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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말과 사물: 6장 교환하기 발제 (1122)
삼월 / 2018-11-22 / 조회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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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의 분석


고전주의 시대에는 생명과학과 문헌학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경제학도 없다. 다만 우리에게도 친숙한 관념들인 가치, 가격, 무역, 유통, 금리, 이자의 관념들이 있었다. 고전주의 시대에 ‘경제학’의 토대이자 대상인 이 영역은 부의 영역이다. 푸코는 이후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이 영역을 회고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18세기에 부의 영역에서 중요한 구별들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화폐가 협약의 성격을 갖게 되고, 교환 가격의 이론과 고유 가치의 이론을 구별하는 작업이 시작되며, ‘가치의 역설’이 간파되고, 효용 이론에 가치가 결부되기 시작하고, 상업의 발전으로 인한 가격 상승의 중요성이 이해되고, 생산의 메커니즘이 분석되기 시작했다. 중농주의자들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17~18세기에 화폐, 가격, 가치, 유통, 시장의 개념은 인식론적 배치의 일부로 사유되었다. 부의 분석과 정치경제학의 관계는 일반문법과 문헌학의 관계, 자연사와 생물학의 관계와 같다. 그러나 부의 분석은 일반 문법이나 자연사와 동일한 굴곡이나 리듬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화폐, 상업, 교환에 관한 성찰이 실천과 제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의 토대는 단 하나의 기본 지식에 있다. 푸코가 여러 번 강조했듯이 에피스테메는 특정한 시기 모든 지식의 가능 조건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2 화폐와 물가


16세기에 경제 사상은 가격의 문제와 화폐 물질의 문제에 한정되어 있었다. 금속이 부의 기호이자 실질적인 표지였으므로, 두 가지 계열의 문제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부의 기호는 귀중한 것이어야 가격을 나타낼 수 있었고, 희귀한데다 특성이 안정적이어야 했다. 여기서 가격의 문제와 화폐의 성격 사이의 상관관계가 유래한다. 상품들 사이의 공통된 척도, 교환 메커니즘에서의 대체물이라는 화폐의 두 기능은 이런 화폐의 물질적 실체에 근거한다. 화폐를 정확한 척도로 귀착시키려면 주화의 명목가치가 기준으로 선택되고 각 주화로 구체화된 금속의 양과 일치해야 한다. 이때 화폐는 계량가치 이상의 어떤 의미도 갖지 않게 되고, 그 무게를 명목가치로 갖게 될 것이다. 화폐가 지니는 기호, 즉 상정된 가치는 그저 화폐가 구성하는 척도의 투명한 표지가 된다.

 

화폐-기호에 고유한 몇몇 현상들이 드러나면서 화폐-기호가 실행하는 척도로서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위태롭게 했다. 먼저 금속 함유량이 많은 주화가 거래에 사용되지 않으며 모습을 감추는 반면, 나쁜 화폐일수록 많이 유통된다. 이 때문에 화폐는 모든 등가물의 절대 기준이 아니라 공급에 따라 교환 역량이 변하고 교환 시 가치도 변하는 하나의 상품처럼 보였다. 16세기 동안 가격 상승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화폐도 가격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화폐도 다른 상품처럼 가격이 변동되는데, 신대륙에서 대량의 금, 은이 유입되자 화폐의 가치는 떨어졌다. 르네상스 시기 화폐에 관한 성찰과 실천을 지배한 것은 언어나 자연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사성의 체계였다.

 

3 중상주의


고전주의적 사유에서 부의 영역이 성찰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16세기에 확립된 지형이 바뀌어야 했다. 17세기에도 귀금속은 화폐로 쓰이면서 ① 값이 나간다, ② 귀중하다, ③값이 나가는 것과 교환이 가능하다는 화폐의 세 가지 속성을 증명했다. 16세기까지는 귀중함이 나머지 속성의 근거가 되었으나, 17세기부터는 교환의 기능이 다른 두 속성의 근거가 되었다. 이 전도현상은 ‘중상주의’라는 성찰과 실천의 소산이었다. 화폐를 부의 재현 및 분석의 수단이 되게 하고, 부를 화폐가 표시하는 내용으로 만드는 의도적인 연관성이 ‘중상주의’로 인해 처음 확립된다.

