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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화개집: 1925년의 루쉰 (베이징여자사범대학 사건을 중심으로)
삼월 / 2018-10-24 /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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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집》 중 <잡감> ~ <여백 메우기>

 

<잡감>

흔히들 복수가 원수에게 무언가를 되갚아주는 일이며, 그 되갚음이라는 목적이 어느 한 순간에 결과로 달성된다고 여긴다. 루쉰이 말하는 복수는 오히려 정반대의 모양새다. 되갚음이 아니라 무언가를 주지 않는 식. 예를 들면 상대방이 원하는 즐거움을 주지 않는 것. 즐거움을 주지 않기 위해 복수자의 삶은 변한다. 눈물도, 피도 원하지 않으며, 흐느낌과 멸망조차 거절한다. 복수자는 지난날에, 세상에, 육체에 집착하며 분노를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강해지고, 용감해진다. 분노하면 칼날을 뽑아 더 강한 자를 겨눈다. 복수자의 편안한 삶을 누구도 원하지 않으므로, 복수자는 평생 분노해야만 한다. 루쉰의 복수는 결과가 아니라 삶의 새로운 방향, 머무를 수 없는 갈림길에서 꼭 해야만 하는 선택과 같다. 복수를 위해 삶은 새로 시작되고, 원수에게 보은을 다할 때까지 복수는 끝나지 않는다. 1925년 북경여사대 사건을 겪고 있는 루쉰의 <잡감>은 복수하는 자의 다짐으로 시작된다.

 

<베이징 통신>

발을 내딛기 어려운 갈림길에서 루쉰은 자신이 네거리 어귀에 서 있다고 상상하며, 청년들에게 말을 건넨다. 자신과 함께 위험한 길을 가자고는 할 수 없어 ‘남을 위해 남겨놓은 이야기’를 꺼내려한다. 첫째는 생존, 둘째는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는 것, 셋째는 발전하는 것. 이 세 가지를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반항하고 박멸하라! 이 생존이 감옥에서 안전을 도모하는 것처럼 구차한 연명은 아니다. 루쉰은 인류가 향상하기 위해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활동하다가 잘못을 저지르는 일보다, 구차한 삶이 더 잘못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스승>

루쉰은 젊은이에게 스승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의 길을 가는 자는 스승 노릇이나 하고 있지 않다. 이를 깨달은 젊은이들이 ‘믿을 건 자기밖에 없어!’라고 말할 때, 루쉰은 그 말을 다시 고쳐준다. ‘자신도 반드시 믿을 게 못 된다’ 극적인 상황에 놓여있던 적이 없었다면, 스스로를 지나치게 믿으면 안 된다. 자신이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믿음직하다.

젊은이가 황금글자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스승을 꼭 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벗을 구해 힘을 합쳐, 생존할 수 있을 만한 방향을 향하여 함께 나아가는 게 나을 것이다. 그대들은 생명력이 충만하니, 깊은 숲을 만나면 평평한 땅으로 일굴 수 있고, 넓은 들판을 만나면 나무를 심을 수 있으며, 사막을 만나면 우물을 팔 수 있다. 가시덤불로 길이 막힌 낡은 길을 물어 무엇하며, 탁하고 독한 기운으로 가득 찬 똥 같은 스승을 구해 무엇하랴!

 

<문득 생각나는 것(7~9)>

루쉰이 베여징여자사범대학 교장 양인위에 대한 비난을 시작했다. 아마 루쉰은 망설였을 것이다. 알량한 월급쟁이여서가 아니라, 교장 양인위가 여성이고 약자라고 여겼기 때문에. 루쉰은 양인위에게서 강한 자에게는 약한 척을 하고, 약한 자에게 포악하게 구는 모습을 본다. 어찌 루쉰이 이런 일에 끼어들지 않을 수 있을까. 루쉰이 피하려는 건 고상한 일이며, 아무 성과도 남기기 전에 ‘천수를 누리고 안방에서 죽게’ 되는 일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붓을 들지 않는 것은 자신의 신분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걸,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붓을 드는 99%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함이라는 건, 진즉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나 자신은 그러했다. 그래서 지금 쓰려는 것 역시 자신을 위한 편지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루쉰에게 물었다. 하찮은 아Q에게 기관총을 겨눈다는 설정은 과도하지 않느냐고. 고작 학생들이 가슴에 편지를 품고 나온 시위에 동원된 기관총을 보며, 루쉰은 자신의 표현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며 되묻는다. 기관총을 토곡사(아Q의 집) 밖에 설치하지 않으면, 어디에 설치할까요?

 

<‘벽에 부딪힌’ 뒤>

양인위에 반대하던 베이징여자사범대학 자치회 임원들이 제적된 뒤에, 교원들에게 학교 운영을 위한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루쉰은 양인위 교장이 ‘학교는 가정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데서, 자신이 양씨 집안의 가정교사와 다름없었음을 깨달았다. 교장과 학생들이 가족이라면 이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루쉰은 학생들과 싸움을 벌이는 교장을 보며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라고 유추한다. 루쉰이 떨떠름하게 참석한 회의장에는 학교 밖의 호텔에서 공식회의를 연다는 교장의 인쇄물이 놓여 있다. 겸임교원에 불과한 루쉰은 그 공식회의에 참여할 권한이 없다. 루쉰은 자신처럼 ‘벽에 부딪힌’ 학생들을 본다. 그들은 미약한 신음만 냈을 뿐인데도, 신음하자마자 살육당하고 말았다!

 

<나의 ‘본적’과 ‘계파’>

처세의 묘법이라면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자처하면서, 왜 또 나서서 말하려는 걸까? 그건 내가 청말의 동란을 목격했던 사람으로, 태평성세에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설사 수양을 조금 쌓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점잖게 말한다면, 대단히 ‘분수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나에게는 본래 존경받을 만한 점도 없거니와, 남의 존경을 받고 싶지도 않다. 이리해야 남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남에게 내동댕이쳐지지 않을 테니까. 내가 증오하는 것은 너무 많다. 나 자신도 증오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인간 세상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 받은 것이 상반된 보시라면, 그건 내게 도리어 조롱이 되니, 나 자신에 대해 더 큰 모멸을 가하게 만든다. … 어쨌든 ‘뜬소문’은 끝내 나의 입을 틀어막지는 못할 것이다.

 

<문득 생각나는 것(10~11)>

중국 시민이 상하이 조계의 영국 순경에 맞아 죽는 사건이 1925년 5월에 있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면방적공장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다가 사살당한 후 항의하던 시위에서 있었던 일이다. 조계지역의 노동운동은 쉽게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번져갔다. 루쉰은 자신들이 ‘적화되지’ 않았고, 선동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증명하려 애쓰는 중국인들에게 실망을 느낀다.

만약 우리가 영원토록 정의에만 매달려 있다면, 영원토록 무고의 해명에 힘쓰고, 평생 하는 일 없이 바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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