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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공백] 후기 11/18 김기택
반디 / 2016-11-21 / 조회 1,1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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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에는 김기택 시인의 첫 시집 <태아의 잠>을 읽었습니다.  기존 멤버인 무긍, 반디, , 희음, 오라클 외에 두 번 결석했던 토라진님과 여행에서 돌아온 주호님도 함께했습니다. 신춘문예 원고마감을 앞두고 시인의 첫 시집과 거기에 실린  등단작을 살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기택 시인은 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했고,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꼽추>, <가뭄>이 당선되어 시단에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태아의 잠》1992, 《바늘구멍 속의 폭풍》1994, 《사무원》1999, 《소》2005 , 《껌》 2009, 《갈라진다 갈라진다》 2012 외에 동시집 번역시집 다수 있습니다. 상을 타는 복도 많아서 1995년 제14회 김수영 문학상, 2001년 제46회 현대문학상, 2004년 제11회 이수문학상, 2004년 제4회 미당문학상, 2006년 제6회 지훈문학상, 2009년 상화 시인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꼽 추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어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가끔 등뼈 아래 숨어사는 작은 얼굴 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 하나
그것마저도 아예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시인의 등단작 중 한편입니다. 출퇴근길 지하도 입출구에서 매일 부딪힐 수 있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입니다. 그것을 마치 눈앞에 들이밀듯 적나라하게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꼽추의 튀어나온 등을 알로, 등뼈를 철근으로 묘사한 부분들이 탁월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단어는 하나도 없고, 짐작하기 어려운 상상이나 은유도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히는 몰입도를 높이 사는 분도 있었고,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을 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의견이 분분했던 건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행에 관해서였는데요. 2연까지 읽은 독자는 시 속에 등장하는 꼽추가 죽었다는 것을 이미 알 수 있으니 이 마지막 행은 없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는 의견과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으로 나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어느 쪽이신가요?


가뭄

 

울음은 뜨거워지기만 할 뿐
눈물이 되어 나올 줄을 모른다
힘차게 목젖을 밀어올리지만
아직도 가슴속에서만 타고 있다
매운 혀 붉은 입을 감추고
더 뜨거워질 때까지 더 뜨거워질 때까지


‘가뭄’ 역시 등단작입니다. 시집에 실린 제목들은 거의 모두가 시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으로 쓰였습니다. 시집 한 권에 등장하는 쥐, 닭, 개, 호랑이, 원승이 등의 동물들로 거의 동물의 왕국이나 다름없죠. 김기택 시인이 아니더라도 시인들의 시에는 여러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김기택 시인의 시에 드러나는 것처럼 전면적인 경우는 드물지요. 그래서 우리는 김기택 시인은 시를 쓸 때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시를 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가뭄 역시 제목 먼저 정해놓고 쓴 시가 아닐까 추측해보았습니다.
등단작 두 편을 읽으면서 시인의 등단 당시의 한국일보의 당선작을 뽑는 성향도 짐작해 보았습니다. 당선작을 선택하는 성향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또 심사위원의 성향이 크게 작용한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구멍의 어둠 속에 정적의 숨죽임 뒤에
불안은 두근거리고 있다
사람이나 고양이의 잠을 깨울
가볍고 요란한 소리들은 깡통 속에
양동이 속에 대야 속에 항상 숨어 있다
어둠은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굶주림이 있는 곳
몽둥이와 덫이 있는 대낮을 지나
주린 위장을 끌어당기는 냄새를 향하여
걸음은 공기를 밟듯 나아간다
꾸역꾸역 굶주림 속으로 들어오는 비누 조각
비닐 봉지 향기로운 쥐약이 붙어 있는 밥알들
거품을 물고 떨며 죽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
아아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

 

 

김기택 시인의 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시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므로 덧붙일 말이 없는 거지요. 아마도 한국시단에 이런 시적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김기택 시인이 독보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묘사하려는 대상에 대해 너무나 적나라하게 말해버림으로써 말하는 대상은 사라지고 그것을 묘사한 김기택 시인의 시창작 방법만 남는 것 같습니다.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할 수밖에 없고 묘사력에 탄복하지만 그 긴장이 풀어져버리면 시적 여운이나 여백의 미 같은 것은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불안이 두근거리고 있다’라는 말에 시쳇말로 뿅~ 갔었습니다. ‘불안’이라는 추상어에 ‘두근거리다’라는 동사를 붙여 문법적 오류를 뛰어넘어 말이 되는 아니 더 빛나는 말을 만드는   저것이 바로 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힘이 세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동작인가.
목 잘리지 않으려고 털 뽑히지 않으려고
닭발들은 온 힘으로 버틴다 닭집 주인의 손을 할퀴며
닭장 더러운 나뭇바닥을 하얗게 긁으며.
바위처럼 움직임이 없는 고요한 손아귀 끝에서
그러나 허공은 닭발보다도 힘이 세다.

