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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Essay-제목 : 그 입 다물라! ​ +2
올리비아 / 2018-05-05 / 조회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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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 입 다물라! 

 

“여혐 댓글에 여자들이 남혐 댓글로 미러링 하지만 그렇게 대응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느 세미나에서 말했다.

“그럼요, 욕이나 남혐 댓글을 하면 안돼죠” 라고 어떤 남자가 답했다. 

그는 내 말의 의도를 한참 잘못 받아들였다.

내 말의 의미는 첫째 집요한 한남들의 신상털기로 신변의 위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익명의 인터넷 속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원하는대로 다 받아치기 힘들다. 둘째 남자와 여성이 동등한 배치속에 있지 않다. 그 불균형한 배치속에서 하는 여혐은 차별, 억압, 폭력이 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그냥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정도로 끝난다. 내말은 지대가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미러링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의미였다.

[말이칼이될때]라는 책에서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예가 나온다. 이슬람교를 혐오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출근길에 차도르를 두르고 나갈지 말지 고민하거나, 거리에서 조금이라도 묘한 시선을 받거나, 회사에서 내가 무슬림이라는 것이 발각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것들은 삶 전반에 미치는 막대한 억압 이다. 그대로 기독교인에게 대입해보면 내가 기독교 임이 발각되지 않을까 걱정되서 십자가 목걸이를 감추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현재 기독교인들이 무슬림 신자들의 억압된 생활을 정확히 알수 없다. 이런 배치속에서 무슬림 신도가 기독교인을 개독이라고 미러링 했다고 치자. 이것은 동등한 위치가 아니므로 맞 대응이라고 할 수 없다. 전반적인 삶에서 받는 억압과 기분이 상하는 것은 다른것이다.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너가 남혐표현을 했으니 나도 여혐표현하는건 같은거야 하고 말할수 없다. 즉 여혐표현은 성차별과 억압이지만 그렇다고 남혐표현이 남성에 대한 억압이라고 동등하게 볼수 없다. 

 

여자로서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 안해본 여자는 없다. 여자가 꾸미지 않으면 욕을 먹지만 남자가 꾸미지 않으면 남자답다는 소릴 듣는다. 앉는 자세도 여자는 다리를 벌리고 편하게 않으면 안된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도 욕을 먹는다. 여름철 남자들의 조기축구회에서 처럼 상의를 벗거나 하는 일은 상상도 못할일이다. 

‘여자답다’는 칭찬같지만 조신하고 순종적인 사람으로 능력이나 행동을 위축시키는 말이다. 반면 ‘남자답다’는 보통 적극적이고 씩씩함을 칭찬하고 장려하는 말로 쓰인다. 놈과 년, 계집애와 사내놈의 어감은 다르다. 기지배 같다라는 욕은 있어도 사내아이같다 라는 욕은 없는 것이 이 사회이다. 그런데도 남녀의 지대가 같다고 계속 우길것인가? 여자들에게 ‘너네도 웃통 벗고 싶으면 벗어라 누가 말리냐’ 라고 말할 수 없다.

 

이 글 초입에 언급된 세미나에서 남자는 자신의 말을 설명했다. 자신은 여성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사람이 아니고, 도덕적으로 봤을때 혐오를 혐오로 받아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도덕적 기준! 그의 도덕에서는 선행된 차별과 억압은 도덕적 기준을 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차별받는 상황에서 비판까지 받자 더이상 참을 수 없어 하는 미러링은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일상 생활에서도 여자에게 씌워지는 도덕적인 잣대와, 남자에게 씌어지는 도덕적인 잣대는 다르다. 

여자는 상냥해야하고, 재능이나 능력보다 외모를 가꾸는데 시간들 더 들여야 하고, 그래도 지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겸손함을 가져야하고, 똑똑해도 앞에 나서면 안되고 남자(남편이나, 아들)에게 그 자리나 공을 내주어야 하며, 많은 능력과 뛰어난 외모에도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해야하고, 아이를 잘 돌보는 능력은 기본 탑재되어 있어야 한다. 

위의 사항이 옛날 이야기고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전 지구적으로도 위에 이야기는 여성이 지켜야 하는 도덕으로 여겨진다. 이를 어기는 여자들은 쉽게 비난받는다. 일부 칭찬을 하겠지만 그 뒤에는 여전히 비난의 말과 부정적인 말들이 따라붙는다. 

‘저여자는 똑똑하고 능력도 좋은데 저렇게 나대는걸 보니 너무 드세다. 남편이 기를 못 피겠어’

김치녀, 된장녀 등도 능력있는 여성이 자기취향대로 소비한 것이 드러났을때 받는 비난이다. 

언론에 나오는 모든 여자들, 좋은일을 했거나, 욕먹을 짓을 했거나, 인기가 많거나, 엽기적이거나, 나쁜 사람의 아내로 언급되거나, 그 누구를 망론하고 모든 여자들은 대중들에게 외모에 대한 평가를 혹독하게 받는다.

 

이 사회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렇게 평생을, 항상 평가대 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평가 받는 자는 약자의 위치이다. 강자는 남들을 평가하는 자이고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자들이다. 약자는 자신이 평가받고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상황을 해명하고 고백하는 자이다.

우린 부당한 일을 당했을때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만 잘 한다면 진실이 밝혀 질 것이 라고 믿는다. 남이 당한 부당한 일의 해명이 받아 들여지지 않은것은 그들의 말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 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진실이 만들어지는 지점은 말하는 자가 아닌 듣는자에게 있다. 듣는자는 평가를 내리는 자이다. 아무리 약자가 자신을 설명한다고 해도 듣는 자가 아니라고 평가내리면 그만이다.

