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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특강] 3강 후기 :: 0317(목) +2
ruizpic… / 2016-03-21 / 조회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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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특강] 3강 2016-0317(목) 강좌 후기

오랑캐 열전 - 천하변방을 돌아보며 :: <이장군열전>, <흉노열전>, <위장군표기열전>, <조선열전>​

 

 

사기 특강이 이번 3강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짧은 형식의 특강이었기 때문에 그 전에 있었던 사기 강좌를 듣지 못 했던 저로서는 많이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도 열의를 가지고 재밌게 강의해주신 기픈옹달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번 부분은 모르는 것이 많아 선생님의 자료를 요약하는 식으로 재주껏 써보겠습니다.

 

 

1. 변화의 세계, 중국

 

 

  현재, 세계적으로 중국의 위용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에 언급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란 중국이 추진 중인 육상과 해상의 신(新) 실크로드 전략이다. 이미 중국은 자신을 그 이름처럼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거꾸로 그 곁에 위치한 나라의 입장에서 앞으로 중국은 사유해야만 하는, 사유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다만 저 ‘중화인민공화국’과는 다른 ‘중국’으로 우리의 시선을 옮길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한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고자 한다. “‘중국’이라 함은 현대의 주권국가(중화인민공화국)를 가리키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그 영역이 늘거나 줄고 민족이 뒤얽히며 여러 문화가 뒤섞이고 교역하면서 현대에 이른, 그 변화와 흐름 속에서 한자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스스로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해온 세계를 가리킨다.”(<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 중 하나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파악하고자 함이다. 즉 우리는 고대 중국 세계의 이야기 <사기>를 통해 ‘중국’을 이해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기>, 쉽게 말하면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중국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함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고대부터 이어져온 중국의 독특한 불변성이자, 둘째는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해온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전의 여러 제국과는 전혀 다른 조건에 놓여있다. 과거의 제국은 일시적인 번영의 시기를 구축한 뒤에 몰락하여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찢어졌다.(ex그리스, 로마)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비록 수차례 나라 이름을 바꾸었으나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 한족(漢族)의 뿌리를 수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에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수천 년간 사소한 변화만을 겪은 漢子한자덕택인지도 모른다. 지금 중국인의 말에는 <논어>나<맹자> 따위의 흔적이 완연히 남아 있다. 중국이란 도무지 변화를 모르는 곳이라는 어떤 학자의 말은 어찌 보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닐지 모른다. 오늘날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변하지 않는 무엇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중국이란 ‘진한(秦漢)’이라는 고대 제국에서 출발하여 그 모습을 갖추어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중국을 사유할 때 <사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중국이란 어떤 형태로 변화하면서 형성되었는지 알아보자. 실제로 중국(中國)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훨씬 이전이다. 대표적으로는<맹자>에 보통 중앙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나온다. 그러나 이 말이 단순히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보다 넓게 문명 세계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어 ‘이중국무화이(莅中國而撫四夷)’라는 표현이 그렇다. 여기서 중국은 ‘사이(四夷)’, 사방 오랑캐와 대비되는 표현으로 쓰였다. 다르게 말하면 사방 오랑캐로 둘러싸인 중앙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다르게 구분하는 말로 화이(華夷)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화(華)는 중국을 다르게 일컫는 화하(華夏)에서 따온 말이다. 이는 아무래도 중국의 고대 국가인 하(夏)에서 출발한 말로 보인다. 그 옛날 전설의 시대로부터 중화와 오랑캐를 나누었으나 하를 무너뜨린 은(殷)과 주(周)는 이민족의 나라였다.

  춘추전국은 주(周)의 천하를 두고 여러 나라들이 싸움을 벌이는 시대였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진(秦)과 초(楚)는 본디 주의 봉건체제와는 연관이 없었지만 다른 제후국과 힘을 겨루며 천하를 다투었다. 그 가운데 진(秦)이 천하를 통일했고 뒤를 이어 다시 천하를 지배한 유방은 초(楚)출신 이었다.

  이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비록 중국이라는 말이 중앙과 변경을 나누며, 그 중앙이 훨씬 높아서 변경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는 것을 말해준다. 중앙은 늘 변경에게 침입당하는 곳이었고, 거꾸로 그 침입을 통해 무한히 모양을 바꾸며 새롭게 구성되었던 곳이었다. 일치일란(一治一亂), 한 번의 평화와 한 번의 혼란이라는 역사는 변형의 과정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난세의 중국은 사방 오랑캐의 각축장이 되고는 했으나 결국 그들의 싸움은 중국을 찢어놓지 못했다. 거꾸로 그 크기를 키워놓았을 뿐이다. 어쩌면 중국의 역사란 혼란을 통해 변화무쌍하게 성장했다고도 할 수 있다.

