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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공백] 예이츠의 시 후기 0819 (금) +4
흴옹 / 2016-08-21 / 조회 2,776 

본문

W.B. YEATS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1865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출생하였다.

 법률을 공부한 화가 아버지와 슬라이고의 부유한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 때 런던으로 이주해, 그 후로 런던과 슬라이고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켈트 민족의 전설과 민담이 많았던 슬라이고 에서의 경험은 예이츠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장남이었음에도 여러 종교와 신비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세 때 더블린 메트로폴리탄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시와 신비철학에 대한 관심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스베덴보리의 작품들을 탐독했다. 24세 때 신비주의적 영감으로  아일랜드의 신화를 노래한 첫 시집 [어쉰의 방랑] (1889) 을 출간했고, 이후 [아일랜드 동화집] (1892) , [켈트의 여명] (1893) , [비밀의 장미 ] (1897) , 등을 발표했다. 1899년 시집 [갈대숲의 바람]으로 아일랜드 왕립아카데미상을 받았고, 1923년에는 아일랜드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민족주의자로서 아일랜드의 문예부흥운동에 헌신하고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힘쓴 공로로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의 초대 상원의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1930년경 폐충혈로 건강이 악화되었음에도 아일랜드문학원을 설립하고 영국과 미국을 다니며 강연을 멈추지 않다가, 1939년 프랑스에서 재발한 폐충혈로 세상을 떠났다.  (1865. 6 . 13-1939.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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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의 시 세계

 

- 자연 찬미적인 성향을 띰

- 아름다움을 노래

- 예의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임

- 지혜로운 현인과 같은 말을 많이 함

- 신비로운 신화적인 이야기를 많이 씀

- 환상적, 몽환적인 세계를 다룸 

 

 




예이츠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및 자료   

  

- 예이츠는 슬라이고(Sligo) 지방에 남아 있었던 아일랜드의 신화와 전설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 세계는 유령, 요정, 악령 등이 존재하는 신비주의적이며 샤머니즘적인 세계였다.

그가 후일 심령술 교단에 참여한 것도 이런 취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예이츠는 문화의 통일을 통해 단일한 민족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켈트족의 정신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 그는 곧잘 "민족성이 없이 위대한 문학은 없고, 문학이 없이 위대한 민족성은 없다."라는 말을 했다.

 

- 아일랜드의 신화와 전설에 관한 예이츠의 관심은 동양의 정신세계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그는 인간과 우주, 인간과 신, 명상, 금욕, 환생 등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보여 준 인도의 우파니샤드 철학에 심취했고, 이런 관심을 매개로 해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와의 개인적 친분을 쌓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이자 극작가이기도 했던 예이츠가 보다 남다른 관심을 가진 것은 일본의 전통 연극인 노(能)였다. 특히 유령이나 정령이 등장하는 몽환적인 무겐노는 예이츠를 매혹시켰다. 그것은 초자연의 세계였다.

예이츠는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비서 일을 보았던 에즈라 파운드를 통해 일본 연극을 접했다. 당시 파운드는 일본 동경제국대학의 교수였던 어니스트 페놀로사의 유고를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예이츠는 서구 사회의 이성과 과학의 광포함에 맞서 인간의 내면에 초자연의 세계를 복원시키려 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아일랜드의 신화와 전설, 동양의 정신세계는 그에게 이상적인 보고(寶庫)였다.

 

-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예이츠의 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는 "시인은 현자처럼 생각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일반인처럼 표현해야 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물론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차디찬 시선을 던져라, 말을 탄 이여, 지나쳐 가라!"라는 묘비명을 남겼다.

 

-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800년간 지배되었던 나라이다. 한국인은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으로 묘사되곤 한다.

   식민지의 한(恨), 강렬한 민족정신,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성, 노인을 공경하는 대가족 전통과 자녀교육열 등이 유사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떠드는 것이나 말싸움을 즐기는 것도 비슷하다.

 

- 아일랜드는 유럽 국가들 중 민족적 자부심이 가장 강한 나라이며, 민족적 정체성 만들기에도 열성이다. 2005년 3월 29일 아일랜드 정부는 서부해안 지역을 시작으로 도로 표지와 공공 지도 등에서 영어를 쓸 수 없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아일랜드의 고유 언어인 겔릭어를 쓰라는 것이지만, 정부와 국회 내에서 이뤄지는 토론 중 불과 1%만 겔릭어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라 ‘겔릭어 살리기 운동’의 길은 험난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참고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아일랜드 (세계문화사전, 2005. 8. 20., 인물과사상사) 외

 

 

모드 곤


평생 헌신적으로 모드곤이라는 독립운동가를 사랑하고 청혼했으나 결국 결혼에 이르지 못하였다.

모드곤의 딸에게까지 청혼을 했으나 그마져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모드곤은 “당신과 나의 자식들은 바로 시(詩)”라며 가정을 이루는 것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예이츠는 영원불멸의 시를 자식으로 둔 셈이 되었다.

