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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주의 선언> 4장 코뮨주의와 특이성 :: 발제
오라클 / 2016-09-24 / 조회 1,413 

본문

코뮨주의 선언 > 4장 코뮨주의와 특이성

 

[서론] 공동체 없는 공동체 

 

(1)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코뮨-코뮨주의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가?

먼저, 적대의 폭력 (자본의 폭력, 시장의 폭력) > 적대의 폭력이 공동체를 다시 사유하게 한다. 이는 개인을 개별화된 삶으로 몰고가는 자본주의-신자유주의의 황폐한 바람, 금빛으로 빛나는 시장의 폭력,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겨누게 만드는 적대의 폭력이다. 

다음, 실패한 공동체 (파시즘, 공산주의) > 실패한 공동체-전체의 꿈이 공동체를 다시 사유하게 한다. 이는 민족적 공동체론이나 정치적 형태로서 파시즘이 한 극단이라면,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삶을 공유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결국 자유와 정의를 배신했던 공산주의가 다른 극단이다. 

 

(2) 실패한 공동체의 경험으로부터 ‘공동체 없는 공동체’로! 

블랑쇼 :: 바타유의 말을 빌어_어떤 공동체도 이루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 >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는 모두 개인을 거대한 공동체에 통합하는 ‘감옥 같은 공동체’의 악몽 같은 꿈, 절망 같은 희망을 상기시킨다. 거기서 블랑쇼는 ‘융합과 합일을 위한 공모에서 비롯되는 희극’을 본다. 그것은 버릴 수 없는 꿈, 제거할 수 없는 희망이며, 버릴 수도 떠안을 수도 없는 딜레마이다. 그 딜레마 속에서 블량쇼는 ‘어떤 공동체도 이루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를 찾아 떠난다. 

낭시 :: 블랑쇼의 말을 빌어_무위의 공동체 > 전체주의와 결부된 공동체(공동체는 스스로 구축되는 것을 자신의 과제oeuvre로 삼는다)를 비판하며, 무위desoeuvre의 공동체를 제안한다. (*무위의 공동체 : 아무것도 위하지 않는 공동체-어떤 과제도 없는 공동체-어떤 목적도 없는 공동체)

링기스 :: 레비나스의 말을 빌어_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 자들의 공동체 > 어떤 이유를 공유하는 합리적 공동체와 대바하여,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 자들의 공동체를 개념화한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공동체란 개념은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환대’의 개념을 상기시키고, 작업·과제와 무관한 공동체란 개념은 낭시의 ‘무의의 공동체’를 연상시킨다. 

 *바타유 :: 어떠한 공동체도 만들지 않는 자들의 공동체 > 바타유의 ‘어떠한 공동체도 만들지 않는 자들의 공동체’라는 개념은 블랑쇼, 낭시, 링기스의 공동체 개념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이들은 이 개념을 통해, 공동체란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없고 없다고 생각한 곳에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공동체의 존재론 :: 타자성의 존재론(죽음과 결부된) & 사회성의 존재론(부정의 방식) > 블랑쇼나 링기스가 이 공동체 개념에 레비나스의 타자 개념을 연결하여 밀고 나간다면(타자성), 낭시는 개체들을 하나의 ‘공동으로-존재하는 것’으로 묶어주는 사회성의 존재론에 주목한다(사회성). 링기스의 공동체 개념은 타자의 죽음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며, 나를 버리고 타자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죽음과 결부되어 등장하는 공동체의 존재론이 적절한가? 낭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타자들과 공동으로 존재하는 존재라고 보며, 그 유한성 때문에 외부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현존하는 존재라고 본다. 이를 통해 공동체의 존재론을 사유한다. 즉 아무런 목적도 갖지 않는 블랑쇼식의 부정의 공동체로 공동체의 존재론을 사유한다!

