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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후기-2권 기사도의 두 번째 패배 +1
에스텔 / 2016-03-21 / 조회 2,008 

본문

이번 장에서는 근대소설의 효시라 볼 수 있는 세르반테스와 동시대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거장 셰익스피어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고대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너무 옛날 이야기인데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책들이 그림이 없는지라, 자연주의니 고전주의니 로꼬꼬니 하는 단어들이 어렵고 갑갑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우리들의 주 관심사인 문학이 나왔습니다. 우와~~ 참 재미있었습니다.

 

돈 키호테를 읽으신 분이라면 꼭 이번 장을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돈 키호테를 읽을 예정인 분에게도 추천합니다. 시대상과 함께 세르반테스 자아가 투영된 돈 키호테가 몇 배나 깊이있게 다가옵니다.

 

또 이 장에서는 매너리즘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다들 이렇게 매너리즘에 대해 설명을 많이 한 책은 처음이시라고.

그래도 아직 매너리즘에 대해 헤롱헤롱대고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인물을 이해하고 그의 작품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아래는 요약한 내용입니다.

 

 

3. 기사도의 두 번째 패배

 

15세기 말 기사적 낭만주의는 이딸리아와 플랑드르에서 부흥하여 16세기 프랑스와 에스빠냐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기사도는 신분상승을 이룬 새로운 귀족계급과 절대주의로 향하는 군주들이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위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세련된 형식이었다. 실제 막시밀리안 1세는 ‘최후의 기사’로, 이그나띠우스 로욜라는 ‘그리스도의 기사’라는 칭호를 가졌다. 그러나 풍차를 향하여 돌진하는 돈 키호테처럼 기사도의 이상은 현실 경제와 사회에 맞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떼스는 이런 모순을 대변하는 작가였다.

특히 에스빠냐는 700년에 걸친 아랍과의 싸움, 이딸리아 정복전쟁, 프랑스에게 승리, 식민지 확대, 라띤아메리카 착취 등으로 인해 군인계층이 영웅이 되면서 기사도에 열광했지만, 네덜란드 소상인과 영국 해적들이 경제적 지배권을 장악하면서 누구보다도 기사도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국가는 전쟁용사를 부양할 수 없었고, 하급귀족들(Hidalgo)는 빈곤과 배고픔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세르반떼스

1) ‘기사도적 낭만주의에서 현실주의로의 과도기'를 살아낸 인물, 세르반떼스

세르반떼스(1547-1616)는 기사도의 몰락을 스스로 겪었다. 가난한 이달고 출신으로 이딸리아 원정에 참여하여 중상을 입었으며, 귀향 중 해적에게 잡혀 5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다. 1580년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족은 빚더미에 올라 있었고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가까스로 세금징수원 자리를 얻었지만 늘 쪼들렸다. 급기야 에스빠냐가 영국에 패배한다. 세르반떼스는 개인의 비극과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며 기사도가 시대착오적이고 비합리적인 낭만주의라고 깨닫게 된다.

 

2) 세르반떼스 작품이 가지는 의의

기사도를 풍자한 작품은 이미 여럿 있었으므로 세르반떼스가 이에 동참한 일은 새롭지 않았다. 그가 새롭게 시도한 것은, 이상주의자에게 보인 당시의 비정하고 멋없는 세계를 고발한 데에 있다. 이상주의가 외부 현실에 의해 영향 받지 않는 것처럼, 외부 현실도 이상주의에 의해 변화되지 않는다고 인식했다. 또한 이상적·낭만적 세계와 현실적·합리적 세계 중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으면서, 이념은 현실세계에서 실현될 수 없고 현실은 이념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3) 세르반떼스 작품이 풍기는 매너리즘

- 주인공이 보이는 분열적 태도: 그 때까지의 문학에서는 인물이 악인 아니면 선인, 구제자거나 배신자 등으로 분리되어 표현되었지만, 돈 키호테는 성자가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한다. ⇛ 한 사물에게 정반대되는 양면을 동시에 보는 능력을 유머감각이라고 본다면, 돈 키호테와 같이 이중성을 가진 인물이야말로 문학에서의 유머의 발견이라 말할 수 있다.

- 현실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현실과 비현실의 애매모호함, 비극의 바닥에 깔린 희극, 희극에 담긴 비극 요소

* 문학사에서 매너리즘은 세르반떼스에서 출발해야 한다.

