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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 시설에 갇힌 성, 마리스타의 집에 스포트라이트를 +1
/ 2016-04-21 / 조회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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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 갇힌 성(性), 마리스타의 집에 스포트라이트를 
마리스타의 집에서 생긴 '상호 성추행' 문제, 정말 별일 아닌 걸까

“굶어 죽어도, 얼어 죽어도 내 선택이다. 그게 인간이다” 탈 시설 운동의 선구자, 고(故) 지영 씨의 말이다. 스물 아홉에  경추장애 판정을 받고 시설에 입소한 그녀는 시설의 일상화된 인권침해에 저항하여 싸웠으며, 그 결과 “9시 넘어 TV보기, 직원들과 동일한 식단, 짜장면 시켜먹기, 머리 기르기, 라면 먹기, 교회 가기, 컴퓨터방 만들기" 같은 평범한 ‘일상’을 쟁취했다.(관련기사 : 「벚꽃같은 사람 지영, 고마웠어요」) 그러나 일상이 주어져도 시설은 시설일 뿐 그녀는 자유가 고팠다. 2004년 아직 활동보조 제도도 없을 때 그녀는 시설을 박차고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를 구하지 못해 굶는 날도 많았지만 그렇게 힘든 것마저 삶이라며 주어진 자유를 만끽했으며, 혼자서만 누려선 안 된다는 생각에 시설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자유의 공기를 불어넣었다.  
 

장애인의 삶을 시설에 가둬서는 안 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고(故) 지영 씨가 갈구했고 소박하게 향유했던 그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상습적으로 폭행하거나, 징벌방에 감금하거나, 결박하는 따위의 인권유린이 없더라도, 임금착취, 국가보조금 유용 같은 행정 비리가 없더라도 시설은 없어져야 한다. 아무리 안전하고 쾌적하더라도,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식단을 먹으며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취침시간에 자야하고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타인에게 활동보조를 받는 곳은 ‘교도소’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거주시설과 교도소의 공통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있다. 바로 '마리스타의 집'이다. 거주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같은 ‘남성’ 지적장애인만 수용한 이 시설은 거주인들 간의 만성적인 성폭력, 성학대가 드러나 지난 3월 8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시설을 폐쇄하거나 거주인 전원을 다른 시설로 분산 수용할 것”을 권고 받았다. 그러나 담당 행정기관인 서울시청과 마포구청(마리스타의 집은 충주에 있지만 법인은 마포구에 있다), 그리고 마리스타의 집은 시설폐쇄 절차는 밟지 않고 거주인들의 분산 수용, 그것도 문제를 일으킨 거주인들의 분산 조치만 하고 있다. 성폭행 사건까지 일어났음에도 해당 시설은 물론이고 구청, 시청, 심지어 “시설을 폐쇄하거나” 라며 모호하게 권고한 인권위조차 단호히 시설 폐쇄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달 16일 장애인단체가 거주시설 '마리스타의 집' 폐쇄를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2012년 처음으로 이 시설의 인권실태를 조사한 마포구청은 이렇게 대답했다. “50명의 지적장애 남자로 구성된 거주시설의 특성상 거주자 간의 성추행 부분이 완벽히 해소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동성 간 성폭력은 거주 환경 상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만 분리시키면 된다는 발상이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장애인의 탈시설에 대한 공포(phobia)와 함께 성 문제, 특히 동성 간의 성 관계에 대한 무의식적 부인(denial)이 깔려 있다. 문제가 없진 않지만 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데는 마리스타의 집에서 일어난 일의 애매함 탓도 있다. 마리스타의 집에서 일어난 일은 인권위의 표현대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손이나 입으로 자신의 성기를 자극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성기를 만지거나 자신의 성기를 상대방의 항문에 삽입하는 등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있는” 성추행, 성폭행보다 오히려 그런 “행위를 서로 번갈아 가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호 성행위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2015년 말 40명의 거주인중 17명이 성적으로 관계맺고 있는데 그 중 가해자이기만 한 경우는 2명, 오로지 피해자인 경우는 5명, 나머지는 시차를 두고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인권실태 조사에 참여했던 조사원들에 따르면 거주인들 간의 그런 성행위는 일종의 ‘문화’ 내지 ‘놀이’였다고 한다.   

