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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월강좌] 후기 : 한나 아렌트, 파리아의 정치학 +3
삼월 / 2017-12-18 / 조회 1,74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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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아렌트의 방법론에 주목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가 무엇을 이야기했는지가 바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렌트의 방법론은 철학적·전통적 방법론에서 벗어나 있다.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아렌트의 방법론은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벤야민은 아직 정보로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가 전달될 때마다 해석의 과정을 거치며 불멸의 가능성을 얻는 것에 주목했다. 듣고, 다시 말하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의 삶 자체를 구성해낸다. 아렌트는 이야기를 통해 한 인간의 내밀한 경험이 ‘세계적인 것’이 되는 과정을 중요하게 보았다. 타자와 함께 나누는 의미들을 통해 이야기는 비로소 ‘세계적인 것’이 된다.

 

인간의 행위와 사건들은 세계 속에서 바로바로 사라지지만, 인간은 때로 이야기를 통해 불멸성을 얻는다. 이때 불멸성을 얻는 대상은 인간의 행위와 개성들이다. 이 행위와 개성들은 ‘보편적 인간’이라는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보편적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적 인간들, 독특한 개인들이 있을 뿐이다. 개인들의 삶, 그 개인들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이야기로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역사 서술 역시 마찬가지다. 벤야민은 <역사철학테제>에서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통해 역사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과거의 잔해와 죽은 자들을 바라보며 파국을 수습하려 하는 천사는 날개를 편 채 거센 폭풍에 미래로 떠밀려 간다. 벤야민은 그 폭풍이 우리가 진보라 일컫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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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라는 것은 벤야민이 묘사하는 파국의 현장이다.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는 전쟁터가 바로 현재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은 사유라는 활동을 통해서만 현재를 구성할 수 있다. 그 사유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불러올 수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것의 의미를 기억하고, 도래할 것에 대한 사유를 통해서. 사유하는 인간은 과거와 미래의 충돌지점에서 출발한다. 벤야민과 아렌트는 시간의 폭풍을 대각선으로 비껴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기억이라는 이야기꾼들의 방법이 전체주의의 경험 속에서 파국을 맞이했다고 보았다. 근대의 지배적 역사서술방식은 과거의 잔해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역사의 연속성을 위해 무수한 잔해와 파편들을 망각되도록 방치했다.

 

아렌트는 과거를 수집하는 과정을 보물찾기와 같다고 보았다. 역사를 이해할 때 중요한 점은 전통적 해석의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경험을 전통적 틀로 이해하는 일은 경험의 진귀함을 드러내주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이라는 틀조차 파괴된 파국의 시대는 새로운 진귀함을 찾아낼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아렌트의 서술방식은 의도적으로 파편화된 형태를 띤다.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연속성과 근거에 대한 해석이 아닌 파편화된 사건들로 서술해냈다. 아렌트에게 전체주의는 결정된 역사 속의 무엇이 아닌, 결정화된 형태의 한 현상이었다. 그렇다고 아렌트가 화자가 부여하는 인과성이 이야기를 왜곡시킬 위험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렌트는 절대적 필연성의 법칙을 역사 속에서 발견하려 하거나, 이렇게 도출된 법칙들로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의 인과성 안에 묶어내려는 시도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야기가 입장에 기반하고 있다는 핑계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기반하여 아렌트가 주목했던 문제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었다. 아렌트는 미국에서 주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대인들을 무수히 만났다. 그 노력은 자기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었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자체의 해방은 아니었다. 아렌트가 보기에 그런 노력은 어디까지나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기준에 불과한 ‘보편적 인간’에 자신을 집어넣는 일이었다. 아렌트는 그보다는 억압받는 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여, 그 정체성을 저항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는 동정의 영역이 아니라 내밀한 감정의 영역이고, 투쟁의 장이다. 자신을 ‘죄 없는 희생양’으로 보아서도 안 되고,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주류사회로 동화되려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알아야 한다. 대신 ‘파리아’로서 저항해야 한다. 아렌트가 말하는 파리아는 ‘새로이 세계에 온 자’이다.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파리아임을 깨달았을 때, 파리아로서의 사유방식과 저항방식을 가질 수 있다.

 

"최강 한파에도 불구하고 강좌에 함께 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이번 강좌에서 주요하게 다루게 될 아렌트 정치철학을 소개하는 좋은 후기입니다. ^^
한나 아렌트의 이번 강좌가 기대되는 것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성에 가려져있던 아렌트 정치철학의 다른 텍스트를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아렌트의 역사방법론 - '이야기론'에서는 정보의 전달과 구별되는 이야기의 특이성이
정보 중심의 역사방법론에 대항하여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구성하는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로서의 역사' 속에서 연속성과 근거에 의한 전통적 해석방식과 구별되는 파편화된 사건 중심의 서술방식,
그리고 역사에 등장하는 보편적 인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 속의 특이적 인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아렌트의 소수자론 - '파리아'에서는 는 의식적 파리아로서의 아렌트의 삶을 통해,
그기 어떻게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파리아로서의 소수성을 밀고 나갔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약자로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인간다움을 기준으로 부당함에 저항하거나
이것은 지배적인 가치기준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참된 소수성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렌트는 "그가 소수자라는 이유로 공격받았다면, 소수자로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지요.

