱 활성화되고 효력은 쇄신됩니다.

 

 신체형의 의식에는 민중이란 요소가 따릅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활동으로 인간적인 징벌이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들은 처벌 의식에 있어서 관객이자 참여자였습니다. 한때는 국왕의 편에서 보복 행위에 참여하는데, 그럼에도, 이들에 의해서 수형자가 죽임을 당하게 할 순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군주는 자신의 권력을 위시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권력 효과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테니까요. 문제는, 이들이 처형 의식을 거부, 반항하는 데에서 발생합니다. 폭동에 의한 제재로 인한 사형 선고, 하층민에 대해서만 가혹한 처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하인들의 처형 시에, 폭동이 일어났고, 이때엔 오히려 사형집행의 광경은 마치 축제의 풍경으로, 사형수가 영웅시되고, 권력자는 농락당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자들의 진술이 재판에 관여하게 된 것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민중 폭동에 대한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규모가 크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어쨋거나 그것이 무시하고 넘어갈 일들만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 그리고 처형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역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실과 권력 과시의 장이었던 처형 의식에서 이제 민중들은 수형자를 더욱 가깝게 여기고, 절대적 권력에 의해 위협을 느끼며, 연대의식을 가집니다. 이런 흐름을 감지한 18, 19세기의 개혁자들은, 처형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합니다. 17세기 말, 아비뇽에서 이루어진, 집행자와 수형자 간의 대결 구도에서의 역전, 그 1세기 후, 파리에서, 훨씬 더 중립적으로 변화한 채 내세워진 공개처형에도 불구하고 사형수에게 민중이 느끼는 민중의 감정, 이러한 지점에서 권력은 정치적 공포를 가지게 됩니다.

 

 처형에서, 자백의 선언은 유죄를 공표하는 데 있었지만, 전해진 언술이 지극히 훈계적이라는 점에서, 허구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책에서 언급된 것들은 상당히 훈계적이고, 도덕적이지요. 사법당국으로서는 사형수가 자신이 당하는 것을 모두 정당화해줄 것으로서 자백이 필요했고, 신체형은 그것을 매개하는 일환이었지요. 동시에, 사법은 재판 전에, 재판에 대한 의혹을 억제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문서나 수치스런 과거를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이것은 양의적 효과를 가져 옵니다. 사법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선전하고자 했을 지라도, 공개된 전단에서 나타나는 범죄의 규모나 후회의 표명은, 범죄자를 오히려 영웅화하고, 그가 처벌 의식에서 의연하게 견딘다면, 그는 권력에 굴복하지 않은 자가 됩니다. 사형수에게는 영광과 혐오가 공존할 수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단지 한 쪽에서의 선전물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이 전단은, 모든 면에서 양의적으로 읽힐 여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형벌 제도의 개혁자들은 전단배포 금지를 요구하지만, 민중은 나름대로 그 영웅적 위법행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중에게 그 위법행위가 가지고 잇던 정치적 기능이 변화하면서 중요성은 상실됩니다.

 그리고 범죄 문학의 발전하면서 전단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범죄는 탐정과 범인의 지력싸움이 되면서 신체형과 멀어지게 됩니다.(여기서 홍시님이 ‘책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궁금!)

 

 

 책에서는, 비록, 이 당시 신체형의 양상이 굉장히 잔인하고 야만적인 것처럼 부각되었지만, 딱히 성장의 모델을 가지고 앞으로는 인권적 측면에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때의 잔인함 조차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었다고, 푸코는 재차 말하고 있지요. 

오히려, 앞으로 전개될 처벌의 형태가 인권의 향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처벌의 일반화와 규율화라는 과정을 통해, 권력 효과가 우리 신체를 둘러싸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세미나의 이야기나 풍광을 다 담고 싶었는데.. 술 마시는 세미나로 기억될까봐 자제합니다. 후훗

모두 아프지 마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보아요!

