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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또 하나의 설명 +1
지니 / 2018-10-12 / 조회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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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더 고민하시자고 올립니다. ^^

 

푸코의 미학-파르레시아로서의 예술, 다케다 히로나리/김상운, 현실문학(pp.48-51)

 

푸코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기에 걸쳐, 상징적인 회화론을 세 편 발표했다(다만 첫 출간은 모두 1960년대 후반이다). , 우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관한 논고, 이어서 마네의 작품들을 둘러싼 강연, 마지막으로 <이미지의 배반>(<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을 중심으로 한 마그리트론이다. 여기서 푸코가 세 개의 회화론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부각시키려 한 것은 재현의 체제로부터의 회화의 해방이라는 사태이다. 푸코는 바깥의 사유에서 언어가 재현의 왕국을 벗어나고, 그것 자체로부터 출발해서 전개하는사태를 바깥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회화론들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회화가 만들어내는 재현 공간에 침입하고 이것에 균열을 가져오는 바깥의 요소이다.

    

 

우선 말과 사물1장으로 알려진 <시녀들>의 분석에서 푸코는, 이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속에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의 재현을 간파하고 있다. , 푸코에 따르면, 이 타블로 안에는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이 여는 공간의 정의가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타블로의 전방에 있는 하나의 영역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타블로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절대로 접근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타블로를 구성하는 모든 선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장소이다. 푸코는 그것을 타블로의 외부에 있고 본질적인 비가시성 속에 틀어박혀 있는 한에서, 주위의 모든 재현을 질서 짓는 구성의 진정한 중심이라고 말한다. 이 중심이 상징적으로 지고의 것(souverain)”인 까닭은 그것이 타블로에 대해 차지하고 있는 세 종류의 기능 때문이다. , 그것은 모델과 관람자와 화가라는 세 개의 시선이 서로 포개지는 지점, 세 개의 시선의 기능이 서로 섞이는 지점이다.

 

다른 한편, 관념적이고 실재적인 이 비가시의 중심은 세 개의 기능에 대응하는 세 개의 형상으로서, 타블로의 내부에 투영되어 있다. 세 개의 형상이란 곧, 우선 화면 왼쪽에 위치하는 화가이며, 다음으로 회화 오른쪽 문 옆의 방문객(관람자)이며, 마지막으로 중앙의 거울에 보이는 국왕 부부(모델)이다. 여기서 푸코는 중앙의 거울, ‘모델의 형상인 국왕 부부를 비추고 있는 거울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가를 명시하는 것만큼, 그것 이상으로 숨기는효과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국왕 부부라는 모델이 자리 잡고 있는 장소는 또한 화가와 관람자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거울의 반사는 본래, 타블로에 내재적으로는 무관한 것, 즉 화가와 관람자의 시선을 내부에 가져오는 것이지만, 여기서 그들은 타블로의 공간 내부에 이미 현전해 버렸기 때문에, 거울 속에는 깃들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거꾸로 거울 속에 깃든 모델은 타블로의 공간 내부에 현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으로 타블로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푸코에 따르면, 그것은 볼 수 있는 것의 깊은 비가시성이 보는 자의 비가시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 일종의 양립 불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 여기서는 재현하는 자와 재현되는 것의 관계, 재현의 이중적 관계는 필연적으로 단절되어 있으며, 그것이 완전한 형태로 현전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벨라스케스의 모델, 관람자, 화가라는 세 개의 존재를 재현하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거기에는 이 양립 불가능성에서 오는 본질적인 공허가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 이후-그리고 아마 현대까지-기호가, 스스로 표시하는 것과, ‘유사’ressemblance라는 유대, 이 르네상스적 질서에 의해 연결되기를 그치고, 재현의 내부에서, “그것 자체와 놀아나는존재가 됐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가 벨라스케스의 타블로에서 찾아낸 것도 순수한 재현으로서 나타나는 사태에 다름없다. 거기서 또한 르네상스에서 유사의 론도’rondo를 담당했던 거울이 어떤 본질적인 공허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말과 사물>의 1장에서 푸코가 설명해놓은 것을 아주 잘 정리해놓은 글이네요. 자료 감사합니다.
읽어보니 1장의 맥락이 아주 명료해졌어요.
다만, 해석이나 결론에 있어서는 저에게 다르게 보이는 부분들이 조금 있어요.
이건 아마도 해석하는 사람의 차이인 듯 합니다. 제가 '본질적인 공허' 같은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ㅎㅎ
'바깥의 사유'와 관련해서도요.
그리고 이런 해석들 때문에 다음 세미나 시간에 나눌 이야기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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