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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발제문
소리 / 2018-10-07 / 조회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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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마리아 미즈는 이 책의 서문에서 페미니즘의 주적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라는 전제하에서 시작한다. 자본의 축적 과정은 여성이 자신의 삶과 몸에 대해 갖는 자주성을 파괴하는 것에 기반하며, 끊임없는 자본의 축적과 확장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가부장제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페미니스트의 기본과제로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분석을 하고자 한다. 이를 분석함에 있어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좌파, 사회주의적 운동에서의 젠더이슈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점을 비판하고 그에 따른 역사들을 요약면서 ‘독립성’에 기초한 페미니즘 운동을 제시한다.

1장에서는 먼저 페미니즘의 주요 논제들을 정리하면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던 구여성운동과 신여성운동(1960년대 미국의 운동 중심)에 대한 비교분석을 전개한다. 여기서 나아가 식민주의에 기반한 여성착취 구조의 자본주의까지 나아가면서, 구 여성해방이론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론 틀을 제시한다. 2장에서는 성별 노동분업의 사회적 기원에 대한 추적을, 3장에서는 식민화와 여성의 가정주부화의 역사를 추적한다. 4장에서는 신국제 분업과 여성이 세계시장 체제에서 가장 값싼 생산자이자, 소비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분석하며, 5장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임금노동에 기초하지 않은 생산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연구한다. 6장은 미즈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해방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혁명을 겪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그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본다. 마지막 7장에서는 미래 사회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전망을 하는 장이다.

 

1장 페미니즘이란?

여성해방운동은 생태운동, 대안운동, 평화운동 등 가장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논란이 많다. 특히 여성문제와 남성에 대한 착취에 대해 얘기할 때는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마주해야한다. 우리 사회 속에 있는 여남관계의 진정한 본질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은, 권력놀음과 돈벌이, 욕망이 난무하는 잔혹한 세상 속에서 마지막 남은 평화롭고 조화로운 지대를 파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페미니즘 이슈를 자신의 의식 속에 받아들이게 되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들이 한편으로는 피해자일 뿐 아니라, 이 속박과 억압의 가해자이자 공범으로서 이 체제 내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관계로 가고 싶다면 이제까지 해온 공모행위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는 이 체제 내에서 특권을 가진 남성만이 아니라, 이 체제 내에서 물질적 기반을 두고 있는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미즈는 이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목청을 높이는 것이 분열을 강화시킨다고 말한다.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럴까. 수긍하기 어렵. 남자도 피해자인데 우리 같이 사이좋게 웅앵웅 이런 느낌이군요.)

1960년대 말 신여성운동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신성한 가족에 대한 금기, 침실과 여성의 성경험을 둘러싼 금기를 깨뜨렸다. 이 시기의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적인 문제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의 전환을 했으며, 남성의 지배에 맞서서 여성에 대한 경멸과 학대에 맞서며 ‘자매애’를 경험했다. 이와 동시에 이들은 다른 여성들과의 분열을 경험했다. 제3세계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부르주아적, 서구적 식민주의적 지배와 같은 표현으로 사용되었고, 공식석상의 여성들에게는 점잖지 못한 무리들을 표현하는 지칭이 되었다. 좌파들은 페미니스트가 계급 단결을 방해한다고 비판했고(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는다며/ 한국의 1980년대 학생 운동도 비슷한 양상), 이러한 비판은 여성보다 남성들 사이에서 격렬했다. 그러나 제3세계에서의 여성운동은 점점 조직화되면서 단어에 대한 거부감도 덜해졌고, 이러한 양상은 1979년 방콕에서의 여성문제에 대한 국제 워크숍을 통해 포착되었다. 미즈가 정리한 국제적 여성운동 상황의 특징 5가지이다.

 

1. 60년대 운동 이후 국제적으로 페미니즘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이는 제3세계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제1세계의 운동은 저조하게 나타난다.

2. 공통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제1세계와 제3세계 여성, 도시와 농촌의 여성, 여성활동가와 여성연구자, 가정주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골이 있다.

