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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서비스 - 환대와 적대
기픈옹달 / 2016-07-24 / 조회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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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공동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다 보면 인류학적 통찰이 꽤 중요하다는 점을 배웁니다. 언젠가 TV에서 마오리족의 화려한 환영인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과정과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마을 입구에서 마을의 장정들이 나와 위협적인 행동을 합니다. 마치 싸움을 걸듯 무섭게 노려보며 말이지요. 그러나 이른바 통과의례가 끝나면 이들을 마을의 손님으로 맞아들입니다. 이제 이들은 마을 바깥에 찾아온 낯선 사람에서 친구가 된 것이지요.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과연 테두리 없는 공동체가 있는가 질문이 듭니다. 무릇 공동체란 다양한 모습일 수 있겠지만 어떤 형식을 따르건 ‘너와 우리’라는 구분은 늘 존재하는 건 아닐지요.

 

긴 서두를 꺼낸 이유는 해방촌 도시재생 사업팀과의 갈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다 보니 우리실험자들의 메니저로 공간 이용 문제를 협의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문제인줄 알았으나 이 문제가 더 켜져 별로 좋지 않은 말이 오가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제 항의를 받았던 담당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연구실의 다른 회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한 개인의 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하기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문제삼는 건 이렇습니다. 일단 도시재생 사업팀 쪽에서 공간을 쓸 수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고 이에 담당자와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연락부터 정확한 일정, 시간, 공간 임대 방식이 정해지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일처리 방식의 차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던 일이지요. 일시가 정해지면 연락을 받기로 하고, 공간 임대 비용만 협의후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이 행사의 공지나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간과 협의 없이 공지가 나간 것이지요.

 

얼마전 이 문제를 거론했을 때 ‘시차가 있을 수 있겠지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정보의 시차 문제인지요.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미리 협의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땐 별 이야기 없이 일정 확인만 했습니다. 제가 가장 크게 문제 삼은 건 며칠전 주민센터 앞에서 행사를 알리는 걸개를 보고나서입니다. 어느날 시장님이 오신다며 ‘인문학교실 우리실험자들’이라 표기되어 있더군요.

 

저는 이것이 이 행사를 맡아 주관하는, 도시 재상사업 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뻔히 연구실 홈페이지에 ‘연구공동체 우리실험자들’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이를 확인조차 안했다는 뜻이지요. 단순히 명목상의 문제를 넘어 이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교실’과 ‘공동체’ 혹은 입말로 쓰는 ‘연구실’은 전혀 다른 의미값을 갖는 말이지요. 한번도 ‘교실’에서 공부한다 생각한적도 없고 ‘교실’이라 부른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 우리 공간이 교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화로 이 문제를 이야기하니 웃어 넘기며 ‘그런가요?’라고 반문하더군요. 물론 사과는 없었고 수정해주기로 약속 받았습니다. 사단난 것은 다음날 오후 전혀 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나서입니다. 분명 걸개를 새로 만들리도 없고 ‘인문학교실’이라는 단어를 종이로 붙여 가려놓은 정도일텐데 이마저도 늦장을 부리다니! 화가나서 사무실을 찾았으나 아무도 없어 전화로 항의했습니다.

 

‘무슨 일 인가요?’라는 반문 부터 ‘인문학교실을 지워주면 되겠습니까?’라는 얼토당토 않은 질문, 게다가 ‘시장님 오시는 일에 바빠서’ 그런 작은 일에 신경쓰지 못한다는 식의 말까지. 글세요… 제도권 밖의 연구자로서 ‘시장의 시정활동’이 과연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일에 연구실의 일상이 깨진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도시재생 사업팀’의 마을 활동의 일환으로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욱 실망이 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적지 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을’을 운운하나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공동체, 혹은 공유지로서의 마을’을 얼마나 새롭게 구축할 수있을지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혹자가 날을 새워 비판하는 것처럼 더 친절한 얼굴을 가진 ‘재개발’ 혹은 진보의 탈을 쓴 ‘박원순표 새마을 사업’이라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적대할 필요는 없는 바 관망하며 지켜보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겪으면서 과연 최소한의 소통도 없으면서 ‘마을’이니 ‘도시재생’이니 운운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역의 공간, 그 공간을 오가는 생활인에 대한 이해없이 어떻게 일을 진행해도 되는 것인지요. 

 

전화로 응대하며 그 가운데 오간 개별적 인격에 대한 실망,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둡니다. 다만 제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과연 그들에게 대체 공간과 공간의 사람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까닭은 무엇일까 입니다. 왜 저들은 저토록 ‘예의’가 없을까? 아마도 그것은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며 공간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그 시간 공간을 점유하고 이용하기로 ‘약속-계약’하였기에 저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건 아닐지요. 물론 공공기관 특유의 책임회피, 일처리의 미숙함, 시장’님’에 대한 호들갑 따위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요.

 

‘우리 실험자들’이 곧 한 살이 됩니다. 돌도 채 지나지 않았기에 여전히 여러 가지가 미숙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겪으면서 이전부터 많이 사용했던 ‘우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연구실의 모든 회원이 공간의 주인인 동시에, 우정이라는 말에 걸맞는 관계를 맺기 바랍니다. 이때의 우정이란 단순한 ‘친분’ 이상의 관계, 선물을 주고 받으며 환대로 맞이할 수 있는 관계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기본적인 환대란 ‘밥과 청소’입니다.

 

환대란 이른바 ‘주인’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주인이지요. 다만 이 주인은 ‘소유자’와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잘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을 맞이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에 그의 환대란 또 다른 만남을 통해 공간의 쓰임을 찾아주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환대의 가장 큰 적은 소유자 -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과 사용자 - 화폐를 지불했다는 이유로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며 서비스라는 덕목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이들에게 이렇게 쏘아 붙여주렵니다. 환대가 아니면 적대를! 

 

일상에서 환대의 윤리를 갖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늘 타자에게 열려 있기엔 일상의 피로가 부담이 되지요. 게다가 예민한 눈으로 이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환대의 결과로 우정의 결실이 맺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입구, 문턱 혹은 통과의례는 사실 별 차이가 없는 건 아닐지요.

 

해방촌 주민으로, 이웃한 우리 실험자들의 일원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회원들 간의 메신저 창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이 일이 ‘해방촌의 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해방촌이라는 공간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연구실을 찾았던 개별 사람들을 맞았다면, 앞으로는 해방촌의 다른 공동체, 지역의 다른 공간들과도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과연 이때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이 일을 하나의 소동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유의 기폭제, 분석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일로 ‘도시재생 사업’ 에 더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말의 기대 혹은 호의 마저도 날아가버린 것은 아닐지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함께 모여 이야기할 자리가 마땅치는 않으나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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