모든 움직임이 극도로 절제된 손으로
닭집 주인은 탱탱하고 완강한 목숨을 누른다.
짧은 시간 속에 들어 있는 길고 느린 동작.
힘의 극치에서 힘껏 공기를 붙잡고 푸르르 떠는 다리.
팔뚝의 푸른 핏줄을 흔들며 퍼져나가는 은은한 울림.

흰 깃털들이 뽑혀져나간 붉은 피가 쏟아져나간
닭의 체온은 놀랍게도 따뜻하다.
아직도 삶을 움켜쥐고 있는 닭발 안에서
뻣뻣하게 굳어져 있는 공기 한줌.
떨어져나가는 목숨을 붙잡으려 근육으로 모였던 힘은
여전히 힘줄을 잡아당긴 채 정지해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동작인가.

 

 

매일매일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일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요즈음이다보니 쥐, 닭 같은 죄 없는 동물들을 자꾸 입에 올리게 됩니다. 푸른 기와집의 닭은 어찌나 힘이 센지 버티고 앉아있는 것이 슬퍼 보일 지경입니다.

이 시에 대해서는 꾸며주는 말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1연 5행의 ‘바위처럼 움직임이 없는 고요한 손아귀 끝에서’ 에서의 ‘바위처럼’은 불필요하다는 말이 있었고요. 2연 5행에서 ‘푸른 핏줄’ 역시 ‘푸른’은 사족이라는 말이 오갔습니다.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장닭공화국/이종수
 
새벽녘 목청을 다듬으며
칠성무당벌레마냥 높은 곳에 오른다
누구나 아침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까
잠깐 벼슬을 쭈뼛거리다가
길게 한 소리 뽑는다
높은 곳에 올라보니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가 거느린 암탉들처럼 멍청해 보인다
폐계 천원 폐계 천원 한다는 양계장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
튀김닭으로 팔려 가고 닭도리탕감으로 팔려가는
저 수백 단으로 쌓인 유통의 나라를 굽어보며
그레코로만 선수처럼 발바닥을 닦아본다
 
아침이 온다고 다 같은 아침이 아닌데
아침만 질러놓고 보면 이 나라 모두
아침 빗자루질 같을 거라는 막연한 몽상을 하며
지난밤 닭장 횃대에서 자다
쥐들에게 뜯겨 살이 다 드러난 암탉들을
거느리고 한껏 목을 꼿꼿이 세운다.
양계장에서 팔려온 암탉들 끌고 운동도 시켜야지
그래야 살이 맛있어지지
자, 이제 휴게소로 나가 볼까
존경하는 주인 아저씨,
벌써 일어나 나를 보러 오는 걸 잘 봐
내가 얼마나 신임 받는 줄

조금 있다가 보면 알게 될 거야
몸 생각한다고 촌닭, 토종닭 아니면 먹질 않는
사람들의 머릿속이나마 꽉 채워주려면
꼭 내 연기가 필요하지 단칼에 쓰러져 죽는 시늉하는
일품 연기를, 연기가 끝나면 양계장 닭으로 바꿔치기 하는
아저씨도 일품이지
어차피 못 쓰는 날갯죽지 조금 아픈들 대수로냐
휴게소 가든 벼슬살이 이만하면 좀 좋아
휴게소 가든 닭도리탕 정치하는 맛에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재미 말이야

 

김기택 시를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씀드렸던 시 입니다. 이 시는 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에요. 저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제 기억과는 좀 다르네요. 제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었을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저의 각색(?)이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닭을 화자로 내세워 비유한 현실이 참 고급지게 재미있지 않나요? 

