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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말과 사물: 서문 & 1장 후기 -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의 역사에 대하여
삼월 / 2018-10-23 / 조회 2,158 

본문

 

말과 사물 서문 & 1장 후기

 

보르헤스의 텍스트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에는 사물을 분류하는 두 가지 방식이 등장한다. 존 윌킨스의 방식과 보르헤스가 허구로 만들어낸 ‘어떤 중국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방식. 중국 백과사전에 등장한다는 사물의 분류방식은 존 윌킨스의 분류가 가지는 자의성과 전횡을 상상할 수 없는 범위까지 밀어붙인다. 푸코는 이 중국 백과사전의 분류 방식에서 서구 사유의 한계를 발견한다. 사유의 한계에서 푸코는 무질서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다. 질서정연한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반면에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자 ‘무-질서’의 온상인 헤테로토피아는 우리의 불안을 야기하며, 언어를 손상시킨다. 중국 백과사전의 분류는 ‘공간 없는 사유’를 보여주고, 그 사유에서 ‘장소와 이름의 공통성’을 상실했다는 불안이 야기된다.

 

사물들 사이의 질서는 명철함보다 경험을 통해 정립된다. 질서를 확립하는 데에는 요소들의 체계가 필수이며, 유사성과 차이라는 문턱도 필요하다. 이 경험적 질서는 문화의 일차적 코드를 규정하지만, 문화들은 매개를 통해 경험적 질서의 영향에서 벗어나 언어, 지각, 실천의 코드들로 변화한다. 푸코는 코드화와 반성적 인식 사이에 질서의 존재를 드러내는 중간 영역이 있다고 본다. 점점 더 일관성 있는 체계처럼 보이는 이 이 중간 영역을 푸코는 질서와 질서의 존재 양태에 대한 맨 경험이라 부른다. 질서 확립의 코드와 질서에 관한 성찰 사이에 존재하는 이 경험. 한 시대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의 역사가 드러나는 에피스테메. 푸코는 과거에서 연대기적 시대구분이 아닌 지층을 보고 탐사하려 한다.

 

이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탐사하려는 중요한 지층이 있다. 17세기 중엽 고전주의 시대의 막을 여는 불연속과 19세기 초엽 근대성의 문턱을 가리키는 불연속 사이에 있는 지층. 서구의 18세기와 19세기에 실증성의 체계가 변화한 것을, 푸코는 사물을 인식·분류하고 지식의 대상으로 정립하는 질서의 존재양태가 변화한 불연속으로 본다. 푸코는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고전주의 시대 지식의 일반적 공간, 지식의 전체적 지형과 그 안에 나타나는 사물의 존재 양태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 지층이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는 불연속에서 인간이 지식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푸코는 ‘인간’을 사물의 질서에 생겨난 균열이며, 지식의 영역에서 사물의 질서가 새롭게 배치되면서 모습을 드러낸 형상으로 본다. 근대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의 인식지형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말과 사물》의 1장에는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1656)이 등장한다. 여러 모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이 그림의 특징들 중 그림 내부와 외부의 요소로 두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① 화가의 독특한 시선(그림 내부), ② 고유명사가 없다는 사실(그림 외부). 그림 속 화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관람자를 끌어당긴다. 그 시선에 의해 우리는 그림 속 공간에 연결되지만, 실제로는 모델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에 의해 공간의 원래 주인인 모델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축출된다. 그림 중앙에 있는 거울은 다른 것을 하나도 비추지 않고 두 사람의 형상을 드러냄으로서, 그 사람들이 자리의 원래 주인임을 알려준다. 그림 속 모든 이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의식하고 있으나, 두 사람은 그림 속에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비치는 거울에 무관심하고, 거울 역시 방 안의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 화가의 기교에 의해 변형된 거울은 그림 속 재현의 통일성을 뒤흔들어 버린다.

  

그림 속 인물들의 이름은 지워지거나 무시된다.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 방에서 화가가 모델을 바라보는 그림. 이상하게도 왕과 왕비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으며, 그림 중앙을 차지한 공주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다. 화가와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며, 그림의 제목은 어떤 이름도 지칭하지 않는 ‘시녀들’을 가리키고 있다. 고유명사가 사물과 언어를 고정시킬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온다면, 이 그림 속에서는 그런 착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림 속 인물들의 이름은 열려있고, 화가의 시선에 의해 모델의 자리마저도 관람자에게 열려있다. 왕과 왕비의 자리이면서, 누구도 될 수 있는 관람자의 자리. 화가의 시선은 고유명사의 부재가 가져오는 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한다. 부재는 하나의 효과인 동시에 본질적인 공백을 만들어낸다. 이름이 없다는,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공백. 언어와 사물이 일대일로 조응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은 닮음에서 벗어나 순수 재현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드디어 후기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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