 

중상주의가 부를 화폐로 환산한다는 생각은 검토가 필요하다. 푸코가 보기에 세계에 실재하는 사물 중에서 중상주의가 ‘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재현가능성을 통해 욕망의 대상이 되는 모든 물건이다. 주화를 만드는 금속보다는 필요성·유용성 혹은 쾌락이나 희소성이 두드러진 물건이다. 금과 은의 유용성과 희소성은 주화가 됨으로서 부여받는 것이다. 화폐의 가치는 재료가 아니라 거기에 새겨진 군주의 초상이나 표지라는 형태에서 기인한다. 16세기의 관계는 뒤집혔고, 화폐는 순수한 기호로서의 기능 때문에 가치를 부여받는다. 물건의 가치는 이제 금속에서 생겨나지 않으며, 가치에 대한 추정은 인간의 판단과 평가하는 능력에서 유래한다. 우리가 부를 평가하기 때문에 부는 부가 된다.

 

많은 나라에서 금과 은이 화폐로 쓰이는 이유는 금과 은이 가진 무한한 재현 역량의 완전성에 있다. 부에 대한 화폐의 관계는 이처럼 자의적이지만, 어떤 물품이 화폐의 구실을 하려면 재현의 역량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화폐가 재현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화폐를 귀중하게 만드는 속성이 보여야 하고, 화폐는 그 보편적인 기호를 통해 희귀하며 편중된 상품이 된다. 화폐는 그 자체로 부이지 않고서는 부를 표시할 수 없다. 그러나 재현은 표시되어야 기호가 되고, 화폐는 기호이기 때문에 부가 된다. 중상주의자들은 교환과정에서 금속이 부를 옮겨가게 하기 위해 무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금속화폐가 재현의 기능을 실현하면서 상품의 이동, 원료의 소비, 보수의 지급을 통해 실질적인 부가 된다고 믿었다. 부와 금속 화폐 사이의 관계는 유통과 교환 속에서 확립되었다. 중상주의는 재현의 분석이라는 방침에 맞춰 물가와 화폐에 관해 성찰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면서, ‘부’의 영역을 솟아오르게 했다.

 

4 담보와 가격


중상주의자들의 예견과 달리 17세기 말에 이르면 화폐로 주조된 금속이 매우 희귀해져, 상업의 퇴보, 물가의 하락, 채무와 지대를 내기 어려워지는 상황, 토지의 가치 하락 등이 초래된다. 1715년까지 통화량 증가를 위한 평가절하와 지폐의 출현 등이 연이어 나타난다. 독특한 배치에 의해 화폐는 담보로 규정된다. 화폐는 공동의 동의를 얻은 공인된 증표이며 허구로서 동일한 양의 상품이나 등가물로 교환될 수 있는 담보이다. 화폐는 확실한 기억, 이중화된 재현, 연기된 교환이다. 화폐-담보 이론은 화폐에 관한 모든 성찰을 가능하게 하였다. 화폐는 외부의 가치에 의해 보증되는 상품 교환의 ‘수단’이고, 가격을 통해 부의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자 ‘목적’이다. 어떤 식으로든 화폐는 부에 대한 비례관계와 부를 유통하게 하는 힘 덕분에 물건의 가격을 결정하게 해 준다.

 

화폐는 담보로서 어떤 부를 가리키면서, 부의 가치를 확정한다. 그러나 가격 체계는 화폐의 양이나 상품의 양과 함께 변한다. 화폐가 갖는 재현 및 분석의 힘이 통화량과 부의 양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상주의자들에게 공정가격은 없다. 어느 상품도 대가로 지불해야 할 화폐의 양을 가리키는 본질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상주의자들은 화폐가 빠르게 유통될수록 더 많은 부를 나타낸다고 믿었는데, 그 유통의 주기를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로 농작물의 수확 주기를 꼽았다. 농작물의 수확주기 1년을 기준으로 인구수를 감안한 필요통화량이 결정되었다. 통화량을 알면 물가는 ‘정당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조절된다. 이에 따라 화폐량의 분할을 분석하는 ‘도표’가 만들어지게 된다. 모든 부는 직·간접적으로 토지의 산물에서 비롯되므로 계산은 토지의 산물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런 계산은 고립된 국가를 전제로 할 때만 정확하다.