 

태아의 잠 1

 


그녀의 배 위에 귀를 대고 누우면 맑은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작은 숨소리 사이로 흐르는 고요한 움직임이 들린다 따뜻한 실핏줄마다 그것들은 찰랑거린다 때로 갈비뼈 안에서 멈추고 오랫동안 둔중한 울림이 되어 맴돌다가 다시 실핏줄 속으로 떨며 스며든다 이 소리들이 흘러가는 곳 어딘가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한 아이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생각 없는 꿈이 되려고 놀란 눈이 되고 간지러운 손가락 발가락 꿈틀거림이 되려고 소리들은 여기 한 곳으로 모이나보다 이 모든 소리들이 녹아 코가 되고 얼굴이 되려면 심장이 되고 가슴이 되려면 잠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 것일까 잠의 힘찬 부력에 못 이겨 아기는 더 이상 숨지 못하고 탯줄이 끊어지도록 떠올라 물결 따라 마냥 흔들리고 있다 고기를 잡을 줄 모르는 잎사귀 같은 손으로 부신 눈을 비비고 있다

 

이 시는 김기택 시인의 첫 시집 표제작인데요. 같은 제목의 시가 한 편 더 있습니다. <태아의 잠1>이 아내의 배에 귀를 대고 미래의 아기를 그려보는 아빠가 화자라면, <태아의 잠2>는 엄마 뱃속에서의 잠보다 더 깊은 잠에 빠지는 태아에 대한 이야기인데, 태아가 화자로 설정된 점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더욱 숙연하고 슬픈 내용의 시였어요.


병에 대하여

 


말로 만들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생각들은, 술에 섞어 오줌으로 빼내지 못했던 생각들은, 뜨거운 덩어리가 되어 어디엔가 걸려 잇다가 식으면 파삭파삭 가라앉는다. 발바닥에 쌓인다. 쌓여 무릎으로 넓적다리로 올라온다.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흔들어 춤을 만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다만 두께만 더해간다. 어느 날 문득 무심코 받아먹은 말에 가슴이 찔렸을 때, 거울을 보고 튀어나온 기억에 머리를 다쳤을 때, 억지로 침을 삼켜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것을 눌러 막았을 때, 식은 몸은 더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먼지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지만 열기와 바람이 불어 닥치면 일제히 일어나 그 힘에 붙어 방향 없는 속력이 될 것이다. 어지럽게 온몸 구석구석 날아다닐 것이다. 찬물을 끼얹고 독한 약을 뿌려도 속도 붙은 먼지들을 붙잡지는 못할 것이다. 누우면 머리를 밀고 들어와 벼랑이 깊은 잠을 부르고 빙글빙글 도는 현란한 꿈을 만들 것이다. 흔들면 두개골 덜그럭 소리가 나는 두통을 만들 것이다. 전에도 몇 차례 있었던 일이므로 이런 일로 결근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얼굴이 붓는 약기운에 힘입어 여전히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고, 딱딱거리는 말대꾸를 전화통 속으로 밀어 넣고, 술도 몇 잔은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내장 벽에 한동안 두드러기가 돋고, 수십 그릇의 흰 밥이 식도를 거쳐 고스란히 항문으로 나오고, 뜨거운 오줌에 요도가 화상을 입은 후에야, 먼지는 아주 더디게 가라앉을 것이다. 더 큰 두께가 되어.

 

병의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무지막지한 이분법의 잣대를 허락해주신다면 우리는 거칠게 두 가지 예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바이러스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적으로 발생 가능한 것이지요. 현대인들이 걸리는 병의 원인은 이 내부적 요인에 관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트레스죠. 이 시는 우리가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한 줄 한 줄 그려냅니다. 그것이 모여 응어리가 되어 자라다가 종양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 같습니다. 왠지 그 덩어리는 점액질일 것만 같아요. 그런데 시인은 그것을 점액질이 아니라  ‘파삭 파삭 내려앉는’ 먼지로 그려냅니다.  병의 진행이야 점액질이든 먼지든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두개골 덜그럭 소리가 나는 두통’이나 ‘수십 그릇의 흰 밥이 식도를 거쳐 고스란히 항문으로 나오고, 뜨거운 오줌에 요도가 화상을’ 입는 경험 중 한가지는 누구라도 해봤으리라 짐작됩니다.

김기택의 첫 시집은 극사실주의적 묘사로 돋보였고, 이해가 불가능한 시도 없고, 시인의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할 내용도 없었습니다. 한편 한편 읽을 때마다 탄복만이 우리의 몫이었지요. 하지만 우리 가슴을 훈훈하게 하거나 여운이 남는 시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더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 첫 시집 표지에 적혀 있는 소개 글을 옮겨 둡니다.


"첫 시집인 이번 시집에서 그는 섬세한 관찰과 돋보이는 상상력으로 동물에 대한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는 주로 동물의 움직임, 생김새, 본능적 욕구 등을 통해 그것의 약동하는 생명의 힘을 표현하면서, 또한 탁월한 감각적 이미지로 동물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을 연결시키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타성에 길들여진 정태적인 인간의 배면에 숨겨져 있는 원초적인 운동성과 원시적인 생명성을 길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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