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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아렌트] 0111_ 2강 후기 +3
엘러리퀸 / 2018-01-15 / 조회 1,166 

본문

 

- '전체주의'라는 체제는 흔히 독재권위주의 등 우리가 겪어왔던 비선출 권력에 의한 비민주적 통치와 혼동된다.

- 독재는 위기상황에 임시로 통치권을 위임한 형태를 의미하며 아마도 로마 공화정 시대 국가위기 상태에서 일인의 집정관에게 초월적 권한을 부여한 독재관이 가장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싶다. 위기라는 명분하에 위임된 권위가 마리우스, 술라에 이르러 종신 독재의 색채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전제정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우리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전제는 권위주의와 함께 초월적 권위를 내세운다는 점은 유사하나 전자와 달리 후자는 체제 내에 정당성을 부여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72년도의 아버지와 12년도의 딸 정도로 생각해두자.

- 파시즘을 전체주의와 시원하게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둘 다 비슷한 시대에 유사한 맥락에서 출발하였으나 파시즘은 한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에 현실을 끼워 맞추며 총체적 지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절대 그럴 일은 없지만) 무솔리니가 능력이 있었거나 (영원히 그럴 일은 없지만) 이탈리아의 군사력이 독일보다 강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은 매우 흥미롭다. 난해한 텍스트보다 소설 <1984>를 통해 아주 명쾌하게 해설되며 마지막 대사,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라는 단어를 통해 전체주의의 총체적 지배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를 알 수 있다.

- <1984>의 중간부분에 등장하는,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겁니다.”라는 대사는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악수와 같은 비장함을 던져주지만 한편으로 죽음을 앞 둔 아이히만의,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 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 입니다.”라는 유언에서는 나 자신과의 대화, 즉 사유가 용납되지 않는 인간의 빈곤한 상상력이 엿보인다.

- 비밀경찰과 비밀리에 면담하게 된 인간에게 저항은 무의미하다. 권력은 오랜 기간 이 분야에서 실적을 쌓아왔고, 인간 본성을 박탈당한 일개인은 굳이 물고문을 할 필요 없이 비극적 결말을 절대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 뒤 당신도 이러한 법칙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알려주면 된다. 체제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포기도 빨라진다. 이는 통제가 엄격할수록, 공포가 만연할수록 효과적이다. 체제는 모든 것이 끝난 후에 한줌의 호의만 던져주면 된다. 그것이 진의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받아든 자에게 그것은, 이미 배제 되어버린 자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성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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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내용보다는 느낀 점 위주로 간단하게 써 보았습니다.

 

 

댓글목록

소리님의 댓글

소리

후기 잘 읽었습니다. 그날의 스케치를 간략히 잘 해주셨네요!
그럼 곧 뵙겠습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후기입니다. 잘 읽었어요^^
이데올로기는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핵심원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적 추론이 세상 모든 것의 '전제'가 되면 자유로운 내면의 대화는 가로막히고,
현실은 이데올로기의 추론에 끼워맞춰지는 소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1894>의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념적 추종 속에서,
스탈린 정권 하에서 "소비에트 정부를 위해 죄를 자백"하는 자발적 복종이 가능해지겠지요?

정창조님의 댓글

정창조

박근혜 정권은, 그리고 한국의 독재 정권들은 어떤 정치체의 이념형에 제일 가까울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후기입니다~아울러 5강에서 다룰 내용을 예비하고 있어서 더 좋으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제가 원래 강의록에 포함시키려다가 포함시키지 않은 내용의 글을 덧붙입니다. 아렌트가 정치체를 구분하는 방식과 관련해서요~