댓글목록

돈키호테님의 댓글

돈키호테

개인적으로 저 스스로의 말과 인식의 괴리감과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의 한계를 동시에 느낀 하루였습니다.^^
시간이 해결해줄수도 저 혼자만의 힘으로도 해결할수 없는 저 스스로의 말과 인식의 괴리감과 공간적인 무력감

삼월님의 댓글

삼월

어딘가 조금 들뜬 듯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던 세미나의 세밀하지 못한 부분들까지,
치밀하게 채워주고 메꿔주고 돋워주는 멋진 후기입니다. ㅠㅠ
1박2일 제사노동을 마치고 달려와서 읽는 멋진 후기는 저를 다시 공부와 푸코의 세계로 쑥 집어넣어 주는군요.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세심하게 보듬어주어서 눈물 날 뻔 흑흑

진실을 '밝혀낸다'가 아니라 '생산한다'고 주장하는 푸코의 논의가 요즘 더 매력있게 다가옵니다.
국왕이 통치를 위해 과시적으로 이용하던 처형의 스펙터클을 통해 민중이 연대하고 폭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푸코의 서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를 이처럼 역동적으로 이해하는 푸코 앞에서는 어떤 희망이나 낙관도 어리석게 느껴질 듯 합니다.
그저 열심히 할 뿐입니다. 일단은 밭고랑을 매거나 바느질이라도 하듯 푸코의 책을 열심히... 읽어볼랍니다.
현님이 같이 읽어주어서 무척 감사합니다. 아프면 안 돼요! 제발~~

김현님의 댓글

김현 댓글의 댓글

저도 같이 읽을 수 있어서 기뻐요. ㅎㅎ
더욱이 들뜬 분위기에서도, 집중의 끈을 놓지 않고, 한 줄 한 줄 짚어주시던..!

"진실을 '밝혀낸다'가 아니라 '생산한다'고 주장하는 푸코의 논의"
저도 삼월님이 말씀하신 이 부분이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감시와 처벌 뿐 아니라 푸코의 다른 책들의 끈까지 놓고 싶지 않아지고 있어요~ ㅎㅎㅎ
노동하고 오셔서 힘드실텐데 푹 쉬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셈나 때 만나요!

돈키호테님의 댓글

돈키호테

확실히 푸코는 상식을 파괴하는 측면이 있는것 같습니다. 가끔 제 자신의 편견에 사로잡혀 푸코를 읽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삼월님이 말씀하신 푸코의 역동성를 파괴하는 나쁜 푸코 읽기 인것 같습니다. 최근에 성의 역사1을 같이 읽고 있는데 처음부터 세미나를 같이 하지 못한 저로서는 지식 권력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주체나 윤리의 측면에서 성의 역사2와 성의 역사3가 쓰여졌다면 성의 역사1은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더욱 구체적인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적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성이 억압되기는커녕 반대로 끊임없이 자유의 체제를 누렸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서는 권력이 억압적이라기보다는 관용적이라든가, 억압에 가해지는 비판이 그야말로 단절의 외양을 띨지 모르고 훨씬 더 오래된 과정의 일부이며 이 과정을 읽어내는 방향에 따라서는 금기 완화의 새로운 삽화적 사건처럼 또는 권력의 더 간교하거나 더 신중한 형태처럼 보이게 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미셸푸코 성의 역사1  제1장 우리,빅토리아 여왕 시대풍의 사람들중에서 인용

