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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 발제] 1장 : 6절 언어, 권력, 그리고 위치 변경의 전략
라라 / 2018-05-02 / 조회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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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아니고 발췌

 

1장 섹스/젠더/욕망의 주체들

6절 언어, 권력, 그리고 위치 변경의 전략

-수많은 페미니스트 이론과 문헌에서는 행위 뒤에 행위자가 있다고 가정해왔다. 행위주체 없이는 어떤 행위 작용(agency, 작인)도 있을 수 없고 변화시킬 잠재력도 없다는 주장이다.

-위티그의 페미니즘 이론은 주체문제에서 모호한 위치를 차지한다. 본질의 형이상학을 반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주체, 개인을 행위 작용의 형이상학적 장소로 상정한다. 위티그의 휴머니즘은 행위 뒤에 행위자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전제한다. 그럼에도 원인결과로 혼동했던 설명방식을 반박하면서 젠더의 수행적 구성은 문화의 물질적 실천 속에서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위티그는 자신과 푸코를 연결하는 상호텍스트 공간에서 이렇게 쓴다. 성은 자연질서에 속하며,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지각 가능하도록 주어진 것’, ‘육체적 특질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적이고 직접적인 지각이라고 믿는 것은 단지 정교한 신화적 구성물, 상상적 구성물일 뿐이다.

-자연의 생산은 강제적 이성애의 명령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에 위티그는 동성애적 욕망의 등장은 성의 범주를 초월하는 것이다 위티그는 섹스를 제도화된 이성애가 작동되는 표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리가레는 젠더표식을 남성 패권적 의미화 경제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 남성적 의미화 경제는 자아 연구의 사유기제를 통해 작동되며, 서양철학 전통에서 존재론의 영역을 결정지어왔다. 다른 언어나 의미화 경제의 가능성만이 젠더 표식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이리가레는 양성 간의 표면적인 이분법관계야말로 여성적인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자 하는 남성주의 책략임을 폭로하는 반면, 위티그는 이리가레의 입장이 남성성과 여성성 간의 이분법을 재강화할뿐더러 여성성의 신화를 재유포시킨다고 주장한다.

-위티그는 여성을 복종시키거나 배제하려는 언어 권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유물론자로서 위티그는 언어를 물질성의 또 다른 질서즉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제도로 여긴다. ‘섹스라는 언어적 허구는 이성애 욕망의 축을 따라 정체성의 생산을 규제하고 강제적 이성애 체계로 인해 생산, 순환되는 범주라고 주장한다.

-위티그는 성기 중심으로 조직된 섹슈얼리티 자체를 문제시하고 쾌락 경제의 대안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대안 경제는 전복이든 확산이든 여성의 뚜렷한 특징인 재생산 기능으로 표시되는 여성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일에 저항할 것이다.

-위티그는 젠더 표식의 행위를 우연적인 것, 근본변화가 가능한 것, 심지어 없어질 수도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남성적 주체란 근친상간을 금지하고 이성애적 욕망의 무한한 위치 변경을 상제하는 법이 생산한 허구적 구성물이다. 여성성은 결코 주체의 표식이 아니다. 여성성은 젠더의 속성이 될 수 없다. 여성성은 상징계가 의미화한 결핍이라는 의미이다. 이 상징계는 성차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일단의 변별화된 언어규칙이다.~ 남성적/여성적 입장 모두, 문화적으로 인식 가능한 젠더를 생산하는 금지법을 통해 제도화되지만 오로지 상상계에 재등장하는 무의식적 섹슈얼리티의 생산을 통해서만 제도화된다.

-로즈가 지적하듯이, 남성성/여성성이라는 분리된 축을 따라 일관된 성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실패하게끔 되어 있다. 즉 억압된 것이 우연히 재등장하면서, 이런 일관성의 파열은 정체성이 구성된 것임은 물론, 정체성을 구성하는 금기가 아무런 효력이 없음을 드러낸다.

-정신분석학적 비평은 규범적 젠더 관계의 모태 안에서 주체’(본질의 허상)의 구성을 설명하는데 성공한다. 위티그는 실존주의-유물론적 방식으로 주체, 즉 개인은 사회이전, 그리고 젠더 이전에 있는 통합성을 갖는다고 가정한다. 푸코는 금기들은 그 의도가 없었음에도 늘 변함없이 생산적이다. 금기가 생산적이라는 것은 금기에 기반해서, 금기를 통해서 생산된다고 여겨지는 주체가 어느 정도는 권력의 외부이전혹은 이후에 존재하는 섹슈얼리티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법보다는 권력이 변별적 관계의 사법(금지와 규제)작용과 (의도하지 않게 발생한) 생산 작용 둘 다를 포괄한다. ~ 생산물은 본재의 목적을 벗어나서 문화적 인식 가능성의 경계를 벗어날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인식 가능한 것의 경계를 사살상 확장시키는 주체들의 가능성을 작동시킨다.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 안에서 섹슈얼리티를 옹호하는 운동은 섹슈얼리티가 항상 담론과 권력을 조건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해왔다. 여기서 권력은 부분적으로 이성애적이고 남근 중심적인 문화관습의 시선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레즈비언, 양성애, 이성애적 맥락의 시선에서 구성된(결정되지 않는)섹슈얼리티의 등장은 환원론적 의미에서 남성적인 동일시의 기호가 아니다.