아렌트에 따르면 전체주의 체제와 자주 동일시되곤 하지만, 실은 매우 그 조직 형태가 다른 권위주의 체제는 몇 개의 층을 가진 피라미드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치체의 권위는 그 피라미드의 외부, 즉 초월적인 영역에서 주어지지요(미리 말씀드리는데 아렌트에게 권위는 꼭 나쁜 개념인 것만은 아닙니다). 즉 권위주의 체제는 피라미드 외부에서 권위가 주어지고, 그것이 맨 위, 즉 권좌에 오른 이에서부터 피라미드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피라미드 각 층에 배치된 각 신분에 걸맞는 그 권위에 의거한 질서가 쭉 흘러내리는 정치체입니다. 이는 중세 유럽의 일반적인 정치체 조건을 생각해 보면 비교적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전제정 같은 경우에는 권위주의정과 유사하게 지배하는 이들이 피라미드 상층부에 위치해 있고, 지배받는 이들은 피라미드 밑바닥에 있지만, 권위주의 정치체와 달리 이 둘 간의 사이가 비교적 엉성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권좌에 오른 자와 그의 측근들이 ‘평등하게 지배받는 자들’인 ‘피억압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어 권력을 형성할 수 없게 만들면서’ 자신의 (비교적 정당화될만한 토대가 약한) 억압적 힘을 어떠한 정당한 단계나 절차를 거치지 않고선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구조인 것이지요.
  하지만 아렌트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전체주의 체제나 조직이 피라미드 형태나 일방적인 하향식 구조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오히려 양파의 구조를 닮아 있어요. 명령이 출발하는 곳, 즉 초엘리트 지도자는 양파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는 모든 조직의 내부 중의 제일 은밀한 내부에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바깥으로 여러 층이 그를 감싸고 있습니다. 대중 지지자, 당원, 열성당원, 엘리트 집단, 초엘리트 집단, 비밀경찰 등등의 셀 수 없는 몇 개 층의 겹이 말이에요. 이들 중 어느 조직이나 세력이 현재 그 체제의 실권을 잡고 있는지는 권위주의정이나 전제정과 달리 딱히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조직은 고정화되어 있는 형태도 아닙니다. 즉 각 양파의 층을 구성하는 조직들은 끊임없이 새로 구성되고 또 어떤 조직이 구성되면 그 중에서 엘리트 집단이 또 다른 새 양파 껍질층을 구성해 내기도 합니다. 나치 돌격대에서 나치 친위대가 나오고, 나치 친위대에서 돌격 전문부대, 해골 부대가 나오고, 해골부대가 해체되고 무장 친위대가 되고, 비밀정치경찰대인 게슈타포가 보안경찰에 흡수되었다가, 국가보안본부로 일원화되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성격 탓에 전체주의 체제는 체계적이고 고정된 억압 질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지도 않을 뿐 더러, 어떤 전문화된 관료들로 구성된 정치체의 구조가 형성되기도 힘듭니다.
  이러한 체제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양파구조에서 바깥 쪽 껍질에 속한 집단일수록, 그들은 양파껍질 안쪽의 층들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모르며, 이에 그들의 운동이 비교적 정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양파 안쪽에 있는 이들, 즉 나치 엘리트들이 내놓는 발언이나 음모의 본지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가 감각으로 마주하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정상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파 안쪽에 있는 사람이나 집단일수록 자신의 극단성을 숨기고서, 자신이 속한 층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그들이 더 받아들이기 쉬운 ‘선전’의 방식으로만 다가가기 때문이지요.
  이 체제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은 어떠한 긴 명령 하달의 행정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지도자의 명령이 각 양파의 껍질 각 층에 직접 전달될 수 있다는 점, 즉 지도자가 언제든 이 각 층에 있는 조직들을 직접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엘리트 당원들은 단순히 한 조직에 속해 있지 않고, 여러 조직에 이중, 삼중으로 속해 있었던 데다가 끊임없이 직위를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에 유동적으로 지도자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지요. 이 탓에 이 양파 구조에서는 어느 조직이 현재 실권을 잡고 있는지, 누가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지가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으며, 그렇기에 모두가 단순히 자신은 지도자의 명령을 직접 수행하는 중요한 사람이라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체주의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인사 능력의 달인’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사능력에 따라서만이 양파 껍데기 층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집단들은 모두 지도자의 화신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모든 범죄적 행위의 책임을 위대한 지도자가 떠안고 있는 것이 되기에 좋은 구조이기도 하지요. 하향식 구조의 전제정에서는 지도자가 큰 실수를 저지를 경우, 부하나 특정 신민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실수를 저지른 각 부서나 조직이 그 자체로 총통의 화신이기 때문에 오직 지도자만이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도자는 실수를 저지를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가 ‘실수를 저지를 리가 없다’는 것은 그 지도자가 위대해서라기보다는 그 조직의 ‘기능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때, 언제나 전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지도자나 지도자의 화신이 실수한 내용은 그 사실을 완전히 지워버리거나 ‘승리를 위한 한 과정’으로 끼워 맞추기만 하면 더 이상 실수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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