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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028
유택 / 2016-10-27 / 조회 1,3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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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강의는 주권 이론에 대한 일종의 작별인사였다.

 

주권 이론과 지배의 조작자

주권의 법적 모델이 권력관계들의 다양체에 관한 구체적 분석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째, 주권은 주체에서 주체에 이르는 이론, 주체와 주체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수립하는 이론이다.(주체) 둘째, 권력의 통일이라는 계기를 가져야 한다는 조건에서만 정치적 의미에서의 권력을 구성할 수 있다.(통일) 셋째, 모든 법률에 대한 일종의 일반법인 어떤 근본적 정당성에 따라서 구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법률)

그러나 푸코의 올해 전체의 계획은 첫째, 권력을 주권으로부터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으로 권력의 관계, 지배의 작동자를 추출하려고 한다. 둘째, 지배의 국지적 전술들을 가로지르고 이용하는 포괄적 전략으로서 권력의 구조를 고찰하고자 한다. 셋째, 지배관계를 확고하게 해줄 수 있는 기술적 도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권력관계의 분석틀로서의 전쟁

정치란 다른 수단에 의해 계속되는 전쟁이다.” 중세를 벗어나면서부터 비로소 군사제도를 갖춘 국가의 출현을 볼 수 있게 됐는데, 이것은 전쟁의 일상적이고 전반적인 실천을, 전쟁관계가 부단히 가로지르던 사회를 대체했다. 전쟁이 국가의 경계로 추방되고 실천에 있어서 중앙집권화되는 동시에 국경으로 밀려나게 됐던 때, 어떤 담론이 홀연히 등장했다. 이것은 사회에 관한 첫 번째 역사적-정치적 담론이었고 그때까지 익숙했던 법학적-철학적 담론과는 아주 상이한 것이었다. 역사적-정치적 담론은 전쟁을 항구적인 사회적 관계로 이해한 동시에 모든 권력 관계와 권력제도의 지울 수 없는 근간으로 이해한 전쟁에 관한 담론이었다.

 

이 담론은 양의적이다.(68) -> 이 말은 왕권에 대한 민중귀족의 이중의 도전과 관련되어 있기에 양의적이라는 말인가?

 

사회의 이항 구조

전쟁이야말로 제도와 질서의 원동력이다. 평화는 그 가장 사소한 단위에서조차 암암리에 전쟁을 판독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서로 전쟁상태에 있고, 전선이 사회 전체를 연속적이고 영구적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바로 이 전선이 우리들 각자를 한 진영이나 다른 진영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중립적 주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누군가의 적인 것이다. 즉 하나의 이항구조가 사회를 가로지른다.

 

이항구조라는 말은 이해가 감... 그런데 주권이론에서는 3항 조직, 즉 세 개의 신분으로 이뤄진 조직(71)이라고 하는데 삼항조직이란 무엇인가? -귀족-평민???

 

역사적-정치적 담론, 영구적 전쟁의 담론

이것은 중세 이래의 서구 사회에서 엄격한 의미에서 최초의 역사적-정치적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이 담론은 늘 관점을 담고 있는 담론이다. 첫째, 힘관계에서 출발해, 이 힘관계의 발전 자체를 위해, 결국 말하는 주체, 즉 법을 말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법학적-철학적 보편성에서 배제함으로써 진실과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담론이다. 둘째, 가치, 균형, 이해가능성의 전통적인 양극성을 뒤집는 담론이다. 셋째, 전면적으로 역사적 차원 속에서 전개되는 담론이다. 신화와 접합되면서 영구적 전쟁의 테마와도 연결된다.

 

변증법과 그 코드화

변증법은 얼핏 보기에 모순과 전쟁의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운동의 담론인 듯하지만, 사실상 역사적-정치적 담론을 철학적-법학적 담론의 낡은 형식 속으로 회수하고 그 자리를 옮겨 작동케 했다. 즉 철학과 법학에 의한 식민지화와 권위주의적 평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인종투쟁의 담론과 그 기록

질서와 평화 아래에서 전개되는 이 전쟁은, 우리 사회를 동요시켜 이항의 양태로 쪼갠 이 전쟁은 근본적으로 인종전쟁이다. 종족적 차이, 언어의 차이, 힘의 차이, 활력의 차이, 에너지의 차이, 폭력의 차이, 미개상태의 차이, 야만상태의 차이, 한 인종에 의한 다른 인종의 정복과 예속화와 같은 요소들에 의해 전쟁의 가능성을 구성하고 또한 전쟁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며 발전시킨다. 사회체는 근본적으로 두 인종 위에서 접합된다. 사회는 끝에서 끝까지 이런 인종간 대결에 의해 관통된다. 17세기에는 본질적으로 편향된(탈중심화된) 진영을 위한 투쟁의 도구였던 이 인종투쟁의 담론은 재중심화되며 바로 권력의 담론으로 된다. 즉 국가인종주의가 등장한다.

