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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전집읽기] 반시대적 고찰3_8장 발제 +1
이응 / 2016-10-11 / 조회 1,127 

본문

- 철학적 천재의 성장 조건 > 철학적 천재가 유해한 반대 작용에도 불구하고 나타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 : ①자유로운 남성적 성격 ②일찍 습득한 인간 지식 ③학자적 교육을 받지 않음 ④애국적 구속이 없음 ⑤생계를 위한 압박이 없음 ⑥국가와의 관계가 없음. 이러한 조건을 간단히 정리하면 “자유”, 이 멋지고 위험한 요소 속에서 철학적 천재들이 성장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저 위대한 자유를 불손으로 해석할 것이다. 이 사람 역시 옳다. 저 자유는 정말 무거운 부채다. 단지 위대한 행위로 이 채무를 갚을 수 있다. 

 

- 철학을 장려하는 현대 국가 > 아버지들은 대개 아들의 (가장 뒤틀린)철학자 정신에 반대해 왔다. 알려진대로 소크라테스는 “청년을 유혹한” 일로 아버지들의 분노의 희생자가 되었고, 이때문에 플라톤은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철인통치). 현재 상태로 볼 때 플라톤은 정말 무언가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현대 국가는 이제 철학자를 장려하는 일을 국가의 임무로 생각하고 “자유”를 베풀어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철학의 장려를 플라톤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한번 검토해보아야 한다. 

- 국가에 고용된 철학자 >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경험>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산출과 번식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나쁜 철학자’라고 말한다. 국가가 철학을 위해 베풀어준 저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관직이다. 오늘날 철학의 요구는, 몇 사람이라도 철학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 달라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의 현인(철학적 천재)들은 국가로부터 급료를 받지 않고 기껏해야 한번, 묘비라는 명예를 받았을 뿐이다. 
진리를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길을 보여줌으로써 진리에 봉사하는 것인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이 길을 걸어간다고 말하는 개인들의 방식과 선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철학의 존엄성을 격하시키지 않고도 일시적으로 궁정의 철학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가는 감히 그런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거나 지위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왜인가? 모든 국가가 그런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국가는 두렵지 않은 철학자들만 후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철학자를 겁내고 있다면, 국가는 자신들 편에 있다는 인상을 주는 철학자들을 더욱더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국가를 위한 철학자가 되려는 사람은 적어도 그가 후원을 얻어 고용되고 있는 한, 진리 위에 더 높은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뿐만 아니라, 국가가 자신의 복지를 위해 요구하는 모든 것(특정 종교, 사회 질서, 군사 제도 등)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나에게 손대지 말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 국가에 대한 철학의 양보 > 철학은 국가에 대해 현재 너무 많이 양보하고 있다. (1)국가는 자신의 철학적 하인을 자기 기관이 필요한 만큼 선발한다. (이 선발하는 행위는 좋은 철학자와 나쁜 철학자를 구분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2)국가는 자신이 선발한 사람들이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들 밑에서, 특정한 활동을 할 것을 강요한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매일 강의를 해야 하는데, 정말 철학자가 매일 가르칠 무언가를 가져야 할 의무가 있는가?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위험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미지의 청중들 앞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멋진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즉 그가 정해진 시간에 공개적으로 이미 미리 규정된 것에 관해 사유해야 할 의무를 짐으로써 말이다. 그가 어느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 제대로 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가! 
-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항의할 것이다. 그(국가에 고용된 철학자)는 사상가가 될 필요는 없으며, 과거의 모든 사상가를 학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면 된다. 그러나 (3)철학이 국가에 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양보는 학식으로 나서는 의무를 질 때다. 시인처럼 사물을 바라보고 그 안으로 아주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천재에게 수많은 낯설고 뒤틀린 의견들을 뒤지도록 하는 것은 가장 역겹고 거북한 일이다. 철학교수가 그런 일을 할 경우, 그는 문헌학자, 고물 수집상, 언어학자, 역사학자라곤 할 수 있어도 결코 철학자는 아니다. (4)도대체 우리 젊은이들에게 철학의 역사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들이 여러 혼란 속에서 자기 의견을 가질 용기를 잃어야 하는가? 대학생들은 철학 시험 때문에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하고 난해한 착상들과 함께 가장 어리석고 냉소적인 착상까지 자신들의 불쌍한 두뇌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스스로를 고문해야 한다. 
가능한 유일한 철학 비판, 철학에 따라 살 수 있을지를 시도하는 철학 비판은 결코 대학에서 가르칠 수 없다. 삶을 통한 경험도 없는 젊은이의 두뇌 속에 말로서 50개의 시스템과 그에 대한 50개의 비판이 나란히 서로 뒤섞여 보관되어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 무슨 대혼란이고 황폐함이며, 철학 교육에 대한 조롱인가! 실제로 철학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철학 시험을 위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철학으로의 교육”은 단지 철학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것이 아닌지? 정말 그렇다면 국가와 교수의 영리함의 복합체여, 화를 입을지어다! 