부정적 공동체 개념의 문제점 > 이러한 부정적 공동체 개념은 ① 먼저, 존재하는 공동체를 무위로 돌리고,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시도를 부정하게 만든다. (낭시는 “무위의 이름으로라도 공동체를 격상시키는 것을 신뢰하지 말라”고 했다.) ② 다음, 공동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공허한 존재론적 위안에 불과하다. ③ 또한,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운동이나 실천적 지향성 없이 공동체를 개념화하려는 시도이다. (블랑쇼는 모든 대인접촉을 피해 사적 세계에 숨어살아서 ‘얼굴 없는 사제’로 불렸다.)

 

(3) 실패한 공동체의 경험으로부터 ‘코뮨주의적 공동체’로! 

코뮨주의적 사유의 출발점 > ① (공동체 없는 공동체의 역설)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 자들의 공동체’나 ‘공동체 없는 공동체주의’라는 역설,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의 역설, 공동체주의의 위험을 지적하는 역설. 이러한 역설을 회피하거나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 ② (코뮨주의적 공동체의 역설) 우리가 공동체적 존재라면, 우리가 공동체를 구성하는데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공동체적 존재라면, 공동체를 구성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반대로 우리가 공동체적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이 역설들은 공동체-코뮨주의를 사유하는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존재론적 공동체 & 구성적 공동체 > 이러한 질문은 이러한 점을 보여준다. ① 첫째, 존재론적 공동체(존재론적으로 공동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는 구성적 공동체(만들어지는 공동체)와 동일할 수 없으며, 공동체적 존재라는 사실이 공동체의 구성이라는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구성적 공동체는 존재론적 공동체로 환원될 수 없다. ② 둘째, 인간이란 공동체적 존재지만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끊임없이 실패하는 존재이다. 인간이란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존재이다. 그 실패 안에 존재하는 차이, 그 실패 안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차이 때문에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시도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한 차이가 만들어질 수 있는 한, 공동체는 영원히 반복되며 되돌아 올 것이다. 

코뮨주의적 공동체의 존재론 > ① (공동체 없는 공동체의 문제의식) 공동체를 구성하는 문제 바깥에서-실패하며 되돌아오는 공동체 바깥에서, / 실패할 수 없는 존재론적 공동체를 정의하려는 것-공동체가 없는 곳에서 공동체를 정의하려는 것은, 공동체의 피안에서 공동체의 이데아를 발견하려는 신학적 시도이다. ② (코뮨주의적 공동체의 문제의식) 반대로 우리는 또 한 번의 도래할 실패를 무릅쓰고 반복되는 실패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생성될 새로운 차이의 성분이야말로 존재론적 공동체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본론1] 특이성이란 무엇인가? :: 존재론적 공동체 

 

(1) 공동체의 실패는 ‘개체화’의 문제이다

* 공동체의 실패는 ‘개체화’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공동체가 실패한 것은 개체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먼저, 자유주의 (원자론적 사유와 결부) > 자유주의는 “집합체로 환원불가능한 개체성이, 집합체를 구성하던 개체들로 하여금 서로 분리되게 만드는 지점에서 공동체는 해체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는 개체성을 집합체로 환원할 수 없는 고유성으로 이해한다. 이 경우 집합체란 그 개체성-고유성을 잡아먹는 괴물로 간주된다. 

반면, 전체주의 (유기체론적 사유와 결부) > 전체주의는 ‘집합체를 구성하는 개체들을 집합체의 유기적 일부로 통합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전체주의는 개체를 집합체의 유기적 일부로 이해한다. 전체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종교적 공동체, 기능에 따른 분배와 권력에 의한 통합으로 작동하는 정치적 공동체 등. 

