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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공백] 진은영의 시 후기 :: 0729(금) +4
오라클 / 2016-07-31 / 조회 3,437 

본문

▪ 詩人 진은영 

 

1. 시인 진은영 :: 프로필

출생 1970년, 대전광역시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철학학사 / 이화여자대학원 박사

데뷔 2000년 문학과 사회 등단

수상 2013년 제21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2013년 제15회 천상병 시문학상

경력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전임교수

 

진은영(1970년~)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니체와 차이의 철학》이다.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인 최승자가 진은영을 두고 “드디어 나를 정말로 잇는 시인이 나왔다”고 말했다. 한편 시와 정치의 접점을 고민하는 시인으로서 문학을 통한 사회적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2. 시인 진은영 :: 집필작업

시집 _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2003)

     우리는 매일매일 (2008)

   그 머나먼 -2011년 제56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2010)

   훔쳐가는 노래 (2012)

사회 눈먼 자들의 국가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2014)  /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외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2015) /정혜신(의사), 진은영

철학 들뢰즈와 문학-기계 (2002) / 고미숙, 이진경, 진은영 외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2004)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2007)

   코뮨주의 선언 -우정과 기쁨의 정치학 (2007) / 고병권, 이진경, 진은영 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 (2009)

   문학의 아토포스 (2014)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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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왼쪽 귓속에서 온 세상의 개들이 짖었기 때문에

동생 테오가 물어뜯기며 비명을 질렀기 때문에

나는 귀를 잘라버렸다

 

손에 쥔 칼날 끝에서

빨간 버찌가

텅 빈 유화지 위로 떨어진다

 

한 개의 귀만 남았을 때

들을 수 있었다

밤하늘에 얼마나 별이 빛나고

사이프러스 나무 위로 색깔들이 얼마나 메아리치는지

 

왼쪽 귀에서 세계가 지르는 비명을 듣느라

오른쪽 귓속에서 울리는 피의 휘파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커다란 귀를 잘라

바람 소리 요란한 밀밭에 던져버렸다

살점을 뜯으러 까마귀들이 날아들었다

 

두 귀를 다 자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멍청한 표정으로 내 자화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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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詩를 >  <고흐>를 시대의 보편적인 감각과 고흐의 특이적 감각 사이의 불화로 읽는다. <고흐>는 고흐의 자화상으로부터 들려오는 고흐의 자서전이다. 고흐의 빛과 감각은 시대의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고, 그의 작품은 생전에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시대와 불화했다. 

1연 ~ 3연 > 세상과 불화한 (1연) 세상의 온갖 개들이 짖는 소리(보편적 감각, 공유된 양식에 기반한 고흐 작품에 대한 비평가)와 개들에게 물어뜯기며 지르는 테오의 비명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그는 귀를 자른다. (2연) 고흐가 흘린 피가 빨간 버찌가 되어 텅빈 유화지(고흐의 캔버스) 위로 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고흐의 모든 작품은 시대와 불화 속에서 탄생한 고흐가 피로 그린 그림이다. (3연) 귀를 잘라 세상의 보편적 감각-공유된 양식과 절연했을 때, 그는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듣지 못하던 것을 듣게 된다. 밤하늘의 별빛(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과 사이프러스 색깔의 메아리(사이프러스 나무,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 같은!

4연 ~ 6연 > (4연) 사람들은 세계가 지르는 비명(역사적 운명 같은 거대한 소리)을 듣느라, 피의 휘파람(고희의 피,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을 듣지 못한다. (5연) 그래서 고흐는 커다란 귀를 잘라 밀밭의 까마귀들에게 던져버린다. (6연) 고흐는 죽고, 이제 뒤 귀를 잘라 아무것도 들을 줄 모르는 이들이 몰려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표정으로 고흐의 자화상을 본다. 그들은 여전히 고흐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만 그의 명성에만 쏠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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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창백한 달빛에 네가 나의 여윈 팔과 다리를 만져보고 있다

밤이 목초 향기의 커튼을 살짝 들치고 엿보고 있다

달빛 아래 추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빨간 손전등 두개의 빛이

가위처럼 회청색 하늘을 자르고 있다

 