3. 이러한 구분은 같은 인종과 같은 계급 사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서구운동에서는 레즈비언과 이성애 여성 사이의 구분이 운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4.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과 다른 여성과의 경험을 자신 속에 통합시켜야만 하기 때문에 긴장도가 높으며, 감정적 에너지 소모가 크다. 이는 여성운동이 분파적이고, 자율적으로 조직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5. 이렇게 단결하는 과정 속에서 경험이 많은 여성은 훈계하는 태도로 다른 여성들을 비판하고, 상처를 남기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성, 계급, 인종 혹은 식민주의 등으로 우리사회는 복잡하게 얽혀 있고, 단순한 선의로 풀어갈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더 강력한 ‘자매애’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의 국제적 연대를 위해서라도, 현실적 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성, 인종, 계급의 구분선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해야한다.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측면의 구분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의 다양한 경향을 이름붙이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왔다. 급진적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 부르주아 페미니즘 등등등. 그러나 이렇게 이름 붙이기 하는 것은 이들의 분석과 전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름 붙이기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운동을 주로 밖에서 바라보면서 통속적인 기존의 범주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문제’를 기존의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틀에 맞추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설령 이렇게 이름 붙이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운동들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의 촉발과 분석, 방향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이러한 틀들의 문제점은 기존의 틀은 타당하며, 다만 ‘여성 구성원’의 수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며, 여성 구성원을 충원시키면 해결되는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성문제는 이 모든 이론을 비판하면서 사회전체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갈망하고 있다. 과거의 ‘급진적’, ‘자유주의적’ 꼬리표를 단 여성주의 사조의 여성들은 또 다른 이론적 틀에 자신들의 분석을 대입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들의 심리학과 심리 분석은 이론적 출발점이 되었다. 이는 서구 페미니스트 운동의 개인주의적 경향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이들은 ‘여성문제’에 대한 분석에서 이론적 틀로 기능주의 구조주의 혹은 상호작용론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회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하나의 사회운동이 이론적 진공상태에서 작용할 수는 없다. 구조적 기능주의와 역할이론을 보면 성역할의 변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남녀 문제를 성역할의 정형화와 사회화 문제로 규정함으로서 여성문제는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것으로, 문화적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자본축적과의 관계는 가려지게 된다.

“페미니스트의 반란은 자본주의가 가장 최근의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징후로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체제로서의 가부장제 혹은 가부장적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 모델 전체를 문제로 삼게 되는 것이다. 미즈는 “우리가 적당한 대안 이론들을 아직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비평은 그런 빈틈을 먼저 다루기 시작했고”, 여-남의 관계 문제가 ‘자연’과 ‘식민지’의 문제까지 체계적으로 연결된다는 깨달음의 지점까지 와 있다고 말한다. 여성의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 자연과 식민지의 문제까지 연결되며, 소위 ‘문명화된’ 사회라는 환상을 깨는 근본적인 문제제기 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서구의 80년대 이후의 여성운동

1960년 대의 운동을 통해 낙태의 합법화를 이뤄내고, 제도권 내에서 여성학이 받아들여지게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경제적 위기가 깊어지면서 서구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수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태도 혹은 복지국가적 페미니즘은 막을 내렸다.

제일 먼저 공격 받은 것은 낙태법이었다. 가부장적 가족과 이성간의 사랑, 모성 이데올로기, 여성의 생물학적 운동,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여성의 책임 등 페미니즘에 대한 총체적인 공격이 시도되었다. 학계는 다시 보수적인 사회-생물학적 이론을 내놓고, 여성은 침묵하고, 여성학은 아카데믹한 페미니즘으로 가게 되었다.

‘노동의 유연화’는 여성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불러왔고, 남성 실업자의 증가로 여성은 가정 내에서 물질적, 정신적 평안을 보장을 더 이상 받을 수도 없이 가사노동과 열악한 저임금 고강도 일자리에서의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전 계층에서 여성의 빈곤과 실직율 최고치였고, 새로운 빈민층으로서의 여성이 부상했다. 공적 영역에서 많은 남성들은 똘똘 뭉쳐 여성을 가족과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며, 이들을 특히 페미니스트로 보이는 여성을 몰아내기 위해 힘을 합쳤다. 노동 유연화로 인해 만성적 실업상태의 대다수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들의 입장에서 여성들은 ‘자유’임금 노동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정주부와 같은 존재로 보이지 않고, 측정되지 않는 일을 하는 자들이다. 노동유연화를 두고 한 페미니스트는 노동의 가정주부화라고 부렀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운동이 ‘좋을 때만 인정받는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의 평등과 자유에 대한 민주주의적인 권리도 여성과 관련해서는 여건이 좋을 때만 보장되는 권리라는 것이다. 이런 권리는 보편성을 특징으로 하지만, 자본이 축적을 우선으로 내세우면서 유보시키겠다고 하면 유보되고 만다.

