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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라캉] <성> 금요일 후기(8/5) +1
선우 / 2016-08-07 / 조회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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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가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습니다.

이 책이 앞으로 2주면 끝나는데, 프로이트의 다른 책들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나오고 있는 정신의학과 정신분석의 관계를 프로이트는 해부학과 조직학의 관계로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부학은 조직과 기본 세포들로 구성된 ‘전체’ 조직들의 구성에 대한 탐구이고, 조직학은 이보다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조직, 기관 그 자체의 형태들을 탐구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병원에 가면, ‘특정’ 부위의 암이 의심될 때 그 조직을 검사하지요. 간 조직 검사, 갑상선 조직 검사. 그렇다면 해부학은 인간의 신체 ‘전체’에 대한 청사진이겠지요? 정신의학은 망상을 유전과 기질로 설명하고요, 정신분석은 그 개인의 구체적, 심리적 체험에 방점을 둡니다. 정신의학이 좀 더 큰 개념, 넓은 범위를 가리키고, 정신분석은 개별적 세부적입니다. 정신의학이 나중에 정신분석을 자신들의 학문 안에 받아들였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습니다.

 

“탁월하게 퇴화된” 이라는 모순 형용이 생기게 된 이유가 중요합니다. 이 모순 형용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정신의학이 정신 질환과 그 사람의 인격을 분리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질병이 갖는 비정상성은 결코 그 사람 인격 전체의 비정상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에도 정신의학은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을 비정상인으로 낙인을 찍고, 치료라는 명목으로 감금을 감행합니다.

 

히스테리와 강박신경증의 차이를 이번에 보다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신체’ 증상 여부입니다. 히스테리는 무의식적 ‘사고’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발작, 경기, 마비, 구토 등. 강박신경증은 무의식적 ‘사고’가 변형되어 다른 강박적 ‘사고’(신체 증상이 아니고요)로 대체된 것입니다. 따라서 강박신경증은 사고 대 사고 이므로 그 무의식을 의식으로 일깨워 대체된 증상 행동을 멈추게 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히스테리인 경우에는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에 무의식적 사고에 대한 기억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기억이 너무 많이 상실된 것이죠. 그래서 그 무의식적 사고를 의식화하는 것이 강박신경증의 경우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대개 히스테리는 성적 욕구의 불만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환자 모두가 그랬고, 다른 분석 대상으로도 충분히 일반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표현을 하는데요, 비록 특별한 신체 증상이 없더라도 흔히 보이는 그 ‘까칠함’을 히스테리라 명명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발작’은 성적 흥분을 나타내는 것인데요, 아, 이 부분 제가 놓쳤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푸코의 <비정상인> 읽을 때, 신들린 여자의 경련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경련이 어쨌다구?? 하며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이 부분을 성적흥분, 오르가즘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에, 아~하!! 하며 그 단락이 이해가 됐습니다. ㅎㅎ ‘히스테리성 간질’이라고 정신의학이 명명하고 있습니다.

히스테리 부분에서 제 맘에 여전히 이런 의문이 있었습니다. 비혼, 사별, 이혼으로 인한 싱글 여성들이 정말로 성관계를 원하는 것일까? 그 욕구 불만인걸까? 사별하신 한 여성분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사내가 필요한 게 아니고, 그냥 사람이 필요하다고. 함께 밥 먹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일상의 관계를 맺을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집으로 오는 길 유택님과의 수다를 통해 이 부분도 이해를 했는데요. 직접적인 성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잠자기 전 안아주는 것, 뽀뽀하는 것, 가벼운 스킨쉽 이 모든 것도 성적 욕구가 분명한 거라고. 사별 여성이 다른 여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필요로 하는 건 그런거라고. 지난 시간 성과 sex 구분했잖아요? 아, 그러고보면 정말 성적인 욕망 맞는 것 같습니다. 유택님 고맙습니다. 저 완전 이해했잖아요.^^

 

정수샘이 목사님으로 빙의하신 순간 있었지요.^^ 영성의 역사를 살펴보는 푸코를 언급할 때였는데요. 영성이란 다름 아니라 “주체의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앎”입니다. 신에 대한 앎이 그 주체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지요. 신을 닮아가는 삶으로 자신의 삶을 변형시켜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바로 그 신에 대한 앎입니다. 정신분석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철학적 치유, 철학적 앎의 전통의 연장선 속에 있는 것이라는 얘기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참된 앎이 너를 치유하리라”는 이미 고대 소크라테스 철학 전통 안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종교, 철학, 치료 집단이었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플라톤에게 있어서도 철학은, 앎은 곧 치유 행위였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악덕도 무지의 소산이었습니다. 앎과 실천은 하나였고, 잘못 행하는 것은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이것이 바뀌지요. 코기토의 순간은 앎이 실천과 분리되고 인식론으로만 격하되는 순간입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증상은 무의식의 대체물이다. 그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면 증상은 사라진다. 치료,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앎이, 인식이 치유를 가져온다. 그렇네요. 이렇게 정신분석은 철학적 치유의 전통 안에 자기 자리를 잡는군요. 플라톤 철학의 대중 버전인 기독교의 영향 안에 또한 있는 것도 당연한 것이구요. 그래서 정신분석가는 가톨릭 사제의 권위를 입고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주로 남자들에게서 많이 일어나는 강박신경증 얘기도 재미있었지요. 그 많은 소설들과 드라마들이 계속 되풀이해서 보여주는 현상.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숭배 ㅎㅎ 아, 그게 그런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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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카라차님의 댓글

쿠카라차

ㅎ 음성지원되는 듯한 생생한 후기 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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