성희롱을 당했다고 말해도

‘그게 무슨 성희롱이야, 너가 예민한거지, 그렇게 예민해서 사회생활 하겠어?’

강간을 당했다고 해도

‘저항을 더 하지 그랬어. 그 정도 저항은 동의한 관계지 강간이라고 말할수 있나? 너도 좋았던 것 아냐?’

비욘세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해도

‘비욘세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냐’ 

메갈이 페미니즘라고 하면

 ‘그건 페미니즘도 아냐 설사 그렇타 쳐도 올바름 페미니즘은 아니지’

여자가 차별 받고 있다고 하면 

‘다 과거 이야기지 요즘 누가 차별해?’

부당한 일이 강자에 의해 부정되어지면 더이상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부당한 일은 없었다는 새로운 진실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부당했던 일은 덮어지고 차별없는 사회로 인식된다. 그래도 불거지는 문제 발생 지점은 일부 개인의 부도덕성으로 귀결된다.

 

이 세상을 사는 여성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영화에서 나올 법한 성차별과 성희롱을 다들 당하고 산다. 아니 한번이 아니고 평생을 거쳐 여러편의 스토리가 나올만한 경험을 ‘당하고’산다. 그러나 내가 나의 경험을 이야기 해 봤자 난 그냥 일부 팔짜쎈 여자로 취급 받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녀의 반응이 참 다르게 갈린다. 남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길래 듣보잡인 일을 혼자만 당하고 살았냐고들 되물어본다. 여자들의 ‘맞아요. 마자. 저도 그런 비슷한 경험 많아요’ ‘전 더한 일도 당했어요’등등의 반응이 나온다. 왜 이렇게 우린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것인가? 왜 우린 다른 진실을 보고 사는것 인가? 

남성들은 자기주변의 여자, 자기가 지켜주는 여자들은(아내, 엄마, 딸)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남자들의 세상에선 성차별은 아주 일부만 있을 뿐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제 여자들도 남자들의 말을 잘 들으면 더이상 험한 꼴은 안보고 살수 있다고 믿고, 아니 믿고 싶어서 과거의 험한 경험들에 침묵한다. 진실은 '누가 만든 것'인가. 세상은 이제 의심 없이 강요된 침묵속에서 '만들어진 진실'의 토대로 돌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부당함을 말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약자는 용기내어 말하지만 쉽게 부정당해지고 고립되어 진다. 그럼 약자들은 어떤 언어와 방식으로 말해야 효과적일까? 

소수자에 관심없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시위가 왜 이렇게 과격해야만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너무 과격하다고 평가내린다. ‘쫌 부드럽게 하면 이해할 텐데 너무 과격해서 거부감이 들어’. 자기 처럼 페미니즘 지지하려는 남자에게 왜 반감이 들게 만드냐고 비난한다.

부드러운 언어로 온건한 태도로 이해시키면 될까? 상대에게 레디컬하다, 온건하다 평가를 내리는건  강자의 위치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진실을 들어줄 의향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안들으면 비난받을것 같으니 상대방의 태도를 문제 삶는것일 뿐이다. 일부 남자들은 이런 자기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작동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안의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의 눈은 항상 남에게 가있다. 정작 자기는 보지 못하고 남을 평가질 하는데 급급하다.

사회에서 규정하는 레디컬한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을 레디컬 하다고 정의하지도 규정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고, 고민하고, 말하며 행동할 뿐이다. 

‘나를 설득해봐, 들어보고 내가 판단해 줄게 나 굉장히 객관적인 사람이거든.’ 이런식의 태도는 어떤 방법으로 너의 진실을 말해도 듣지 않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일부 남성들은 억압된 여성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다 이해한다며 자신은 깨어있는 사람이라면서 여자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들은 반드시 여성의 평가질로 이어진다. 너무 레디컬 하다는둥, 너무 비판적이라는둥, 과거보다 좋아진 세상을 보지 않냐는둥. 정말 이런 사람들이 남의 말을 들겠다는 자세인가? 

사람은 입을 다물어야 할때는 입을 닫아야 한다. 당신이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면 ‘올바르다, 그르다, 잘했다,아니다’ 평가 내리지말고 그냥 그 입을 닥쳐라

내 문제를 너에게 칭찬 받을 이유도, 평가 받을 이유도 없다.

 

 

댓글목록

소리님의 댓글

소리

이번 책 세미나에서 우리가 함께 나눴던 많은 얘기들, 그리고 올리비아 님의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좋은 글이네요. 후기로만 남겨두기 아까운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이 책을 읽고 새미나 하면서 왜 그렇게 외로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좀 더 잘 보고,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깨어있기 위해 공부를 합니다. 시시각각 사방에서 조여오는 여성을 옥죄는 코르셋 속에서, 여차하면 빨간약인 줄 알고 잘못 먹은 파란약들을 속에서 함께 깨어있기 위해 공부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갑니다.
푸코의 권력이론과 페미니즘적인 시각이 잘 결합한 글이네요.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지지에 힘입어 제목을 에세이로 바꿨습니닷. 쿄쿄
요즘 하는 공부들이 가려진 사항들을 잘 보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이제야 약빨(빨간약)을 재대로 받고 있는듯 해요~
아직도 갈길은 멀고 소리님 말대로 빨간색으로 씌워진 더욱 교묘해진 파란약들이 너무 많아서 아직도 가리기에 급급하지만요.

더욱더 제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더 생각해 보고 적용해봐야 겠습니다.
같이 공부해서 힘이 되어준 회원님들과 소리님 항상 감사해요.
앞으로도 쭉 ~~ 같이 해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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