창 전면에 롤스크린이 쳐진 정오의 방처럼

책의 몇 줄이 환해질 때가 있다

창밖을 지나가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여기에 네가 있다 어린 시절의 작은 알코올램프가 있다

늪 위로 쏟아지는 버드나무 노란 꽃가루가 있다

죽은 가지 위에 밤새 우는 것들이 있다

그 울음이 비에 젖은 속옷처럼 온몸에 달라붙을 때가 있다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깨진 나팔의 비명처럼

물결 위를 떠도는 낙하산처럼

투신한 여자의 얼굴 위로 펼쳐진 넓은 치마처럼

집 둘레에 노래가 있다

 

이 詩를 > <있다>를 존재자와 구별되는 존재에 대한 시로 읽는다. ‘이다’와 구별되는 ‘있다’의 개념은, ‘대상=존재자’에 대한 사유와 구별되는 ‘존재’에 대한 사유이다. ‘이다’의 개념이 ‘어떤 특정한 대상으로 존재함’을 말하는 존재자의 상태-대상적 규정성이라면, ‘있다’의 개념은 ‘그저 있다’로만 말할 수 있을 뿐 특정한 대상이나 존재자로 환원할 수 없는 존재이다. 

1연 ~ 3연 > 여기서 시인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자’를 말하고 있다. 1~3연에서 ‘있다’는 ‘어떤 상태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어떤 특정한 대상으로 존재함을 뜻하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이다’로 귀속될 수 있는 것이다.

4연 > 여기서 시인은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지점을 표시한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이때 ‘있다’라는 말은 모든 규정성이 소멸하거나 모든 대상적 의미가 사라지는 지점을 표시한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있다’는 이런 것이다. “여기에 네가 있다.” 흑인인지 백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규정할 수 없는 존재로서 네가 있다. “죽은 가지 위에 밤새우는 것들이 있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밤새우는 것이 있다. 그렇기에 “그 울음이 비에 젖은 속옷처럼 온몸에 달라붙”는 대상도 이유도 알 수 없어 규정할 수 없는 것임에도 어떤 감응을 가지고 나의 온몸에 달라붙을 때가 있다. 이 ‘존재자’의 상태나 대상적 규정성이 사라진 모든 ‘이런 때’ 우리는 비로소 ‘있다=존재’를 사유하게 된다. 

5연 > 여기서 시인은 비로소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이때 ‘있다’는 규정할 수 없는 존재, 대상적 규정을 상실한 채 있다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확인할 수 없는 존재’는 이런 것이다. 더 이상 나팔일 수 없는 깨진 나팔, 더 이상 낙하산이 아닌 물위의 낙하산, 더 이상 누구도 아닌 투신한 여자, 그리고 집 둘레의 노래이다. 특정한 존재자-특정한 대상성-특정한 형태-특정한 기능을 상실했을 때, ‘무엇이 있음’이 아닌 ‘단지 있음’이 드러나게 되고, 우리는 비로소 ‘존재’를 사유하게 된다. 

사족처럼 > 우리는 그의 특정한 형태 혹은 나에 대한 유용성에 이끌려,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선물임을 알게 된다. 그가 어떤 모습이기 때문에 혹은 그가 나에게 어떤 유용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나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즉 그의 존재를 사유하게 되는 것은, 존재자로서 그의 모습이나 그의 유용성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것은 존재를 사유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존재가 드러나는 사건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존재의 존재론’은 이와 같은 것, 이 모든 방식과 사건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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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

 

스위치를 올려주소서

깜깜한 방 속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대신, 왜 그랬을까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밤거리로 나가 무신론자, 

그는 어디로 굴러가는지 모르는

속이 빈 커다란 드럼통을 요란하게 굴렸을까

 

유신론자는 겸손해진다

신이 푸른색 양피지에 적어 

돌돌 만 수수께끼 두루마리를

끝도 없이 자기 앞에 늘어놓을 때

 