 

물가가 높지 않은 나라에는 외국의 돈이 유입되어 금속이 양이 증가한다. 이 경우 국가는 부유해지며, 함대와 군대를 통한 유지와 정복이 가능해져 더욱 부유해질 수 있다. 화폐는 물가를 상승시키고 금속은 점차 사라지며, 국가는 다시 가난해진다. 인구와 통화는 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므로, 정책은 인구와 통화의 대립적인 동향을 조화롭게 엮으려고 애써야 한다. 중상주의자들의 이런 분석은 인간 활동의 영역에 진보의 관념을 도입한다. 나아가 기호와 재현의 작용에 진보의 가능조건을 규정하는 시간적 지표도 덧붙인다. 이 지표는 질서에 관한 이론의 다른 영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고전주의적 사유에서 이해되는 화폐는 재현의 역량이 시간에 따라 내부에서 변화해야만 부를 재현할 수 있다. 부의 분석은 ‘변동을 결정하는’ 경향에 관심을 갖는다.

 

5 가치의 형성


·화폐와 거래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교환 속에서 가격은 물건을 어떻게 특징지을까? 화폐는 부와 관련하여 기호 및 지칭의 체계를 어떻게 확립할 수 있을까? 왜 모두 물건을 교환하려고 하는가? 가치의 이론은 부가 어떤 메커니즘에 따라 상호 재현되는가를 아는 게 아니라 다음의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 욕망과 필요의 대상은 재현되게 마련인가? 물건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왜 물건에 대해 이런저런 가치를 갖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고전주의적 사유의 관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것은 교환과정에서 어떤 것을 대신할 수 있음을 말한다. 교환은 겉보기에만 단순한 현상이다. 물물교환은 각각 상대방이 보유한 가치를 인정해야 가능해지므로, 이중의 양도와 이중의 획득이 가능해지려면 고유한 가치가 있는 교환 가능한 물건을 각자가 사전에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가치가 있어야 교환이 가능하지만 가치는 재현의 내부, 즉 교환 가능성 내에서만 실재할 뿐이다. 여기서 가치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나타난다. ① 교환행위 자체에 입각하여 가치를 분석하는 것, ② 가치를 교환이 일어나기 위한 기본조건으로 분석하는 것. 경제의 영역에서도 문법처럼 별개의 분석방식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학은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두 가지 해석이 동시적으로 가능한 단 하나의 이론적 선분만을 인정한다. ① 욕구의 대상, 유용한 물건의 교환에 입각하여 가치를 분석, ② 교환되어 가치를 규정하게 되는 대상의 형성과 탄생, 즉 자연의 풍요로움에 입각하여 가치를 분석. 이 두 가지 견해의 차이가 ‘심리 이론’(공리주의)과 중농주의 이론의 분기점이다. 중농주의자들은 가치와 부가 있으려면 교환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환의 목적은 배분이고, 향유와 소비이다. 거래는 물건의 운반, 보존, 변형, 판매에 따르는 비용을 유발하므로, 재화가 부로 변하려면 재화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중농주의자들은 거래 자체를 상업에 도움이 되는 중개활동으로 간주하는 일이 잘못된 생각이라 지적한다.

 

가치를 형성한다는 것은 재화를 희생하여 다른 것과 교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화가 고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업은 생산에 의한 가치의 증가가 생산자의 생계와 동등하지 않은 유일한 영역인데, 이는 어떤 보수도 필요로 하지 않는 비가시적 생산자(신 혹은 자연) 때문이다. 농업 생산을 통해 형성된 가치가 모든 재화에서 선취될 것이다. 중농주의자들은 농업노동보다 지대에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중요성을 부여했다. 자연이 마련해주는 재화의 양을 나타내는 것이 지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재화를 가치나 부로 변하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지대이다. 중농주의자들의 경제계획 및 정치 강령은 당연히 토지 경작자의 임금이 아닌 농산물 가격의 상승, 지대 자체에 대한 세금 징수, 독점 가격과 모든 상업적 특권 철폐, 토지에 대한 투자 활동을 포함하게 된다.

 

6 유용성


중농주의자들과 그들을 반대하는 공리주의자들은 사실상 동일한 이론적 선분을 반대의 방향으로 통과한다. 중농주의자들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비용으로 재화가 교환 체계 안에서 가치로 바뀌는가를, 공리주의자들은 어떤 조건에서 가치에 대한 판단이 교환 체계 안에서 가격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중농주의자들의 분석과 공리주의자들의 분석은 대체로 유사하고 때로는 상호보완적이다. 물건의 가치는 유용성에 근거하며 이 가치는 개별적이므로 절대적이다. 동시에 인간의 욕구나 욕망, 필요와 함께 변하므로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또 교환은 그 자체로 유용성을 창출한다.

