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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5강 후기입니다. +3
엇결과 순결 / 2017-08-13 / 조회 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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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이 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을 내비치는 8월 둘째주 우리는 어김없이 해방촌에 모여들었습니다.

날이 너무도 더운지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손도 다쳐서 우울했던 터라 이 한 여름에 독해의 폭이 넓고 다양한 장자를 읽어내는 것은 때로는 즐거움에서 버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했었습니다.

평소 저는 장자를 스피노자와 니체의 연장선 상에서 끝없이 현실을 긍정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삶을 살아내려는 삶의 철학으로 읽어내려 했던 태도 때문에 이 곳 해방촌에서의 독해가 개인적인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된 생각과 다른 분들과의 의견 교류 속에 머리 속의 혼란은 이제 장자를 평면적인 이해에서 보다 다면적인 입체감있는 장자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설레임 속에 강좌로 들어가 봅니다.

오늘의 주제어는 장자의 安命, 亡形 그리고 와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입니다.

 

(1) 신도가 이야기

 

- 형벌을 받아 다리 한 쪽을 잃은 신도가가 집정관으로서 구분짓고 차별하려고 하는 정자산을 점잖게 그러나 매우 날카롭게 꾸짖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전쟁 속에 혼란과 도탄에 빠져있는 현실 속에 시대의 희생이 자신일 뿐, 잘나서도 못나서도 아님, 더 나아가 어찌 할 수 없음을 알고 을 편안히 여기는 것(安命)은 오직 德者만이 가능하다고 일갈하기 까지 합니다.

 

- 장자의 에 대한 이해

· 미래에 도래할, 미리 정해져 있는 삶의 운명적 굴레가 그리스 신화 또는 서양 철학에서 다루는 대상이라면,

장자의 그것은 현재 놓여져 있는 삶의 조건 또는 상태를 의미(주로 사회적 / 신체적 제약을 의미)

기픈옹달샘, 주어진 현재의 삶의 조건(사회적/신체적 불편함 등)을 받아들이고 담담히 살아나가는 자세가 安命이 아니겠는가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생각 1.] 安命造命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적 태도에 대해 고민해 봤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삶의 현상과 조건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제 생각은 안명과 조명이 적적히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의 삶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과 어찌할 수 없이 주어지는 조건들 모두가 혼재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그 사람의 처지(處地)를 고려하지 않고 의지만을 강요할 수 없듯이, 반대로 의지는 제쳐두고 그 사람의 처지만을 가지고 이해해 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삶의 조건에 대한 투쟁과 노력을 다하고 나서 그래도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신체적 제약에 대해서는 애달아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장자가 들려주고 싶어했던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며칠을 생각한 끝에 어제 저녁에야 신도가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졌습니다. 전국시대 혼란의 시기,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 시기를 신도가는 나름 생존과 옳음의 편에 서서 노력했던 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이 비록 당시 시대의 요구에 맞지 않아 사회적 낙인이 찍혔으나, 남들에게 그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스스로 가치를 만들고 그것에 집중하며 노력한 삶, 그리고 그 결과에 충분히 스스로 安分自足하는 삶! 이 점에서 장자의 安命은 결코 삶에 대한 소극적 태도가 아니며, 오히려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고 만족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삶의 태도하고 생각합니다.

 

(2) 애태타 이야기

- 정말 못생긴 사내 애태타, 그러나 그의 매력()이 얼마나 훌륭한지, 그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애태타 이야기를 하면서 장자는 말합니다. 을 잊어야 그가 가진 을 바라볼 수 있다고.

 

- 은 규범화된 형태를 의미하며, 이를 강요하고 정해진 틀로 사람을 맞추려고 하는 것을 장자는 으로 이해

그렇다면, 이야말로 자신이 아닌 타인이 규정하는 것이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기픈옹달샘님은 忘形을 통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려는 것이 장자의 메시지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생각 2.] 이 부분을 제가 처음 접한 것은 약 2년 전입니다. 당시 니체의 도덕률에 충격을 받고 내가 고집하고 지키려고 해 왔던 모든 가치들이 허망해 지고 있었을 무렵, 장자의 망형 이야기는 거의 카운터 펀치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제게는 거봐! 니체만 그러는 거 아니야, 장자도 그렇잖아. 네가 얼마나 남들이 만들어 놓은 도덕규범과 에 갇혀 살아왔는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요.

특히 저는 아들에게 매우 엄한 아빠로서 해서는 안되는 것과 해야 할 것에 대한 엄격함을 유지하고 있었더랬습니다. 망형을 읽은 그날, 공교롭게도 니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철학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의 문제라고.

