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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후기] 커트 보니것 <신의 은총이 있기를, 로즈워터씨>(하) :: 0503(목) +4
모로 / 2018-05-07 / 조회 1,342 

본문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下)》 

    - 커트 보니것 

작성자:  모로

 

커트 보니것의 소설은 열린 텍스트다. 얼핏 엉성하게 보이는 얼개, 종잡을 수 없는 입체적 인물들, 그래서 독자들마다 해석이 갈릴 수밖에 없다. 이날도 참석한 5명의 해석은 거의 각각의 또 다른 이야기들이었다. 깜짝 등장하신 뉴 페이스 파에님은 노동을 신성시하던 초기 미국으로의 회귀를, 드디어 포텐을 발하기 시작한 거은님은 휴머니즘에 입각한 조건 없는 사랑과 박애를 매우 힘주어 피력했다. 그래서 5인 5색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사실은 원문을 읽는 것보다 흥미로웠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은 요소요소 깨알 재미가 쏠쏠하지만 이번 후기는 큰 줄기에 대해서만 개괄하겠다. 먼저 본 후기의 해석은 전적으로 나의 해석이며 수많은 해석 중 하나라는 것. 그리고 본 작품의 스토리라인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음을 미리 밝힌다. 

 

 

나의 해석은 이렇다. 자본주의의 역사와 전망에 대한 대서사극. 노어 로즈워터에서 새뮤얼, 리스터, 엘리엇으로 내려오는 4대의 역사는 사업 영역을 늘려 몸집을 불리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금융자본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와 발전 단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로 로즈워터 가문은 자본주의 자체를 상징한다. 

 

돈 농장은 수경재배를 하듯 그 돈으로 모종을 내고, 비료를 주고, 교배시키고 변형시켜 해마다 팔십만 달러 정도를 불려나갔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가 4대 엘리엇에 이르자 자체 변신을 꾀한다. 날로 심화되는 불평등의 문제를 온몸으로 앓듯이 인식하는 엘리엇은 로즈워터 재단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나눠준다. 복지제도를 연상시키는 엘리엇의 자선은 수정 자본주의로 해석된다. ‘기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응석받이로 만드는 것’이라는 매켈리스터의 주장은 복지 논쟁이 일 때마다 보수주의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진부한 논리다. 한편, 엘리엇의 6촌 프레드가 구제를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승화시킨 보험을 판매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결론 부분에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상속권을 부여하라는 엘리엇의 자칭 ‘멋지고 올바른 해결책’ - 이를 테면 기본소득 같다 - 은 보편적 복지로 읽힌다.

헌데 이 소설에서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자선을 베푸는 엘리엇과 그의 돈을 받는 이들의 태도. 엘리엇은 그들을 기계적으로 대할 뿐이며, 돈을 받는 이들 또한 그다지 감사하지 않는다(구체적으로 ‘망은’이라는 말이 거론된다). 물론 책의 제목처럼 신의 은총을 기원하며 고마워하는 이들 혹은 더 나아가 엘리엇을 구세주(신)로 떠받드는 무리도 있으나, 한편에는 그의 돈을 마뜩찮아 하거나 더 나아가 그의 조건 없는 사랑의 마수에서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 군 밖으로 나가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도움을 받은 이들의 삶이 그다지 구제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의문은 후기를 쓰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해소됐다. 보편적 복지를 대안으로 제시한 점으로 미뤄 엘리엇의 자비에 대한 거부감은 선별적 복지가 야기하는 수치심의 반로를 말하고자 한 것 같다. 남다른 연민의 감수성을 지닌 엘리엇이 의례적으로 그들을 대했던 것은 사회보장제도의 행정적 태도처럼 보인다(이 부분에서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가 연상된다). 

분명 책을 읽고 세미나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암울하게 해석됐는데, 후기를 쓰는 이 순간 이 소설이 매우 희망차게 느껴진다. 결론 부분의 엘리엇의 폭탄발언 때문일까. 그야말로 듣보잡 대반전. 진정 이 소설의 백미다. 가끔은 이러한 황당무계함이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한 아기한테는, 그러니까 나처럼 말예요. 태어날 때부터 이 나라의 큰 덩어리를 소유하게 하고 다른 아기한테는 땡전 한 푼 쥐여 주지 않는다면 그건 매정한 정부라고 생각해요. 한 나라의 정부라면 최소한 모든 아기에게 재물을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해요.   

댓글목록

자연님의 댓글

자연

엘리엇의 자선은 무엇일까란 의문이 들었었는데, 모로님 글 보고
"아! 그렇구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엘리엇의 완전한 상속권을 부여받은 모든 아이들을 ..... 위하여....

모로님의 댓글

모로 댓글의 댓글

단순화의 오류일수도 있습니다 ㅎㅎ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모로님의 후기를 보니, 자본주의와 복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 오신 파에님 말씀처럼 초기 미국의 원형으로의 복귀로도 읽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이렇듯 여러가지 방식의 해석이 가능하니, 참 흥미롭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가능성 속에서도 어떤 한계와 비애가 느껴지는데요.
"엘리엇 앞의 모든 것이 우주의 궁극적인 가장자리 너머에 펼쳐진 무의 세계처럼 검게 변했다."
라는 구절 등에서 그가 말라 비틀어진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성의 부여받은 자손들은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요?
그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 그저 한 순간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 역시 저만의 생각......
각자의 고민과 문제 의식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모로님의 댓글

모로 댓글의 댓글

엘리엇의 명랑성에 비애가 서려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기에 진정 명랑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더군요. 그런 엘리엇을 제5도살장에서 다시 만나 반가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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