위의 글에서 알수 있듯이 권력의 더 간교하거나 더 신중한 형태처럼 보이게 되는 측면이 본질이 아닌데도 지난 세미나에서는 자꾸 권력의 잘못된 편견과 잘못된 상식에 사로잡혀서 푸코를 잘못 읽었던것 같습니다.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는가 성의 효력을 부인하는가,성을 가르키기 위해 사용하는 말을 억제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아는 것이라기보다는,성에 관해 말한다는 사실,성에 관해 말하는 사람,성에 관해 말하는 장소와 관점,성에 관해 말하기를 부추기고 말한 내용을 수집하고 유포시키는 여러 제도,요컨데 성에 관한 전반적 "담론현상"과 "담론화"를 고찰하는 것이(적어도 최초의 논의에서는) 요점이다.라고 성의 역사1에서 푸코가 말하고 있는데요, 말하자면 끝이 없을것 같습니다.솔직히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이 맞는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구요,담론과 신체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입니다.감시와 처벌에서 말하는 근대적 감시사회라는것이 개인에게 신체에 대한 규율을 길들인 사회라고 하는데,왜 항상 신체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삼월님이 위에서 말씀하신 국왕이 통치를 위해 과시적으로 이용하던 처형의 스펙터클을 통해 민중이 연대하고 폭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자꾸 읽다보니 말과 인식의 간극이 조금은 좁혀지는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세미나를 하면서 구조주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구조주의란 한마디로 말해서 자유를 제한하는 구체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푸코의 이론과 사상을 직접적으로 2018년의 한국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무리이고 조금은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이는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유감스럽게도  끊겨왔던 한국사회의 철학의 빈곤과 지적전통의 단절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사실 고민의 주체가 누구냐?에 대해서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해방이후 지식인의 방황을 다루었던 최인훈 선생님의 소설 '광장'이 생각납니다.
정말 뜬금없죠?^^

이것 저것 오지랖처럼 건드려보고 추론하는 방식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좌충우돌 돈키호테만의 방식으로 정면돌파 해 보렵니다. 오류투성이 돈키호테의 광란의 질주를 푸코님이 용서해 주시기를^^

돈키호테님의 댓글

돈키호테

제가 궁금한걸 명확하게 요약한 책이 있네요^^제가 설명하기에는 많이 부족해서 길더라도 인용해봅니다.사실 조금 당혹감을 주는 문장일수도 있어서요,계속 저만 댓글 남기는것 같은데 괜히 미안하네요ㅋㅋ

푸코의 사회사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그의 '성의 담론화'에 대한 비판에서 엿볼 수 있듯이 '권력' 이라는 말을 단순히 '국가권력'이라든지, 그것이 조종하는 각종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실체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권력' 이란 모든 수준의 인간적 활동을 분류하고, 명명하고, 표준화하여 공공의 문화재로 지의 목록에 등록하려고 하는 '축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따라서 권력 비판론이라고 해도,그것이 방법론적으로 '권력이란 어떤것이며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실질적으로 열거하고 목록화해서 한눈에 조망할수 있는 자리를 부여하는 한 그것 자체가 이미 '권력'으로 변해 있는 것입니다.
 푸코가 '권력비판'의 이론을 세웠다는 식으로 결론을 짓는 것 역시 그가 진정으로 원한 일이 아닙니다.푸코가 지적한 것은 모든 지의 영위가 그것이 세계의 성립이나 인간의 모습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축적' 하려고 하는 욕망에 의해 구동되는 한 반드시 '권력'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적혀 있는 푸코의 학술적 이론도,그리고(이 책을 포함해서)푸코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기술되거나 소개되는 모든 저술 또한 숙명적으로 '권력'적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현재 푸코의 저작은 전 세계의 사회과학.인문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며 이를 '공부하는' 것은 제도권 내에서 거의 의무처럼 되어 있습니다. 대학원생들은 푸코의 용어를 구사하고 푸코의 도식에 의거해 생각하며 추론하는 것을 거의 강제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권력=지' 를 낳는 '표준화의 압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스스로 이 역설을 예지하고 푸코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제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의 '의심'까지도,'제도적인 지' 로 의심받는 그 제도에 속한다는 불쾌감. 이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권력에 대한 반역' 을 활기차게 노래하고 있는 우둔한 학자나 지식인에 대한 모멸감.이러한 불쾌한 일들에 조종당하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자기언급이 푸코가 보여준 비평의 핵심입니다.('대중을 증오하는' 것도 니체로부터 푸코가 계승한 지적 자질의 하나입니다).

