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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모비딕> 세미나(8/3) 후기 +5
희음 / 2016-08-06 / 조회 2,227 

본문

"잔인한 본성이 드러나자 놈들은 터져 나온 창자를 서로 뜯어먹을 뿐만 아니라 유연한 몸을 활처럼 구부려 자기 내장까지 뜯어먹었다. 입으로는 내장을 삼키고 벌어진 상처로는 그 내장을 도로 토해내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고기를 씹는 소리와 스터브가 고기를 씹는 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두 문장은 <모비딕>이라는 텍스트의 진행 순으로 보자면, 역순입니다. 처음 인용 문장이 두 번째 인용 문장에서 열 페이지 이후에나 나오죠. 그런데 저는 이것을 역순으로, 나란히 쓰고 싶었습니다. 서로를 뜯어먹다 자신의 내장을 뜯어먹고, 벌어진 상처로는 그렇게 삼킨 내장을 토해내는 것이, 그리고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의 모습이다, 라는 말을 멜빌이 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 두 문장의 사이를 한참이나 벌려 놓은 걸 보면, 그도 그런 극단적 빗댐이 조심스러웠던 것일까, 싶기도 하고.

 

고래의 체온에 대한 설명 또한 매력적이었습니다. 고래가 체온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두꺼운 담요와도 같은 그의 가죽이나 지방층 덕분이라죠. 폐를 가진 온혈동물임에도 피를 얼지 않게 유지함은 물론, 북극 고래의 경우는 여름철 보르네오 섬에 사는 흑인의 피보다 더 따뜻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멜빌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대들도 이 세상의 일부가 되지 말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라. 적도에서는 시원하게 지내고, 극지에서도 피가 계속 흐르게 하라. 오오, 인간들이여! 성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돔처럼, 그리고 고래처럼, 어떤 계절에도 그대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라."

우리는 하나같이 이 문장 앞에서 들뜨고 또 숙연해졌습니다. 세상과 대중과 다수의 논리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체온을, 목소리를, 걸음걸이를, 영혼을 어디서든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누르는 우리 바깥의 거대한 것 앞에서 우리는 안으로, 안으로 더 거대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쉽게 잊히고 얼마나 포기하기 좋은 것인지. 멜빌도 그리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미덕을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쉽고, 그러면서도 얼마나 가망없는 일인가."하고 말이죠.

 

퀴케그와 연결된 이슈메일의 밧줄, 하나가 실패하면 나머지 하나도 따라 죽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밧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는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도미노적 연결 관계를 슬며시 덧붙여 놓습니다. 

"당신의 돈을 관리해주는 은행이 파산하면 당신은 권총으로 자살한다. 당신의 약제사가 실수로 당신 알약에 독약을 넣으면 당신은 죽는다."

다른 유쾌한 예시들도 많았을 텐데 멜빌은 왜 굳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밧줄에 대한 예만을 들었을까요. 죽음공동체에 관한 예시만을요.그 힌트를 다음 문장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밧줄의 한쪽 끝뿐이라는 사실이다."

멜빌은 위 문장을 쓰면서 냉소하고 있었을까요, 자조(自照)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한쪽 밭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줄 아는 숭고한 존재인 것임을 강변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고래의 머리 앞면부에 대한 묘사에서도 조금 울컥했습니다. 

"따라서 뼈가 없는 이 거대한 덩어리는 말하자면 하나의 혹이다. ~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를 싸고 있는 이것은 그렇게 두껍지는 않지만 뼈가 없는데도 그 단단함이란 만져보지 않은 사람은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가장 힘센 사람이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창이나 작살도 거기에 부딪히면 힘없이 튕겨져 나온다. ~ 그것이 떡갈나무 지레나 쇠지레도 우지끈 부러지게 할 정도의 충격을 완화시켜 배에 아무런 손상도 입히지 않는다."

그것은 굉장히 강합니다. 무엇도 그것을 뚫을 수 없으며, 다만 튕겨져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뚫으려 했던 어떤 것도 상채기 하나 나지 않은 채로 자신의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갑니다. 즉 그것은 강하지만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 어떤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거대한, 발기 상태의 성기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피로 가득하여 딱딱해진 그것. 그것 또한 강하지만 무엇도 상처 입히지 않습니다. 그것 자체로는 말이죠. 여성의 유방도 그럴 것 같습니다. 최적의 상태에 이르면 그것 또한 팽창하거나 강해집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부드러운 곡선만을 가집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안에서 그녀도 그런 말을 합니다.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는 가슴이라서 나는 내 가슴이 좋아,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관계 속에서 우리의 그 부드럽고 강한 것들로 누군가를 상처 입힙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상처 받습니다. 우리는 이따끔씩 그것들의 속성을 돌아보고 들여다보며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쓰다 보니 텍스트 바깥으로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네요.^^)

 

경뇌유가 퍼올려지고 속이 비어 버린 고래 머리에 빠져 수장이 될 뻔한 타슈테고를 퀴퀘그가 산파술로써 구출해낸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흥미로웠던 건, 텅 빈 고래 머리가 아름답고 거대한 '관'이기도 하면서 '자궁'으로도 그려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동시적 비유는 비유의 특이함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를 사유로 나아가게 하는 지점입니다. 그래, 관은 곧 하나의 자궁이기도 하지. 우리는 웅크림으로 시작되어 웅크림으로 끝나지, 하고 중얼거리게 만드는.