신여성운동은 문화적 측면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문화운동의 경향이 컸다. 이는 미국과 서구 유럽에 있었던 1960년대의 베트남전 반대운동, 민권운동, 블랙파워운동, 미국의 히피운동, 유럽의 학생운동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신 여성운동이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젊은 여성이 문화적 영향을 받아 일어난 운동으로 보였다. 이들은 여성 교육의 강조, 젠더 개념의 도입을 했다. 미즈는 젠더 부분에 대해서 인간의 성과 섹슈얼리티는 항상 사회적이고 역사적이었으며, 성도 젠더만큼이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범주라고 비판한다. 성과 젠더를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함으로서, 사람들 사이의 성적 차이를 해부학적 문제로 혹은 ‘물질적 문제’로 다루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다시 문을 열어주게 되었다. 이제 물질로서의 성은 과학의 대상이 되어, 과학자의 의도에 따라 분해되고 분석되고 조작되며 재구성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정신적 가치가 성에서 분리되어 젠더 범주에 갇히게 되면 지금까지의 성과 섹슈얼리티의 영역을 둘러싸고 있었던 금기들이 쉽게 벗겨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영역은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사냥터가 될 수 있다.

몸의 정치

결국 미즈는 여성해방이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여러 신여성운동을 포함한 여러 여성 운동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은 주로 여성의 몸에 관한 혹은 여성의 몸과 관련된 문제로 시작했다. 구여성운동과 달리 신여성운동은 정치적, 경제적인 공공영역에 대한 투쟁에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역사상 처음으로 사적인 영역에 대한 정치적 논쟁을 진행했다. 가장 친밀하고 개인적이며, 개별화된 경험들을 사회화하고, 정치화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으로 부르주아 사회의 사적, 공적 영역에 대한 구조적 구분에 도전했다.

유럽과 미국의 페미니스트 운동의 첫 단계는 좌파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조직에서 분리해 나와 독자적인 단체를 구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구타 반대 운동을 시작했고, 이는 강간과 성희롱 반대, 미디어 속의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등 여성 전반에 대한 광범한 폭력반대 운동으로 이어졌고, 낙태 금지법에 반대하는 캠페인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여성이 남성 폭력의 잠재적 피해자라는 암울한 사실과 민주주의 국가가 여성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가 말하는 평화는 여성에 대한 일상적이고 직간접적인 공격에 기초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독일의 평화운동에서의 페미니스트는 ‘가부장제의 평화가 여성에게는 전쟁이다.’라는 슬로건을 만들기도 했다.

몸의 정치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초기 여성운동이 희망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교훈을 배웠다. 공공영역에 여성이 참여하고, 참정권을 얻고,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폭력에 기초한 가부장적 여남관계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여성들은 정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게 된다. 이들은 대의적 정치 대신, 학계에서 공부하는 것 대신, 정단과 조직에 속하는 것 대신에 ‘일인칭 정치’를 시작했다. 여성들이 몸의 정치 이슈를 중심으로 일인칭 정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여성들을 정당에 남겨놓고 싶었던 정당들도 몸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좌파 정당도 여성 뒤에서만 있을 수 없게 되면서 이러한 이슈를 말하기 시작했다. 독립적인 그룹들은 일인칭 정치 원칙을 고수했다. 정당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인칭 정치는 대의정치의 거부,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분리에 대한 거부, 사적 영향의 정치화 등의 운동은 후에 녹색당과 같은 여러 신사회운동이 계승했다.