- 나쁜 철학자들 > 대학 철학은 일반적인 경멸과 의혹에 빠져 있다. 이는 현재 허약한 족속이 강단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과 상관이 있다. 학문하는 청년들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철학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고, 학문을 하지 않는 남성들은 이미 그것 없이도 잘 지내고 있다.
사이비 사상가들아는 것은 없지만 이 지식의 결함을 속이기 위한 애매한 표현에는 막히는 법이 없다. 과학에서 도망간 그들은, 과학의 틈새와 밝혀지지 않은 것 속에 어두운 제국을 건설하려는 은밀한 충동을 느낀다. 안개와 구름 속으로의 여행이 실패한 후, 진정한 학문에 뜻을 둔 어떤 거칠고 고집 센 청년이 그들의 머리채를 잡아 밑으로 끌고 내려오면, 그들의 얼굴은 거짓말을 해서 벌받을 때처럼 엄살스러운 표정을 습관적으로 짓는다. 
- 이 한 무리의 나쁜 철학자들은 어느 정도로 유해한가? 그들은 철학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듦으로써 국가가 공인한 사이비 사상가 단체가 존속하는 한, 진정한 철학의 위대한 영향은 무효가 되거나, 적어도 억제된다. 그러므로 철학으로부터 국가적이고 학술적인 모든 인정을 거두어들이고, 철학자들이 거칠게 자라도록 내버려두면, 취직의 전망과 시민적 직업으로의 편입을 거부하면, 급료로 유혹하지 말고 그들을 박해하고 감시하면- 겉치레 인간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갈 것이고, 여기서 목사 자리가 열리고 저기서 선생 자리가 주어진다. 나쁜 철학자들을 떼버리는 일은 쉽다. 그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으면 된다. 
- 국가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가 아니라, 항상 국가에 유익한 진리이다. 국가와 철학의 연대는, 철학이 국가의 이익을 진리보다 더 높이 설정하겠다고 약속 할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국가는 오로지 철학을 통해 순종적이고 유용한 국가 시민을 교육하는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유용성을 젊은이들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이 강제 작업이 무모하고 불안정한 청년들에게서 야기하는 손실을 메우지 못한다. 청년들은 금지 서적을 알게 되고, 대학 철학과 그 시험의 목표를 알아차리게 된다. 국가가 그들에게 걸었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가는 철학에서 등을 돌릴 것이다. 국가는 이제 철학의 비준이 필요 없고, 그로 인해 철학은 국가에게 쓸모없게 되었다. 철학이 국가 권력 없이, 급료도 명예도 없이 시대 정신으로부터 자유로워 진다면, 철학자가 대학과 얽히지 않고 오히려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일정 거리를 두고 대학을 조망한다면, 대학에도 유익할 것이다. 

- 철학의 위엄이 가장 높았던 때는 윤리학이 상투어를 가지기를 중단했던 때였다. 철학이 지금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철학의 이름으로 허약한 환상이 학자적 강단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때 철학은 우스개 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철학은 무서운 것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수준의 문화는 순간적으로 인간 노력의 전체 체계를 전복시킬 것이다. 이런 사상가가 위험하다면, 왜 대학에 있는 우리의 사상가가 위험하지 않은지 그 까닭이 분명해진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지난 시간은 '이응의 깔끔하고 멋진' 발제 덕에 토론이 더 풍성했던 세미나였지요.

[국가를 위한 철학자가 되려는 사람은 적어도 그가 후원을 얻어 고용되고 있는 한,
 진리 위에 더 높은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뿐만 아니라,
국가가 자신을 위해 요구하는 모든 것(특정 종교, 사회질서, 군사제도 등)을 인정해야 한다.

철학에 따라 살 수 있을지를 시도하는 철학 비판은 결코 대학에서 가르칠 수 없다.
국가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가 아니라, 항상 국가에 유익한 진리이다. 국가와 철학의 연대는,
철학이 국가의 이익을 진리보다 더 높이 설정하겠다고 약속 할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반시대적 고찰3을 마무리하는 8장에서 니체는, 국가와 철학의 연대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는데,
국가에 고용된 철학자가 어떻게 철학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스스로 변질되는지 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최근에 있었던 한가지 사건과 학자의 태도를 중심으로 토론했지요. 바로
작년 11월 집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백선하 교수의 태도입니다.
그가 스스로 학자적 양심에 꺼리낌이 없다면,
그가 생각하는 객관성(진리)이 현실의 삶과 분리된 창백한 인식이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그가 학자적 양심에 꺼리낌에도 불구하고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가 스스로 국가에 고용된 학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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