 꿀의 밀랍에 갇혀 미라가 되어 죽어간 달콤한 죽음, 플라톤의 머리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 감미로운 죽음에 대한 언급도 멜빌만의 매력 포인트였고요.   

 

 

발제 맡으신 걷는이 님이 발제문 낭독 후엔 내내 말씀이 없으셨는데, 알고 보니 체기 때문이었더군요. 마음이 쓰였습니다. 지금쯤이면 좋아지셨겠죠? 아주 건강한 얼굴로, '그건 좀 오버인 것 같은데?'하고 일침 주시는 걷는이 님을 다음 주엔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인상깊었던 장면을 나열해주시는 정성, 세미나 내용을 복기하고 더 나아간 사유로 정리해주시는 기술에 감동합니다.
희음님의 문장을 따라 그 시간들, 말들과 문장들을 다시 한 번 더 음미해 봅니다.
체온을 유지하라는 말이 이렇게 멋진 말이었다니요.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밧줄의 한쪽 끝 뿐'이라는 말을 멜빌이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그 문장을 내 밧줄을 더 잘 지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다하겠다는 의지와 다짐으로 연결했습니다.
시인은 내 목적대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희음 님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것이 스피노자가 비판하는 목적론적 사고일지라도, 그 안에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인간을 위한 유용함이 있을 겁니다.
우리 나약한 인간들에게 나약한 문학이라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유용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희음님의 댓글

희음 댓글의 댓글

처음 시작할 땐 문장 몇 줄만 인용하고 간단명료하게 쓸 생각이었는데,
쓰다 보니 길어지고 말았네요;; 그게 모비딕의 힘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삼월 님의 말씀 대로 한쪽 밧줄일 뿐이라도 내 손 안에 그것이 있으니 그것은 나의 것.
나의 것, 나의 주체성으로, 그 주체성이란 게 단지 환상일 뿐이라도 그 지리멸렬하고도 매혹적인 환상에 기대어
우리는 이 밤을, 이 어둠과 열대야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야겠지요.
무언가 말할 때마다, 쓸 때마다 끄덕여 주고 '알아봐' 주고 마음과 말을 얹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거
작지만 깊은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누어야지, 갚아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요.^^

baume님의 댓글

baume

거대한 흰 고래  한마리  금방이라도 바다 한가운데로 솟아 오를 듯  긴장감이 맴도는 고요한  동해에서
자신이 마치, 고래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피쿼드'호의 선원들처럼 바다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데
바다 밑으로 고래가 떼를 지어 지나가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질 뻔~~~ 했어요.
모비딕에 감정이입 제대로 되었나 봅니다.

"....고래처럼. 어떤 계절에도 그대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라."  멜빌의 말처럼 가망이 없는 줄 알면서도
붙잡아야 되는 것들은 놓지 말고 꽉 붙잡고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게 해 주는 멋진 문장입니다.

희음님의 댓글

희음 댓글의 댓글

Baume 님은 누구신가요, 걷는이 님, 자연 님, 에스텔 님, 토라진 님, 삼월 님 중에 누군가가 변신술을 부리는 것 같긴 한데
그 중 뉘신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아님 혹 전혀 다른 제3의 인물?^^;;
동해에 계신 건가요? 동해에 계시건 안 계시건, 동해와 거대한 흰 고래의 조합을 떠올리셨다니,
너무 반가워요. 동해에 모비딕이 나타난다면, 그런 소문이라도 들린다면 저 또한 포경선에 몰래 숨어들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책 몇 권과 옷 몇 벌과 빈 갱지 다발과 연필을 들고 포경선의 지하 선실에 숨었다가
선원들이 잠든 밤이면 갑판에 올라 바다와 달을 보는, 낭만적인 나날들에 대한 상상...
그러다 어느 날엔 망 보는 게으른 사색가, 이슈메일과 눈이 마추질지도 모르겠군요.
그와 깊은 친구가 될 수 있으려나. 아, 안 되겠다. 그는 퀴케그에게 이미 너무 많은 마음이 뺏겨있으니.ㅎㅎ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요즘 자연님이 변신술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ㅎㅎ
저도 자연님 따라 푸른 동해의 바다를 떠올려봅니다.
다음 주 발제라 흐뭇하게 책장 덮고 발제문 쓰러 컴퓨터 켰다가 여기부터 들렀는데
여기서도 다시 흠뻑 바다의 기운에 취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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