- 의식적인 자기기만: 작자가 작품 속에서 이것은 허구라고 암시한다는 점, 작품 속의 현실과 작품 밖의 현실이 자유로이 교차한다는 점, 소설의 인물들이 자기 세계를 빠져나와 독자의 세계로 넘어온다는 점, 1부로 인해 소설의 주인공들이 유명하게 되었다고 2부에서 설명하는 ‘낭만적 아이러니’

- 그로떼스끄하고 변덕스러운 표현 스타일, 구성과 자의성 및 무형식과 무절제성, 샛길로 빠지거나 영화처럼 비약과 탈선, 두 장면이 겹치는 수법

- 사실주의적 공상적 요소가 뒤섞인 문체, 기사소설과 통속적 악한소설의 결합, 일상생활의 대화를 최초로 그대로 허용, 꼬셉띠즈모(기괴한 인용, 진귀한 고사, 기발한 착상 등을 구사한 문체)의 기교적 리듬이나 표현의 결합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신앙의 극한 대립, 국가재정의 파탄, 위험한 외교상황을 지혜롭게 풀어 갔다. 여왕은 자본주의 경제에 아낌없이 지원했고 이로 인해 경기가 좋아지자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왕실은 부유한 시민계급과 토지를 소유하거나 산업에 종사하는 귀족 출신으로 형성된 신흥 지배계급과 손을 잡으며 사회 안정화를 꾀하였다. 결혼과 직업으로 구귀족과 신흥 지배계급이 뒤섞이면서 계급에서의 사회적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이로서 사회적·정치적 질서와 안정을 도모하는 브르주와적 세계관이 자산가들에게 싹트게 되었다. 사회적 무질서에 대한 공포는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당시 문학의 주요 테마였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세계관

셰익스피어는 인권에 관심을 가졌고 정치권력의 간섭이나 민중의 탄압을 비난했지만 때론 민중에 대한 경멸이 드러나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이익집단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자기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진보의 전위용사였으며 사회적 책임감을 가졌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는 건강한 합리주의를 통하여 봉건귀족의 재등장을 저지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셰익스피어와 기사계급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타나는 기사의 전형은 브루터스, 햄릿, 타이몬 같은 인물인데, 이들이 가진 이상주의와 천진성은 돈 키호테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주인공은 결국 환상에서 깨어나 진실을 깨달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뇌를 겪는다는 점에서 돈 키호테와 다르다.

기사계급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입장은 대단히 복잡하고 일관성이 없다. 우리는 이러한 이유를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문제와 함께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단계적으로 발전했는지 살펴보며 설명할 수 있다.

젊은 셰익스피어는 마끼아벨리에 열광적이었다. 그러나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무렵의 완숙기에 이르러 그는 마끼아벨리즘적인 군주나 무자비한 이윤추구의 경제조직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 그리하여 사회 각층에 대한 감정이 근본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청교도의 박해, 경찰국가로의 변질, 제임스 1세하의 절대주의적인 경향 등으로 사회가 변하자 셰익스피어는 브루터스처럼 성공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호의를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비관주의는 초개인적인 중요성을 가지며, 역사적 비극의 여러 특징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작가와 패트런

셰익스피어의 문화적 발전과정은 그가 어떠한 계층의 독자를 겨냥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단계를 나눌 수 있다.

 

- 1단계: 궁정귀족을 위하여

엘리자베스 여왕 당시 문단의 중심지는 궁정이었다. 대부분의 문인들은 젠트리나 관리, 부유한 상인층 출신이었으며, 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 계급에 의해 성격이 규정지어졌다. 귀족을 양성하는 것이 문학의 주된 목적이었으며, 문학적 교양은 귀족의 필수조건이었다. 서정시와 서사시가 궁정에서 총애를 받았으며 드라마는 평면적인 표현형식이라고 저평가되었다. 초기의 셰익스피어 역시 당시에 유행하는 인문주의적 취향을 고수하며 궁정귀족을 위해 서사시를 썼다.

서정시인이나 서사시인이 극작가보다 더 높이 평가되었지만 수입 면에서 보면 광범위한 계층에 인기를 얻고 극장에서 작품을 상영하는 극작가가 많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문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모두 극장에서 성공해 보려고 했다.

음유시인들과 배우들은 아마 같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며 궁정이나 대귀족에게 고용되었던 익살광대 출신이었다. 구귀족이 몰락하자 이들은 자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엇보다 튜더 치하의 런던 궁중생활과 문화생활의 급속한 발전과 집중화는 정규적인 극단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관객층

- 2단계: 연극계로

문인들 사이에서 패트런을 찾으려는 경합은 몹시 심해지지만 패트런들은 인색해져갔다. 예술보호자와 예술가 사이에 존재했던 종전의 가족적 관계는 해체되어갔다. 셰익스피어도 이런 정황에서 연극계로 옮겨갔다. 이때부터를 셰익스피어 예술단계의 제2단계로 본다. 이 시기의 셰익스피어는 제1기 작품에서와 같이 고대취미적인 어조나 허식적인 목가풍을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상류층의 취향을 따랐다. 군주제의 이념을 찬양하는 연대기나 역사극, 정치극, 또는 경쾌하고 낭만적인 희극을 주로 썼다.