그러나 무신론자, 그에게는 다만 즐거운 일

여름이 되면 장미 정원에서

수만 개의 꽃송이가 저절로 피어나듯

수수께끼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으면 되는 일이다

피지 않고 떨어지는 꽃봉오리도 그런대로 좋은 법

 

유신론자는 매일 확인한다

어디에나 똑같이 찍힌 신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돛단배 사과나무와 기린 화산 무지개

수염고래가 뿜어내는 투명한 물줄기에서

잠자리 날개의 은빛 무늬에서

 

그런 관점을 비웃을 틈은 없다

사물의 바닷가에 기기묘묘하게 그려진 모래 그림을 관찰하느라

무신론자, 그는 항상 바쁘니까

순간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잠깐 동안에

한 번에 똑같지 않은 그 기하학적 연속 무늬를

 

그는 어리석다, 유신론자가 보기엔

이미 만들어진 구름다리를 두고

차들이 과속으로 달리는 도로 속으로 들어가니까

노란색 페인트 통을 들고

자신이 지나갈 건널목을 멋대로 그리면서

 

유신론자처럼 무신론자도 죽는다

두 사람은 수줍게 머뭇거리며 나아간다

하느님의 두 손바닥으로 

밤하늘 별로 만들어진 저울 위로

영혼의 무게는 똑같다

사이좋게 먹으려고 두 쪽으로 쪼개 놓은 사과처럼

 

이 詩를 > <무신론자>를 신과 인간,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시로 읽는다.

1연 ~ 2연 :: 신과 무신론자 vs 신과 유신론자 > 무신론자는 깜깜한 밤에 스위치를 켜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대신,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밤거리로 나가 어디로 굴러가는지 모르는 커다란 드럼통을 요란하게 굴리는 자이다. 유신론자는 신이 수수께끼를 적은 푸른색 양피지를 끝도 없이 늘어놓을 때 겸손해지는 자.

3연 ~ 4연 ::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는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 따라서 무신론자는 사물과 관계로 정의되는 존재이다. 무신론자는 여름이 되면 장미정원에서 꽃송이가 피듯, 수수께끼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는 것이 즐거운 자, 피지 않고 떨어지는 꽃봉오리도 그런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자이다. 반면, 유신론자는 신과의 관계로 정의되는 존재이다. 유신론자는 세상의 모든 사물(돛단배 사과나무, 기린 화산 무지개, 수염고래가 뿜어내는 투명한 물줄기)에서 똑같이 찍힌 신의 지문을 세상의 모든 사물에서 확인하는 자이다. 

5연 ~ 6연 ::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무신론자는 유신론자를 비웃을 틈이 없다. 변화하는 사물을 관찰하느라 항상 바쁘기 때문이다. 반면 유신론자가 보기에 무신론자는 어리석다. 무신론자는 만들어진 구름다리를 두고, 차들이 과속으로 달리는 도로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지나갈 건널목을 멋대로 그리기 때문이다. 

7연 :: 하느님-자연에게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는 어떤 존재인가? > 앞에서 나타난 신과 다른 하느님이 등장한다. 신의 존재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를 나누지만(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로 구분될 이유가 없다!), 하느님은 그냥 존재하는 세계 혹은 자연과 동의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스피노자적 신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유신론자나 무신론자는 같은 존재이다. 두 사람 모두 죽으며, 두 사람의 영혼의 무게는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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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로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이 詩를 >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시인 진은영의 개념어 사전으로 읽는다. 일곱 개의 단어는 시인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들일 것이다. 사전은 단어의 의미를 정의 하는 것이다. 시인은 일상적인 단어에 대한 낯설고 특이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여기 각 연들을 연결하는 하면 새로운 내러티브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계열화하여 하나의 또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독자의 것이다!

1연 > 봄은, 놀라서 뒷걸음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는 것.

2연 > 슬픔은, 물에 불은 나무토막 위로 또 비가 내리는 것.