예이츠는 결국 51세가 되어서야 25세의 심령술사와 결혼하여 두 명의 자식을 슬하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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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뜨고 지는 달을 모티브로 홀연히 맘속에 왔다가 가버리는 이뤄지지 않는 첫사랑의 허무함에 대한 노래이다.

사랑에 빠지면 내맘대로 되지 않고 어리숙해진다. 사랑인줄도 몰랐거나 사랑인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어찌보면 잔인한 것이 첫사랑은 아닐런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며 시를 읽는 것도 방법이라는 작가님의 조언이 있었다.

예이츠의 사랑이었던 그녀, 모드곤을 떠올려 보는 것처럼.

영시의 번역의 한계로 영문 원본으로 읽는 것이 느낌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었다.

번역 속의 '달 위에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라는 표현보다 '달 위를 지나간다'라는 말이 달위에서 손을 뻗어 만지려해도 그저 지나가버린다는 의미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는 말씀도 들을 수 있었다.   

'비록 떠가는 달처럼'에서 이미 그녀가 사라지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 김소월의 산유화와 통하는 부분같이 느꼈다고.

또한, 달빛 속을 걸어가는 이미지가 떠올랐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내가 가는 길에 서 있다' - 라는 것이 and 인지 again인지 .. 또라는 말이 없었으면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느낌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 말이다.

떠가는 달은 지나칠 수 있지만 그 달이 신경쓰이기 시작한 것 자체가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하지만 달의 태도는 heart of stone이라 냉혹한 느낌도 든다는 의견도 있었다. 

1연에서는 첫사랑의 실패를 이미 그녀가 실제하는 존재라고 인정하기 까지는 이미 첫사랑의 존재가 없다는 의미로도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술 노래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1-2행은 원본으로 읽어야 더욱 느낌이 오는 것 같아서 적어보았다.  

음식 - 술은 우리가 입을 통해 받아들이고,

사람 -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가 눈을 통해 첫눈에 반하고   

술은 입을 통해 취하고

그대를 향한 내 사랑은 눈을 통해 취하고

술과 사랑의 공통점이 왠지 느껴지는 시.. 사랑노래라고 바꿔도 될 만하지 않나 싶을 만큼.

시의 끝 부분으로 갈 수록 한숨을 쉬는 화자가  술만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일 뿐

정작 사랑하는 그대는 가질 수 없는 체념과 포기를 한숨을 통해 나타내는 듯 하다.

어쩌면 예이츠의 대댄한 절제력(감성)이 이성을 이기는 순간인 건지.

아니면 모드 곤에게 30년을 구애해도 애달픈 결과만 남겨진 스스로의 자괴에서 온 탄식인지.

아마도 사랑을 쟁취하는 용기 있는 자는 아닐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고..ㅎ

단순한 시의 내용과 길이이나 할 수 있는 얘기는 많을 것 같다는 작가님의 말씀뒤로

사랑을 하면 상대방을 갖고싶고 만지고 싶어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랑의 감정이라면

예이츠는 관조하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의견이 있었다.   

입은 - 내 몸속으로 들어오고 눈은 망막으로 덮여있어 물리적으로 들어올 수 는 없는

예이츠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건 아닐지.

아무리 들이마셔도 내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하는 말씀도 있었다.

술을 먹을 때의 감정과 상태가 사랑했을 때의 상태와 닮아있는것은 아닐까하는 의견도 있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옛생각도 나고 기분이 고조되듯이

이성을 잃거나 감정이 고조되고 민감한 상태가 되는 것이 사랑에 빠진 상태와 술을 마신 상태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레다와 백조

레다와 백조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 스토리를 알아야한다.

스파르타의 아름다운 여왕 레다는 올림포스 신전의 최고 신 제우스의 눈에 띄었고 그는 백조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와 그녀를 강간한다. 레다는 알 두 개를 낳는데 그중 하나에서 헬렌이 태어난다.

헬렌은 팰리스가 그녀를 유괴함으로써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그 전쟁은 그리스 건국의 원인이 되었다.

시 처음의 1연에서는 관능적인 모습을 표현하여 애로티시즘을 보여준다.

사실 이 시는 정치적 잡지의 편집자가 시를 하나 써달라고 해서 쓴 것이라고 한다.

예이츠에게 있어 백조에게 겁탈당한 레다는 새 시대의 시작을 빗댄 아일랜드는 아닐런지.

백조는 고귀한 순백의 동물로 겉으로는 고상하나 제우스처럼 어떤 추악함과

레다와 백조는 예술가들에게 더없이 좋은 소재로 히틀러가 사랑한 작품이기도 함. 나치미술의 주제로 사용이 되었다고 한다.

권력자가 좋아할만한 소재로 보이는 레다와 백조가 아닐까 싶다.

급습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 그리지 않은 작품들의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씀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모비딕은 거대한 흰 고래를 말하는데 희고 거대한 것이 얼마나 거부할 수 없는 공포감을 주는지 그 앞에서 무력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백조의 날갯짓과 모습을 상상해보면 모비딕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는 말씀이 들었다.