 

여기서 두 개의 전사’(83)가 잘 이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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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19세기 말까지, 인종주의적 담론으로 급선회될 때까지, 인종전쟁 담론이 어떻게 하나의 대항역사로서 기능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역사적 담론과 그 옹호자들

역사란 권력의 담론이며, 권력이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의무의 담론이다. 역사는 또한 광채의 담론이기도 한데, 이것에 의해 권력은 매혹하고 공포에 떨게 하고 꼼짝 못하게 만든다. 요컨대 속박하고 꼼짝 못하게 만들면서 권력은 질서를 창설하고 보증하는 것이다.

 

인종 투쟁의 대항역사

역사적 담론은 더 이상 주권의 담론이 아니고, 인종의 담론조차 아니며, 인종들에 관한 담론, 인종들 간의 대결 담론, 민족들과 법률들을 통한 인종투쟁의 담론일 것이다. 인종투쟁의 역사는 하나의 대항역사이다. 실제로 이 대항의 역사는 의무를 부과하는 주권자의 법률의 통일성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영광의 연속성을 산산조각 낸다.

 

로마적 역사와 성서적 역사

예루살렘이란 중세 시대에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반대였다. 성서는 비참과 봉기의 무기였다. 성서는 법률과 영광에 맞서 봉기하게 만드는, 즉 왕들의 부당한 법률과 교회의 화려한 영광에 맞서 봉기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로마 유형의 역사적 담론은 사회를 평정하고 권력을 정당화하고 사회체를 구성하는 질서, 또는 오히려 세 개의 질서들로 이뤄진 질서를 정초한다. 이와 반대로 성서적 유형의 역사적 담론은 사회를 분열시키며, 법률들에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만 정의로운 권리를 말하는 담론이다.

 

혁명적 담론

인종전쟁의 담론에서 주목해야 할 것으로 첫째, 극히 유동적이고 다면적이다. 권력의 형태에 맞선 비판과 투쟁의 도구였다가 나중에는 식민화된 하등-인종의 자격을 박탈하자는 주장에도 봉사한다. 둘째, ‘인종이라는 말 자체는 하나의 안정된 생물학적 의미로 고정되지 않았다. 셋째, 주권의 역사와 인종투쟁의 역사 사이의 이런 충돌에서 출발해 앎의 장과 내용의 영속적인 간섭과 생산이 일어났다. 넷째, 성서적이라고 부를 역사의 편에, 여하튼 요구로서의 역사, 봉기로서의 역사의 편에 분명히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인종주의의 탄생과 변형

인종의 순수성이라는 테마가 인종투쟁이라는 테마를 대체할 때 인종주의가 탄생한다고, 또는 대항역사가 생물학적 인종주의 전환된다. 인종투쟁의 담론이 혁명의 담론으로 변형됐던 그 순간에, 인종주의는 인종투쟁의 담론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출발해 다른 방향으로 역전된 혁명적 사상/기획/예언이었다. 인종주의는 말 그대로 혁명적 담론이지만, 뒤집힌 형태로 그러하다.

 

인종의 순수성과 국가인종주의: 나치적 변형과 소비에트적 변형

혁명적 담론에 대한 대안으로서, 오래된 인종투쟁 담론의 변형으로서 구성됐던 이 인종주의는 20세기에 또 다시 두 차례 변형된다.(나치식 변형과 소비에트적 변형) 19세기말에 국가인종주의가 출현한다. 즉 생물학적이고 중앙집권화된 인종주의이다.


재미있어서 읽다보니 정리까지 하게 되었네요. ^^; (좀 진도 더 빨리 빼면 안되나...?)

이번에도 다행히 대충 이해는 된 것 같은데..

또 세미나 정작하면 강력한 텍스트 독해녀에 의해

나의 오독이 드러날테니... 단단히 마음 준비해야 할 듯. ㅎㅎ

그럼 총총 금욜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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