정창조님의 댓글

정창조

제가 욕심을 많이많이 부려 오픈강좌에서 정말 많은 내용을 다루었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주9실 줄이야! 감사합니다!

- 아렌트가 거부하고자 한 역사서술 방식은 결국 필연성의 영역으로 모든 개별 인간의 행위들과 사건들을 끼워맞추는 방식이었지요.
그의 텍스트, 특히 역사서술의 방식으로 쓰인 텍스트가 의도적으로 어떤 법칙 하에 서술된 역사들이 배제한 작고 파편화 된 것들이 갖는 의미에 주목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과성 자체를 아예 무시한 건 아닙니다만, 애초에 아렌트가 인간사의 영역을 우연성의 영역으로 보았다는 점도 덧붙여둡니다.
아렌트는 당시가 파국을 맞이한지라, 또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들에 시달리던 터라 기존 역사방법론의 약점들을 더 절실하게 체감했겠지요.

그가 그러한 자신의 '방법 아닌 방법'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는 본 강좌 2강과 6강에서 다루어 질 것이며, 이야기가 인간 실존에서 갖는, 정치영역에서 갖는 의미, 또 이야기하기와 연관된 작업활동 및 정신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은 3, 5강에서 조금 더 다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이 강좌들에서는 조금 더 내용을 압축적으로!ㅠ

- 파리아에 대한 아렌트의 문제의식은 실은 그 개념 자체가 딱히 엄밀하다고 보기 힘들어서인지 국내 학계에서는 아직 많이 고려되고 있지 않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아렌트가 정치철학의 길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요. 실제로 이 개념을 기반으로 아렌트 철학 전체를 읽어내려는 시도들이 외국에서는 이미 상당히 많기도 하고요~무엇보다 억압받는 자나 소수자 정치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설명들이라 개인적으로는 간과하고 싶지 않은 개념이기도 하지요.


- 오라클님께서 지적해 주신 것처럼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분명 의미가 있는 개념이긴 합니다만, 아렌트 전체 철학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때 더 의미있는 해석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아렌트가 주저에서 많이 언급한 개념도 아니고요.

- 다만 벤야민의 역사철학과 이야기론과 아렌트의 이야기론 사이의 차이에 대한 언급은 많이 못했네요. 질문에 답변하는 도중 잠시 그 이야길 꺼내긴 했는데, 실은 저도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아렌트 역사서술 방법론(방법론 아닌 방법론)의 약점과, 그에 대하여 실제로 쏟아지는 몇몇 비판들, 예컨대 "아렌트는 애초에 일관된 방법론이라는 게 없다", "본인의 방법론을 본인이 위반한다"는 주장들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간단히 소개해 드리지요~
그리고 정치는 감정의 영역이라 적어놓으신 부분에서는 제가 좀 오해가 있게 말씀을 드렸나 봅니다. 사실 아렌트에게 정치는 내밀의 감정의 영역은 아니고요~이는 본 강좌에서 더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이리도 많이 남아있었다니...몰랐는데 제가 참 말이 많은 사람인가 봅니다

소리님의 댓글

소리

삼월 님의 깔끔한 글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라클 님의 열성적인 댓글에 이어, 정창조 선생님의 꼼꼼한 답변까지 정말 감동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저항의 혁명의 운동.
파리아의 개념은 뻔뻔하리만치 당당하고, 긍정의 정치론이라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개인들의 삶이 이야기로 해석되면서, 그들의 ‘현재’의 장이  얼마나 정치적인 투쟁의 장이 될 수 있는지도 느꼈습니다.
강한 투쟁의 향기가 물씬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공부의 고민으로 소수자들의 정체성 거부에 대한 부분이
오랫동안 문제였습니다. 오픈강좌를 통해 이 고민의 실마리를 얻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아랜트에 대한 강한 공부의 의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전체주의를 아렌트는 어떤 식으로 해석할지 궁금합니다. 아랜트의 소수자성은 무력하고 연약한 억압받고 권력 없는 자로서의 소수자의 정체성이 아닌, 다른 방식의 소수자성을, 그들의 정치학을 구성하고 해석해 나갈 수 있는 해석의 틀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강의도 기대되네요! 다시 한 번 그 때의 강의를 멋직 정리해준 삼월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강의 시간에 모두들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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