 

여기서 유용성이 창출되는 세 가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① 각자의 잉여분은 양과 질의 측면에서 다른 사람의 필요에 부합하므로, 유용성과 가격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② 한 사람의 여분이 다른 사람의 필요에 충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가격은 이 남겨놓은 부분으로 인해 발생한다. ③ 누구에게나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불필요하지 않으며, 결핍상태는 일반적이고 소유물의 각 부분은 부가 된다. 결국 동등성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 교환되는 것은 불균등이다. 이러한 분석은 가치의 교환과 교차를 보여준다. 교환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한다. ① 교환되지 않으면 유용성이 미약한 물건을 유용한 것으로 만든다. 이로부터 사치품의 중요성이 유래하고, 부의 관점에서는 필요, 안락, 쾌감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② 교환은 ‘평가’와 관련된 새로운 유형의 가치를 생겨나게 한다. 교환은 모든 물건에 가격을 부여하고, 그럼으로써 각 물건의 가격을 낮춘다.

 

여기에서 중농주의자들과 그들의 반대자들의 이론적 요소가 동일함이 드러난다. 모든 부는 토지에서 생겨나고, 물건의 가치는 교환과 관련되어 있으며, 화폐는 유통되고 있는 부의 재현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기본명제들의 핵심은 공통되고, 이론적 선분들은 각각 역순으로 배치된다. ‘공리주의자들’은 교환 현상의 분절을 토대로 물건에 대한 가치의 귀속을 정당화하고, 중농주의자들은 부의 실재로 가치의 점진적인 마름질을 설명한다. 어느 경우이건 가치의 이론은 자연사에서 구조의 이론처럼 귀속의 계기와 분절의 계기를 서로 연결한다. 푸코의 관심은 각각의 인물들을 고려하지 않고 ‘중농주의적인’ 지식과 ‘공리주의적인’ 지식을 일관성 있는 동시적 형태로 사유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시작한 조건을 규정하는 데 있다.

 

7 일람표


푸코는 부의 분석이 자연사 및 일반 문법과 동일한 배치를 따른다고 거듭 주장한다. 부의 영역에서는 사물의 성질 및 인간의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변이가 관건이다. 부는 인간에 의해 창출되고 증가하며 변모하는 기호이고, 부의 이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와 연계된다. 언어와 자연사, 부가 존재하려면, 재현들의 연쇄, 존재물들의 부단한 평면, 자연의 확산이 여전히 요구된다. 모든 것은 고전주의 시대 에피스테메가 띠는 전체적인 지형의 일부분을 이룬다. 경험성의 정돈은 고전주의적 사유를 특징짓는 존재론과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고전주의적 사유는 존재가 단절 없이 재현에 주어진다는 존재론의 내부에, 스스로 존재의 연속을 풀어놓는 재현의 내부에 애초부터 자리한다.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가 형이상학적으로 유력했던 바로 거기에서 과학적으로 유력한 계기가 성립되었고, 고전주의가 인식론적 지배력을 가장 견고하게 확립한 거기에서 철학의 공간이 대두했다. 이것이 서양의 에피스테메 전체에서 18세기 말에 일어난 변동의 특징이다.

 

8 욕망과 재현


고전주의 시대의 부, 자연, 언어는 일반적인 배치에 입각하여 사유되는데, 이는 바로 재현의 존재방식이다. 지식의 역사는 지식과 동시대적인 것에 입각해서만 서술될 수 있고, 시간 속에서 형성된 조건과 선험적 여건의 견지에서만 서술될 수 있을 뿐이다. 재현의 분석은 모든 경험 영역에서 결정적인 가치를 갖는다. 고전주의적 질서의 체계 전체, 사물들의 동일성 체계에 의해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광범위한 탁시노미아 전체는 재현이 스스로 재현될 때 재현에 의해 자기 내부에 열리는 공간에서 전개된다. 거기에 존재 및 동일자의 장소가 있다. 언어는 말의 재현이고, 자연은 존재물의 재현이며, 욕구는 필요한 것의 재현일 뿐이다. 고전주의적 사유의 종언은 재현의 쇠퇴, 즉 언어, 생물, 욕구가 재현으로부터 해방되는 사태와 더불어 일어나게 된다. 고전주의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였다면, 고전주의의 종언은 사드와 함께 온다. 사드의 작중인물들은 돈키호테가 했던 재현들을 반복하지만, 이 재현은 이제 재현의 한계를 강타하는 욕망의 모호하고 반복적인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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