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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민중의 세계사> 8/10 발제문 (산업혁명, 마르크스주의)
삼월 / 2016-08-08 / 조회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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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뒤집힌 세계 (하)

 

 

5. 산업혁명

 

18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류의 생산방식은 1만 년 전 수렵-채취사회 이후로 가장 급변했다. 생산방식의 변화는 기계와 철의 제련 등 기술의 변화, 그리고 증기엔진과 같은 동력원의 변화와 같은 혁신을 포함하고 있었다. 레일과 증기엔진, 기차는 인류의 이동 속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인클로저로 인해 농업에서는 소작농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농장이나 다른 신규산업의 임금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새로운 계급

노동환경과 생활환경이 변했고,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었다. 1830년대 영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도시화된 사회였다. 저임금노동에 바탕을 두는 소규모산업이 주로 성장했고, 영국의 산업혁명은 처음에 섬유산업과 광업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섬유산업은 공장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노동을 이용했고, 농촌지역 베틀노동자들의 선대제 방식 노동에 기대있었다. 현금거래가 늘어날수록 자영업 베틀직조공들의 역할은 공장으로 넘어갔다.

경제사가들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해 산업노동자로 살아가게 되면서 왜 생활수준이 나빠졌는가에 대해 오래 논쟁해왔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이주하지만 도시에서 원하는 특정기술을 보유한 사람은 많지 않다. 산업사회의 팽창과 수축으로 인한 불황은 노동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이들을 도시의 ‘극빈층’으로 만들었다. 도시의 노동력들이 창출한 부는 생산수단 소유자들에게 돌아갔고, 이 소유자들의 고민은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 노동 통제를 위해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새로운 격언이 되었고, 하루의 대부분을 밀폐된 공간에서 일만 하면서 보내는 채로 인간 본성 자체가 바뀌어야 했다.

유산계급은 점점 더 ‘근검절약 습관’을 강조하면서 ‘나태와 불복종’을 경계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노동하지 않고 얻는 소득에 대한 혐오를 만들었다. 산업화는 노동자들의 물질적 삶뿐 아니라 사고방식도 바꿔놓았다. 도시에서 노동자들은 농촌과 달리 빈곤과 함께 외로움과 절망감까지 떠안았다. 그러나 같은 고민을 하면서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새로운 계급 공동체의식이 형성되도록 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선조들과 달리 읽기와 쓰기에 훨씬 능숙하다는 사실도도 이점이 되었다.

노동의 새로운 세계는 가족형태도 새롭게 만들었고, 여성의 지위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1차 산업혁명 당시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공장에서 끔찍하게 혹사당했지만, 여성이 돈을 벌게 되면서 가족이나 남성에 대해 어느 정도 독립된 지위를 얻게 되기도 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내에서 여성의 모습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주체와 객체

새로운 산업노동계급은 맞서 싸우는 힘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작업장에서 비슷한 일을 함께 하는 노동형태는 더 큰 저항의 잠재력으로 이어졌다. 이 저항은 기존사회에 반대하는 사상이 자라날 토양이었다. 1790년대 운동의 후예인 런던의 급진적 직공들, 기계도입으로 임금이 깎인 스타킹 제조공들이 주도한 ‘러다이트’운동, 비합법 노동조합 운동이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기계파괴운동에서 시작된 운동들은 대중시위와 투표권쟁취운동, 통제를 위한 공권력에 대한 저항으로도 이어졌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빗 리카도의 사상들을 무기로 활용하는 지도자들이 배출되었으며, <블랙 드워프>와 <가난한 자의 수호자>과 같은 독자적 신문들이 생겨났다.

 

차티스트

1830년대 후반 역사상 처음으로 차티스트 운동이 등장했다. 차티스트 운동은 19세기 영국에서 가장 커다란 대중운동이었고, 대중 집회와 무장민중봉기로 지배계급을 두렵게 했다. 총파업은 영국 전역으로 번졌고, 1848년에는 유럽을 휩쓴 혁명에 자극을 받아 지배계급에 대한 대결을 준비했다. 중간계급의 배신과 지도자들의 동요로 운동은 결국 실패했지만, 차티즘은 12년간이나 인상적인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집단들이 혼재해 있었고, 부르주아지는 유럽 전역에서 봉건주의 잔재를 위한 싸움과 함께 새로운 피착취계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6. 마르크스주의의 탄생

 

1847년 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선언>이라는 소책자를 통해 혁명이 임박했음을 예측했고, 곧 혁명이 터졌다. 이들이 책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산업주본주의 역시 그 이전 체제들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이며, 계급갈등이 이 체제를 궁지로 몰아넣으리라는 예측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고, 프랑스의 점령으로 봉건잔재가 일찍 사라진 지역인 라인란트에서 태어나 자랐다. 당시 독일 전체는 지적 반동의 시기를 겪고 있었고,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민족주의로 우회하고 있었다. 브루노 바우어, 슈트라우스, 포이어바흐, 칼 그륀 등의 사상이 지지를 받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독일사회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소외

마르크스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지적과 달리 시장은 인간의 노동생산물들의 상호작용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간은 시장에서 자신이 과거에 수행한 노동인 상품에 종속되고 마는 것이고, 스스로 만들어낸 신을 숭배하는 꼴이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마르크스는 ‘소외’라고 표현했다. 이 소외를 벗어나려면 노동자가 스스로 생산과정을 집단으로 통제하는 방식, 즉 ‘공산주의’를 통해야만 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해방은 단순한 정치혁명이 아니라 ‘공산주의’사회혁명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변증법을 새로 해석하면서 외부세계가 인간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인간도 외부세계를 바꿀 수 있음을 주장했다.

 

새로운 세계 체제

<공산주의 선언>은 자본주의가 세계를 뒤덮은 오늘날의 ‘세계화’된 세계를 예언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묘사는 1847년 당시보다 오늘날의 세계에 더 잘 들어맞으며, 소외라는 주제가 그것을 잘 설명해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사회를 그 이전의 사회와 비교하면서 주목한 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역동성이다. 자본가들이 이전 사회의 지배계급들처럼 보수주의를 강요해도,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역동성은 이 보수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혁신하고 동요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다.

 

노동자와 새로운 체제

<공산주의 선언>은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노동계급, 프롤레타리아를 강조했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세력으로 단결하게 된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가 자본을 형성하고 증식하게 해주는 필수조건인 임금노동을 통해 형성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이 전 세계를 정복함에 따라 산업노동계급이 성장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수준은 자본에 맞서 싸우는 수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결론은 부르주아지의 혁명이 그 이후에 다가올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주곡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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