마리스타의 집 거주인 성 관계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있는 경우는 일방향 화살표, 상호 성행위는 양방향 화살표로 표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이 지점에서 마리스타의 집은 동성 간 성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는 군대나 교도소와 다르다. 마리스타의 집은 군대나 교도소처럼 일시적 수용시설이 아니라, 어릴 적에 입소하여 성장해 가는 장애인 생활 시설이다. 아동보호시설에 있다가 이곳에 온 10대 초반의 지적장애 청소년은 곧 20대 형들에 의해 성적 착취를 당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피해자들의 피해의식은 흐릿해지고 ‘학대’는 ‘학습’이 된다. 시간이 지나 피해자였던 청소년은 혈기왕성한 청년이 되어 새로 온 10대에 대해 가해자가 된다. 
 

왜 이런 가해와 피해의 순환이, 왜 이런 도착된 성문화가 생긴 걸까? 원래 발달장애인이라서? 성교육이 부족해서? 마리스타의 집 거주인들은 전반적으로 장애 정도가 매우 경증이다. 2급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3급이다. 조사원들은 "왜 저런 사람이 여기 있을까?" 의아할 정도로 '멀쩡한' 청년들이 많았다고 한다. 조사에 참여한 거주인 중에는 “보육원에 있다가 여기로 올 때 어느 새 장애인 등록이 되어 있었다.”고 한 청년도 있다. 
 

그들이 동성 간 성행위에 빠져든 것은 동성애적 지향성 때문도 아니고, 인지능력의 결핍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성적 자기 결정권을 부정당한 채 폐쇄적인 동성집단 속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성폭행 문제가 터지자 종사자는 “성적 욕구가 올라오면 다른 거주인을 만지기보다 혼자 자위행위를 하라고” 가르쳤다는데 그것은 자유의 부재, 성적 억압이 근본문제임을 은폐하는 미봉책일 뿐이다.  
 

성적 학대에서 비롯된 도착된 성 문화라는 점에서 마리스타의 집에서 일어난 일은 영화 <스포트 라이트>에서 조명한 카톨릭 교회의 도착적 성문화와 흡사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스타의 집은 마리스타 교육수사회에서 운영하는 사목시설이다. 19세기 초 마르첼리노 샴파냐 신부가 창설한 마리스타교육수사회는 ‘마리아의 작은 형제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청소년 선교를 위한 수사(Brother) 공동체이다. 청소년, 특히 소외받는 장애 청소년들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 설립된 마리스타의 집에 살면서 가련한 작은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도 마리스타 수사들이다. 마리스타의 집에서 형성된 도착적 성문화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0대와 20대 남성으로만 이뤄진 독특한 인적 구성과 자유의 부재에서 비롯된 도착된 성문화는 유서 깊은 카톨릭 동성 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포트 라이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취재 기자의 방문을 받고 자신의 아동 성추행 사실을 변명하는 신부의 인지 부조화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성 추행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인정하면서 다만 자기는 ‘강간’(삽입)하지 않았다고, 왜냐하면 자기는 강간 당해봤기에 그 차이를 안다고 말한다. 마리스타의 집에 사는 지적 장애인들도 그랬다. 조사자들에 따르면 2012년 처음 인권실태조사를 할 때 거주인들은 자기가 한 행위를 거리낌 없이 얘기했다고 한다. 그게 그 폐쇄된 남성사회에서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거주인뿐만 아니라 시설을 운영하는 수사들과 종사자들, 심지어 행정 당국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별일 아니다’는 생각에 갇혀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자유에 대해, 인권에 대해서 이들 모두가 영혼의 탈시설을 위한 재교육이 필요하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생각에 갇혀있다는 말, 영혼의 탈시설이 필요하다는 말.
지난번 '그것이 알고싶다' 세월호 편도 떠오르고.
우리를 죽이고, 가두는 건 절대악이 아니라 우리의 갇힌 생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매주 글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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