따라서, 코뮨주의적 정의. 집합체와 개체의 관계 > 자유주의와 전체주의는 공동체를 부정하고 개체화에 실패한 사례이다.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원자론과 유기체론을 넘어서 공동체를 정의할 수 있을까? 전자와 후자의 이항적 아포리아(난점)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이 아포리아를 넘어서려면 집합체와 개체의 관계-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2) ‘개체와 개체화’에 대한 개념 (스피노자)

개체란 개체화의 결과물이다 > 인간은 수십개의 기관들이 모여 개체화된 것이고 하나이 개체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유기체가 개체를 정의하는 유일한 층위는 아니며, 개체화가 발생하는 특권적 장도 아니다. 하나의 세포 역시 수많은 소기관들이 모여서 개체화된 결과이다. 개체란 특권적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실체가 아니라, 개체화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개체, 개체화 :: 축구팀의 사례 > 11명이 모여서 하나의 축구팀을 만들어 단일한 신체적 리듬에 따라 움직일 때, 그 팀은 하나의 신체를 갖는 개체로 개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축구공도 포함). 복수의 요소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신체를 만들어낼 때, ‘하나의 단일한 것(singular thing)’이라고 정의한다. _스피노자. 

모든 개체는 집합체이다 > 개체화는 복수의 요소들이 모여서 하나의 집합적 신체를 구성함으로써 발생하며, 집합적 신체가 해체되면 개체는 개체이기를 중지한다. 개체는 분할불가능한(in-dividual) 개체가 아니라, 분할가능한(dividual) 집합체이다. 개체는 중-생(衆-生, multi-dividual)이다. 따라서 개체와 집합체의 대립은 무의미하다. 모든 개체는 항상-이미 복수의 요소들로 구성된 집합체이다. 

모든 개체는 공동체이다 > 어떤 요소의 활동이 하나의 신체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의 활동과 분리되면, 집합체의 생명은 끝난다. 죽음이란 구성요소들의 분해로 정의되는 이 변환의 문턱이다. 공동체가 존재론적으로 정의되는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이다. 모든 개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론적 집합체이자 공동체이다. 19세기 생물학의 개체관념 속에서 특권적 개체의 장소를 할당했던 유기체도 60조~100조의 세포들이 만드는 거대한 집합체이고 공동체이다. 

 

(3) ‘특이성singularity’에 관한 개념 (스피노자, 들뢰즈) 

singularity :: 단일성 = 특이성 > ① (단일성) 이는 하나의 개체로서 다른 집합체와 구별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단일한 것(singular thing)’이다. ‘단일한 것’은 수적으로 단일하지 않으며, 복수의 요소들의 복합체이다. 즉 ‘단일하다’는 하나의 개체를 이루고 있음을 표현하는 말이며, 단일한 것을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해주는 것도 복수의 요소들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발생하는 ‘단일성(singularity)’이다. ② (특이성) 복수의 요소들의 복합체를 ‘단일한 것’으로 구별되게 해주는 것, 어떤 것을 ‘그것’이게 해주는 특이적인 성분-특이적인(singular) 본성을 ‘특이성(singularity)’이라고 한다. ③ (단일성, 특이성) 그렇다면 개체의 ‘단일성’은 ‘특이성’에 의해 정의된다. 

특이성의 정의 :: 특이점들의 집합 > ① (특이성의 정의) 특이성(복수의 요소들이 결합해서 한 개체를 구성할 때 출현하는)이란 무엇인가? 들뢰즈는 수학적 어법으로 ‘특이점들의 집합’이라 정의한다. 특이점(singular point)이란 수학적으로 미분불가능한 점인데, 미분계수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점이다. 특이점이란 수많은 미분계수를 갖기에 하나로 특정화되지 않는 잠재적 성분의 모호한 집합인데, 점재성이란 아직 발현되지 않는 성질이 아니라, 이웃한 특이점에 의해 가변화되는 것이다. ② (특이성의 사례) 예를 들어 삼각형은 세 개의 특이점으로 정의되지만 특이점이 하나 더 추가되면, 기존의 특이점들은 사각형의 특이성을 형성하는 특이점이 된다. 특이성이 달라지면, 고유성이 달라진다. 삼각형에 특이점이 하나 더 추가되면, 내각의 합은 180도가 아니라 360도가 된다. 

특이성의 특징1 :: 외부성 > 특이성은 외부성이 중요하다. 특이성은 특이점들의 분포에 의해 정의되며, 어떤 특이점이 추가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특이성으로 변환하며, 특이점들 자체의 의미나 성질도 달라진다. 특이점은 내적 성질을 지니지 않으며, 이웃한 특이점들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성질을 지닌다. 

