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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후기] 차라투스트라4부 :: 0423(월) +3
빠른거북이 / 2018-04-29 / 조회 1,054 

본문

죽은 신을 가운데 두고 우리는 춤을 춘다 

 

우리는 자꾸만 웃는다. 누가 뭐라 이야기해도 웃고 누가 웃는 걸 보고 또 웃는다. 아주 드물게 정색을 하고 대체로 웃고 또 웃는다. 내 옆에서 함께 웃던 연두님이 말했다.
"이러다 춤도 출 수 있겠어요."
의지하던 신은 죽었다. 우리는 스스로 나아가야하는 외로운 자다. 그런데 왜 이리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신은 왜 죽었나. 니체의 말대로 우리 연민 때문에 그가 죽었나. 우리가 너무 추해서 죽었나.

아니 신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가 없어서 죽었다. 잔인하게도 신이 죽은 자리에서 살해자인 우리는 죄의식 없이 춤을 춘다.  

우리는 웃는다. 여기 이 대지위에서 웃는다. 딴 이야기를 하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수많은 오독을 하면서 웃고 즐긴다. 네오바르사님은 질문한다. 질문은 늘 엉뚱하다. 덕분에 우리는 또 웃는다. 소소님은 씩씩하게 오라클님은 권위있게, 올리비아님은 반항적으로, 엇결과순결님은 심각하게, 모로님은 부연설명으로, 에피파니님은 부드럽게, 람스님은 침묵으로 모두 우리 웃음세미나의 일원이 된다.

우리가 금주에 다룬 4부 앞쪽은 동굴에 있던 차라투스트라가 내려가 '넘어서기를 하고 있는' 존재들(내가 보기에  처음 '절박한 부르짖음'은은 차라투스트라의 내면으로 보인다)을 만나는 이야기다.

웃던 시간 중에 나는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전문가로 상징되는 ‘거머리머리 연구자’의 존재다.
‘내가 대사로서, 그리고 식자로서 달통해 있는 분야는 거머리의 두뇌지. 그것이 나의 세계이고!
그것 또한 하나의 세계지! 나서서 말하고 있는 나의 긍지를 용서하라. 나와 견줄 만한 자가 내 주변에는 없기 때문이다. (중략) 이 하나를 위해 나 다른 것 모두를 버렸으며 다른 것 모두에 무심해졌다. 그리하여 나의 앎 아주 가까이에 나의 캄캄한 무지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409쪽

과학자들 혹은 전문가를 비판하는 장이라는 의견이 있었던 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문가도 많지만 오히려 한 분야에 통달한 자들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더 깊다. 나는 업무상 수많은 과학자를 만나고 있는데 과학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양자역학만으로 대중에게 유명한 김상욱 교수는 실제로 생각이 깊고 박학다식하다. 리만가설을 21년째 연구하는 기하서 교수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웬만한 철학자보다 더 뛰어나다. 그들은 자기세계에 너무나 깊이 빠져서 작은 세계(모형)에 대한 통찰을 통해 세계를 통찰하게 된 자다.


그리고 연민에 대해 경고하는 '더없이 추악한 자'도 기억에 남는다.
'창조하는 자는 하나같이 가혹하며, 위대한 사랑은 하나같이 저들의 연민의 정이란 것을 초월해있다' . '행동하는 자만이 배우기 마련이니.'
가장 어려운 차원이다. 나는 한 달에 몇 만 원 정도 누군가를 연민에서가 아니라 '응원'을 위해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시간을 써라, 노동력을 제공해라고 한다면 자신이 없다. 그러고 보면 여전히 나는 여전히 연민과 자기위안사이에 있다.

내일 세미나 계획 발표 시간에도 우리의 웃음이 이어지기를.
나는 '신의 죽음 이후의 구원의문제'라는 주제로 생각해볼 예정. 그러나 지금으로선 제목만 달랑 낼 것만 같다. 그럼 또 웃겠지? 비웃음은 아닐 거라 믿으며...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1.
"의지하던 신은 죽었다. 우리는 스스로 나아가야 하는 외로운 자다. 그런데 왜 이리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신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가 없어서 죽었다. 잔인하게도 신이 죽은 자리에서 살해자인 우리는 죄의식 없이 춤을 춘다." _빠른 거북이

신을 살해하고 죽은 신의 시체를 둘러싸고 카니발리즘을 연상시키는 축제를 벌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이토록 무구하게 잔혹한지요!! 신의 죽음을 축제로 만든 아름다운 텍스트입니다. ^^

2.
"우리는 자꾸만 웃는다. 누가 뭐라 이야기해도 웃고, 누가 웃는 걸 보고 또 웃는다. 아주 드물게 정색을 하고, 대체로 웃고 또 웃는다.
우리는 웃는다. 여기 이 대지 위에서 웃는다. 딴 이야기를 하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수많은 오독을 하면서 웃고 즐긴다." _빠른 거북이

"춤 한 번 추지 않은 날은 아예 잃어버린 날로 치자!
 그리고 큰 웃음, 하나 함께 하지 않는 진리는 모두 거짓으로 간주하자!" _차라투스트라

니체세미나에 대한 빠른거북이의 스케치를 보고 있으면, 그 풍경이 떠올라 다시 가볍고 유쾌해집니다.
텍스트가 우리 신체에 무엇을 남기든, 이 시간이 웃음과 춤으로 채워진다면 그것이 모두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내일 에세이계획서를 써야하는 일정에다, 이렇게 멋진 후기를 남기다니,
그래서 우리를 다시 유쾌하게 하다니 ~~!! 후기를 쓰느라 수고하셨어요. 빠른거북이*^^*

연두님의 댓글

연두

우와, 기다리던 그 후기, 너무나 사랑스럽네요! 
정말 우리는 왜 자꾸 웃을까요. ㅎㅎ
저는 정말 춤을 출 수도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렇게 쉽게 춤추는 자가 되진 않네요.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죽은 신을 가운데 두고 우리는 춤을 춘다
후기제목이 호러스러우니 좋습니다. ^^ (호러물 좋아 하는 1인)

거머리 연구자가 남일 같이 않아서 찔렸습니다. 전문가. 요즘은 정보가 쏟아지서 알아야 할것도 많고, 또 쉬운 검색으로 알아지는 것도 많아지지만 그런데도 모두들 관심분야인 부분만 알고 사는것 같습니다.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며 대중을 욕하다가도 내 관심밖의 것은 생각조차 못하는 '그 대중'이 '나'이기도 해서 여러므로 찔리는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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