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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 강남역 살인사건, 경찰은 여성혐오를 가리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 2016-05-22 / 조회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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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경찰은 여성혐오를 가리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저지하기 위해 정신장애인 혐오 유포

지난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사건에 대해 경찰이 정신장애 범죄로 몰아가고 있어 그 저의가 의심되고 있다.

  
당초 피의자 김모 씨(34)가 경찰조사에서 전혀 모르는 피해여성을 공용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흉기로 찔러 죽인 이유에 대해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와 함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에 대한 경각심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를 의식한 듯 경찰은 18일 “김씨가 2008년부터 조현병·공황장애 등으로 4차례 걸쳐 입원한 기록이 있다”며 “알려진대로 ‘묻지마 살인’, ‘여성혐오 살인’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피의자 조사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여론을 의식한 경찰의 입장 표명은 이례적인 일이다. 
 

19일 오전 프로파일링이 시작되기 전에도 서초경찰서는 “피의자가 심각한 수준의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만큼 이번 범행의 동기가 여성 혐오 살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재차 강조했다. 경찰은 여성 혐오범죄에 대한 논의가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는 듯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다양한 의견과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정신질환에 의한 범행이라는 게)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기초로 판단한 경찰의 공식 입장”이라고 선을 긋듯 발표했다. 
 

그리고 첫 번째 프로파일링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성으로부터 이렇다 할 피해를 입은 사례가 없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피의자 김모 씨의 피해의식은 정신분열증에서 비롯된 ‘착각’(망상)에 불과하다는 소견을 발표했다. 마치 ‘일베’를 비롯해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여성 혐오가 “여성으로부터 이렇다 할 피해를 입은 사례”에 근거한 합리적 정서라는 듯이. 또한 조현병으로 개칭된 정신분열증의 망상체계는 사회적 맥락과 집단의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환자 개인의 무의미한 착란에 불과하다는 듯이. 
 

경찰은 왜 이토록 혐오 범죄와 정신장애 범죄를 배타적인 것으로 분리하려는 걸까? 경찰은 왜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로 해석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 피의자 김모 씨의 범죄심리에 대한 프로파일링과 함께 경찰의 수사 심리에 대한 프로파일링이 필요하다.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혐오' 범죄로 인해 살해당한 한 여성을 추모하는 쪽지로 가득하다.
 

첫째 가설. 경찰은 단지 습관대로, 자신의 ‘상식’에 입각해서 이 사건을 해석했다. 경찰은 피의자의 “평소 여성이 자신을 무시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죽였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한 김모 씨의 정신병력이 경찰에게 ‘상식’을 제공했다. 정신분열증자라면 과히 그럴 만하다는 상식 말이다. 
 

그래서 경찰은 습관대로 피의자 김모 씨의 조현병력을 열거한 후 2009년 나이트클럽에서 일어난, 기소가 유예된 폭행사건까지 연결하여 조현병과 폭력성 간에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정신병을 가진 자가 입원도 안 하고, 약도 안 먹고, 가출한 상태라는 점이야말로 그의 엽기적인 살인 행위를 설명해 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피의자 김모 씨의 정신상태와 그의 엽기적인 살인행위가 닮아 보일 수는 있지만, 그건 ‘유사성’일 뿐 ‘인과’ 관계는 아니다. 정신분열증에 걸렸다고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또한 피의자 김모 씨의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과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으로부터 이렇다 할 피해를 입은 사례”가 없는 여성 혐오 심리 간에는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집요하게, 거의 강박적으로 피의자 김모 씨는 여성 혐오 때문이 아니라 정신분열증 때문에 살해했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왜? 그게 경찰의 습관화된 사고방식, 즉 경찰의 상식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 상식은 물론 정신분열증자는 위험하다는 뿌리 깊은 장애혐오에 의해 떠받쳐져 있다. 
 

둘째 가설. 경찰은 여성 혐오의 심각성과 위험성이 공론화되는 것을 저지할 사명감으로 움직였다.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예봉을 꺾기 위해 ‘미친놈이 칼 들고 공용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약한 여자를 죽였다’며,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퍼뜨리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혹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가 “여성으로부터 이렇다 할 피해를 입은 사례”에 근거한 합리적 여론이라고 생각해서일까? 혹시 담당 수사관이 일베 회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셋째 가설. 사법기구로서 경찰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혐오표현과 혐오범죄에 대한 법적 규제가 논의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2000년대 이후 이주민, 성소수자, 특징 지역 출신, 여성 등에 대한 혐오표현이 확산됨에 따라 국회, 헌법재판소 등에서 혐오표현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어 왔다. 
 

2013년 안효대 의원의 대표발의로 ‘인종 및 출생지역 등을 이유로 공연히 사람을 혐오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고, 같은 해 헌법 재판소에서도 재판관들 중 일부가 모욕죄가 제한하는 표현의 광범위성을 비판하면서, 대신 ‘성별, 종교, 장애, 출신국가 등에 대한 혐오적 표현’, ‘집단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에 대한 처벌 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법부와 국회의 지배적인 보수 세력 때문에 정식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20대 총선으로 압도적인 여소 야대 국회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무르익은 혐오선동에 응답하는 사건이 터졌다. 어쩌면 이번 사건으로 혐오표현, 혐오범죄에 대한 법적 규제를 입안할 기회가 열릴지 모른다. 경찰은 스스로의 사법적 판단으로, 혹은 윗선의 명령으로 이번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혹여 혐오표현, 혐오범죄에 대한 법적 규제로 이어질까 염려했을 수 있다. 그래서 아직 사법적으로 규정되지도 않은 여성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 ‘정신장애 범죄’라고 앵무새처럼 외치는 건가? 
 

그 의도가 무엇이건 경찰은 더 이상 여성 혐오를 덮기 위해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이용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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