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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Z₁Y₂X₁의 발제문 - 2016/12/6 세미나 발제문
Z₁Y₁X₁ / 2016-12-07 / 조회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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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9월 6일 오후, 나는 보르헤스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공간 ‘실험자들’을 찾았다. 세미나실에 들어서니 책상 위 먹다 남은 토마토가 담긴 접시와 컵들, 책과 가방들이 있어 몇몇 다른 세미나원들이 이미 왔음을 짐작케 해주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세미나가 시작하는 7시까지 30분 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다들 잠깐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다른 세미나원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인터넷이나 뒤적거릴까 싶어 컴퓨터 앞으로 가 앉았다. 마우스를 잡고 가볍게 흔드니 모니터 화면이 켜졌다. 그런데 화면에 누군가 쓰다 만 문서 작성창이 띄어져 있었다. 무심코 보는데 익숙한 단어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나는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문서는 그날의 보르헤스 세미나 발제문이었다. 그날 발제를 맡은 세미나원이 ‘Z1Y2X1'이였으므로 발제문의 작성자는 ‘Z1Y2X1'이였을 것이다. (이것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 그가 그날부터 세미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보르헤스 세미나 발제문의 전문이다. (그날 세미나 때 썼던 출력본이 내게 남아 있다.)

 

푸네스는 결코 쓸 수 없을 발제문1)

 

 이 발제문에서 드러나는 보르헤스의 작품들에 대한 나의 견해들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 중 하나의 길일 수 있음을 유념해주기 바란다. 어쩌면 내 견해들은 허버트 쾌인의 『비밀의 거울』에 대하여 평단이 프로이트와 줄리앙 그린의 이름을 들먹였던 것과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르헤스가 통찰했듯, 텍스트를 매개로 한 작가와 독자의 만남 속에서 텍스트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완전하게 결정되어 있으며 독자는 단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에 따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하며, 독자가 텍스트를 읽는 과정에서 해석(오해마저 포함하는)이 곁들여짐으로써 비로소 결정되는 것’이다.2) (이러한 과정은 이렇게 결정된 ‘텍스트의 의미’가 다시 또 다른 이에게 전달될 때에도 반복된다.)3) 그러므로 (『비밀의 거울』에 대하여 프로이트의 이름이 언급되었던 것처럼) 나의 견해들이 혹시 오해에서 비롯된 거짓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적절하며 설득력이 있다면 굳이 문제 될 것은 없다. 다시 말해, 텍스트를 읽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텍스트에 담겨 있는 작가의 의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적절하게 해석하는가 하는 것이며, ‘텍스트의 의미’의 가치 판단은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는가에 달려 있다.4)

 

 - 보르헤스의 텍스트관

 

 보르헤스는 다양한 방법(기교)으로 자신의 텍스트관을 이야기한다. 「칼의 형상」에서는 구성과 인물 설정을 통해 텍스트를 통한 소통의 불완전성을 이야기하고5),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죽음과 나침반」에서는 내용을 통해 텍스트 수용에 대한 작가의 연출 가능성과 독자의 순진성을 그리며 순수한 텍스트 수용의 허상을 이야기한다.6)

 그럼 먼저 「칼의 형상」에서 드러나는 ‘텍스트를 통한 소통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자. 「칼의 형상」에서 <영국인>7)은 화자에게 그의 얼굴에 난 상처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때 그는 영어와 스페인어, 심지어 포르투갈어까지 뒤섞어가며

 

 발제문은 미완인 채로 여기까지만 쓰여 있었다. 주석 번호로 보이는 위첨자들로 미루어 보아 작성자는 자신의 발제문에 주석까지 달아가며 자신의 의도가 왜곡되어 전달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결국 발제문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그는 보르헤스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한편으로 미완이야말로 보르헤스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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