 

 

2. 한무제 vs 흉노

 

 

  사마천의 생애는 한무제의 집권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한무제는 기원전 87년에 세상을 떠나는데 사마천은 그보다 좀 일찍, 혹은 바로 직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마천과<사기>는 한무제라는 인물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고조 유방이 한을 세운 이후 다양한 문제가 들끓었다. 그는 형식상 여러 왕의 추대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경우여서 지방에는 각기 지역을 다스리는 왕들이 있었다. 이에 유방은 지역 세력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유씨로 채우는 등 토사구팽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직접 사방을 돌아다니며 이른바 ‘반란’을 잠재웠다. 그러나 고조 서거 후 여태후를 중심으로 여씨들이 권력을 잡았고 후에는 다시 유씨의 나라가 되었으나 유씨들 간의 다툼이 벌어졌다.

  그 중 유방의 조카로 유씨 황족 가운데 가장 연배가 높은 편이었던 오왕 유비(劉濞)가 있었다. 그는 경제 시절 반란을 일으켰는데, 경제는 유방의 손자였다. 항렬로 따지자면 오왕 유비가 가장 높았다. 따라서 그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지방의 여러 세력이 들고 일어났다. 이른바 오초칠국의 난. 한을 망국으로 몰고 갈 수 있었던 이 반란은 결국 진압되었고, 이는 도리어 중앙정권의 강화로 이어진다.

  결국 경제를 이어 무제가 제위에 올랐을 때 한은 이미 통일제국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어수선했던 관료 체계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무제 시기에 이르면 유가가 제국의 통치 문학으로 자리 잡으며 사상의 통합도 이루었다. 이렇게 안이 안정된 상태에서 한무제는 시선을 사방으로 돌린다. 그 가운데 가장 쿤 골칫거리가 바로 북방 흉노족이었다. 그들은 척박한 지역에서 유목하며 생활했기 때문에 때때로 침입하여 식량을 약탈해갔다. 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진시황이 북방에 쌓은 성벽이 그 유명한 만리장성이다. 그러나 그들이 단순 위협적인 존재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중국도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호복(胡服)을 입고 말을 탔던 무령왕의 이야기는 대표적인 예다.

  <흉노열전>에 따르면 흉노는 황하강을 넘어서까지 중국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무제에 이르면 중원의 체제가 안정되기도 했고, 흉노 내부에 혼란이 일기도 해서 흉노의 세력은 이전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 이 때 무제는 과감하게 대규모 원정을 감행한다. 사막을 건너 흉노의 본거지를 직접 치는 것이다. 고조 유방조차 흉노와 싸워 목숨이 위태로웠던 적이 있는 만큼 흉노와 직접 싸움을 벌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과감한 한무제의 결정은 그의 큰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 활약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대장군 위청과 표기장군 곽거병, 이장군 이광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도합 10만 이상의 기병과 물자 등을 실어 나르는 말이 14만 필이라고 했으니 그 규모는 엄청났을 것이다. 이들은 제법 큰 승리를 거두지만 그만큼 따르는 상처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럼에도 흉노는 끝까지 정복할 수 없었다.

  한무제 시기에는 흉노뿐만 아니라 사방 이민족들을 모두 정벌하거나 복속 시켰다. 남월, 동월, 서남이, 조선 등의 제목이 붙은 열전은 바로 이 이민족들을 상대한 기록이다. 이런 이민족들은 한에게 예를 갖추고 스스로를 낮추었는데 흉노는 그렇지 않아서 상대하기가 더 힘들었다. 흉노가 한에게 서신을 보낼 때 문구가 ‘천지가 낳으시고 일월이 세워 주신 흉노의 대선우는 삼가 묻노니 한나라 황제께서는 무양하십니까?’ 이럴 정도다.

  흉노가 이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중원을 끊임없이 괴롭힐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가졌던 까닭도 있지만 독자적인 문화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흉노열전>에 보면 그들이 갖고 있었던 독특한 문화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였다.<흉노열전>에 실린 중항열은 한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멀리하고 고유의 풍습을 지킴으로써 한나라에 동화되지 말라고 선우에게 권한다. 뒤에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는 이 중항렬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변경에서 일어나 중원에 들어왔으나 중국에 동화된 몽골족의 원과 청이 그렇다.

