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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히스토리쿠스] 6강 주제인, 역사와 도덕, 참고 자료
여하 / 2017-02-17 / 조회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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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 의뢰로 쓴 서평입니다.

마침 역사와 도덕의 문제를 생각하게 해준 계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서평 : 이정철,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너머북스, 2016)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1. 질문은 어떤 공부에서도 중요하다. 스님에게는 화두가 질문이다. 같은 화두가 역사학자에게도 있다. 궁금한 것, 풀리지 않는 것을 들고 가는 힘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힘이 있다. 앞서 낸 대동법, 언제나 민생을 생각하노니등이 그랬듯이. 대동법에 대한 서평 제목이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였는데, 그 말이 이 책을 쓰는 데 화두가 되었다고 한다.(10) 나는 이렇게 문제의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곱씹고 그걸 언젠가 글로 써내는 학자들을 좋아한다. 누구나 그렇지 않느냐고? 누구나 그렇지 않다. 화두를 들고만 있는 학자도 있고, 연구는 하되 연구가 자신과 겉도는 소외된 연구를 하는 학자도 있고, 묵직한 성과를 내는 학자도 있다. 같은 화두, 같은 성경말씀을 듣고도 성취가 다른 스님, 사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1. 이 책은 조선 선조 때 동서(東西) 분당이라는 사건에 대한 연구이다.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세조의 찬탈 이후 좌절되었던 일련의 정치집단이, 100년만인 명종 후반 등장하는데, 이들을 학계에서는 사림(士林)이라고 부른다.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집단이었다. 그런데 이들 사림이 조정에 등장한지 불과 20년만에 갈라졌다. 왜 그랬을까? 저자의 말을 빌면, 유익한 정치를 하도록 훈련받은 지식인 정치집단인 사림들이 왜 비극적인 갈라서기를 초래했나, 하는 것이다.

 

1. 이 책은 선조 8(1575)부터, 정여립 옥사로 알려진 기축옥사(1589)가 일어난 뒤인 선조 23(1590)까지의 정치사를 다루고 있다. 임진왜란(1592)을 거치면서 사료가 많이 유실되어 이 시기에 대해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선조실록도 듬성듬성하고, 선조수정실록도 자료를 추가했다고는 하지만, 율곡의 경연일기만한 1차 자료가 없을 정도로 자료가 성글다.

 

1. 그래서 이 책이 갖는 의미가 크다. 동서분당 시기의 사건 전개를 이 책만큼 정리한 연구는 없었다. 나 역시 이 시기에 대해 율곡의 경연일기를 번역했고, 기축옥사에 대한 논란을 다룬 유성룡인가, 정철인가를 쓴 경험이 있지만, 사건의 흐름을 다시 복습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독자들은 이 책 하나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기초사실을 이해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너무 자세해서 조금 건너뛰어도 될 정도이다. 읽을 때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또 조금 낯선 용어나 제도는 그때그때 설명을 하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겁을 먹지 않아도 된다.

 

1. 저자는 특유의 감수성을 가지고 사실을 해석할 줄 안다. 이런 능력은 사료를 꼼꼼히 읽은 결과, 즉 고민과 사색이 길었던 결과이지만, 아무튼 좋은 자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다보니, 선조, 이이, 유성룡, 이발, 정철 등 당대 인물들의 발언과 활동에 대한 이해도 섬세하다. “류성룡은 상대와 의견이 달라도 대놓고 반박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리는 사람도 아니었다.”(130), “계미삼찬에서 이이의 죽음까지의 일련의 정치적 경험은, 선조를 신중하게 만들었다.(279) .

1.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참 아쉽다. 첫째, ‘선한 지식인나쁜정치는 낯익은 프레임, 당쟁론을 연상시킨다. 물론 저자의 뜻은 그렇지 않고 서술도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이 그렇게 읽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둘째, 나는 역사가 인간의 도덕적 질문과 행위를 당연히 포함하고 있지만, 역사와 도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역사와 도덕의 영역을 혼동하면 인간의 행위가 의지의 문제로 환원된다.

 

1. 나는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구조, 의지, 우연이 다 담겨 있다고 본다.(이는 호모 히스토리쿠스1부에 상세하다.) 구조만 알고 의지를 놓치면 세상탓만 하고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며, 의지만 알고 구조를 놓치면 개혁을 못하며, 우연을 놓치면 역사의 비극 또는 희극을 놓치게 된다. 이것이 역사가 도덕과 다른 이유이다. 아니, 역사가 도덕이 아닌 이유이다. 사림들의 도덕적 올바름이 이기론(理氣論)이나 그들이 읽은 책인 심경(心經)에 도덕적 신념이 담겼다고 해도(470), 그들이 산 역사가 도덕으로 치환될 수 없다.

 

1. 치환되지 않는 것을 치환할 때 무리가 생긴다. 저자는 사림정치가 기축옥사에서 정치적 파국’, ‘국가적 파국을 맞았다고 보는 듯하다.(467) ‘사림의 실패라는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사림의 극소수만 살아남은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 후배, 제자였다. 아무리 기축옥사가 비극적이라도, 역사적으로 보면 그건 파국이나 실패가 아니라 정치사에서 흔히 보이는 덜컹거림이었다는 게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파국이나 실패로 단정하기에는 그 뒤 200년이 너무 길지 않은가 말이다.

 

1. 좋은 책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나와 의견이 같든 다르든 상관없다. 자꾸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계발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점일 텐데, 이런 느낌이 든다면 생산적인 독서일 것이다. 이 책은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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