~섹슈얼리티가 기존의 권력관계 안에서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권력의 이전’ ‘외부’ ‘너머에 있는 규범적인 섹슈얼리티를 가정하는 일은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꿈일 것이다. 권력의 시선에서 섹슈얼리티와 정체성의 전복 가능성을 재고해보려는 구체적인 다연 관제를 지연시킨다.~ 법의 강화가 아닌 법의 위치변경이라는 법의 반복 가능성을 제시한다. 남성이 섹슈얼리티의 원인이자 환원 불가능한 의미로서 작동하는 남성 동일시의 섹슈얼리티 대신에 우리는 남근적 권력관계의 관점에서 구성된 섹슈얼리티 개념을 전개할 수 있다. ~ ‘섹슈얼리티가 환영임을 드러낼 수 있다면 환영의 구조를 과시하는 동일시를 실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문화적으로 구성된 섹슈얼리티를 근본적으로 거부하지 않는다면 남겨진 것은 늘 섹슈얼리티가 처해 있는 구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행하는가의 문제이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의 성문화 안에서 이성애적 구성물을 반복하는 것은 젠더 범주를 탈 자연화하고 자극하는 불가피한 현장이 될 것이다. 비이성애적 틀 안에서 이성애의 구성물을 반복하는 것은 이른바 이성애적 원본이라는 것이 순전히 만들어진 위상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관계는 복사본과 원본이 아닌 복사본과 복사본의 관계이다. 원본이란 자연스럽고 본래적이라는 관념의 패러디에 불과하다.

-이성애적, 동성애적, 양성애적 실천 속의 모호함이나 비일관성은 분리도어서 불균형을 이루는 남성성/여성성의 이분법이라는 물화된 틀 안에서 억압되고 재기술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젠더 혼란의 이같은 문화적 배치는 이러한 물화가 개입, 노출, 전치되는 장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아울러 참착해야한다. 젠더의 통일성은 강제적 이성애의 실천효과이다.

-푸코는 섹스의 범주를 생산하는 규제적 실천의 정확한 특징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위티그는 그 구성의 책임을 성적 재생산과 그 도구인 강제적 이성애에 전적으로 전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른 담론들은 늘 불분명하거나 일관되지 않은 이유를 들어 이 범주적 허구를 생산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19세기 유럽에 등장한 법-의학 동맹은 예상치 못한 범주적 허구를 낳았다. 젠더를 구성하는 담론지도의 복잡성은 담론적이고 규제적인 구조를 우연한 것, 생산적인 것으로 수렴하겠다는 약속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섹스와 젠더에 대한 규제적 허구들 스스로가 의미의 증식을 겨루는 현장이라면 그 구성의 다야성이야말로 일의적인 입장의 붕괴 가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젠더는 존재론의 양식으로 젠더를 구성하는 정치적 매개변수들을 그려내는 계보학적 탐구의 대상이다. 젠더가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젠더의 허구성이나 인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실재인 것진정한 것을 대립물로 대치시키는 이분법적 도식에 놓여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보부아르 주장에서 옳은 점이 있다면 여성 자체가 과정중에 있는 용어라는 것이다. 구성중에 있다는 것, 되어가는 중에 있다는 입장이다. 진행중인 담론적 실천으로서 그것은 간섭과 재의미화에 열려 있다. 젠더가 가장 물화된 형식으로 응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 응결(congealing)이야말로 다양한 사회적 수단을 써서 유지되고 규제되는 집요하고 교활한 관행이다. 보부르는 문화적 변용과 구성의 과정을 지배하는 어떤 목적인이 있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젠더의 본질적 외관을 젠더의 구성적 행위들로 해체할 것이며 이러한 행위들을 젠더의 사회적 외관을 감시하는 다양한 힘들이 만든 강제적 틀 안에 두고 이를 설명할 것이다.

-성은 더 이상 내적 기질이나 정체성의 진리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수행적으로 행해진 의미화가 된다는 것이(고로 의미화가 있을수 없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젠더의 위치를 근본적인 정체성의 환영으로 정해두어서 젠더가 자기위치를 지키게 만들고자 하는 바로 그 구성적 범주들의 동원과 전복적 혼란과 증식을 통해서 젠더에 트러블을 만드려는 노력으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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