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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거짓자유서> 마지막 부분 발제 0802
삼월 / 2018-08-02 / 조회 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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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죄, 죽어도 죄. 그러니 탱크 되기가 훨씬 쉽다.

  

 

《거짓자유서》 <신약> ~ <후기> 발제

 

고등인들은 원래부터 두꺼운 물건 뒤에 숨어서 살인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옛날에는 비적과 떠돌이를 대비하기 위한 두꺼운 성벽이 있었다. 지금은 철갑옷, 장갑차, 탱크가 있다. ‘민국’과 사유재산을 보장하는 법률도 하나같이 두꺼운 책이다. … 그런데 유독 하등인이 이런 대비를 하면 ‘무책임하다’라는 등의 조소를 받게 된다. … 요컨대 살아도 죄, 죽어도 죄다. 따라서 사람 노릇을 하기란 그야말로 어렵고, 탱크 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무책임한 탱크> 중

 

루쉰에게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중국 땅에서의 삶은 ‘살아도 죄, 죽어도 죄’인 삶이었다. 고등인들이 매국노가 되어 일본에 협력했고, 혁명이라는 명분하에 학살자가 되었다. ‘백성과 비적의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백성들은 고통스럽고 어렵게 살았다.

 

그저 세계적으로 큰 사건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그저 중국에서 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그저 더 이상 무슨 정부라는 게 세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그저 더 이상 위인의 생일과 기일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우리 같은 어린 백성들마저도 하릴없이 영원토록 ‘혐의’를 단 채 계엄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오호라 슬프다, 숨도 못 쉬게 될 판이로다. - <‘다난한 달’>

 

고등인들이 매국노가 되었다고 해서 매국의 역적들에게서 나라를 구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매국노의 가산은 신해혁명 이후에도 두 번이나 몰수되었다가 반환되었다. 정부가 오히려 매국노의 편을 들고 노동자를 향해 설득하다 못해 회초리를 든다.

 

“모름지기 고생이 되더라도 생산에 박차를 가해야 하고…특히 시국의 어려움을 다함께 견디며 노사 간의 진실한 협조를 힘써 도모하고 노사 간의 모든 분규를 해소해야 한다.” “중국 노동자는 외국 노동자만큼 고생스럽지 않다.” - <성쉬안화이와 이치에 맞는 억압> 중 1933년 중국 상하이시 총공회 대표 리융샹의 연설 인용

 

<왕의 교화>에서 루쉰은 국민당 정부가 회족(사실은 위구르족)과 요족을 탄압한 사실을 이야기한다. 인자한 왕의 교화정책은, 일본정부가 중국에 했듯이 요족 마을에 비행기를 보내 폭격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쥐 죽은 듯 구국에나 힘’써야 하는가. 루쉰은 푸이의 사촌제수가 요리사와 도망갔다가 잡혀 법정의 판결로 남편에게 넘겨진 사건을 언급한다. 만주국은 ‘가짜’지만 부권은 ‘가짜’가 아니었다고 비꼰다. 부권은 국가보다도 뿌리 깊게 존재한다. 백성이 구해야 하는 국가의 ‘진짜’ 힘은 노동자와 여성에게 발휘된다. 백성들은 그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국 폭격의 위력을 과시하고, 피해를 축소해서 이야기한다. 루쉰의 말 대로 ‘나태함’ 없이 고된 ‘정신적인’ 승리이다.

 

루쉰은 『자유담』에 실린 글들을 《거짓자유서》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자유’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결코 자유롭지 않았던 그 시기의 글들을 루쉰은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자유담』에 직접 쓴 글과 문단의 반응들을 ‘자질구레한 소문들’이라는 설명으로 함께 엮었다. 일종의 루쉰식 여흥이다. 이유도 딱 루쉰답다. ‘전등이 아직 밝고 모기도 잠시 조용해졌으므로’

 

전등이 밝고 모기도 맥을 못 추는 열대야의 밤에 그 여흥을 더듬는다. 어지럽다. 푹 잠들지 못하는 밤이 오래 계속되었으므로, 모든 것이 혼미하다.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는지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가장 혼미한 부분은 자유라는 말이 주는 무게다. 루쉰이 말하는 자유가 개념상의 절대자유, 입론으로서의 자유는 아닐 것이다. 사변적인 자유보다 그때그때 맞닥뜨린 싸움에 충실한 사람이 루쉰일 거라고 나는 멋대로 믿는다. 자유는 어떤 절대지점이 아니라 매 싸움에서 차지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들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자유의 진지 가운데 있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제국, 자본, 독재 같은 것들을 루쉰이 좋아할 리 없었겠지만, 루쉰의 싸움상대는 그보다는 문단에서 맞닥뜨리는 ‘자질구레한 소문들’이었으리라. 전등이 밝고 모기가 기승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언제고 계속해서 싸우고 상대해주었으리라. 심지어 맑스와 레닌을 질식시키는 ‘독가스를 뿜는 노장’으로 자신을 묘사한 글에, 빈정거림과 함께 빼어나다는 칭찬과 응원까지 덧붙이면서. 그것이 1933년 여름 루쉰이 싸워 얻은 자유이자 여흥이었다. 그리고 나는 2018년 여름 폭염과 싸워 얻은 한 뼘 자유의 증거로 루쉰의 《거짓자유서》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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