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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고원] 1101_4강 후기 +2
제이 / 2017-11-06 / 조회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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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 천의 고원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

낯설은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첫장을 펼치면 교묘한 가명들을 배분하고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보존했다는 말부터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관습적인 사고로 당연히 그리하다는 전제만을 가지고 살았는데,  사유의 짧음에서 비롯된 사고의 , 일정한 방식, 이것에서 벗어나라는  들뢰즈의 말인거 같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어렵게 써서 당연히 내가 주체다.. 라는 말을 뒤집는 것부터가 들뢰즈의 사유을 알기위한 시작점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탈영토화, 리좀적 사고,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는 결국 기계적 배치 안에서 직접적으로 기능하다... 1강이 시작한지 얼마안된거 같은데,, 벌써 4강을 진행되었네요. 처음 듣는 강의라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최진석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책을 읽을수 있게 되었고, 들뢰즈가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은 저의 시각을 갖을수 있게 되어서 즐겁습니다.

4강의 잉여성,  관계 속에서 발화될때는 가피하게 필연적으로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사용가치, 잉여가치로 정보와 소통이, 그리고, 읨화와 주체화조차 잉여성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가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사용가치, 교환가치로 상품화하여 잉여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공산주의, 혁명,, 자본주의,,계몽,,, 일단 먹고 살고자하는 의지에서 인간의 욕망이 시작되지만,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이 욕망의 굴레이고, 자본주의 안에서 인간의 욕망을 부추김에 반응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언어 표현에도 심층적인 구조가 있어서  조차도 맥락과 어조를 두어도 타인에게 오해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어서, 이를 설명하려다 오히려, 내가  언어에 갖히는 경우와 나의 의도를 표현하는데는 언어의 한계를 알게 되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진정한 탈주, 몰적인 것과 분자적인 것에 대한 이해가 또다른 이해로 넓혀주는  같았습니다.

5.  가지 기호체제에 관하여.

전기표적인 것이 정치적인것이고, 탈기표적인 것이 일체화를 거부하는 것이고, 반기표적인 것이 진정한 배반인 것으러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줄때, 비가시적인 몰적인것을   있게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머리에 자꾸 맴돈다. 가던지 안가던지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저 보여주는 것뿐.

- 언표행위의 주체는 언표주체로 끌어내려지며, 거기서 언표 주체가 이번에는  다른 과정을 위한 언표행위의 주체를 다시 제공한다.-  

6. 어떻게 기관 없는 신체를 이룰 것인가?

유기체가 없고, 의미가 없는, 주체가 없는 신체. 막연했던 생각이   구체적이게 되어 이해가 되는 시작점에 바로 서있는 것같다는 생각. (나의 착각일  있겠지만,)  물리적인 힘을 무너뜨리고, 기관을 무너뜨리고, 에너지를 세우는 것이 기관없는 신체가 될수 있는 것이 아닐까? 위계화 사회가 없어지고, 우리가 옮길  없는 것에서 옮길  있는 것이 긍정적인 탈주의선이라고 하는 말이 나의 긍정적인 범위를 확대시켜주는 듯했습니다.

늦은 후기, 처음쓰는 후기, 어색하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일단은 저의 이해는 여기까지 입니다. 부족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부탁드리고, 다음번에는 보다나은 저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후기를 마칩니다.

천의 고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된어서 최진석선생님께 너무 감사하구요~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 저의 사유하는 시선을 넓혀주고 있어 행복합니다. ㅎㅎ 저의 리스트에 꼽히는 강의와 책입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제이님이 주목하는 주체의 문제에 귀를 기울여보게 됩니다.
주체를 뒤집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들뢰즈의 사유. 다시 한 번 환기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모든 언어는 명령-어이면서도 늘 잉여적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잉여가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것처럼,
잉여는 언어를 존속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말하게 합니다.
이분법적 선택에서 벗어나는 이중의(두 번의) 배신이 기호체계로부터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유는 사건을 알아보고 비밀을 발견하는 데 쓰여야 하며,
사건은 몰적인 선(규칙들의 체계)과 분자적인 선(틈새. 보이지 않지만, 열려있는 공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견될 겁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우리가 이해하고 따라야 할 모델 혹은 스승은 없습니다.
단지 '탈주'라는 기호를 사랑하고 쓰다듬는 이가 되지 않고, 두려움 없이 방황하는 이가 되기 위하여!
그런 의미에서 제이님의 욕망과 애정들을 늘 응원합니다.

제이님의 댓글

제이 댓글의 댓글

역시 삼월님의 이야기가 더 쏙~ 들어오네요,
두려움없이 저에게 주어진 삶안에서 마음껏 방황하는 이가 되어진다면,,,,진정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같은데..
아이쿠,, 이렇게 또다시 주체가 되려고 하네요,,, 이런이런,,
강의는 계속 되어야하는 것이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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