----------------푸코,바르트,레비스트로스,라캉 쉽게 읽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경덕 옮김  제 3장 푸코와 계보학적 사고중 인용

돈키호테님의 댓글

돈키호테 댓글의 댓글

아 그런가요^^저는 항상 세미나를 할때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워서요.좀 더 집중해서 공부하고 읽어야겠어요.
세미나 중간에 들어와서  제가 조금 물음표가 많네요^^고맙습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워낙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내셔서 단순하게 답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오지랖넘치게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1. 왜 신체가 중요한가?
<성의 역사 1>에서 푸코는 '표상'의 위험에 대해 언급합니다.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가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무엇'을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특히 그 실체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일 때  그 표상은 더욱 위험합니다.
푸코는 '성'과 같은, 경험불가능하고,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그 표상들이 우리의 구체적인 성행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데요.
지식은 '성'이라는 표상을 통해 우리의 성행위를 규율합니다.
처벌의 신체형이나 감옥의 교정도, 영혼을 감독한다는 명분 하에 실제로는 신체에 작용합니다.
이 부분은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푸코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될 듯 합니다.

2. 구조주의는 우리가 지식을 통해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지식을 사유의 도구로 삼지 않으면, 사육당하듯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말해줍니다.
지식은 통치자의 이데올로기 도구인 것만도 아니고, 민중들의 선동 도구인 것만도 아닙니다.
광장은 통치자가 포고하는 곳인 동시에 민중이 폭동을 일으키는 장소입니다.
구조주의는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넘어설 수 있고, 이런 사유는 구조주의를 통해서 가능해졌습니다.
철학책을 읽고 그 이론과 사상을 현실에 적용하는 문제가, 저는 신중함 없이 마구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독들이 난무하여 서로 논쟁했으면 좋겠고, 그 논쟁들을 통해서만 철학의 빈곤과 지적전통의 단절을 넘어설 수 있겠지요.
고민은 실천과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지, 실천에 앞선 준비과정이 아닙니다.
그런 조심스러움이 다시 우리 철학을 빈곤하게 하고 지적전통으로부터 단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3. 푸코는 권력을 비판한 게 아니라, 권력을 연구해 왔습니다.
제가 지난 번 댓글에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푸코는 권력이 추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권력관계에서 자신의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자가 자신을 순결한 피해자로 묘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권력을 제대로, 충분히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식과 권력을 혐오하는 태도는, 그것을 숭배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담론에 속합니다.

인용문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보니, 돈키호테님이 몇 가지 질문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질문을 요약하고 정제해 나가고, 들은 답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공부의 중요한 과정입니다.
더불어 돈키호테님의 질문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푸코 공부에 있어 전제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무척 중요한 내용들입니다.
이 내용들을 이해하시면, 푸코의 글들이 앞으로 쉽게 다가올 것이고
반대로 이 내용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푸코를 오래 읽어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조금 건방지게 들릴 수 있지만, 푸코를 2년 넘게 열심히 읽어온 저의 경험을 눌러담은 말입니다.
돈키호테님이 보여주는 지금의 열의와 노력이라면, 금방 푸코의 언어에 익숙해지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그럼, 다음 세미나 시간에 만나 열심히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해요!

돈키호테님의 댓글

돈키호테 댓글의 댓글

1. 제가 이야기하는게 맞는지 봐주시길 바랍니다.제가 잘못 말씀드린것 같은데요,푸코는 신체를 중심으로 보지 않았지요?권력의 효과와 기술이 신체를 통해서 규율화 되는것을 비판한것 같은데요.그리고 기본적으로 몸과 정신은 다르지 않고 하나이다.라고 생각한것 같습니다.

2. 푸코의 권력에 대한 생각이 다 아는 내용이시겠지만 전통적인 개념과 많이 다르고 푸코가 고민했던 내용은 1968년 이후인가요? 권력의 문제를 고민했던 시기가? 그리고 프랑스입니다.1968년 이후 프랑스라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따른다는 말입니다.저희도 마찬가지 입니다.2018년 대한민국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따르지요 그런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과거 현실의 급박함에 쫓겨서 제대로 된 이론적 고찰과 고민을 하지 못한채 깨졌던 우리 사상의 역사 철학의 역사가 문득 떠오르네요(이부분은 다 아시는 내용이기에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3.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습니다.푸코가 권력이 추악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우리는 자신의 권력을 충분히 행사할수 있다는 말 충분히 숙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고민해야될 지점은 어떻게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것인가 인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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