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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송곳>처럼 +5
삼월 / 2016-04-04 / 조회 2,9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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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

 

드라마 ‘송곳’은 한 마디로 이런 이야기다. 꼰대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한 남자의 고단한 이야기. 남들처럼 적당히 쉽게 살지 못해 안 해도 될 일을 하고, 가지 않아도 될 길을 가는 사람의 이야기. 길지 않은 자기 삶을 돌아보는 이 남자의 과거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는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 그는 어쩌다 누군가의 걸림돌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고뇌이고, 슬픔일지도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삶, 맞지 않고, 굶지 않고, 몸이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는 삶을 누가 왜 마다하겠는가?

 

 

2. 패배는 죄가 아니다

 

사람들은 쉽게 사회에서의 패배를 받아들인다. 낮은 임금과 고된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과 상급자들의 멸시에 쉽게 대항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면, 순순히 대답이 돌아온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어요. 공부를 못하면 힘든 일을 하는 거랬어요’ 그것도 아니면, ‘제가 잘못했으니까, 제가 일을 잘 못하니까 그런 거겠지요’하는 대답들이. 공부를 못하고, 일을 못하는 것을 인생의 패배요인으로 보고, 기꺼이 그로 인한 고통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회가 패배를 악덕으로 취급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패배에 대해서조차 관대할 수 없다. 자신의 패배에 대해서 가혹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패배로 인한 모든 고통들까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패배는 정말 용서받지 못할 잘못일까? 아니면, 이 사회를 해롭게 하는 악덕일까? 도대체 얼마나 큰 죄이기에 이 사회는 패배를 그렇게 증오하는 것일까? 이 사회 안에서 우리는 늘 경쟁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고, 이기는 자가 있으면 지는 자도 있다. 아무도 패배하지 않는 경쟁은 없다. 우리는 늘 패배의 가능성 안에서 살아가면서 패배를 두려워하고, 때로는 혐오한다. 그 두려움과 혐오 앞에서 약자를 도와야한다는 말은 우월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된다. 동정은 자신이 아직은 패배하지 않았다는 안도와 여유의 다른 말이다.

그런데 여기 한 남자가 회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회사는 성실한 중간관리자인 그에게 직원들을 해고하라고 지시했고, 남자는 이를 거부했다. 남자는 자신이 느끼는 심정이 정의감인지, 동정인지도 파악하지 못한다. 단지 궁금할 뿐이다. 효율과 원칙을 내세우던 회사가 직원들에게 한 약속과 법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 대한 의문이다. 거기에 또 한 남자가 나타나 말을 해 준다. 당신들이 패배했을 수는 있지만, 패배는 죄가 아니라고. 사람들은 그 말에서부터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3.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는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 역시 존중받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패배한 인간들을 혐오할 뿐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이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누군가가 두려울 때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고개를 숙인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패배한 이들이 누군가에게 존중받고 싶을 때, 그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평생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던 남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로 한다. 자신이 존중받기 위해서, 그리고 존중받지 못하는 이들이 존중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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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노동조합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론 노동조합을 통해 그들은 회사로부터 존중받아야 할 어떤 존재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통해 다른 문제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조직 내에서도 각기 다른 업무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에 얽힌 갈등,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갈등과 같은 노동자들 내부의 갈등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또 노동조합의 규모가 커지고, 힘이 셀수록 외부의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 연대를 미끼로 노동자운동 내의 정파싸움이 파고들고, 분열은 가속화된다.

노동조합 활동이 커질수록 갈등은 복잡해진다. 연대는 빙산처럼 아주 적은 부분만 밖에 내놓고, 각자의 이해관계를 깊은 수심에 감추고 있을 때에만 유지된다. 남자는 다시 고뇌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랬듯 그는 노동조합에서도 누군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그는 스스로를 ‘일을 어렵게 만드는 인간’이라고 느낀다. 이것은 일종의 자각이다. 자신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깨닫는 자각. 결국은 일을 어렵게 만드는 남자의 능력이 그를 거기까지 끌고 갔다. 그것이 그의 정체성이다.

  

 

5. 분명히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사마천이 쓴 《사기》 중 <평원군열전>에는 ‘모수’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조나라 사람인 평원군이 초나라에 합종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청하러 가면서 사람을 모집하는데, 이 모수라는 사람이 자청을 한다. 평원군은 모수의 청을 거절한다. 인재는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과 같아서’ (囊中之錐낭중지추) 그 존재를 감출 수 없는 법인데, 아무도 모수의 존재를 모르니 그는 인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낭중지추’의 고사가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다. 모수는 평원군의 말에 반발하며 말한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달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만일 저를 좀 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겁니다.”

 

결국 평원군을 따라나서게 된 모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 초나라 왕을 꾸짖고 위협하다시피 하여 합종의 약속을 이행하도록 만든다. 이후 평원군은 모수의 세 치 혀가 백만의 군사보다도 강하다고 칭찬하며, 다시는 감히 인재를 고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 모수라는 인물을 보면 인재는 단지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거기서 나아가 자신이 들어갈 주머니와 들어갈 때를 선택한다. 한번 선택을 하면 목숨을 걸고 해내려고 노력한다. 선택당하는 인재가 아니라 선택하는 인재이기 때문이다.

    

<송곳>이라는 드라마를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여기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그리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일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이 오면 기꺼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걸고 해내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송곳이 되어, 마침내 주머니를 뚫고 나올 수 있다. 이것이 꼰대가 되지 않아야 할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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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선우님의 댓글

선우

"나는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쵸? 삼월님. 다른 식으로는 살아지지 않아 이렇게 살아요.^^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삶을 살테야요.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나의 삶을 살겠다는 댓글에서 현실의 선우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와서,
그만 참지 못하고 응원을 보내고 맙니다. ㅎㅎ
가는 길과 스타일은 좀 다를지라도, 선우님 고집과 신념만큼은 제가 인정합니다.
다르지만 함께 있는 방식으로, 늘 그렇게 오래 만나요!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모수의 이야기, 그렇게 송곳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네요.
한편 송곳의 반대가 꼰대라는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짐작님의 댓글

짐작

저희 집에 송곳 만화책 1~3권 다 있는데 빌려드릴까요??ㅎ

무긍님의 댓글

무긍

덕분에 좋은 드라마를 발견해서 기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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