- 3단계: 비극의 시기

16세기가 17세기로 바뀔 무렵, 셰익스피어는 그의 위대한 비극들을 어느 특정 계층에 한하지 않고 런던의 극장가를 드나드는 다양한 관객을 대상으로 썼다. 이 시기의 그는 상류계층의 미사여구나 유희적인 낭만주의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중산층과도 소외되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 4단계: 체념과 평안의 시기

청교도적 분위기가 사회전반을 감싸며 런던시와 교회의 극장 검열은 강화된다. 셰익스피어는 이로 인해 편협해지는 시민계급을 점점 멀리하고 낭만적 분위기가 감도는 희비극을 다시 쓰게 되었다. 배우와 극작가들은 또다시 궁정과 귀족집단에서 패트런을 찾아야 했으며 이들 취향에 부합하도록 노력해야 했다.

 

셰익스피어는 거의 모든 사회계층을 망라하는 최초의 위대한 극작가였다. 예술사회학적으로 셰익스피어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다양한 관객층이 교양계층이나 전문가보다도 더 그의 작품을 정확히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관객의 비율 면에서 상류계급이 노동자계급보다 많았지만 그 절대수로 따지면 노동자계급이 전체 관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들은 민중극장의 관객으로 현대적 의미에서 대중연극인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독보적으로 지지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민중극장

셰익스피어가 예술적 양심과 극장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했다거나, 그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민중적 성격을 지향했다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광범위한 관객과 타협했다고 보는 종전의 평가는 다 현실성이 없다. 그의 위대성은 사회학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모든 계층을 사로잡는 공통된 기준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민중극장이 있었다. 다양한 계급이 뒤섞여 자리 잡은 민중극장은 영국에서만 가능했던 사회적 평준화의 산물이었다(p. 200 참조). 이러한 시대 흐름에서 셰익스피어는 작품의 질과 대중적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셰익스피어적 형식의 전제조건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순수한 이념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현실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념세계와 현상세계를 구분한 이원론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호메로스도 그리스 비극도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의 갈등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중세에도 마찬가지로 신과의 갈등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극적 드라마, 극적 갈등이 주인공의 행동에서 깊은 내면세계로 옮아가는 것은 현실상황에 부합하는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현실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다.

비극의 주인공은 도덕적 승리를 이루고,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고대의 운명론과 구별되는 점이다. 이러한 비극의 이념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예정설 사이에는 정신적 친화관계가 있다. 종교개혁과 근대 비극이 동시대에 생겨났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

 

셰익스피어와 인문주의 희곡

셰익스피어는 당시 인문주의 희곡이 지닌 진보적인 특징을 많이 따르지 않았다. 그가 고수한 중세적·민중적 전통은 인문주의와 매너리즘 그리고 바로끄에 의해 파괴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영화를 셰익스피어의 계승자라고 말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 맥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형식적으로 셰익스피어가 풀어내지 못했던 문제들에 영화기술이 해결방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자연주의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철저히 자연주의적이다. 특히 그것은 인물의 성격묘사에서 두드러진다.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심리상으로 분화되고 모순과 약점에 가득 찬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예를 들면, 우둔한 노인 리어왕, 허약한 램릿, 허영심이 강하고 일관성이 없지만 그 누구보다 위대한 씨저. 이것은 또한 구체적인 상황 묘사로('자잘한 진실들', petits faits vrais) 더욱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자연주의는 개인적인 것과 관습적인 것 등과 같은 정반대의 특징들로 뒤섞여 명백한 한계를 보여준다. 그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기존의 예술수단을 사용했지만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따라서 많은 셰익스피어 연구들이 등장인물 성격과 행동 하나하나를 연결 짓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햄릿은 상투적인 인물이고, 셰익스피어의 성격묘사에는 종종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모순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깊은 심리적 통찰은 인물을 살아 숨 쉬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셰익스피어는 위대한 작가가 분명하나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작가는 아니다.

나라 별로 어느 연극양식이 우세한가가 다르게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적 희극양식이, 프랑스에서는 고전비극이 사랑을 받았다. 이런 차이는 각각의 양식이 그 나라의 관객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를 연구함으로써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매너리즘

셰익스피어의 양식상의 특수성은 이해하기 힘들다. 영국 르네쌍스나 바로끄적 성격으로 해명하려 시도했으나 그것으론 부족하다. 그의 예술은 르네쌍스와 매너리즘, 바로끄의 요소들이 나름대로 특유하게 혼합된 독보적인 경우이다. 그 중 매너리즘적 경향이 좀 더 지배적이어서 매너리즘에서 출발하여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ㅎㅎ 고전주의와 로꼬꼬는 3권에 등장할 예정이예요.
들어는 봤지만 의미는 잘 모르는 단어들이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짓누르는 건 사실입니다.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책 읽고 공부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더 답답해지는 면들도 있지요.

이번 시간은 확실히 돈키호테를 열심히 읽은 보람이 있는 시간이었어요.
또 셰익스피어와 발자크의 매력을 재확인한 시간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읽을 책들이 계속 발굴되니 이 어렵고 고단한 세미나 생활은 끝을 기약할 수가 없군요.
바쁜 와중에 발제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핵심이 쏙쏙 들어오는 깔끔한 발제가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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