3연 > 자본주의는, 형형색색의 어둠이고 바다 밑 컴컴한 터널. 혼자서 지나갈 수 없는 것

4연 > 문학은, 길을 잃고 흉가에 잠들 때 들리는 개구리 울음

5연 > 시인의 독백은, 부러진 피리로 벽을 치는 것처럼 외로운 것이지만 이마저 없다면 견딜 수 없는 것

6연 > 혁명은, 눈 감을 때나 가로등 밑에서만 보이는 것

7연 > 시는 주소불명의 편지, 그곳에 살지 않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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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사라졌다 

 

위대한 악을 상속 받았던 도둑들은 모두 사라졌다

밤(夜) 속에 가득하던 전갈들도

 

혼자 바닷가를 걷다가

바위와 바위 사이 구멍에 끼인 발

 

부어올라 빠지지 않는,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

 

검은 비닐 봉지조차 가끔은

주황 지느러미가 빛나는 금붕어를 쏟아낸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이런 예언을 듣고,

모든 표정이 사라지는 한밤중에

 

이 詩를 > <모두 사라졌다>를 모든 것이 사라지는 불길한 시간을 감지하는 예언자-시인의 예감으로 읽는다. 세계의 사건들을 가장 먼저 감각하고 가장 먼저 읽어내는 존재로서 시인은 이 불길한 징후들을 지켜보는 예언자이다. 위대한 악을 상속 받았던 도둑들도, 밤(夜) 속에 가득하던 전갈들도 사라지고, 마침내 모든 표정이 사라지는 한밤중을 예언자-시인은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세계에 어떤 의미를 던져야할 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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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랑

 

만일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를 위해 시를 써줄 텐데

 

너는 집에 도착할 텐데

그리하여 네가 발을 씻고

머리와 발가락으로 차가운 두 벽에 닿은 채 잠이 든다면

젖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이 든다면

너의 꿈속으로 사랑에 불타는 중인 드넓은 성채를 보낼 텐데

 

오월의 사과나무꽃 핀 숲, 그 가지들의 겨드랑이를 흔드는 연한 바람을

초콜릿과 박하의 부드러운 망치와 우체통과 기차와

처음 본 시골길을 줄 텐데

갓 뜯은 술병과 팔랑거리는 흰 날개와

몸의 영원한 피크닉을

그 모든 순간을, 모든 사물이 담긴 한 줄의 시를 써줄 텐데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일생이 흘러가는 시를 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얼마나!

너는 좋을 텐데

그녀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큰 빈집이 된 가슴을

혀 위로 검은 촛농이 떨어지는 밤을

밤의 민들레 홀씨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만 날아가는 시들을

네가 쓰지 않아도 좋을 텐데

 

이 詩를 > <시인의 사랑>을 시인의 사랑법으로 읽는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흔한 관계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시인일 때, 시인의 사랑은 어떨까? 시인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한다. 그 남자는 다른 그녀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큰 빈집이 된 가슴을, 혀 위로 검은 촛농이 떨어지는 밤을, 밤의 민들레 홀씨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만 날아가는 시들을 쓰는 사람이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세미나에서 나온 시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을 다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다양한 해석 가운데, 제가 읽은 방식과 연결될 수 있는 것들만 반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 시들에 대한 저의 해석입니다. ^_^

희음님의 댓글

희음 댓글의 댓글

정말, 이 시간의 당번으로서 조곤조곤 짚어 주셨던 오라클 님만의 독자적 독해법을
다시금 조금 더 소상하고 깊이 있게 소개하는 느낌의 후기네요.
다양하게 제시되었던 시선과 입장들이 빠져 있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또 어떤 얘기가 있었더라, 하고 그 시간을 되짚어 오르게 만드는 힘이 있달까. 흐흐.^^
참, <시인의 사랑>을 낭송해 주실 때의 미세하게 떨리고 설레고 아득해 하던
오라클 님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는.^^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오라클님 수고했어요 ~~ 희음님도 수고했어요 ^^
여러분이 던진 그 심오한 나눔들이 다 담기지 않았지만 오라클의 신탁으로 생각하고 얌얌 먹어요 ^^
게다가 시를 후기에 옮겨놓고 그 아래에 적으니까 더 읽기 좋고 빛나고, 다른 방문자들도 좋네요 ~~~

반디님의 댓글

반디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http://blog.naver.com/fireflybu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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