  한무제는 사방의 오랑캐 지역을 점령하여 군(郡)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단순히 번신으로 삼아 조공의 관계를 맺기도 했다. 군을 세워 점령했던 지역의 상당부분은 이후 중국의 실제 영토가 되었고, 조공 관계를 맺었던 이들은 중화 문명의 변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흉노는 이런 방법으로 해결이 안 돼 결국엔 성을 쌓아 울타리를 치고는 서로 오가지 않도록 약조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어쩌면 이는 중국이 외부를 대하는 두 태도, 하나는 책봉관계를 통한 문화적, 외교적 방법이라면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국경을 사이로한 영토적, 군사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중국과 조선

 

 

  <조선열전>은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역사 기록이라 눈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내용이 매우 짧고,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이야기 따위가 보이지 않고 연나라 사람이었던 위만이 도망쳐 권력을 잡았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어찌되었건<조선열전>은 조선에 대한 구체적 역사 기록이니 나름 중요한 기록임에는 틀림없다. <사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국호가 지명에서 출발하는 것을 참고하면 조선 역시 고래(古來)로 사용되었던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그로 대표되는 이 사회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낡은 옛 왕조의 이름을 현재적 용어로 다시 불러내는 것 아니겠는가. 한편 조선이 현재적 용어이듯 중국 역시 과거의 용어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선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혹자는 ‘지옥 불반도’라 부르는 이 지리적 위치가 변경에 위치한 이상 그 중심을 이해하지 않고는 우리네 삶의 조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앞서 소개한, ‘중국’이라는 세계를 보여준 저자의 문제의식에 크게 동감하는 바 그들의 말을 빌려 매듭짓고자 한다.

지금 만약 중국 자체의 원리 틀을 통해 그 역사상을 빚어낼 수 있다면, 적어도 일본인을 비롯한 서양인, 아니 당사자인 중국인조차도 그것에 의해 침식당해온 서양 시각에서 본 중국관은 서서히 융해될 것이다. 이리하여 중국이 참으로 중국이 되는 것을 가리켜, 우리는 21세기를 아시아의 세기, 혹은 중국의 세기라 부르고 싶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중국이 된 중국의 전체상을 그려내려는 작업은 아시아를 참으로 아시아로 만들고, 나아가서는 세계를 참으로 세계로 만드는 일에 공헌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후기’中)

  중국을 중국으로 보는 방법의 하나로 <사기>를 읽는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필수적인 관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상 [사기특강] 3강 후기였습니다. 늦게 올린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죄송합니다. 3장에 대해서는 제가 무지하여 요약이 어려워 많이 어설프게 되었습니다. 틀린 부분에 대한 수정이나 덧붙여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한국사를 알기 위해 <사기>같은 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댓글목록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꼼꼼한 후기 감사드려요.
저도 시간이 더 있었으면 천천히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답니다.

끝으로 질문하신 '한국사'에 대한 부분은 참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강의시간에 이야기한 '중국'과 달리 '한국'이라는 '근대국가'의 특성상 <사기>에 견줄 텍스트가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강의 시간에 소개한 연구자들의 문제처럼 서구 중심의 역사적 이해에 벗어난 '한국사'라는 것이 존재할지 의문입니다.
도리어 '한국사'란 근대국가의 뼈대를 만들고자 하는 과정이었고, 필연적으로 근대적 가치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다만 한국'사'가 아닌 그 아래에 작동하는 사람들의 삶, 태도, 가치관 따위를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근대 국가라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이전... 그렇다고 함석헌 류의 <뜻으로본 한국역사> 따위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테구요.
그 아래로 파고들어가면 사실상 '중국사'에 접붙임 되어 있는 혹은 그로부터 나온 어떤 줄기(?) 같은게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하여.. 기승전 '사기'가 되고 마는데....
차라리 <사기>와 같은 고대 텍스트를 읽다보면 '한국사'라는 것도 다른 식으로 구성할 수 있는 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로 <사기> 읽으시라는.. 뻔한 ... 결.. .. 결론이... ;;;;

희음님의 댓글

희음

정말 성실하고 꼼꼼한 후기에 탄복합니다. 펑크 난 시간이 메워지는 듯한 느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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