특이성의 특징2 : 집합적 > 특이성은 집합적이다. ① (복수성) 첫째, 특이점은 이웃한 특이점과 맺는 관계 속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에서 특이성은 항상-이미 집합적이다. 즉 복수의 요소들이 모여서 하나의 단일한 것을 만드는 방식으로만 특이성이 된다는 점에서 특이성은 집합적 배치로만 존재한다. ② (반복성) 특이성은 특이점들의 분포가 반복하여 출한하면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반복하여 출현한다. 가령 맑스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특이성은 수많은 ‘맑스’들의 집합이다. 

특이성 :: 사회적 집합체의 경우 > 어떤 능력도 어떤 배치 속에서, 어떤 다른 요소들과 결합되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고 다른 효과를 나타내는 다른 능력이 된다. 결국 구성요소의 특이성은 집합체를 구성하는 순간 결합되는 다른 특이성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특이성의 정의는 ‘특이점들의 집합’이라는 의미에서, 특이점으로 작용하는 잠재적 특이성들의 집합적 배치이다. 

 

[본론2] 특이성과 구성 :: 구성적 공동체 (공동체의 구성원칙) 

 

(1) 외부성 :: 특이성을 구성하는 특이점 

특이성을 구성하는 특이점 > 집합체를 하나의 개체로 만들어주는 복수의 원인들을 특이점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집합체를 하나의 ‘단일한’ 개체로 정의해주는 것은 그것의 특이성이다. 특정한 결과를 만드는데 참여하는 경우 특이성을 구성하는 특이점이 되며, 반면 특이적 개체를 만드는데 참여하는 원인이 되지 못한다면 집합적 개체의 특이성을 구성하지 못하며 특이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 

강한 근력의 특이성 > 예를 들어 강한 근력이라는 생물학적 특이성은, 공부하거나 사유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신체의 특이성을 구성하지 않는 반면,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신체의 특이성을 구성하는 중요성분이 된다. 

 

(2) 특이성 :: 특이성의 극대화, 집합적 신체의 구성

특이성과 집합적 신체의 구성 > ① (슛을 잘하는 사람) 슛을 잘하는 사람을 풀백으로 활동하게 한다면, 그의 능력은 축구팀이라는 집합적 신체의 특이성을 구성하지 못한다. ② (특이성과 집합적 신체의 구성) 특이성이란 집합적 신체의 구성 이전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 신체의 구성을 통해서 존재하게 된다. ③ (특이성과 구성적 활동) 특이성은 다른 무엇과 결합해 구성적 존재로서 표현될 때에만 실존하는 원인이다. 따라서 특이성은 구성적 활동 없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④ (고유성과 특이성) 고유성이 어떤 개인·개체에 귀속된-개인·개체가 소유한 내적 특징이라면, 특이성은 다른 특이점들과 관계를 구성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고 어떤 외부와 만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특이성의 극대화 > 집합적 신체의 구성·활동에 그것을 직조하는 요소들의 특이성이 극대화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슛을 잘하는 사람을 풀백으로 배치하는 축구팀은 그 특이성을 소멸시키는 것이며 훌륭한 축구팀으로 존재할 수 없다. 다양한 특이적 잠재성이 특이성으로 표현되고 실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집합적 신체의 구성에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존재론적 공동체(공동체) & 구성적 공동체(코뮨) > ① (존재론적 공동체, 구성적 공동체) 여기서 공동체의 개념은 존재론의 영역에서 구성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존재론적 공동체(인간의 삶은 물론이고 자연 세계의 모든 개체는 항상-이미 중생이고 집합적 개체-공동체적 존재이다.) 구성적 공동체(능동적인 구성활동으로 만들어지는 공동체) ② (존재론적 공동체 ······> 구성적 공동체) 구성적 공동체는 존재론적 공동체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부합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활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개념을 빌면, ‘능동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존재하는 한, ‘원인에 대한 관념을 갖고’ 활동하는 한, / 자신을 유효한 원인으로 만들려는 활동, 특이성의 구성에 참여하고 특이성을 나누어갖는(분유) 능동적 활동을 산출한다.

