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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_0607세미나 발제
아라차 / 2018-06-07 / 조회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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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_<지식의 의식에 관한 강의> 0607세미나 발제_아라차

7강. 1971년 2월 10일 강의 

 

dikazein과 krinein에 따른 진실 발언의 분배

두 사법방식에서 진실 발언의 배치가 다르다. dikazein은 소송 당사자들간의 언명의 대립, 투쟁의 형태로 결정된다. krinein은 재판관이라는 제3의 심급에 권위가 실린다. 이 때 재판관은 어떤 기준을 사용할까?

 

공정한 질서의 요구로서 출현한 헤시오도스의 dikaion

krinein은 법이 없는 곳, 전통에 아무 규정이 없는 곳, 소송인에게 부여된 역할이 더 이상 규칙에 따라 유지될 수 없는 곳에서 작동한다. krinein에서 재판관의 선고를 이끄는 것, 재판관이 맹세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것은 dikaion(정의)이다. <일리아스>나 <오딧세이>에서 dike는 평결/선고, 정의의 행사, 권리와 특권, 소송과 선고의 적법성을 가르킨다. 여기서 dike를 규제하는 것은 themis(관습/규칙)이다.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에서 dikaion은 dike(정의의 여신)과 연결되어 등장한다. 왕이 제대로 판결을 못하면 dike는 대지를 비우고 제우스에게 달려가 복수를 청한다. 잘못된 판결은 첫째로 dike의 부재를 유발하고 dike의 분노는 제우스를 분노를 유발한다. 재판의 담론과 실천은 dike의 매개를 통해 제우스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 잘못된 판결이 dike를 쫓아내기 때문에 인간 실천과 상관관계를 맺는 이상한 여신. 하지만 그녀가 부재하는 바람에 잘못된 판결은 증가한다. 

 

정의와 부정의의 게임에서 이웃의 역할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인과성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정의와 보상, 부정의와 게임에서 양면적인 역할을 맡은 새로운 상대, ‘이웃’이다. 한편으로 이웃이란 부, 풍작 등 경건과 규칙 준수에 주어진 보상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웃은 그 자체로 응보의 원리이다. 보상하고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자도 이웃이지만 불행을 퍼트리는 자도 이웃이다. 이웃이 교환 체계의 필수불가결한 조각인 한에서 그런 것이다. 선물과 보답의 형태를 띤 교환. 불균형(받은 것보다 더 많이 돌려주는 것)은 위엄의 사안이 아니라 계산, 측정의 사안이다. 정의는 이제 신의 막연한 복수 대신 부담금, 부채, 부채 상환의 측정 체계에서 실현된다. 

부채의 공정하고 측정 가능한 질서는 그 역시 측정 가능한 다른 질서, 즉 계절, 시간, 추수, 별, 날의 질서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이웃에게 주지 않으면 우리가 필요할 때 이웃에게 아무것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알맞은 때가 와도 뿌릴 씨앗이 없을 것이고 결국 가난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결국 krinein의 준거점이 되는 dikaion은 다음과 같다.

 - 신들의 분노가 아닌 세계 질서 자체와 연결된 정의

 - 순환과 복원의 시간과 연결된 정의

 - 약속, 지불 기한의 시간, 부채를 갚아야 하는 시기와 연결된 정의

 - 측정과 연결된 정의 : 시간적 순환주기의 측정, 사물의 측정, 사물의 양의 측정, 그리고 사물의 가치의 측정

이처럼 새로운 경제 관계 전체가 dikaion의 출현 기반이 되고 dikaion을 촉구하며 가능케 한다. 

 

시련 재판의 진실에서 진리-지식으로

이제 판결이 공정하려면 시기의 정확한 회귀, 사물의 정확한 측정을 고려하고 그것에 바탕을 둬야 한다. 더 이상 규칙을 기억하거나 themis(규칙/법도)를 암기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맹세-재판(dikazein)에서는 규칙, 관습, 제우스의 법령을 기억 속에 담아두는 것이 중요했었다. 이제 계절과 시기를 기억해야한다. 재산을 측정해둬야 한다. 이 측정이 시행되고 기억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셈이 가능한 기억, 기록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다른 성격에도 주의해야 한다. dikaion kai alethes(공정하고 참된)은 사법 실천 내의 정해진 위치를 크게 넘어선다. 만일 심판의 결정이 측정/척도와 시기를 고려하기 때문에 공정하다면, 그것들을 고려하는 다른 모든 발언들도 공정한 발언이 된다. 나아가 측정/척도와 시기를 고려하는 모든 행위와 사람이 공정하다고 해야 한다. 이에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이제 심판하는 왕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정할 수 있다. 정의란 단지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청취되는 것이다. 공정한 사람은 좋은 선고를 이야기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 즉 정의를 들은 모든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척도와 질서의 참된 말을 들을 줄 알 때 공정할 수 있다면, 거꾸로 사물의 참된 순환, 사물의 실제 크기, 달력의 회귀, 이 모든 것은 사물의 배분에서 정의 자체이다. ‘공정한 세계’라는 테마는 기원전 6세기~5세기의 시나 철학 산문에서 꾸준히 발견된다. dikaion은 재판의 영역을 넘어 일상생활의 규칙이 되고 세계의 배열 방식이 된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바로 dikaion이다. 공정하다는 것은 이제 규칙을 적용하고 진실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하다는 것은 진리를 알기를 잊지 않는 것, 우리가 아는 진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앗시리아와 히타이트의 지식이 가져온 것. 희랍에서 그 지식들의 변형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지식의 형태에서 이 진리란, 즉 krinein의 필요조건이자 준거점이 되는 진리가 무엇일까? 헤시오도스에 따르자면 그것은 날과 날짜의 진리, 다시 말해 어떤 우주론적 지식 전체이다. 그것은 또한 신들과 세계 발생의 진리, 세계의 체계로서 신들의 조직화의 진리이다. 이 두 지식은 잘 알려진 역사적/지리적 위치를 갖는다. 그것들은 유프라테스와 오리엔트의 대제국들에서, 히타이트인들과 앗시리아인들에게서, 바빌론에서 형성되고 발전된다. 거기서 정치권력의 형태와 직접적 관계를 맺으며 구성됐다. 

앗시리아인들은 세 가지 커다란 유형의 지식을 발전시켰다. 날과 별을 관찰하고 주술에 활용하는 지식, 양 및 측정에 관한 전문 지식, 기원에 관한 신화-종교적 지식. 이 세 지식은 국가 기구가 비교적 발전한 사회에서 권력 행사와 연결됐다. dikaion은 바로 이런 지식들에 호소하고 krinein은 이 dikaion에 의거한다.

... 희랍에서 그 지식은 이제 권력에 봉사하는 관리, 서기, 회계원 천문학자의 지식이 아니다. 그 지식은 모든 인간이 정의롭기 위해서, 저마다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지식이다. 지식은 권력 행사에서 정의의 통제로 이동한다. 필연적 수순에 따라 그 지식은 정의/심판 뿐 아니라 공적인 장소에 놓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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