 

여성의 노동

고전주의적 맑스에 따르면 가사노동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이에 정면으로 도전한 코스타의 논문인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붕괴>를 통해 여성의 가사노동은 노동시장에서 노동으로 팔 수 있는 자유임금노동자인 남편의 노동력을 만들어내는 기초이며, 가정주부의 노동이 자본축적 과정의 원천이라고 지적한다. 국가와 법률기구들의 협력으로 여성은 고립된 핵가족에 갇히게 되었고, 그들의 노동은 가려졌다. 코스타는 엥겔스가 처음 서술한 이래 모든 공산주의 정당이 정식화하고 오늘날까지도 견지되고 있는 ‘여성이 해방되려면 사적 가정을 떠나 남성과 함께 임금 노동자로 사회적 노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지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가사노동을 하면서 ‘착취’ 받는 식민지라고 주장했고, 자본주의의 외부자로서의 여성이 혁명적 주체로 역사에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러한 생각에 영향을 받아 <가사노동에 임금을>이라는 캠페인이 발족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가정주부의 고립화와 원자화의 문제와 이것이 자본주의 전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점, 그리고 임금 지불자의 불명으로 인해 사그라들었다. 이 논쟁은 가사노동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973~79년 사이의 가사노동 논쟁에는 자본축적 과정에서 자본이 스치고 가는 무상노동의 영역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 논쟁은 생계형 농민, 소생산자, 주변인 등 주로 여성이고 저개발 국가 국민인 이들의 노동은 포함되지 않은, 자본주의에 대한 유럽중심적인 시각을 뛰어넘지 못했다.

미즈는 페미니스트가 식민지를 만들어내는 구분-공과 사, 정치와 경제, 몸과 마음, 머리와 가슴-을 근본적으로 넘어설 때에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융의 심리학, 인본주의적 심리학, 이번법에 반대하는 동양정신, 도교를 비롯한 다른 동양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뉴에이지 패러다임이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미즈는 페미니즘 운동이 특권의 평등이 아닌 착취와 지배가 없고, 서열이 없으며 중앙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기본적으로 무정부주의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페미니스트의 투쟁의 대상인 바, 이를 넘어서는데 있어 ‘독립성’의 문제는 중요하다. 미즈에게 독립성은 개인의 자기결정 혹은 개인적 선택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주체성과 자유의 영역으로 해석한다. 페미니스트는 독립성 개념을 통해 인간 본성 깊숙이 있는 주체성을 여성들 속에서 주장하고 강화하고 재창조 해야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소비를 위한 선택에의 자유만을 독립성으로 개인주의로 정의하고 있는 바, 곡해된 이러한 개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여성 속에서 인간적 본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미즈에게 독립성 개념은 또한 독자적인 조직을 세우고 주장하면서 발전시키는 투쟁 개념이기도 하다. 여성운동은 지도부도 없고 통합된 이데올로기도 없으며, 중앙도 서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자발적 활동과 집단의 독립성은 운동 내에서 진정으로 인도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역동성과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원칙이다.

 

 

 

<함께 나눠볼 얘기들>

Q. 미즈가 제시한 동양 철학에 영향을 받은 뉴에이지 사상이 식민지,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 뉴에이지 사상 또한 서양의 철학에 대한 반향으로서 동양의 철학을 선택적으로 가감한 것으로서 식민주의적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종교, 치료, 우정, 영성 등이 폭력과 전쟁을 넘어설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Q. 무정부주의 운동과 페미니즘이 같을 수가 있을까?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의 문제일테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무정부주의 운동이라는 생각은 위험하게 들린다. 민주주의 국가, 사회주의 국가를 넘어서는 운동이 무정부주의 운동일 수는 없을 것 같다.

 

Q. 미즈의 독립성의 정의는 “인간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주체성과 자유의 영역으로 해석한다. 자유는 작은 자유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자유 없는 인간은 가장 중요한 인간성과 존엄을 상실하는 것이다. 자유가 없이 인간은 꼭두각시이거나 자유의지와 의식이 없는 유기체, 혹은 유기적 물질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마치 오늘날 생명공학의 모델처럼.” 자유의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이 자유인지는 너무도 모호하다. 또한 자유의지가 필요함은 맞지만, 그 구조에 대한 변화가 아닌 개인적 자유의지만을 강조하는 것이 너무 낙관적이며, 명확히 무엇을 독립성으로 보고 있는지 잘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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