*구성적 공동체의 구성원칙 :: 외부성, 특이성의 극대화, 시간성 > ① (외부성) 공동체 구성활동이 특이성을 구성하고 분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한, 특이성 개념 자체에 함축된 외부성을 구성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② (특이성) 특이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활동이 구성되어야 한다. ③ (시간성) 여기에 시간성과 결부된 원칙을 추가해야 한다.

 

(3) 시간성 :: 집합적 신체의 시간성, 시간적 리듬의 공-조

분리된 시간성 :: 실존주의자, 블랑쇼·링기스  > ① (실존주의자) 실존주의자는 시간을 죽음에 의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적 지평으로 보며, 그 분리를 통해 각각의 존재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분리된 시간성을 본다. ② (블랑쇼, 링기스) 블랑쇼나 링기스는 내 옆에서 죽아가는 타자를 보면서 나의 시간으로 환원불가능한 타자상을 확인한다. ③ 이때 시간성은 공통의 시간-세계 시간에서 분리된 시간성을 의미한다. 실존주의자들이 나만의 환원불가능한 시간을 통해 자신을 세계와 분리한다면, 블랑쇼나 링기스는 타자의 환원불가능한 시간을 통해 타자를 세계로부터 분리한다. 시간은 죽음이란 심연을 통해 남들과 나, 나와 타인을 가르는 균열을 표시한다. 시간은 나와 타자를 가르는 시간의 벽이며, 나와 타자는 같은 시간에 동시적으로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블랑쇼가 특이성/단수성을 ‘다른 어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죽음의 시간성 :: 하이데거 > ① (하이데거의 시간성) 하이데거는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보는 결단을 통해 자신을 자신에게 다가오게 만들고, 타인들의 존재가능성을 이해하게 해줌으로써 전체적인 현존재를 앞서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시간성의 본질이라고 본다. 여기서 ‘전체적 현존재’를 선취한다는 것은 ‘운명이나 역운, 민족의 생기’와 결부된 것이며, 죽음을 통한 ‘개별화’란 ‘공동의 운명’을 위해 ‘전투적 추종을 자유롭게 해주는 선택’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철학은 젊은 청년들로 하여금 죽음을 무릅쓰고 전선으로 나아가게 했던 ‘조국의 철학, 민족의 철학’이었다. ② (헤겔의 시간성 & 하이데거의 시간성) 헤겔이라면 ‘개별과 전체이 통일’이라고 말했을 이런 관계 속에서, 하이데거는 죽음을 통해 개별을 전체로 포획하고 개별화의 이름으로 개인을 전체화한다. ③ (개인의 죽음을 전체의 생존으로) 여기서 시간은 개인의 경계를 넘고 있지만, 개인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삶의 활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죽음올 전체의 생존으로 귀속시키는 죽음에 대한 허구적인 찬사를 통해서이다. 하이데거식 시간개념은 죽음의 시간을 통해 삶의 시간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정의한다. 

집합적 신체의 시간성 :: 스피노자 > ① (운동의 시간성, 구성의 방법)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개념은 시간에 대한 직접적인 관념(분리된 시간성, 죽음의 시간성)을 출발점으로 삼는 게 아니라, 운동·활동을 통해서 시간개념에 이르고 활동과 구성의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② (시간적 리듬의 공조) 스피노자는 모든 양태는 빠름과 느림, 움직임과 정지의 속성을 지닌다고 한다. 즉 공통된 움직임의 속도를 가질 수 있고, 이때 복수의 요소들은 하나의 단일한 신체를 이루는데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시간이란 이러한 리듬의 공조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시간이란 집합적 신체의 구성과 더불어 탄생하는 것이고, 집합적 신체마다 다른 리듬-다른 시간이 있다. 특이성의 개념과 연결한다면, 특이성의 구성은 리듬의 공조로 정의되는 특이적 시간의 구성이다. 