정치적인 이야기보다 에로틱함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고  신체적이고 생생한 표현들에 놀랐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백조는 불가항력적으로 인간에게 급습하는 신이 내리는 운명이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마지막 연에서 '그의 힘과 함께 그의 앎도 전해받았을까?' 앎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흥미로웠다.

앎 - 육체적인 앎 - 폭력성- 에 대한 앎일 수도 있다.  레다는 전쟁을 잉태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혹은 현대화나 근대화가 식민지 지배시대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앎이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하는 의견도 있었다.

깃털로 된 영광을 포함한 질문을 하는 문장들이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은 아닐까 하는 의견도 흥미롭게 들었다.  

최종적 결말인 죽은 아가멤논을 핵심어로 읽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비잔티움 항행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예이츠의 비잔티움항행의 첫 구절에서 따온 제목의 작품이다.

예이츠에게 비잔티움은 영혼의 도시이고 이상향이다.

비잔티움 항행은 예이츠가 63세에 쓴 작품이며 무너지는 현대를 떠나 정시니 존재하는 비잔티움으로 찾아가는 노래이다.

육체와 영혼이 완벽한 비잔티움은 영원한 예술의 이상향이고 자신의 영원함을 추구하고 꿈꾸는 것.

마지막 연은 의견이 다양했다.

황금가지는 영원과 영생을 의미 하는 것이아니냐는 의견과, 시간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 모습이지 않냐는 의견도 좋았던 것 같다.

반면 졸음겨운 황제를 깨우기 위한 수단일 뿐인 것 같아 자조하는 부분일 수도 있지 않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화자가 불멸하고자 하는 예술혼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수긍이 갔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있는 영혼의 예술의 도시에서 불멸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예이츠의 비잔티움처럼 나에게 이상향은 어디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자아와 영혼의 대화

개인적으로 길고 장황하여 엄두가 나지 않던 시 였다.

마치 자아와 영혼이 서로 논쟁하는 것 같은 느낌의 이 시는

예이츠의 후기 시중 하나로 자기 세계에 빠진 예이츠의 강한 어조가 돋보인다.

자아 - 사토의 칼날, 꽃무늬 비단  과 같이 - 세속적, 개별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영혼 - 정신, 사랑, 전쟁, 상상력, 죽음, 어둠 - 추상적, 관념적 언어를 사용한다.

사회자가 추천하는 독법은 나의 자아와 영혼이 어떻게 대비되는 소재를 이야기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면 정확한 글의 내용이 잘 보일 수 있다는 말씀이 있었다.

자아가 자아찾기를 해가는 과정에서의 영혼의 어드바이저같다는 의견의 말씀이 있었다.

영혼은 자아에게 넌 대체 어떻게 살아갈거야라고 하면 자아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을것임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이다.

'나는 이 전부를 기꺼이 다시 살아내고 그리고

또다시 살아낼 것이다. 삶이란 게

장님이 웅덩이 속 개구리 알에 뛰어들게 되고

눈멏 자들끼리 서로 난폭하게 때리는 것이라 한들.'

'최고로 질척거리는 웅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라 한들'

에너지와 태도가 니체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한 번 더 죄를 범할 수 있는 면죄부를 요구한다.' 또한 어떤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또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한 니체의 주사위에 대한 내용과도 비슷하다는

철학적으로 시를 접근한 의견도 개인적으로 좋게 들렸다.   

연극대사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마도 예이츠가 시인이고 극작가이기도 했기에 그러한 듯 하다.

 

 

 

 p.s.

어려운 번역시를 읽기엔 막연한 어려움이 느껴진다.
간식으로 준비한 빵들은 탁월한 선택으로 솔드아웃되었지만 예이츠의 시는 T-T 환영받지 못하였.. 

하지만 여러분들의 의견과 생각들이 모아져 예이츠의 시는 점점 공백을 채워나가는 것 같았다.

(전혀 알 수 없던 시도 회원분들과 함께하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경험은 놀라웠다!)

 

두서없는 후기글을 읽으신 회원님들의 눈에 피로감을 드림에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또한 한 주를 준비해도 진이 살짝 빠졌었는데,

이것을 매주 준비하고 공부하시는 사회자 희음님을 포함한 실험자들분들께도 심심한 감사와 경외를 드린다. (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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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소소님의 댓글

소소

김소월에 많은 힘을 빼고 예이츠까지 달리느라 고생 많았어요.
모호하기만 했던 예이츠의 언어들 속에 감춰져 있는 시인의 깊은 정신세계를 만날 수 있어서 참 의미있던 시간이였어요!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저두요! 번역시가 갖는 언어적 공감의 한계가 있었는데, 같이 읽으니 한계가 한결 가볍네요.
그래서 공부는 같이 해야 하나봐요.
이론적 텍스트뿐 아니라, 시나 음악, 미술 같은 감각적 텍스트도 같이 읽으니 훨씬 좋군요! ^_^

희음님의 댓글

희음

참 깨알같이도 지난 시간을 살려냈네요. 고맙습니다.
'술 노래'에서 가장 반짝이던 흴옹 님의 눈빛도 생각 나, 혼자 키득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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