그 즉시 옆에서 놀고 있던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 아빠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제 다시는 강요하지 않을께.” 아들은 눈만 껌벅이며 뭔소리인가? 했지만 그래도 저는 꼭 그렇게라도 저의 과거에 대해 고해성사하고 싶었더랬죠.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교육받은 가치속에 함몰되어 헤어나오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가지 변한 것은 아들에게 그리고 집사람에게 일정한 결론을 미리 정하고 대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열린 자세로 상대가 뭘 원하는지 마음을 비우고 들으려 노력합니다. 조언은 해주되 강요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장자가 제게 준 가장 큰 삶의 변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3) 에 대한 장자의 설명

 

- 장자의 선문답이 계속됩니다. 라 함은, 분명 존재하나 구체적 형태가 없다.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 없다. 스스로 깨우침으로 얻을 수는 있은 역시 볼 수는 없다.

- 깊은옹달샘님의 친절한 설명, 儒家는 학습의 대상이며, 따라서 배우고 익혀 재현 가능하게 하는 것인 반면, 장자의 는 전할 수도 재현할 수도 없는 철저히 개인적인 가치의 문제이며, 스스로 걸어가는 속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생각 3.] 제게 장자가 첫장 곤이 붕이 되어 비상하는 이야기부터 지금까지 들려준 메시지는 너만의 가치를 세워라, 너 자신의 가치가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 만사가 모두 그 나름의 가치가 있음을 받아들여라였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장자의 는 오히려 쉽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나만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서 떠나는 여정, 그 끝에 내가 만나는 나의 가치......그것이 가 아닐까 합니다.

 

(4) 죽음에 대한 장자의 태도

 

- 죽음에 대한 긍정적 태도로서 내세관 또는 종교적 태도가 아니며, 삶과 동일 선상에서 죽음 그 자체도 변화일 뿐이라고 설명,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라고 말합니다.

 

 

[글을 마치며 蛇足]

어느덧 장자 강의가 마지막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워낙 열린 구조의 문장들인 지라 해석의 폭이 넓은 텍스트임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어쩌면 열린 텍스트를 열린 사고의 여러분과 함께 나누었기에 더욱 뜻깊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느덧 장자를 읽으면서 .......그건 장자의 말에서 스스로 더 나아 가신 것 아닐까요?”하는 기픈옹달샘 님의 말씀이 마치 경고등처럼 머리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고집도 버릴 수 없음도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과거보다 더욱 더 치열하게 장자를 읽게되는 것 같습니다. 이점에서 여러분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강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득이하게(장자에서 참 의미있게 다가온 단어......부득이.....ㅎㅎㅎ) 불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강의 또는 세미나에서 소중한 인연 계속 만들어 나가길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고군분투 속에서 꼼꼼하게 정리하셨군요.
며칠 전 여름밤의 열기가 드문드문 떠오르는 후기입니다. 함께 있었지만 다른 입장에 있었던 우리.
철학이 매력을 가지는 건 해석과 입장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그 입장의 문제에서 모든 해석은 자유로울 수 없을 테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그 입장을 해석에 적극 활용하는 기픈옹달님의 태도에 많이 마음이 움직였더랬지요.
동양철학에 무지한 저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동안 제가 읽었던 서양철학 텍스트인
스피노자와 니체, 들뢰즈 등에 의지해가며 장자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입장의 차이 때문인지 순결과 엇결 님의 견해와는 조금 차이가 있군요.
시대의 가치에 담대히 저항하려는 태도는 현실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역량에 대한 긍정에서 온다고 봅니다.
저는 스피노자나 니체를 그렇게 이해합니다.
자기 역량을 긍정할 때, 도덕이 사라진 세계의 혼돈 속으로 거침없이 걸어들어갈 수 있을 때 자신만의 가치도 만들 수 있습니다.
어설픈 저항이나 순응은 언제든 통념으로의 회귀를 부추깁니다.
저항으로서의 '소극적' 태도는 조심스럽게 시대의 가치(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무력화시키려 하는 출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철학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의 문제라면,
우리는 이토록 텍스트와 씨름할 게 아니라 바로 삶 속에서 무엇인가와 고군분투를 해 나가야 겠지요.
지난 5주 동안 그 싸움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강좌와 세미나에서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엇결과 순결님의 깊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역시 반장의 정성스런 댓글이 바로 달려있네요.
어지러움증 속에서도 시종일관 강사님의 열정 강의와
반장을 위시한 학우들의 자상한 덧글들이
제에게 기억에 남을 멋진 '장자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개인적인 경험, 생각이 어우러진 후기 감사드리어요.

저는 <장자>를 읽으며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늘 헤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긍정보다는 부정, 더 정확히는 긍정에 대한 의심 혹은 의문에 더 기울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그게 <장자> 때문인지, 아니면 제 태도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가운데 어딘가 있겠다는 생각이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장자의 말에서 '스스로' 더 나아간 것"보다는 '천천히' 나아갈 것 필요가 있다 말씀드리려 했던 거여요. 
이번 강의가 <장자>에 대한 명쾌한 이해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참조할 수 있는 하나의 해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랍니다.

가능하면 마지막 시간에도 뵈었으면 좋겠어요.
혹시 못뵈더라도 다른 시간에 얼굴을 뵙기를 기대하며..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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