코뮨적 시간성 :: 시간적 리듬의 공조 > ① (시간적 리듬의 공조) 코뮨적 공동체의 구성에는 시간적 리듬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하나의 코뮨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도, 특이적 시간성을 구성하며 함께 활동하는 한에서만 코뮨의 구성에 참여한다. 코뮨이 외연적 경계 안에 존재한다고 해도, 코뮨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구성적으로 활동할 때에 한해서다. ② (공동활동의 협조) 협조는 공동활동 안에서 서로의 움직임에 리듬을 맞추려는 노력(conatus!)이며, 서로 도와주는 활동 이전에 서로 리듬을 맞추어 함께 움직이는 능동적 시간적 공-조현상이다. 

 

[본론3] 유기적 구성체와 특이적 구성체 

 

(1) 특이적 구성체 & 유기적 구성체

특이적 구성체 :: 외부성, 특이성, 시간성 > ① (외부성) 특이점이 가감됨에 따라 달라지며, 그러한 특이점의 가감에 대해 외부성에 열려있는 코뮨적 공동체. ② (특이성) 참여하는 특이적 요소들의 특이성이 최대한 표현되면서 구성되는 특이성을 분유하는 코뮨적 구성체. ③ (시간성) 그러한 요소들의 공조-협조를 통해 집합적 신체의 리듬을 유지할 뿐 규칙·제도로 보장되는 안정성을 추구하지 않는 코뮨적 공동체. 

유기적 구성체 :: 내부성, 유기성, 위계화 > ① (유기적 공동체 :: 정의) 이렇게 구성된 코뮨조차 자신의 안정성-동일성-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구성요소들의 위치(특이점들의 분포)를 하나로 고정하려는 순간, 유기적 구성체로 변환된다. 유기적 구성체는 신체의 구성요소들의 지위나 가치를 전체인 신체의 존속을 이해 수행하는 기능에 따라 할당하며, 구성요소들을 신체의 유지와 존속을 척도로 삼아 위계화한다. 이는 결국 구성체 안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좀더 중심적인 지위, 좀더 높은 위치의 지위를 욕망하게 한다. 그리고 지위가 제공하는 일반적 통상적 기능이 개체적 특이성을 대체하게 된다. ② (유기적 구성체 :: 사례) 제도적 조직, 혁명적 조직(당), 노동운동조직(노동조합), 시민운동조직, 종교적 공동체 등 

 

(2) 지속 :: 유기적 구성체의 시간 & 특이적 구성체의 시간

유기적 구성체의 동질화된 ‘지속’ > 전체주의(구성요소인 개체들이 전체에 통합되어 기능적 행동만을 하게 될 위험)는 공동체-코뮨을 유기적 구성체로 변환시키는 경향과 결부되어 있다. 무언가 지속하려는 욕망은 반드시 주어진 상태를 지속하려는 경향을 띤다.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안정성의 이름으로 고정적 성분을 박아넣기 시작하고 안정성을 유지하는 권력을 작동하기 시작한다. 유기적 구성체는 악의의 산물이 아니라, 욕망의 산물이다. 

특이적 구성체의 변화하는 ‘지속’ > 그러나 특이적 구성체가 유기적 구성체의 문턱을 넘지 않는 한, 특별한 ‘한 순간’과 대비되는 지속 자체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특이적 구성체에게 지속이란 이질적 상태들의 공존과 끊임없는 변이로 정의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어지는 특이적 구성체의 지속. 베르그송 역시 시간과도 같은 순수지속이 공간화되기 쉽게 약적 척도로 동질화되는 사태를 경고했다! 지속이 특이적 구성체를 동질화된 지속을, 유기적 구성체로 변환시켜서는 안된다!

 

(3) 특이적 구성체로 지속할 수 있는 조건 :: 원시인들의 방법

 *특이적 구성체의 조건 > ‘지속’을 포기하기 보다 그 위험과 대항하며 지속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이적 구성체가 유기체화의 문턱을 넘지 않기 위한 조건, 특이적 구성체로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야 한다. 

1. 리더의 권력을 능력으로 대체 > ① (권력을 능력으로 대체) 구성체로서 코뮨의 특이화를 주도하는 리더는 특이적 구성의 주도권을 가지며 주도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그에 따라 특정한 특이성을 구성체의 ‘고유성’으로 삼아 ‘동일하게’ 지속되게 변환시킬 가능성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주도권의 요소를 권력이 아니라, 능력으로 대체해야 한다. ② (추장제의 사례) 추장제에서 추장의 지도력은 그에게 지위-권력-보장된 영향력이 아니라, 남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확보된다. 추장들이 분쟁을 조정하는 것은 주어진 지위가 아니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확보된다. 지위가 능력-권력을 주는 게 아니라, 능력이 지위를 주는 것이다. 지도자란 타인들을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타인들에게 복무하는 자이고, 타인들에게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타인들의 명령을 따르는 자인다. 

2. 중심의 복수화 > ① (중심의 복수화) 이런 방식으로 구성체에서 결속의 중심이 만들어진다 해도, 다시 그 중심을 복수화해야 한다. 단일한 중심은 지위를 권력의 요소로 변환시킬 가능성과 특이적 요소들을 하나의 중심으로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배열할 가능성이 있다. 들뢰즈-가타리의 ‘리좀’은 중심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의 과잉을 말하는 것이다. 강한 특이성을 갖는 지점들 모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중심을 복수화하는 것이 특이성의 집합을 구성하는 정치학으로서, 특이성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극대화하면서 집합적 신체를 구성하는 정치학과 부합한다. ② (아메리카 원주민, 러시아 당의 사례) 추장이 있지만 주술사가 추장과 다른 영향력을 행사했다. 러시아의 당의 경우, 이론적 중심과 조직적 중심이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3. 권력의 부분화 > ① (권력의 부분화) 주도권이 있는 중심의 지위를 부여하는 경우에도, 지위가 권력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② (아메라키 원주민의 포틀래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포틀래치는 ‘비합리적 낭비’처럼 보이는 선물게임을 별여 최대의 선물을 증여한 사람에게 추장-지도자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런 방식으로 추장을 선출함으로써 정치적 중심을 획득하긴 하지만, 경제적 권력을 소진하는 한에서만 그렇게 한다. 정치적 능력과 경제적 능력이 결합합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중심화된 권력의 가능성은 이러한 분산과 분리로 극소화된다. 선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한에서 정치적 권위를 갖게 하는 것 역시, 정치적 능력이 경제적 능력을 형성하는 것을 저지하는 효과를 낳는다. ③ (권력과 소유의 분리) 권력을 소유와 분리하는 것이다. 소유란 언제나 삶의 흐름, 능력의 흐름, 욕망의 흐름을 멈추게 하고 고정한다. 권력이 소유와 결합하면, 그 능력은 소유될 수 있는 것으로 대체된다. 반면 권력을 소유를 줄이는 방식으로만 얻을 수 있도록 만든다면, 권력은 한 곳에 고인 소유물을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국가에 반하는 권력만큼이나 소유에 반하는 권력은 코뮨적 구성체를 유기화하지 않고 특이화하는 또 하나의 원칙이다. 반면 부르주아 세계는 소유를 권력화하고 권력을 이용해 소유를 증가시키는 권력-소유의 순환적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한다. 

 

[결론] 코뮨주의 정치 

 

(1) 자본의 특이성 :: 자본의 지배는 자본의 외부를 생산한다

자본의 지배 & 자본의 외부 > 자본의 착취와 지배가 전 세계적 규모에서 직접적으로 진행되는 시대, 초국가적 자본이 국경을 넘어서 대중의 능력을 착취하는 시대, 국가권력이 제국적 스케일로 확장되어 작동하는 시대. 이제 정말 자본의 지배와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는 외부, 자본의 외부를 발견하는 것은 어디서도 불가능하게 된 것일까?

자본의 특이성 :: 자본의 지배가 자본의 외부를 생산 > ① (자본의 특이성) 그러나 맑스가 보여주었듯이, 자본의 축적법칙 자체는 자본주의로부터 추방되는 외부자들을 끊임없이 확대된 규모로 생산한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려고 포섭하고 자신의 공리계로 내부화하며, 자본의 경제가 작동하는 정치학은 프롤레타리아조차 가변자본으로 만든다. 그러나 포섭은 언제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새로운 외부자들을 만들고 추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② (외부의 사례) 서구 노동조합이 자본과 공모하고, 한국 노동조합이 새로운 주류계급으로 자리잡는 조건이라면, 노동조합에 포함되지 않으며 노동조합에 의해 대의되지 않는 수많은 외부자들이 만들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들, 농민들, 인간 아닌 생명체들, 주변인들. 이렇게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자신의 외부를 거대한 규모로 확장하는 한에서만 자신의 지배를 확장할 수 있다. 

 

(2) 외부의 특이성 :: 외부는 삶이 저항이고, 일상이 정치영역으로 변환되는 지대이다

외부의 특이성 :: 삶이 곧 저항이 되는 > ① (외부의 특이성) 자본과 국가에 의해 추방당한 자들의 세계는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국가로부터 탈주가 진행되는 지대이다. 거기는 삶을 지속하고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위협받는 세계이기 때문에, 삶을 지속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자본·국가에 대한 저항이 되고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정치를 작동시키는 지대다. 

코뮨적 삶의 방식 :: 다른 종류의 삶을 구성하는 >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삶을 혁명적으로 구성할 것인가? 어떻게 다른 종류의 삶을 구성할 것인가? 화폐의 권력과 가치법칙의 지배에 포획된 삶, 증식의 욕망 아래 삶이 종속되고 자본의 요구 아래 욕망이 복속된 삶, 자본이 강제하는 경쟁의 강제 속에서 고립된 개인으로서 ‘자유’를 꿈꾸는 삶. 이런 종류의 삶들과 어떻게 다른 종류의 삶을 구성할 것인가? 그것은 자본과 국가에 의해 추방당한 지대에서 코뮨적 삶의 방식을 구성하는 문제이다. 일상 자체가 자본의 권력과 대결하는 정치적 영역으로 변환하고 있다. 

 

(3) 코뮨주의 정치, 코뮨적 구성의 정치

코뮨적 관계의 구성 > ① (긍정적인 삶을 구성하는) 정치가 직접적인 삶의 문제인 한, 저항과 대립이라는 부정의 형태가 아니라, 긍정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② (이주노동자의 사례) 예를 들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당면한 곤란이 이러한 사태에 접근하게 한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끔찍한 상태는 이에 대항하기 위한 전투적 조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활력과 활동을 만들어내는 요인이지만,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주노동자들이 놓인 상황은 공동의 저항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삶을 공동으로 직조하는 것=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코뮨적 관계의 구성이 필요하다. 

코뮨적 구성의 정치 > ① (전지구적 영역에서 코뮨적 구성) 이런 점에서 코뮨주의는 새로운 삶을 꿈꾸는 모든 사람의 문제지만, 무엇보다 주변화된 거대한 외부에서 항시적인 위협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문제이다. 전지구화된 자본주의 시대는 전지구적 영역에서 코뮨적 구성의 정치가 현실적 과제인 시대이다. ② (코뮨들의 연대) 코뮨적 구성을 통한 새로운 코뮨의 촉발, 이렇게 구성된 코뮨들의 접속과 연대, 인터 코뮤넷=코뮨들의 네트워크는 새로운 차원의 특이적 구성체로 코뮨을 구성하려는 시도이다. 접속하는 코뮨들이 달라짐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고 각자 새로운 특이성을 얻는 특이적 구성체.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는 전지구적 규모에서 다양한 코뮨들이 구성되고 연대하면서 전지구적 규모에서 특이적인 코뮨적 구성체가 구성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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